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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발견

Nex5n->A7 거의 5년 all MF 이종교배로만 찍다가
백만년 만에 다시 잡아본 AF 카메라.
(DP3M은 MF보다 난해한 AF라 제외)

DEVIEW, HackDay 정도는 양반인
수많은 저조도의 극한상황을
MF로 하루밤에도 몇 백장 심지어 몇 천장씩 찍어대는
나조차 믿기지 않는 미친 짓을 해내며
익숙해지니 수동이 더 편하다, 내가 만든다, 찍는 맛이다 등등 …
수많은 똥고집 합리화를 했지만.

그동안 난 알파고에 도전한 아마1단
굴삭기와 대결한 존 헨리였을 뿐.

AF 진짜 좋다. 신세계 오픈 !!!! 와오
사진 생활의 혁명적 경험? 찍으면서도 어리벙벙 ..
이렇게 편해? 진짜 이렇게까지 좋아??

결국 수동 포커스 빨리 잡는 건
내 사진 라이프의 본질이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한 게 아닌가. 근데 이 당연한 사실을 몰랐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힘든 일이라서. 그걸 해내는 게 사진에 대한 열정이라고도 한편으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능력치를 높이는 것으로 나를 차별화해 왔던 것도 같다. 속으로만 말이다. 심지어 순간의 포착과 해석마저도 기계가 대신하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이 무슨 구텐베르크같은 생각이란 말인가. 그것도 기술 조직에 있다는 사람이…

근데 극한의 상황에서 기계에게 항복하고 나서야
그게 아니었단 걸 절절히 깨닫는다.

쫓기면서…빼앗기면서 하게 되는
강제 본질 접근ㅠㅠㅠ

남들 다 쓰는 자동 카메라를
처음 불을 발견한 원시인처럼 놀라워하며
궁금해한다.

그럼 뭘해야 하지.
사진을 찍는다는 건 뭘까.

새해의 결심

뜨거웠던 12월.

꼭 더운 나라에서 며칠을 보내고 와서가 아니라, 그 나라의 기후때문이 아니라
열정인지 욕심인지 모를 그놈의 것 때문에 징글맞게 혹사당한 몸과 마음때문에
그리고 이어진 후유증 때문에 정신 못차리게 타다타다 재가 되어버린 12월이었다.

덕분에 모든 게 쓰나미처럼 지나간 신정 연휴쯤에는 전쟁치르고 돌아온 군인처럼
내 방에 돌아와 쓰러져 자다 깨다 먹다만 반복했고
시달린 노구는 며칠 그런다고 정상으로 돌아오질 않았다.

이만하면 충분히 쉬었다 싶어 잠깐 놀러도 나가봤지만,
물속인지 꿈속인지를 모를 곳을 헤매다 온 느낌 뿐.

지난 여름 제주에서 하고 싶은 거 양껏이 아니라 양을 넘치게 누린 댓가로
그렇게 혹독한 후유증을 치른 후
이제 다시는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것은 어려운 나이가 됐구나
실감하고 앞으론 그러지 말자 다짐했건만
또 다시, 더더욱 심하게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쉴 기회가 있었건만 또 다시 욕심부리고 (혹은 열정을 불태우고) 나니
남은 것은…

산산 조각난 생활리듬과 노안 노구, 늘어난 흰머리와 ㅠ
가출한 영혼. 멍때림 ㅠㅠ
하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같은 경험.
인생의 뜨거운 한 순간.
뭐가 맞는걸까. 중간은 어딜까. 중간이 너무 어렵다…

어쨌든 그렇게 탱탱 부은 육신과 멍한 정신을 데리고 또 다시 출근.
괴롭다 힘들다 투덜거리면서도
일상의 리듬에 어거지로 몸을 꿰어 맞추어 며칠을 보내니
그래도 오늘은 조금씩 정신도 돌아오고 몸도 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상태로 좀 전에 오랫만에 거울 속을 들여다봤는데.
지난 달보다 조금 더 풍화된 한 누이의 얼굴이 놓여있는 것이다.
어떤 샵에 가면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듣기도 하는 @_@

찬찬히 그 얼굴을 들여다 보니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고
자연스럽게 새해의 결심이란 것이 떠올라서 이렇게 오랫만에 일기장을 펼치게 되었다.

이젠.
뭐 내일이고 뭐고 없다.
그냥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밖에.

그게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만 생각하고 살기로.

물론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결심들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주 많이 원하는 것들을 점점 가지기 힘들 거라는 명확한 실감앞에서
내일을 생각할 에너지도, 미리 끌어다 쓴 내일을 버틸 에너지도 부족한 상태의
헤부적거리며 지푸라기를 잡는 것과도 같은 결심과는 좀 다를 것이다.

그 지푸라기를 쥔 아귀에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볼까 …가 아니고
그냥 그럴 수 밖에 없다. 되든 안되든.

오늘 하루라도 기분좋게 웃으며 살기 위해서는.
적어놓는다.

ㅎㅎㅎ

애플 뮤직 천국과 지옥

#천국

지난 몇 년간을 써 온 네이버 뮤직 앱은 아직도 어디로 가야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으려나…들어갈 때마다 헤매다만 나왔는데, 애플 뮤직은 딱 하루 쓰고 났더니 쓰기 시작할 때와는 완전히 딴판인, 세상 단 하나 뿐인 나만의 앱으로 변신해 버렸다.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

들어도 들어도 좋은 음악이 끝도 없이 쏟아지고, 하루에도 여러 번 깜짝 깜짝 놀래면서 요런 보물들을 못 만나고 찾아 헤맨 지난 시간 내 인생이 아깝기만 했다. 담당자들도 애쓰고 있겠고, 톱100과는 교집합이 없는 독특한 내 음악 취향때문이기도 하겠지만은 어쨌든 그렇게 됐다. 지난 일주일 신세계를 경험하며, 음악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인생에서도 뭔가 이렇게 딱 맞는 채널을 못 찾고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새로운 차원의 의구심으로 발전될 정도였으니.

늙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감수성이 메말라서, 더 이상 내 마음이 음악같은 건 원하지 않게 된 거라고. 아니었다.오밤중에 일어나 미친듯이 쿵쿵거리며 춤을 추기도 했고, 이불을 끌어안고 펑펑 울기도 했다. 음악으로 밤을 세우고 아침을 맞는 것도, 어둠 속에서 핸드폰 액정만 들여다보는 것도, 아이폰6를 거꾸로 들고 끝도 없이 클릭질을 하는 것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저 난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선 이렇게 나를 위한 음악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어.

덕분에 극도의 수면부족과 시력감퇴, 노안 등등 부작용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난 애플 뮤직과의 연애가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 오프라인으로 듣기>로 차 안에서 간밤에 받아놓은 수 백 여곡을 랜덤 플레이 하고, 귀에다 이어폰을 달고 살며 하루에도 여러 번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음악 퀄리티에 자뻑을 했다. 뜬금없이 DJ가 되고 싶기도 했다. 이 좋은 음악들을 혼자 듣기가 아까웠다. 세상의 문 하나가 새로 활짝 열린 느낌이었다.

#지옥

어제 저녁, 한국 앱 하나 받으려고 로그아웃하고 한국 계정으로 들어가려다 보니 한국 계정도 로그인이 안되고, 애플 뮤직을 썼던 미국 계정도 로그인이 안되는 현상이 발생! 졸지에 iOS 미아가 되어 vpn 앱을 받고 등등 난리를 치다가 결국 수십 번 트라이 끝에 간신히 미국 계정으로 로그인하긴 했는데…. 그것도 사실 참 요상한 일이다. 안될려면 끝까지 안 돼야지…왜 수십번 하다보니까 들어가 지냐고. 수십 번을 그러고 있는 나도 웃기지만. 절박하고 궁지에 몰리면 사람은 그런 일이 하나도 웃기지 않고 다 하게 된다.

열튼 천신만고끝에 로그인을 했는데 !!! 두근두근 뮤직 앱에 들어갔더니 그동안 담아놨던 모든 음악이 날라가 버린 것이다. 일주일동안 밤새워 만든 리스트와 받아놓은 곡들이 싹 다. 그 음악들을 만났을 때의 설렘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우린 이제 시작일 뿐인데.

충격과 공포였다. 결론적으로는 무수한 검색질과 잔머리 끝에 아이클라우드의 애플 뮤직 라이브러리를 on시키자 리스트들이 돌아왔지만, 나로선 알 수 없는 ‘병합’과 ‘ 대체’라는 옵션의 기로에서 ‘병합’을 선택한 결과 결국 제일 많은 곡을 담아뒀던 제일 소중한 리스트는 날라갔고, 파일 다운로드는 모두 다 새로 해야 했다.

덕분에 음악 제목 A부터 다시 한 번 찬찬히 들으며 음악을 솎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C까지 마쳤고 이건 하면 그냥 언젠가는 끝나는 종류의 일이다. 최소한 만나자마자 이별같은 어이없는 상실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리스트를 다시 다운로드를 받는다 해도 언제 이 리스트가 날아갈지, 음원의 접근이 언제 막힐지, 언제 다시 계정이 튕겨나갈지는 알 수 없다.

음악에 있어서 난 집을 찾았고, 여기가 끝(이자 많은 것들의 시작)이라고 감을 잡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미국인이 아닌 내가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와 애플 뮤직을 듣는다는 것. 그것은 근사한 최고급 남의 집에 부실한 계약 관계로 몰래 들어와 얹혀 사는 난민이라는 의미였다. 내가 아무리 여기서 진심의 아이러브유를 외치며 열심히 채우고 꾸며도, 언제 쫓겨날 지 모른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집, 닫혀버린 문 앞에서 내 처지를 실감했다.

하지만, 난 지금 무슨 노래 가사가 지목한 바로 그 시점이다. 멈출 수가 없었어~~ 그땐~~ 아무리 그래도 다시 네이버 뮤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시 파일들을 받기 시작한다. 이어폰과 스피커도 새로 알아보고 있다. Vifa 코펜하겐이 맘에 딱 차는데, 가격이 하늘에 매달려 있다. Vifa를 보고 나니, B&O도, B&W, Boss도 다 눈에 안 들어온다. 돌아와 보면 난 그냥 에어플레이 되는 Tivoli model one이 필요한 것일 뿐인데, 그런 건 또 없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것. 애플 카플레이는 어떻게 다는 걸까. 난 정말루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고 기가 막힌 음악의 성이라도 쌓을 기세다.

한국 앱스토어에만 있는 앱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존에 한국 계정으로 받은 앱들 업뎃은 어떡하지? 기기가 초기화되거나 OS를 업그레이드를 하면 어떻게 되려나…폭풍 검색이 답해 주지 않는 문제들. 애플 뮤직을 지키려면 난 계속 이 낯선 계정 안에만 갇혀있어야 할 지도 모른다. 단 한 걸음도 밖으로 내딛지 못하고.

그런데도 계속해서 음원들을 받고 리스트를 추가한다. 모든 게 한 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헛수고가 될지도 모를 일을 밤을 세워가며 또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멈출 수가 없다.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가 어쩔 수 없이
이 모든 것을 멈추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난 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

어떤 이별

갑작스런 이별 통보를 받았다.
’8월 31일까지만 영업’

1주 일의 살벌했던 강행군동안 가장 많이 떠올랐던 숯느님을 마침내 영접하러 청계산에 갔는데, 입구에 붙어 있던 안내문.

그래도 찜복을 입고 서성이는 몇 분이 계시기에 카운터에 물어보니 다행히 오늘까지는 불와 꽃탕을 빼고 저,중,고온 가마로만 마지막 운영을 한다고 한다. 메르스 때문에 운영이 많이 힘들었고, 그 후로도 회복이 아니 되어 불은 화목토일만 나오고 12시까지만 운영하는 특단의 조치까지 나왔지만, 설마 문을 닫을 줄이야. 상상초월의 사태. 제대로 맞은 뒷통수였다.

10년은 안되도 족히 다니시 시작한 걸로 따지면 7,8년은 될 것이다. 특히 지난 몇 년간 매주 한 번의 숯느님 영접은 고정 스케줄이었고, 기나긴 한 주를 끊어내는 힐링의 분기점이었다.

벌써 찜을 마치고 떠나는 사람들은 삼삼 오오 모여서 이별의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어디선가 다시 보겠지요. 그래 여기는 이런 곳이었다.

내가 이 사업을 하면서도 여기 오는 손님들이 그렇게 싫었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어. 야간 취로 알바생으로 생각했던 그 분이 바로 숯가마 사장님이셨다. 머리는 하얬지만 제법 깔끔한 외모에 잔잔한 근육으로 흰 난닝구 바람으로 열쇠를 내어주곤하셨다. 이별의 말을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장님은 저렇게 말씀하셨다. 아주 지긋지긋했다는 듯이. 나도 그 중에 하나였을까.

나는 샤워를 하고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덥힌 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찜질을 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고온 가마에 들어가서 숯느님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가마에 들어가 타월을 뒤집어 쓰고 있는 일이 그렇게 애로틱한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송글송글 솟아나는 땀에는 분명 내 몸에 침투한 숯느님의 에너지와 내 속에 있던 무언가가 진하게 결합되고 뒤섞여 나온 에로틱한 결과였다.

뜨거운 열기에 가마 천장에 발라놓은 흙더미 몇 개가 후드득 떨어졌다. 마치 마지막 날의 맞춤형 세러모니이기라도 한 양.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가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계곡 위에 펼쳐진 평상에 타월을 펼쳐놓고 대자로 눕는다. 평상 옆 나무에 두 발을 올려놓기도 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드리워진 나뭇가지 사이로 밤하늘을 보면서, 밤의 공기로 내 몸에 가득한 숯의 열기를 식히는 시간. 아무도 없고, 가끔씩 저 편 도로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에도 무심해진다. 난 여기서 듣는 계곡의 물소리를 또 사랑했다.

고루고루 속까지 익혀진 내 몸에서 뜨거운 김이 솟아오른다. 토해내는 숨으로는 내 몸의 나쁜 것들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특히, 공기가 차가워지는 10월 이후에는 급격한 온도차에 나만의 무아지경은 더 깊어진다.

언제가 무척 힘이 들었을 때, 여기에와 대자로 누워 뜨거운 몸을 눕히고 검은 하늘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 무슨 일이 생겨도 여기에 와서 이럴 수만 있다면, 난 괜찮을 거야.

실제로 그렇다. 숯을 쬔 다음 날은 나쁜 기운은 쏙 빠지고 뭔가 다른 에너지로 꽉 채워진 맑은 느낌. 그게 하루 이틀은 갔다. 아픈 목도, 배탈도, 감기도 다 숯가마에 가서 나았다. 그래서 아무리 피곤해도 힘들어도 숯가마를 믿고 있었다.

업무도 참 많이 했다. 그렇게 텅 빈 마음으로 어둠 속에 누어있으면 어느새 복잡했던 문제들이 단순하고 또렷하게 다가왔다. 생각하고자 하지 않았던 아이디어들, 그려볼 기획들, 써 볼 특허들, 연결하면 좋을 사람들, 시도해 보고 싶은 일들이 몽글몽글 솟아나서 여기 청계산에서 난 참 많은 메모를 해가서 실행했다. 메모는 오타투성이였지만, 여기서 시작된 아이디어는 허튼 것이 없었다.

숯을 쬐며 이어폰을 꼽고 신형철의 문학 이야기 팟캐스팅을 듣는 시작도 사랑했다. 열기와 땀과 몽롱한 졸음 사이를 가로지르는 신형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 명징한 논리를 그렇게 나른한 상태로 듣고 있는 게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한 꺼번에 누리는 보석같은 시간이었다. 이제는 신형철도 팟캐스팅을 멈췄고, 청계산 숯가마도 문을 닫는다.

차가 없었을 때는 복잡하게 분당서 신분당선을 타고 계단이 유난히도 높은 청계산역에 내려 잘 오지도 않는 버스를 갈아타고 또 한 참을 걸어서도 꼭 왔다. 갈 때는 더 문제였다. 아슬아슬하게 몇 대 안 남은 버스를 잡기 위해 뛰어가곤했다. 갑자기 폭설이 내렸던 어떤 금요일밤이 기억이 난다. 그런 날에 왜 집에 안가고 또 숯가마에 왔을까. 눈이 내리는 조용한 풍경을 뚫고 버스에서 내려 소복소복 눈을 맞으며 간 숯가마.

근데 그 날 유난히 불이 좋았다. 불의 상태가 말이다. 아주 빨갛고 세차게 활활 타올랐다. 게다가 사람은 세 네명이 될까 말까. 아줌마들 틈에서 매번 자리 확보 신경전을 해가며 전투찜질을 하던 나로선 그 날의 기억은 천국이다. 밖에서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난 조용히 뜨거운 숯을 쬐고 앉아있다. 그리고 가끔씩 밖에 나가 내리는 밤눈을 바라보며 몸의 열을 식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떠올리면서.

반대로 촐촐히 봄비 내렸던 지난 어느 봄날엔 나무 바닥에 누워 그대로 내리는 비를 맞고 누워있기도 했다. 해방의 클리쉐한 비주얼. 근데 클리쉐건 뭐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톡톡톡 살갗을 두드리는 봄비가.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내놓은 안경이 없어져서 주인을 대동하고 난리치고 다 숯가마를 다 뒤집어 엎은 적도 있다. 30분 쯤 후에 어떤 아줌마가 와서 다른 안경을 가져갔다며 바꿔줬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 너무 잘 된 일이라며 기쁨을 나누는 그 분들 사이에 끼어있는 게 무척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조용히 앉아서 끝까지 숯느님 영접을 마쳤다. 그 후 몇 달은 그 분들 대화가 들려오는 것이 계속 힘들었다.

숯의 효능에 대한 간증은 지난 몇 년간의 에버그린 토픽이었다. 숯으로 암치료하신 분, 갱년기를 이겨낸 분, 교통사고 후유증을 고치신 분 등등. 실제로 빡빡 머리 민 깡마른 암환자분들도 꽤 뵈었다.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숯가마로 출퇴근하시는 분들.

숯의 최고의 경지는 이런 거다. 숯을 많이 쬐면 피부가 다 타고 일그러는데 그래도 계속 쬐면 거기서 새살이 돋고 아픈게 싹 낫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픈게 없으면 그렇게 까맣게 올라오지 않는단다. 숯은 이걸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으로 나뉜다. 난 그 경지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다 타서 새까매진 다리며 등에 불 쪼이시는 고수 분들은 꽤 많이 봤다. 그 분들 새살은 다 올라오셨을까. 아픈 것도 싹 다 낫고. 여하튼 이건 숯가마에선 사순설과 부활절과 비슷한 바이블 프로세스다.

특히나 힘들었던 건 자리싸움이었다. 골수 아줌마들이 서로 패를 지어 자리를 맡아주고 나같은 독립군에게는 좋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분들과 싸울 엄두따위는 내지도 못하는 나는 항상 가마 끝자락에 행여나 남의 자리 침범할까 쭈그리고 앉아서 간신히 불을 쬐었다. 그러고 있으면 가끔씩 인심쓰듯 가면서 자기 자리를 내 주는 분들도 있었고, 좋은 자리가 나서 앉으려고 하면 쫓아내는 분들도 있었다. 기가 약한 나로선 당하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일이다. 작년 부터는 사람들이 줄기 시작하더니, 메르스때는 나도 발을 끊었고 다시 가기 시작할 때는 사람이 확 줄어 있었다. 난 쾌재를 불렀지만, 불 나오는 요일이 따로 생기고 영업시간이 줄고 그러니 사람들이 더 빠지는 걸 매주 체감하다 보니 호황이라 자리 싸움했던 때가 그립기도 했었다. 그러다 이제는 문을 닫는다니…

마지막 날이라 그런가. 사람들은 거의 다 빠지고, 사장님은 대자로 누워 핸드폰에서 음악을 트셨다. 그런데 이게 왠걸. 플레이리스트가 예술이다. 씨네마 파라디소 느낌의 귀에 익지만 이름 모를 고급진 감성 팝들이 이어진다. 가을에 딱 이런 음악이 어울리지 않아? 사장님 말씀. 네네 맘 속으로만 대답. 왜 여기 오는 손님들이 그렇게 싫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숯을 떠나기가 더더욱 싫어졌다. 나도 대자로 누워 하염없이 음악을 들었다. 다 말로 할 수 없는 무수한 추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시간들. 와이파이도 전화 안되는 고립의 순간. 추억의 모서리가 조금 무너진 느낌이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리운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문득 들려오는 …Oh thinking about our younger years. There’s only you and me. We’re young, wild and free….브라이언 아담스는 아니었지만.

그 풍경을 담았다. 사장님이 나즈막히 노래를 따라 부르신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액정 속의 풍경은 어디 살벌한 러시아 수용소 분위기다. 이런 곳에 나는 수 년을 묻었다. 조금 전까지는 몰랐는데, 아마 정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떠날 줄을 몰라서 정든 줄로 몰랐던 것일 뿐.

평소와 같이 11시가 조금 넘어 난 짐을 싸서 나왔다. 평소와 같이 신발장 열쇠를 내어주는 사장님의 얼굴을 외면하고 돌아서는 나에게 사장님이 말했다.

오늘 여기 마지막인 거 아시죠?

갑자기 마음이 확 풀어졌다.
네, 너무 …너무 아쉬워요. 저 여기 정말 몇 년을 다녔어요. 여기서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저 여기 정말 좋아했어요.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난 청계산 숯가마의 맨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

노안?

최근 또 한 번의 희한한 경험을 했다. 하나의 대상이 두 개로 보이는 것이었다. 음…정확히는 반대다. 하나의 상이 있었고, 그 앞일지 뒤일지에 그와 유사한 하지만 같지는 않은 또 하나의 상이 겹쳐 보였다. 분명히 한 쪽은 환각일텐데 눈으로 보듯 분명히 보여서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눈만 그런게 아니었다. 귀도 그랬다. 그 대상이 내는 소리도 두 개로 겹쳐서 스테레오로 들려온 것이다. 각각의 상이 각각의 다른 소리를 내고 있었고 내 귀를 타고 들려왔다.

아무리 포커스를 맞추고 한 쪽의 소리에 집중하려 애써도 소용없었다. 그런 식의 무기력함은 처음이었다. 둘 다 너무나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서 도저히 한 쪽으로 합쳐지지가 않았다.

어느 쪽에 반응해야 할 지 몰라 약간 혼미해졌지만 곧 내 쪽의 감각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두 개의 채널로 분리되어 서로 다른 대상을 인지하며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말이란 것이 한 쪽에선 공장에서처럼 기획, 제조되고 있었고, 동시에 또 한 쪽에서는 개천에 흘려보내는 공장 오염수처럼 겉잡을 수 없이 마구 흘러나왔다. 그런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동시 두 채널을 통한 입력과 출력. 인간의 놀라운 멀티 태스킹 능력을 찬양해야겠건만, 실제로 그것은 의지라기 보단 원혼에 빙의되듯 당한 것에 가까워서 세상에 이런 일이…뭐 이런 탄식을 하는 또 하나의 채널이 분리될 뿐이었다. 헐~

그 때 나는 하나였을까 둘이었을까 아니면 셋이었을까. 그 중 어느 쪽이 진짜 나였을까. 또한 내 앞에 있었던 것의 실체는 뭐였을까. 이런 걸 누구에게 물어볼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선택해야 했던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새벽 나를 깨운 그 조용하고도 맑은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내 눈의 포커스는 하나로 합쳐졌다. 그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개취 movies – 네 편의 뫼르소 프리퀄

2015 2Q를 함께 한 영화들.
강을 건너지 못한 채 부조리의 현실 앞에서 질문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는 네 편의 이방인 프리퀄

Serious man

1월 1일 르윈의 저주에 그토록 몸부림쳤음에도 2/4분기 첫 번째로 본 영화가 < 시리어스맨>이었던 걸 보니 나도 참 애지간한 코헨쓰의 노예다. 시리어스맨의 다크포스 앞에서는 르윈마저 달달했으니…하지만, 그럴 줄 알면서도 열어봐야 했던 코헨쓰의 판도라 상자.

영화 보는 내내 까뮈를 떠올렸다. “인생의 모든 걸 심플하게 받아들여라.” 유명 자기 계발서의 한 페이지에서 오려낸 것만 같은 아포리즘은 실은 부조리한 인생을 거짓없이 성실하게 관찰한 결과로 갖추게 되는 잔인한 객관성이다. 신에게서 답을 갈구하는 래리에게서 이방인이 되기 이전의 뫼르소가 보였다. 뫼르소도 한 때는 어떤 일의 의미를 찾고 싶어했을 지도 모르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스크린을 가운데 두고 접힌 데칼코마니처럼 다시 래리에게 겹쳐진 나를 보았고, 나는 코헨의 영화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분명히 뭔가를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매달리듯 코헨을 튼 나와 랍비를 찾아가는 래리가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랍비의 장광설처럼 코헨도 나를 낯설디 낯선 1960년 후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결국엔 토네이도 앞에 내던진다. 그리고 바로 여기로 랍비의 조언을 찾아다니던 래리와 코헨의 이야기를 따라가던 내가 거울 앞에 선 듯 서로 만난다.

몰아치는 검은 토네이도 앞에서 참수대의 칼날처럼 내려꽂히는 블랙 스크린. 비로소 프롤로그의 경구가 명징해진다. 슈레딩거의 고양이는 죽었으니, 뫼르소가 되라는 얘기였구나. 하지만 가장 큰 비극은 인식 이후에도 뫼르소따윈 될 수 없는 채, 눈 앞에 몰려오는 토네이도를 바라보는 삶이로구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Detachment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제목만으로도 뭔가 뜨끔하지 않았을까. 은밀히 품고 있던 키워드 하나가 까발려진 것 같은? 영화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뭘 말하고 싶은지, 주인공이 어떤 마음인지, 왜 저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별 설명 없이도, 몇 장면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놀랐다. 그닥 드라마적이지 않은 제목이며, 그딴 식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하며…

하지만 부조리 머신이 되어버린 뫼르소와는 다르게(부조리에 대응하는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태도인) 주인공 헨리는 여전히 갈등하고 절망하는 인간계의 고뇌를 담고 있다. 희망은 버렸으되, 절망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발아 상태의 뫼르소. 그에게 드리워진 죄의식의 아우라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간적인 감정의 굴레의 그림자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레지스탕스처럼 행복이 만발한 이 세상이 드리운 그늘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생존하고 있다. 그들은 외출할 때는 동시대인의 외투를 입지만, 안전한 곳에 혼자 있을 때는 이런 영화를 보며 현란한 화면 뒤에 전송된 코드를 해석해 낼 것이다.

Shame

삶의 공허함을 전면에 드러내고 허무의 돌직구를 영화는 솔직히 유치해 보인다. 그 탈출구가 섹스라는 것도, 그 클라이맥스가 하필이면 화장실에서 손목을 그어댄 여주의 피범벅이라는 것까지도 차고 넘치는 클리쉐다. 이 순간 < 모텔 선인장>을 비롯 무수한 영화들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끝까지 밀어부치는 것에는 힘이 있나보다. 알면서도 당하는 뭐 그런. 한 두 컷 맛만 보여주며 밀땅하고 약올리고 상상하게 만드게 아니라 아주 대놓고 덜렁거리며 왔다리 갔다리….블러 처리된 영상이었음에도, 당혹스러웠다. 색스러움이라곤 냄새도 안나서 더욱 그랬다. 이 화면 앞에서는 난 대체 뭘 느껴야 하는 걸까.

직면. 그런 걸 들이밀면서 니 삶의 속껍질을 한 번 까봐라 그러는데, 오케이 갈 데까지 한 번 가 보세요 이런 심정이 된다. 당연히 절망도 깊어지고 단절은 명확해지고 그에 따라 각종 수위도 높아진다. 그럴 줄 몰랐던 전개는 하나도 없는데다, 또 하필이면 빗속에서의 눈물 피날레는 좀 심했다 싶기도 하다.

하기야 저런 실감 앞에서조차 인간의 선택지란 것은 참으로 별 게 없긴 하지… 나도 어쩌면 저렇게 통속적으로 빗속에서 울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감정 불능자를 다룬 영화가 오히려 심하게 감정적으로만 몰아부치는 듯한 역설. 관계 불능자를 다룬 영화 속에서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관계였다. 쩝. 요러한 구리구리함 대비 햇빛이 너무 뜨겁다는 이유는 지금 봐도 너무 모던하군.

감독보다는 마이클 파스빈더를 watchlist에 올린다. 심지어 까뮈 분위기 도 좀 나지 않음? 파스빈더가 연기하는 잡스가 기대된다. 파스빈더라면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천재 또라이 잡스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려내줄 것 같다. 커쳐는 솔직히 좀 …그랬잖음?

Mad Max – Fury Road

쓰기 시작할 땐 뫼르소에 끼워맞춰 볼려고 했는데, 지금 쓰다보니 맥스에서 뫼르소까지는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희망이 섞이지 않은 뜨거운 햇빛 아래서 살인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구랴. 하지만 맥스는 살아남기 위해서, 뫼르소는 정오의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그 차이는 어떻게 극복이 안되네. 맥스는 너무나 에너제틱해. 하트 뿅뿅 하디..

그런데, 희망이 없는데서 왜 살아남으려는걸까? 영화의 클로징 자막은 까뮈의 마지막 작품 < 최초의 인간>에서 따온거래는데, 기억이 깜깜해.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도. 그렇담 맥스는 정력맨 버전의 뫼르손가?

“Where must we go? H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액션엔 취미 없지만,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는 영화.

인사이드 르윈 : 깊은 빡침의 칸타타

제길슨. 올해 새해 첫 날 보고 써 놨다가 코헨의 위대함에 대해서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듯하여 draft로 묶혀 뒀는데…
2015년의 1분기를 다 보낸 이 시점에 이 글을 다시 꺼내 보니 정리고 뭐고 어이없으면서 그냥 눈물이 앞을 가리네.

새해 첫 날 본 영화의 중요성이여….
그리고 르윈과 같은 여정이니 노를 저으라느니 말라느니 영화 감상이랍시고 쿨한듯 나불나불대는 것과 실제로 그러한 현실을 맞닦뜨리는 것의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여.
ㅠㅠㅠㅠㅠㅠㅠㅠ

올해 1분기는 새해 첫 날 본 영화 제목 그대로 인사이드 초아였다.
아무리 코헨쓰가 위대한들, 난 인제 그만 아웃사이드초아 할랜다!!
그런 의미로 정리안됀 채 괴발새발 그냥 올림. 이걸로 끝나라고! Draft에 놓여있으면 르윈의 저주가 영영 계속될 것만 같아서…그리고 내년 1월 1일에는 완전 해피해피 러브러브 샘솟는 영화 볼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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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기타 하나와 고양이 한 마리, 뉴욕의 겨울…안타깝게도 이 카피는 영화의 포인트를 전혀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누가 이 영화의 포인트를 한 줄의 카피로 요약해낼 것인가.

2015.1.1 < 인사이드 르윈>을 선택했다. 밤마다 지인의 카우치를 전전하며 루저로 살아가는 뉴욕의 포크송 가수 르윈은 쉴틈없이 쏟아지는 엿들을 온몸으로 맞으며 뮤지션으로서 전기를 찾아보고자 시카고로 떠난다. 무박 삼일의 험난한 여정의 결과는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로 되돌아와 삶에서 유일하게 붙들어왔던 음악을 내팽개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엿들의 폭격은 계속되어 그런 결단조차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 와우! 이것이 2015 새해 첫 날을 여는 영화…

영화를 보고 나서 바흐의 선율을 떠올렸다. 지루하리만치 반복을 거듭하며 층층히 쌓아올려지는 정연한 음계들, 드라마틱한 기승전결 없는 단순하고 소박한 음들의 모여 그 총합으로 마침내 닿게되는 신성의 경지. 불필요한 장식은 없다. 과도한 감정도…하지만 결국 우리는 어떤 깊은 곳에 닿게 된다.

< 인사이드 르윈>도 그렇다.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부리짓처럼 반복되는 모멸스런 빡침의 상황들. 뭐 그리 대단히 웅장한 스케일이나 끝에 뒷통수를 후쳐치는 반전같은 건 없다. 그렇다면 영화가 무척이나 짜치고 지루해야 할 것 같은데, 결과는 정반대다.

무심하게 등장했다 쓴웃음을 짓게 만들고 빠르게 퇴장하는 에피소드들. 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은 순간으로 휘발되지 않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시 튀어나와 의미심장한 후기를 찍는다. 한 개의 깜짝쇼 빅반전 대신 매 순간 극히 마이크로한 층위에서 인물들의 대사와 선택이 보는 이의 벳팅을 비껴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끝까지 비껴나가다 끝나버리는 카타르시스 없는 희한한 영화 체험을 하게 된다. 하나의 큰 놀람 대신, 순간순간 미세한 쇼크들이 쌓여가다. 그 쇼크들이 깔때기처럼 수렴되는 곳은 빡침 짤방같은 표정 뒤에서 실상 그다지 드러나는 것은 르윈의 내면이다. 그리고 이 순간들은 어느 순간 ‘하루 푹 자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피로’가 한 인간의 인생을 쓰나미처럼 덮쳐온다. 날 것의 인생이다. 영화화될 수 없는 순간을 스크린으로 찍어 올린 ‘예술’의 경지이시다. 멋드러진 포크송은 그 위에 얹은 화룡점정의 데코레이션. 끝내주는 대체불가 코헨브라더쓰이다.

‘왜 코헨의 영화에서는 모든 씬들에 뭔가 있어 보일까? 별 거 아닌 것 조차도. 그 무엇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런 의문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 답을 보았다. 그 사소한 순간들이 실제로 중요한 뭔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실제 인생에서도 중요한 것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이러한 매 순간들이라고 코헨브라더쓰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르윈이 고양이를 버리고 나온 순간, 르윈이 자신의 아이가 있는 도시의 표지판을 지나친 순간. 어린 시절의 노래를 바칠 때 아버지가 똥을 싼 순간. 인간을 파괴하고 인생의 방향을 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 파고>가 떠올랐다. 잔인한 연쇄 살인 사건을 둘러싼 범죄를 다루지만, 결국 이 영화는 남편이 우표를 붙이는 마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거기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파고를 그렇게까지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입신 경지의 코헨 브라더쓰가 아직도 여전히 이 사소한 삶의 순간을 붙들고 있어서 너무너무x100 좋았다. 이 그 사소한 순간들을 경지에 다다른 최고의 솜씨로 살려내 주어 좋았다. 그래서 이건 1960년대 뉴욕의 실패한 포크송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얘기였다. 잘해 보려고 해도 시시때때로 브레이크가 걸리고, 살기 위해 소중한 것을 버리고, 그걸 버려도 계속 살아지며 빡침과 동행하는 내 인생의 이야기다.

고양이를 버리고, 도망가는 씬. 영화 초반에 골파인 교수의 비서가 적시하듯 cat is 르윈이며, 고양이를 버림으로써 자신을 배신한 것이다. 뒷자석에 남겨둔 롤랜드 터너는 부축없이는 움직이도 못하는 지경이다. 이들을 버리고 혼자만 탈출해 또 다시 히치하이킹을 감행하는 르윈의 검은 실루엣과 그런 그를 무심히 지나쳐가는 차들의 모습. 아무 대사도 설명도 없었지만, 화면은 무겁디 무거운 비극감이 짓누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차를 얻어탄 르윈이 멀쩡히 시카고에 도착한다. 하지만 도착하자 마자 재수없게 쌓인 눈에 발이 빠지 양말까지 모두 젖어버린다. 이렇듯 무거운 비극과 어이없는 코메디를 아무 것도 아닌 양 밀가루 반죽처럼 하나로 뒤섞어 버리는 솜씨. 매 순간이 이것이 무엇인지 도당체 정의할 수 없게 만드는 스핑크스의 퀴즈와도 같은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비극과 코메디, 성과 속이 나란히 어우러지며 뛰어노는 이 영화가 나에게는 알알이 박힌 보석들처럼 눈부시게 느껴진다. 모든 순간들이 웃기지만, 그 웃긴 순간들이 매 순간 심오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사소하고 잡스런 씬들에 응축된 고밀도의 상징성들은 날 것의 이야기에 잡힐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원형의 아우라를 덧씌운다. 코헨님들은 영화 하나 속에서 수 없이 많은 반전들을 썼다. 이렇게 코헨느님들은 모든 순간을 새로이 창조하셨다.

연속되는 빡침 속에서 가끔씩 욱한 르윈은 미약한 반격을 하기도 하지만, 그 반격은 번번히 아무 영향력도 없이 사그라든다.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는 쫓겨나오고, 롤랜드 터너는 흑마술 괴담을 쏟아내며 지팡이질을 계속한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바주인이 진과 잤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르윈은 참지 못하고 무대의 여인를 모욕한다. 자기가 받은 모욕을 돌려주기라도 하겠다는듯이. 하지만, 얼핏 성공적으로 보이는 이 짜친 화풀이조차 건물 뒤에서 대차게 얻어맞는 것으로 자신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때린 여인의 남편에게 르윈이 던진 말은 의미심장하다. Au revoir. 안녕이라고 번역이 이 불어 인사말은 잘 가란 말이 아니라, 다시 보자는 뜻이다. 남자는 르윈을 때리고 나서 넌 이 시궁창에 남아라. 우린 떠날테니라고 독설을 퍼붓한다. 하지만, 르윈은 빡침은 계속될거고, 누구나 이 빡침의 시궁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율리시스의 여정과도 같은 고단한 여정을 통해 마침내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저 한 마디의 인사말에 담아냈다. 그리고 이 말은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다.

나의 2015도 르윈의 여정과 다르지 않을거다. 무언가를 갈구하며 길고 짧은 여정들을 하겠고, 별별 일들에 빡이 치겠지. 민폐도 끼치고, 신념을 배신하는 짓도 하며, 영혼이 파괴되는 듯한 기분도 느끼겠지. 하지만 그 조차 지나갈거야. 가끔은 If I had wings같은 멋진 선율이 내려, 내 마음을 쉬게 하리니. 자, 출발하자. 노를 저어라 초아시스여….

↑↑↑↑↑↑↑↑↑↑ 바로 이 마지막 부분…ㅠㅠㅠ 난 이때 몰랐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세상이 마이 변해간다고들,,,,변했다고들 한다.

나는 사실 이런 변화가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다.

어짜피 난

행복이나
잘 산다는 것 보다는
살아남는 것만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특별히 날리게 산 기억은 없어도
그렇다고 살아남지 못한 적도 없으니까.

근데 실은 그런 인생의 멋과 맛을 살려내 잘 굴러가는거,
그게 제일 잘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도가 트이려나?

걍 그렇다고.

이런 것도 좀 써놔보면 어떨까 싶어???? 누가 뭐랜다고….은근히 고품격 추구하는 경향도 없지 않으심 블로그에서만 ㅋㅋㅋ

2014 촤판 종료~ 사진 첫 매출 오예

NAVER LABS에서 열린 촤포토 제1회 사진전 <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오늘 모두 마쳤습니다. 총 61장의 사진을 판매하여, 40만 9천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장당 평균 6,700원, 내 사진을 팔아서 남긴 첫 매출입니다.
애초에 너그럽기 그지없는 홈어드밴티지의 이점을 끼고 진행한 짜치고 행사였지만, 입구를 점유하고 촤판을 벌여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내가 찍은 사진을 설명하고 팔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느끼는 사진의 가치와 대중(?)의 선택 사이의 엄연한 간극을 손으로 어루만지듯 구체적으로 느꼈고, 한편으로는 그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뭐 하나라도 돈이란 걸 받고 팔게 되니 사람을 보고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목과 관계는 결정적이었습니다. 온실 속 직딩의 pseudo 장사 경험이지만 앞으로 사진찍는 것 뿐만 아니라 일하는 데도 조금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고급진 액자나 걸린 장소의 아우라에 기대지 않고 이렇게 오가는 벽에 무심하게 붙여놓은 사진전의 방식이 꽤 마음에 듭니다. 보부상, 장똘뱅이이처럼 여기저기를 떠돌며 보따리 장수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펼쳐놓고 이 얘기 저 얘기 풀어놓는 게 재밌습니다. distributed & disruptive… 면대면 오프라인 컨텐츠 유통의 어떤 소박한 포맷을 궁리해봅니다.

무엇보다 내 사진을 돈 받고 파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한 해를 마치며 꼭 바랬던 소원 하나를 이루어 뿌듯합니다. 예전에는 내 책을 쓰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을 두 번이나 이뤄버려서(ㅋㅋ) 심심하던 차였습니다. 이젠 두 꿈을 결합해 사진책을 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다들 작은 꿈이라도 정하고, 소박한 형태로라도 직접 이루어보시길 바랍니다. 궁극의 무엇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구도자적 성취는 아니지만, 끝도 없는 인생길에 작은 점 하나를 찍는 재미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는 소중한 것이지요.
사진을 팔아주신 분, 또 보아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 오프라인으로 봐 주신 분도, 온라인으로 봐주신 분도 모두 똑같이 감사합니다. ‘본다는 것’의 깊은 의미를 생각합니다. 매출액 전액은 NAVER LABS 이름으로 기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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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나머지 반쪽을 셀프 리뷰함

나의 동료들의 한 해의 업무 성과를 리뷰해서 점수까지 달아 회사에 제출했다. 인센티브를 목전에 두고 돌파해야 할 셀프 밥값 정산, 직딩의 최고 레벨 미생의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모임을 하고 와서 늦은 시간 사무실에 홀로 앉아 스탠드 불빛 아래 돌이켜 보는 한 해. 예기치 않게 발휘되는 밤의 매직은 소소한 미생이 한 순간이나마 성찰 가득한 전인격적 완생으로 변신한 듯 착각하게 하고, 매 년 반복되는 가혹한 평가 프로세스를 ‘진실의 순간’으로 승화시킨다.

재밌는 아니 당연한 사실은 업무에 투여한 시간에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밤들을 머리를 싸매고 사무실에서 죽때리며 아둥바둥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 해 내 업무에서는 감동적이라거나 아웃스탠딩한 성취를 꼽기 힘들다. 작년에 자신있게 내놓았던 성취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고, 더 빨리 버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과감히 뛰쳐나갔어야 하는 타이밍을 늦췄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쨌든 이렇게 업무 정리를 했고 교훈이 있었고 내년의 작전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제출하고 나니 뭔가 아쉽다. 이게 전부인가. 이 평가는 반쪽짜리다. 사무실과 업무 시간으로 제한하지 않고, 내 삶을 360도 전면적 총체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내 지난 1년의 의미를 바로 정리할 수 있다.

한 단계를 뛰어 넘은, 큰 변곡점들을 그린 한 해였다. 나 자신과 수없이 싸웠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운동 – 4점

지난 2월 생전 처음으로 근력 운동을 시작했고, 12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새로운 세상에 침투해 들어가기 위한 집중 물량공세로 한 주에 4~5번을 할 때도 있었고, 다사다난한 일정에 한 주에 한 번을 겨우 할 때도 있었고, 여행가서 아예 휴업을 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잠시 쉬긴 했을망정 아예 멈추지는 않았다. TBD, TBD…

안정이 된거라고?? 설마. 아직도 운동을 하러 가야 하면, 땅이 꺼지도록 한숨 푹~ 어디론가 도망가고만 싶다. 그럴 땐 “성공의 9할은 출석”이라고 했던 우디 알렌의 말을 읊조리며 일단 간다. 똑바로 서서 살포시 정신줄을 내려 놓고,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내가 정한 단계들의 첫번째 세트를 수행한다. 끝나면 또 그 다음 단계의 횟수와 시간을 채우는 거다. 쓰러지거나 내려놓고 싶은 마음과 싸우며. 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할까. 종종 끝이 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가 된한 기분으로.

“죽지 않은려고” 정말로 그 이유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각종 맨몸 운동을 꽤나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닥 스쿼트 2~300개 정도는 그냥 부담없이 ㅎㅎ 아직도 제일 힘든 건 플랭크다. “인생이 짧다고 느껴진다면, 플랭크를 해보라”라는 말이 있다. 30초, 1분이라는 시간을 영원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악마의 운동. 하지만, 아무 도구도 움직임도 없이 내 힘으로 내 몸을 지탱하는 단순한 자세의 유지만으로 전신의 근력을 키우는 이 운동의 원리와 결과가 더할 수 없이 우아하다.

허벅지는 근육이 붙어 탄탄해졌고, 체력에 자신감도 생겼으며, 일상생활의 여러 움직임들이 훨씬 편해졌다. 반면, 작년에 재미를 붙였던 유산소 운동(뜀박질)을 거의 못한 것, 그리고 커피와 달다구리 홀릭 지수가 극에 달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식이 (식단 조절이 아니라)를 곁들이지 못한 것이 아쉬운 포인트다.

드라마틱한 감량이나 꿀복근같은 건 못 했지지만, 큰 숙제처럼 미뤄뒀던 분야에 마침내 뛰어들어 개척을 실행한 점과 그 과정에서의 눈물겨운 노력을 인정해 기꺼이 4점을 준다. 내년엔 더 뛰고, 가능한 몸에 좋은 것들을 골라 먹어 보는 걸로. 지금 하는 건 그대로 다 해야 한다는 건 함정;

사진 – 4점

작년 DEVIEW를 기점으로 취미로 끼적였던 사진이 업무와 연결되는 경험을 했고, 전시는 아니지만 내가 만드는 서비스의 컨텐츠로 기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경험을 했다. 올해는 그 기조가 더욱 이어졌다. 랩스와 D2 마케팅이 본격화되며, 각종 행사에서 불려가 더 많은 곳에서 찍사로 활약하게 되었다. SNS 마케팅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 이미지컷으로도 쓰이고, 비록 분야에 특화된 학회지지만 지면 광고에도 쓰이게 되었다. ‘쓰임새가 있는 사진’을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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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오스. 라오스에서 드디어 나는 내가 정말로 찍고 싶었던 피사체를 만나는 행운을 경험했다. 부족함 없이 넘치는 광량과 튀어나올 듯한 동남아풍의 색채, 그리고 사람들. 문화나 예의범절 같은 것으로 가리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 이 3종 셋트의 결합은 찍사에게는 천국을 선사했고,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셔터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새로 산 카메라에 적응 못 해 부들부들 떨었던 순간들도 있다. 옹고집인지 사서 고생인지 모를, 하지마 어떤 결과물들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MF의 한계.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지는 순간들을 눈 앞에 두고, 어찌해도 흐릿하기만 한 뷰파를 초집중으로 들여다보며 제발 내가 이 장면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까지 해 가며. 절박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통했던가. 그 결과물로 난 작은 사진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진전 보다 더 하고 싶은건, 이 사진 속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찍었던 사진을 모두 사람 숫자대로 뽑아서 가져가 이 사람들을 찾아서 다시 그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돌려주고 싶다. 그리고 스쳐지나간 그들의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여주고 쥐어주고 싶다. 액정만 보여줘도 가득히 환해지던 그들의 표정을 다시 보고 싶다. 그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여행자로서 열린 마음과 찍사로서의 절실했던 마음이 콜라보해 잡아냈던 살아있는 순간들. 기꺼이 4점을 준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 순간 포착을 넘어선 피사체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다. 눈에 띈다거나 신기해서가 아니라 아니라 그 관심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셔터를 누르게 되기를 바란다. 눈에 띄는 피사체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 유일무이한 고유함을 가진 대상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그래야 진짜 순간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순간에 스토리가 더해질 것이고, 그 스토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5점의 조건이다.

4점과 5점의 간극은 결정적이다. 3점과 4점의 간극보다 훨씬 더.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다른 과정으로 찍어야 한다. 그렇게 찍고 싶다. 2015년에는.

유흥 – 4점

올해서야 비로소 고기 맛을 봤다고나 할까. 한 단계 이상 레벨 업한 것이 분명하다. 왠만한 패턴은 모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벽에 부딪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척 무척 놀랍고 황홀하고 뜨거운 순간들이 있었다. 잊지 못할 것이다. 그냥 막연한 가능성을 꿈꾸며 억지로 끌려가는 심정이었던 작년과는 많이 달랐다. 주저없는 4점. 내년에는 나만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조금은 가져보고 싶다. 그 전에 기존의 스타일부터 습득해야겠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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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했던 세 분야에 얼마나 노력했나. 일주일을 쪼개 쪼개 하루씩을 간신히 돌려 막기하며 보냈던 한 해. 하지만 포기한 것들도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난 보다 확실하게 거의 모든 연락수단을 확인하지 않게 되었다. 카톡은 아예 안 보고, 안 읽은 SMS도 수 백개가 쌓여있다. 지메일은 오피셜리 쓰레기통을 선언했다. 웃긴 건 실험 결과 그래도 아무 문제 안 생긴다는 것이다. 그게 진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가까웠던 사람들을 자주 못 보는 것은 아쉽다. 다들 잘 살고 있으리라 믿을 뿐이다. 자랑질쟁이 페북이 전해주는 딱 그만큼씩은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월호와 신해철과 이런 세상과 기타 등등 때문에 슬퍼하면서도, 점점 더 미쳐가는 나라에 울분을 토하면서도 어떻게든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 이상 이런 일들에도 더 많이 관심을 보내고 행동할 수 없게 되었다. 깊은 패배감과 무력감을 인정한다. 그 전의 5년에 너무나 지쳐버렸음을 인정한다. 빛이 보이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 반대급부로 방향을 틀어 ‘개인’의 삶 속으로 더욱 깊숙히 코쿠닝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나이. 올해 본격적으로 내 나이를 인정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의연하기란 각오나 예상보다 힘들다. 닥치지 않고 알 수 있는 게 없음을 다시금 실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무수한 가능성의 연속이다.

다시 봐도 일이 좀 아쉬웠네…그렇게 일에 매달렸는데도 ㅠ 점프 업 해야 했는데. 아니면 한없이 뒷걸음질 하게 되는 나이다. 한 해 한 해 나이값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어쨌든 꽤 멋진 순간들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평가해보면 초아님은 승진 요건에 부합합니다. 한 살 더 먹어도 좋습니다!!! 인정 ^^ (대충 마무리 ㅎ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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