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

최근 또 한 번의 희한한 경험을 했다. 하나의 대상이 두 개로 보이는 것이었다. 음…정확히는 반대다. 하나의 상이 있었고, 그 앞일지 뒤일지에 그와 유사한 하지만 같지는 않은 또 하나의 상이 겹쳐 보였다. 분명히 한 쪽은 환각일텐데 눈으로 보듯 분명히 보여서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눈만 그런게 아니었다. 귀도 그랬다. 그 대상이 내는 소리도 두 개로 겹쳐서 스테레오로 들려온 것이다. 각각의 상이 각각의 다른 소리를 내고 있었고 내 귀를 타고 들려왔다.

아무리 포커스를 맞추고 한 쪽의 소리에 집중하려 애써도 소용없었다. 그런 식의 무기력함은 처음이었다. 둘 다 너무나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서 도저히 한 쪽으로 합쳐지지가 않았다.

어느 쪽에 반응해야 할 지 몰라 약간 혼미해졌지만 곧 내 쪽의 감각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두 개의 채널로 분리되어 서로 다른 대상을 인지하며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말이란 것이 한 쪽에선 공장에서처럼 기획, 제조되고 있었고, 동시에 또 한 쪽에서는 개천에 흘려보내는 공장 오염수처럼 겉잡을 수 없이 마구 흘러나왔다. 그런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동시 두 채널을 통한 입력과 출력. 인간의 놀라운 멀티 태스킹 능력을 찬양해야겠건만, 실제로 그것은 의지라기 보단 원혼에 빙의되듯 당한 것에 가까워서 세상에 이런 일이…뭐 이런 탄식을 하는 또 하나의 채널이 분리될 뿐이었다. 헐~

그 때 나는 하나였을까 둘이었을까 아니면 셋이었을까. 그 중 어느 쪽이 진짜 나였을까. 또한 내 앞에 있었던 것의 실체는 뭐였을까. 이런 걸 누구에게 물어볼 수는 없다. 그것은 내가 선택해야 했던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새벽 나를 깨운 그 조용하고도 맑은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내 눈의 포커스는 하나로 합쳐졌다. 그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개취 movies – 네 편의 뫼르소 프리퀄

2015 2Q를 함께 한 영화들.
강을 건너지 못한 채 부조리의 현실 앞에서 질문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는 네 편의 이방인 프리퀄

Serious man

1월 1일 르윈의 저주에 그토록 몸부림쳤음에도 2/4분기 첫 번째로 본 영화가 < 시리어스맨>이었던 걸 보니 나도 참 애지간한 코헨쓰의 노예다. 시리어스맨의 다크포스 앞에서는 르윈마저 달달했으니…하지만, 그럴 줄 알면서도 열어봐야 했던 코헨쓰의 판도라 상자.

영화 보는 내내 까뮈를 떠올렸다. “인생의 모든 걸 심플하게 받아들여라.” 유명 자기 계발서의 한 페이지에서 오려낸 것만 같은 아포리즘은 실은 부조리한 인생을 거짓없이 성실하게 관찰한 결과로 갖추게 되는 잔인한 객관성이다. 신에게서 답을 갈구하는 래리에게서 이방인이 되기 이전의 뫼르소가 보였다. 뫼르소도 한 때는 어떤 일의 의미를 찾고 싶어했을 지도 모르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스크린을 가운데 두고 접힌 데칼코마니처럼 다시 래리에게 겹쳐진 나를 보았고, 나는 코헨의 영화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분명히 뭔가를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매달리듯 코헨을 튼 나와 랍비를 찾아가는 래리가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랍비의 장광설처럼 코헨도 나를 낯설디 낯선 1960년 후반,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결국엔 토네이도 앞에 내던진다. 그리고 바로 여기로 랍비의 조언을 찾아다니던 래리와 코헨의 이야기를 따라가던 내가 거울 앞에 선 듯 서로 만난다.

몰아치는 검은 토네이도 앞에서 참수대의 칼날처럼 내려꽂히는 블랙 스크린. 비로소 프롤로그의 경구가 명징해진다. 슈레딩거의 고양이는 죽었으니, 뫼르소가 되라는 얘기였구나. 하지만 가장 큰 비극은 인식 이후에도 뫼르소따윈 될 수 없는 채, 눈 앞에 몰려오는 토네이도를 바라보는 삶이로구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Detachment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제목만으로도 뭔가 뜨끔하지 않았을까. 은밀히 품고 있던 키워드 하나가 까발려진 것 같은? 영화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뭘 말하고 싶은지, 주인공이 어떤 마음인지, 왜 저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별 설명 없이도, 몇 장면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놀랐다. 그닥 드라마적이지 않은 제목이며, 그딴 식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하며…

하지만 부조리 머신이 되어버린 뫼르소와는 다르게(부조리에 대응하는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태도인) 주인공 헨리는 여전히 갈등하고 절망하는 인간계의 고뇌를 담고 있다. 희망은 버렸으되, 절망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발아 상태의 뫼르소. 그에게 드리워진 죄의식의 아우라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간적인 감정의 굴레의 그림자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레지스탕스처럼 행복이 만발한 이 세상이 드리운 그늘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생존하고 있다. 그들은 외출할 때는 동시대인의 외투를 입지만, 안전한 곳에 혼자 있을 때는 이런 영화를 보며 현란한 화면 뒤에 전송된 코드를 해석해 낼 것이다.

Shame

삶의 공허함을 전면에 드러내고 허무의 돌직구를 영화는 솔직히 유치해 보인다. 그 탈출구가 섹스라는 것도, 그 클라이맥스가 하필이면 화장실에서 손목을 그어댄 여주의 피범벅이라는 것까지도 차고 넘치는 클리쉐다. 이 순간 < 모텔 선인장>을 비롯 무수한 영화들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든 끝까지 밀어부치는 것에는 힘이 있나보다. 알면서도 당하는 뭐 그런. 한 두 컷 맛만 보여주며 밀땅하고 약올리고 상상하게 만드게 아니라 아주 대놓고 덜렁거리며 왔다리 갔다리….블러 처리된 영상이었음에도, 당혹스러웠다. 색스러움이라곤 냄새도 안나서 더욱 그랬다. 이 화면 앞에서는 난 대체 뭘 느껴야 하는 걸까.

직면. 그런 걸 들이밀면서 니 삶의 속껍질을 한 번 까봐라 그러는데, 오케이 갈 데까지 한 번 가 보세요 이런 심정이 된다. 당연히 절망도 깊어지고 단절은 명확해지고 그에 따라 각종 수위도 높아진다. 그럴 줄 몰랐던 전개는 하나도 없는데다, 또 하필이면 빗속에서의 눈물 피날레는 좀 심했다 싶기도 하다.

하기야 저런 실감 앞에서조차 인간의 선택지란 것은 참으로 별 게 없긴 하지… 나도 어쩌면 저렇게 통속적으로 빗속에서 울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감정 불능자를 다룬 영화가 오히려 심하게 감정적으로만 몰아부치는 듯한 역설. 관계 불능자를 다룬 영화 속에서 가장 강조된 것이 바로 관계였다. 쩝. 요러한 구리구리함 대비 햇빛이 너무 뜨겁다는 이유는 지금 봐도 너무 모던하군.

감독보다는 마이클 파스빈더를 watchlist에 올린다. 심지어 까뮈 분위기 도 좀 나지 않음? 파스빈더가 연기하는 잡스가 기대된다. 파스빈더라면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천재 또라이 잡스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려내줄 것 같다. 커쳐는 솔직히 좀 …그랬잖음?

Mad Max – Fury Road

쓰기 시작할 땐 뫼르소에 끼워맞춰 볼려고 했는데, 지금 쓰다보니 맥스에서 뫼르소까지는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희망이 섞이지 않은 뜨거운 햇빛 아래서 살인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구랴. 하지만 맥스는 살아남기 위해서, 뫼르소는 정오의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그 차이는 어떻게 극복이 안되네. 맥스는 너무나 에너제틱해. 하트 뿅뿅 하디..

그런데, 희망이 없는데서 왜 살아남으려는걸까? 영화의 클로징 자막은 까뮈의 마지막 작품 < 최초의 인간>에서 따온거래는데, 기억이 깜깜해.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도. 그렇담 맥스는 정력맨 버전의 뫼르손가?

“Where must we go? H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액션엔 취미 없지만,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는 영화.

인사이드 르윈 : 깊은 빡침의 칸타타

제길슨. 올해 새해 첫 날 보고 써 놨다가 코헨의 위대함에 대해서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듯하여 draft로 묶혀 뒀는데…
2015년의 1분기를 다 보낸 이 시점에 이 글을 다시 꺼내 보니 정리고 뭐고 어이없으면서 그냥 눈물이 앞을 가리네.

새해 첫 날 본 영화의 중요성이여….
그리고 르윈과 같은 여정이니 노를 저으라느니 말라느니 영화 감상이랍시고 쿨한듯 나불나불대는 것과 실제로 그러한 현실을 맞닦뜨리는 것의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여.
ㅠㅠㅠㅠㅠㅠㅠㅠ

올해 1분기는 새해 첫 날 본 영화 제목 그대로 인사이드 초아였다.
아무리 코헨쓰가 위대한들, 난 인제 그만 아웃사이드초아 할랜다!!
그런 의미로 정리안됀 채 괴발새발 그냥 올림. 이걸로 끝나라고! Draft에 놓여있으면 르윈의 저주가 영영 계속될 것만 같아서…그리고 내년 1월 1일에는 완전 해피해피 러브러브 샘솟는 영화 볼거임.

—————————————————————-

etc
기타 하나와 고양이 한 마리, 뉴욕의 겨울…안타깝게도 이 카피는 영화의 포인트를 전혀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누가 이 영화의 포인트를 한 줄의 카피로 요약해낼 것인가.

2015.1.1 < 인사이드 르윈>을 선택했다. 밤마다 지인의 카우치를 전전하며 루저로 살아가는 뉴욕의 포크송 가수 르윈은 쉴틈없이 쏟아지는 엿들을 온몸으로 맞으며 뮤지션으로서 전기를 찾아보고자 시카고로 떠난다. 무박 삼일의 험난한 여정의 결과는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로 되돌아와 삶에서 유일하게 붙들어왔던 음악을 내팽개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엿들의 폭격은 계속되어 그런 결단조차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 와우! 이것이 2015 새해 첫 날을 여는 영화…

영화를 보고 나서 바흐의 선율을 떠올렸다. 지루하리만치 반복을 거듭하며 층층히 쌓아올려지는 정연한 음계들, 드라마틱한 기승전결 없는 단순하고 소박한 음들의 모여 그 총합으로 마침내 닿게되는 신성의 경지. 불필요한 장식은 없다. 과도한 감정도…하지만 결국 우리는 어떤 깊은 곳에 닿게 된다.

< 인사이드 르윈>도 그렇다.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부리짓처럼 반복되는 모멸스런 빡침의 상황들. 뭐 그리 대단히 웅장한 스케일이나 끝에 뒷통수를 후쳐치는 반전같은 건 없다. 그렇다면 영화가 무척이나 짜치고 지루해야 할 것 같은데, 결과는 정반대다.

무심하게 등장했다 쓴웃음을 짓게 만들고 빠르게 퇴장하는 에피소드들. 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은 순간으로 휘발되지 않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시 튀어나와 의미심장한 후기를 찍는다. 한 개의 깜짝쇼 빅반전 대신 매 순간 극히 마이크로한 층위에서 인물들의 대사와 선택이 보는 이의 벳팅을 비껴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끝까지 비껴나가다 끝나버리는 카타르시스 없는 희한한 영화 체험을 하게 된다. 하나의 큰 놀람 대신, 순간순간 미세한 쇼크들이 쌓여가다. 그 쇼크들이 깔때기처럼 수렴되는 곳은 빡침 짤방같은 표정 뒤에서 실상 그다지 드러나는 것은 르윈의 내면이다. 그리고 이 순간들은 어느 순간 ‘하루 푹 자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피로’가 한 인간의 인생을 쓰나미처럼 덮쳐온다. 날 것의 인생이다. 영화화될 수 없는 순간을 스크린으로 찍어 올린 ‘예술’의 경지이시다. 멋드러진 포크송은 그 위에 얹은 화룡점정의 데코레이션. 끝내주는 대체불가 코헨브라더쓰이다.

‘왜 코헨의 영화에서는 모든 씬들에 뭔가 있어 보일까? 별 거 아닌 것 조차도. 그 무엇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런 의문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 답을 보았다. 그 사소한 순간들이 실제로 중요한 뭔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실제 인생에서도 중요한 것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이러한 매 순간들이라고 코헨브라더쓰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르윈이 고양이를 버리고 나온 순간, 르윈이 자신의 아이가 있는 도시의 표지판을 지나친 순간. 어린 시절의 노래를 바칠 때 아버지가 똥을 싼 순간. 인간을 파괴하고 인생의 방향을 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순간들이다.

< 파고>가 떠올랐다. 잔인한 연쇄 살인 사건을 둘러싼 범죄를 다루지만, 결국 이 영화는 남편이 우표를 붙이는 마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거기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파고를 그렇게까지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입신 경지의 코헨 브라더쓰가 아직도 여전히 이 사소한 삶의 순간을 붙들고 있어서 너무너무x100 좋았다. 이 그 사소한 순간들을 경지에 다다른 최고의 솜씨로 살려내 주어 좋았다. 그래서 이건 1960년대 뉴욕의 실패한 포크송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얘기였다. 잘해 보려고 해도 시시때때로 브레이크가 걸리고, 살기 위해 소중한 것을 버리고, 그걸 버려도 계속 살아지며 빡침과 동행하는 내 인생의 이야기다.

고양이를 버리고, 도망가는 씬. 영화 초반에 골파인 교수의 비서가 적시하듯 cat is 르윈이며, 고양이를 버림으로써 자신을 배신한 것이다. 뒷자석에 남겨둔 롤랜드 터너는 부축없이는 움직이도 못하는 지경이다. 이들을 버리고 혼자만 탈출해 또 다시 히치하이킹을 감행하는 르윈의 검은 실루엣과 그런 그를 무심히 지나쳐가는 차들의 모습. 아무 대사도 설명도 없었지만, 화면은 무겁디 무거운 비극감이 짓누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차를 얻어탄 르윈이 멀쩡히 시카고에 도착한다. 하지만 도착하자 마자 재수없게 쌓인 눈에 발이 빠지 양말까지 모두 젖어버린다. 이렇듯 무거운 비극과 어이없는 코메디를 아무 것도 아닌 양 밀가루 반죽처럼 하나로 뒤섞어 버리는 솜씨. 매 순간이 이것이 무엇인지 도당체 정의할 수 없게 만드는 스핑크스의 퀴즈와도 같은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비극과 코메디, 성과 속이 나란히 어우러지며 뛰어노는 이 영화가 나에게는 알알이 박힌 보석들처럼 눈부시게 느껴진다. 모든 순간들이 웃기지만, 그 웃긴 순간들이 매 순간 심오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사소하고 잡스런 씬들에 응축된 고밀도의 상징성들은 날 것의 이야기에 잡힐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수수께끼같은 원형의 아우라를 덧씌운다. 코헨님들은 영화 하나 속에서 수 없이 많은 반전들을 썼다. 이렇게 코헨느님들은 모든 순간을 새로이 창조하셨다.

연속되는 빡침 속에서 가끔씩 욱한 르윈은 미약한 반격을 하기도 하지만, 그 반격은 번번히 아무 영향력도 없이 사그라든다.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는 쫓겨나오고, 롤랜드 터너는 흑마술 괴담을 쏟아내며 지팡이질을 계속한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바주인이 진과 잤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르윈은 참지 못하고 무대의 여인를 모욕한다. 자기가 받은 모욕을 돌려주기라도 하겠다는듯이. 하지만, 얼핏 성공적으로 보이는 이 짜친 화풀이조차 건물 뒤에서 대차게 얻어맞는 것으로 자신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때린 여인의 남편에게 르윈이 던진 말은 의미심장하다. Au revoir. 안녕이라고 번역이 이 불어 인사말은 잘 가란 말이 아니라, 다시 보자는 뜻이다. 남자는 르윈을 때리고 나서 넌 이 시궁창에 남아라. 우린 떠날테니라고 독설을 퍼붓한다. 하지만, 르윈은 빡침은 계속될거고, 누구나 이 빡침의 시궁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율리시스의 여정과도 같은 고단한 여정을 통해 마침내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저 한 마디의 인사말에 담아냈다. 그리고 이 말은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다.

나의 2015도 르윈의 여정과 다르지 않을거다. 무언가를 갈구하며 길고 짧은 여정들을 하겠고, 별별 일들에 빡이 치겠지. 민폐도 끼치고, 신념을 배신하는 짓도 하며, 영혼이 파괴되는 듯한 기분도 느끼겠지. 하지만 그 조차 지나갈거야. 가끔은 If I had wings같은 멋진 선율이 내려, 내 마음을 쉬게 하리니. 자, 출발하자. 노를 저어라 초아시스여….

↑↑↑↑↑↑↑↑↑↑ 바로 이 마지막 부분…ㅠㅠㅠ 난 이때 몰랐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세상이 마이 변해간다고들,,,,변했다고들 한다.

나는 사실 이런 변화가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다.

어짜피 난

행복이나
잘 산다는 것 보다는
살아남는 것만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특별히 날리게 산 기억은 없어도
그렇다고 살아남지 못한 적도 없으니까.

근데 실은 그런 인생의 멋과 맛을 살려내 잘 굴러가는거,
그게 제일 잘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도가 트이려나?

걍 그렇다고.

이런 것도 좀 써놔보면 어떨까 싶어???? 누가 뭐랜다고….은근히 고품격 추구하는 경향도 없지 않으심 블로그에서만 ㅋㅋㅋ

2014 촤판 종료~ 사진 첫 매출 오예

NAVER LABS에서 열린 촤포토 제1회 사진전 <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오늘 모두 마쳤습니다. 총 61장의 사진을 판매하여, 40만 9천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장당 평균 6,700원, 내 사진을 팔아서 남긴 첫 매출입니다.
애초에 너그럽기 그지없는 홈어드밴티지의 이점을 끼고 진행한 짜치고 행사였지만, 입구를 점유하고 촤판을 벌여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내가 찍은 사진을 설명하고 팔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느끼는 사진의 가치와 대중(?)의 선택 사이의 엄연한 간극을 손으로 어루만지듯 구체적으로 느꼈고, 한편으로는 그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뭐 하나라도 돈이란 걸 받고 팔게 되니 사람을 보고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목과 관계는 결정적이었습니다. 온실 속 직딩의 pseudo 장사 경험이지만 앞으로 사진찍는 것 뿐만 아니라 일하는 데도 조금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고급진 액자나 걸린 장소의 아우라에 기대지 않고 이렇게 오가는 벽에 무심하게 붙여놓은 사진전의 방식이 꽤 마음에 듭니다. 보부상, 장똘뱅이이처럼 여기저기를 떠돌며 보따리 장수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펼쳐놓고 이 얘기 저 얘기 풀어놓는 게 재밌습니다. distributed & disruptive… 면대면 오프라인 컨텐츠 유통의 어떤 소박한 포맷을 궁리해봅니다.

무엇보다 내 사진을 돈 받고 파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한 해를 마치며 꼭 바랬던 소원 하나를 이루어 뿌듯합니다. 예전에는 내 책을 쓰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을 두 번이나 이뤄버려서(ㅋㅋ) 심심하던 차였습니다. 이젠 두 꿈을 결합해 사진책을 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다들 작은 꿈이라도 정하고, 소박한 형태로라도 직접 이루어보시길 바랍니다. 궁극의 무엇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구도자적 성취는 아니지만, 끝도 없는 인생길에 작은 점 하나를 찍는 재미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는 소중한 것이지요.
사진을 팔아주신 분, 또 보아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 오프라인으로 봐 주신 분도, 온라인으로 봐주신 분도 모두 똑같이 감사합니다. ‘본다는 것’의 깊은 의미를 생각합니다. 매출액 전액은 NAVER LABS 이름으로 기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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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나머지 반쪽을 셀프 리뷰함

나의 동료들의 한 해의 업무 성과를 리뷰해서 점수까지 달아 회사에 제출했다. 인센티브를 목전에 두고 돌파해야 할 셀프 밥값 정산, 직딩의 최고 레벨 미생의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모임을 하고 와서 늦은 시간 사무실에 홀로 앉아 스탠드 불빛 아래 돌이켜 보는 한 해. 예기치 않게 발휘되는 밤의 매직은 소소한 미생이 한 순간이나마 성찰 가득한 전인격적 완생으로 변신한 듯 착각하게 하고, 매 년 반복되는 가혹한 평가 프로세스를 ‘진실의 순간’으로 승화시킨다.

재밌는 아니 당연한 사실은 업무에 투여한 시간에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밤들을 머리를 싸매고 사무실에서 죽때리며 아둥바둥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 해 내 업무에서는 감동적이라거나 아웃스탠딩한 성취를 꼽기 힘들다. 작년에 자신있게 내놓았던 성취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고, 더 빨리 버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과감히 뛰쳐나갔어야 하는 타이밍을 늦췄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쨌든 이렇게 업무 정리를 했고 교훈이 있었고 내년의 작전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제출하고 나니 뭔가 아쉽다. 이게 전부인가. 이 평가는 반쪽짜리다. 사무실과 업무 시간으로 제한하지 않고, 내 삶을 360도 전면적 총체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내 지난 1년의 의미를 바로 정리할 수 있다.

한 단계를 뛰어 넘은, 큰 변곡점들을 그린 한 해였다. 나 자신과 수없이 싸웠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운동 – 4점

지난 2월 생전 처음으로 근력 운동을 시작했고, 12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새로운 세상에 침투해 들어가기 위한 집중 물량공세로 한 주에 4~5번을 할 때도 있었고, 다사다난한 일정에 한 주에 한 번을 겨우 할 때도 있었고, 여행가서 아예 휴업을 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잠시 쉬긴 했을망정 아예 멈추지는 않았다. TBD, TBD…

안정이 된거라고?? 설마. 아직도 운동을 하러 가야 하면, 땅이 꺼지도록 한숨 푹~ 어디론가 도망가고만 싶다. 그럴 땐 “성공의 9할은 출석”이라고 했던 우디 알렌의 말을 읊조리며 일단 간다. 똑바로 서서 살포시 정신줄을 내려 놓고,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내가 정한 단계들의 첫번째 세트를 수행한다. 끝나면 또 그 다음 단계의 횟수와 시간을 채우는 거다. 쓰러지거나 내려놓고 싶은 마음과 싸우며. 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할까. 종종 끝이 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가 된한 기분으로.

“죽지 않은려고” 정말로 그 이유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각종 맨몸 운동을 꽤나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닥 스쿼트 2~300개 정도는 그냥 부담없이 ㅎㅎ 아직도 제일 힘든 건 플랭크다. “인생이 짧다고 느껴진다면, 플랭크를 해보라”라는 말이 있다. 30초, 1분이라는 시간을 영원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악마의 운동. 하지만, 아무 도구도 움직임도 없이 내 힘으로 내 몸을 지탱하는 단순한 자세의 유지만으로 전신의 근력을 키우는 이 운동의 원리와 결과가 더할 수 없이 우아하다.

허벅지는 근육이 붙어 탄탄해졌고, 체력에 자신감도 생겼으며, 일상생활의 여러 움직임들이 훨씬 편해졌다. 반면, 작년에 재미를 붙였던 유산소 운동(뜀박질)을 거의 못한 것, 그리고 커피와 달다구리 홀릭 지수가 극에 달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식이 (식단 조절이 아니라)를 곁들이지 못한 것이 아쉬운 포인트다.

드라마틱한 감량이나 꿀복근같은 건 못 했지지만, 큰 숙제처럼 미뤄뒀던 분야에 마침내 뛰어들어 개척을 실행한 점과 그 과정에서의 눈물겨운 노력을 인정해 기꺼이 4점을 준다. 내년엔 더 뛰고, 가능한 몸에 좋은 것들을 골라 먹어 보는 걸로. 지금 하는 건 그대로 다 해야 한다는 건 함정;

사진 – 4점

작년 DEVIEW를 기점으로 취미로 끼적였던 사진이 업무와 연결되는 경험을 했고, 전시는 아니지만 내가 만드는 서비스의 컨텐츠로 기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경험을 했다. 올해는 그 기조가 더욱 이어졌다. 랩스와 D2 마케팅이 본격화되며, 각종 행사에서 불려가 더 많은 곳에서 찍사로 활약하게 되었다. SNS 마케팅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 이미지컷으로도 쓰이고, 비록 분야에 특화된 학회지지만 지면 광고에도 쓰이게 되었다. ‘쓰임새가 있는 사진’을 찍게 되었다.

NAVER LABS 광고

naverla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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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오스. 라오스에서 드디어 나는 내가 정말로 찍고 싶었던 피사체를 만나는 행운을 경험했다. 부족함 없이 넘치는 광량과 튀어나올 듯한 동남아풍의 색채, 그리고 사람들. 문화나 예의범절 같은 것으로 가리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 이 3종 셋트의 결합은 찍사에게는 천국을 선사했고,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셔터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새로 산 카메라에 적응 못 해 부들부들 떨었던 순간들도 있다. 옹고집인지 사서 고생인지 모를, 하지마 어떤 결과물들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MF의 한계.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지는 순간들을 눈 앞에 두고, 어찌해도 흐릿하기만 한 뷰파를 초집중으로 들여다보며 제발 내가 이 장면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까지 해 가며. 절박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통했던가. 그 결과물로 난 작은 사진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진전 보다 더 하고 싶은건, 이 사진 속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찍었던 사진을 모두 사람 숫자대로 뽑아서 가져가 이 사람들을 찾아서 다시 그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돌려주고 싶다. 그리고 스쳐지나간 그들의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여주고 쥐어주고 싶다. 액정만 보여줘도 가득히 환해지던 그들의 표정을 다시 보고 싶다. 그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여행자로서 열린 마음과 찍사로서의 절실했던 마음이 콜라보해 잡아냈던 살아있는 순간들. 기꺼이 4점을 준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 순간 포착을 넘어선 피사체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다. 눈에 띈다거나 신기해서가 아니라 아니라 그 관심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셔터를 누르게 되기를 바란다. 눈에 띄는 피사체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 유일무이한 고유함을 가진 대상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그래야 진짜 순간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순간에 스토리가 더해질 것이고, 그 스토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5점의 조건이다.

4점과 5점의 간극은 결정적이다. 3점과 4점의 간극보다 훨씬 더.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다른 과정으로 찍어야 한다. 그렇게 찍고 싶다. 2015년에는.

유흥 – 4점

올해서야 비로소 고기 맛을 봤다고나 할까. 한 단계 이상 레벨 업한 것이 분명하다. 왠만한 패턴은 모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벽에 부딪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척 무척 놀랍고 황홀하고 뜨거운 순간들이 있었다. 잊지 못할 것이다. 그냥 막연한 가능성을 꿈꾸며 억지로 끌려가는 심정이었던 작년과는 많이 달랐다. 주저없는 4점. 내년에는 나만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조금은 가져보고 싶다. 그 전에 기존의 스타일부터 습득해야겠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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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했던 세 분야에 얼마나 노력했나. 일주일을 쪼개 쪼개 하루씩을 간신히 돌려 막기하며 보냈던 한 해. 하지만 포기한 것들도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난 보다 확실하게 거의 모든 연락수단을 확인하지 않게 되었다. 카톡은 아예 안 보고, 안 읽은 SMS도 수 백개가 쌓여있다. 지메일은 오피셜리 쓰레기통을 선언했다. 웃긴 건 실험 결과 그래도 아무 문제 안 생긴다는 것이다. 그게 진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가까웠던 사람들을 자주 못 보는 것은 아쉽다. 다들 잘 살고 있으리라 믿을 뿐이다. 자랑질쟁이 페북이 전해주는 딱 그만큼씩은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월호와 신해철과 이런 세상과 기타 등등 때문에 슬퍼하면서도, 점점 더 미쳐가는 나라에 울분을 토하면서도 어떻게든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 이상 이런 일들에도 더 많이 관심을 보내고 행동할 수 없게 되었다. 깊은 패배감과 무력감을 인정한다. 그 전의 5년에 너무나 지쳐버렸음을 인정한다. 빛이 보이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 반대급부로 방향을 틀어 ‘개인’의 삶 속으로 더욱 깊숙히 코쿠닝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나이. 올해 본격적으로 내 나이를 인정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의연하기란 각오나 예상보다 힘들다. 닥치지 않고 알 수 있는 게 없음을 다시금 실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무수한 가능성의 연속이다.

다시 봐도 일이 좀 아쉬웠네…그렇게 일에 매달렸는데도 ㅠ 점프 업 해야 했는데. 아니면 한없이 뒷걸음질 하게 되는 나이다. 한 해 한 해 나이값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어쨌든 꽤 멋진 순간들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평가해보면 초아님은 승진 요건에 부합합니다. 한 살 더 먹어도 좋습니다!!! 인정 ^^ (대충 마무리 ㅎㅎㅎㅎ )

촤포토 첫 번째 사진전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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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도 도록도 없고, 포스터는 자작에
가격표는 사는 사람 맘대로 매겨 붙이는 포스트잇이지만
내가 몸담은 곳의 문화를 상징하는 뜻깊은 공간에서 첫 번째 사진전을 열게 되었다.

* 장소 : NAVER LABS 입구
* 기간 : 2014. 12.18(Thu)~ 30(Tue)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일이었다.

이 소중한 꿈을 하필이면 이런 미쳐돌아가는 시국에 펼치게 될 줄이야.
이런 세상에 사진이, 라오스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에.
그와는 전혀 동떨어진 또 다른 매트릭스의 치열한 어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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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입구에 서서 양면 테이프로 비뚤비뚤 벽에 붙여진 내 사진들을 바라본다.
여기서도 거기서도, 이 사진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다.
당신에게 이 사진들은 어떤 의미일까.
답은 없고 사진만이 덩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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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계속 바라본다.
비바람 속에 흔들리는 미약한 작은 촛불을 양 손으로 둥글게 감싸듯이.
어떻게든 계속 존재해 나가면서, 어떤 의미가 생기기를 바라면서.
더 정확히는, 어떤 의미가 생길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궁리해보면서.

온 세상을 밝히려함이 아니라
아무도 기사로 내 주지 않는, 시위를 하지도, 고공 농성을 벌여주지도 않는
내 마음때문에.

혹시나 당신에게 닿을지도 모르는,
그래서 한 점 위안이든 공감이든 발견이든 뭔가 될지도 모를 그 마음때문에.

3루타, 홈런은 못 치더라도
번트로라도, 불쌍하게 데드볼 몸빵으로라도 일단 무조건 진루해보자.
그러다보면 득점을 하고, 또 타석에 오를 기회가 생기고 그때는 안타를 칠 수 있을 지도 몰라.

신통한 라오스.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잠시나마 나에게 진짜 미소를 찾게 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
이렇게 첫 번째 사진전까지 열게 해 주었다.
역시 깊은 마음이 발휘되어야 어디엔가 닿게 되는 걸까.

어쨌든 새로운 숙제를 안은 채로 올해 사진 농사는 이걸로 마무리~
사진이라는 분야에서는 한 뼘…아니 한 뼘 반 더 성장하고
전시회 소원도 풀고 꽤 의미있는 여러 성취들을 한 해 같아서 보람지다.
최소한 그냥 저냥 가버린 한 해 같지는 않다.

두 번째는 열린 공간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야지.
숙제들고 또 걸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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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집에도 사진 좀 올려놔야지…맨날 이웃많다고 남의 집에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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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할정도로 급하게 사그라든 더위 덕분에 가을이 제법 길었는데, 정작 작년같은 깊은 아름다움을 찾지 못했다. 가을의 문제는 아닐거고, 딴 데 정신팔린 내 탓이다. 하지만, 나에게 지난 가을은 그랬다. 가을의 초입에 내 품에 안긴 K-3 + Sigma 16-35도 그렇게 제대로 진가를 발휘 못하고 이렇게 몇 장의 추억을 남긴 채 나를 떠나갔다.

어느 계절이든 상관없이 해질무렵의 아름다움은 늘 나를 매혹시킨다. 더 이상 저항못하고 어둑함에 묻어들기 시작하는 아스라한 나뭇가지와 잎새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저물어가는 빛 속에서 가까스로 발하는 퇴색된 컬러감. 마침 탄천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내가 애착하는 풍경 속을 헤메고 다녔던, 11월 어느 금요일 오후 땡땡이의 기억 ㅎㅎㅎ

돌아오는 길 from 라오스

한 달이 지났어. 가득했던 ‘라오스’가 이제서야 비로소 잦아들어. 서울의 공기가 더 이상 싸늘하게 느껴지지 않고, 도시의 소음에 적막함이라는 수식이 떨어져 나갔어. 몸과 마음이 둘 다 비로소 원래 자리로 돌아왔네. 한 달 만에야. 9일의 라오스 여행이 끝난 순간부터 시작된, 그 자체로 짧지 않은 여정이었어. 갈 때는 고작 몇 시간의 비행이었는데, 돌아오는 데는 한 달이 넘게 걸렸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떠나는 일도 비슷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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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여행이였어. 16년 전 떠났던 첫 번째 태국 여행에 비견할 만 했지. 전혀 기대도 정보도 없이 간 라오스. 전 날까지 DEVIEW하고 정신줄 끊긴 상태에서 다음 날 아침 허겁지겁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야말로 비행기표와 카메라만 들고 떠난 여행이었어. 숙소도 교통도 액티비티도 아무 정보도 사전 예약도 없이 그 흔한 가이드북 하나 안 들고. 참으로 패기있는 나다. ㅋㅋㅋ

게다가 이 좋은 한국의 가을 날씨를 두고 우기에 살을 태우는 무더위라는 라오스 배낭 여행을. 도당체 지금 당신이 그런 여행을 할 나이인가. 내 인생 마지막 헝그리 여행이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럭셔리한 휴양 컨셉이리…동남아는 또 왠말이더냐. 파리, 바르셀로나, 피렌체 등등은 대체 언제 갈텐가. 순간의 돌발 선택에 방향없는 짜증을 내며 나조차 종잡을 수 없는 감정으로 출발. 게다가, 표를 잘 못 끊어 하루에 서울-인천-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2번을 경유하며 4번의 입출국 수속;; 동남아 4개국을 순방하는 황당한 시작이었지.

하지만, 왓타이 공항에 내려 노련?하게 택시를 피해, 한참을 걸어나와 뚝뚝을 흥정해 잡아타고 비엔티엔 밤거리로 들어가는 순간, 쉴새없이 철커덩 거리는 뚝뚝의 승차감, 훅하고 몰려드는 무겁고 뜨끈한 공기와 이에 반응해 바로 이마와 등에 맺히기 시작하는 송글송글한 땀, 높아지는 몸과 마음의 온도, 덮치듯 밀려오는 시끄러운 엔진들의 소음, 코를 찌르는 싸구려 가솔린 냄새, 작은 오토바이에 2~3명씩 뒤엉켜 탄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살아있는 표정.

아, 처음 닿은 공간에서 원류에 합쳐진 듯한 편안함이 밀려왔어. 와야할 곳에 제대로 찾아 왔다는 걸 온 몸이 느끼는거야. 야! 이건 당첨이다. 대충 찍었는데 로또를 맞은거야.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9일 내내 늘 웃고 있었어. 상황을 살피며 뺨의 근육을 뒤틀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그런 거 말고. 마음을 내려놓고 멍하니 있으면 심장에서부터, 호흡에서부터 퍼져나와 혈관을 타고 온몸을 흘러 입가에 까지 다다르는 그런 웃음. 감염된 거다. 라오스 바이러스에. 없음이 있음이 되어버린 내가, 그것이 내공이라 믿었던 내가,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가르지 않는 무개념 사람들 속에서 무장해제 된거야. 그래봐야 고작 9일. 라오스의 백 만분의 일도 못 봤을테고, 내가 본 것의 천 분의 일도 못 찍었고, 찍은 것 중엔 십 분의 일도 못 건졌지만 <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앨범은 잊지 못할 장면들로 가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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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라오스의 귀요미들
* 애나 어른이나 착 달라 붙어, 서로를 끔찍히 돌보는 모습들
*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공동체 속에서 행복한 사람들
* 경계를 가르지 않으므로, 희박해보였는 소유의 개념
* 어디가든 한 컵 가득히 따라 권해 주던 Beer Lao
* 올라가야할 목적지를 특정하지 않은 이들이 가진 여유
* 차원이 다른 흥의 신세계 Okpansa
* easy come, easy go 뜨거운 나라 사람들의 심하게 쿨한 태도

난 말이야. 이게 진짜 럭셔리 여행이라고 생각해. 생각을 해봤어. 내가 보고 느낀 것, 내 감정에 생긴 일들, 주고 받았던 웃음들, 그 웃음이 내 마음에 한 일들…이런 걸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그건 도저히 가능하지가 않아. 바꿀 수가 없어. 몇 백만원? 몇 천만원? 몇 억?? 난 너무 많이 받고 왔다. 아름다운 것들을, 진짜인 것들을. 내 감정이 목말라하던 것들을.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가 않은 여행이었어.

하지만 왜? 왜 이렇게까지. 지난 한 달간 여러 각도에서 생각의 쿼리를 던져봤어. 여행 기간 중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생겼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를 여러 번 떠올렸어. 난 계속 걸었고, 걸어가다 보면 누군가를 만났고, 어떤 일이 생겼어. 그 순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가진 사람이, 내가 해야 할 경험을 하게 해줬어.

하지만 더 신기한 건 떠남이었어. 그들은 제 역할을 하고는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냐, 그들이 떠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계속 그렇게 끊임없이 걷고 있을 뿐이었던가. 그렇게 또 조금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다른 사람이 나타났고 다른 일들이 생겼어. 그런 일들이 9일 동안 매일 매 순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봐.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 이름모를 마을로 건너가. 거기선 마을 축제가 펼쳐지고, 신나게 춤을 춰. 자기 집에 놀러오라는 라오스 애기들을 따라 가, 쓰러져 가는 촌동네 집에서 11명의 형제 자매가 같이 사는 집에서 비어 라오를 대접받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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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털털털 해 지는 해 지는 시골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오면, 이번엔 시골길 한 구석 평상에 자리를 펼쳐놓은 옆 동네 사람들이 나를 불러세워. 맥주 한 잔 하고 가라고. 거기선 또 알딸딸해져서 스무살짜리 라오스 청년에게 사랑 고백을 받는다. 아이고 의미없다고? 근데 그 뜬금없음이, 그 기분이, 그 분위기가, 그 편안함이 ‘어떤’ 다른 의미를 만든다는 걸 짧은 글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네. 고백에 취해서가 아니야. 그 따위 즉발적인 고백이 난무하고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웃음 속에 잦아드는 그런 세상이 좋았으.

예술 초짜가 루브르에 들어 서면 이런 느낌일까. 쏟아지는 경험량에 압도되고 쫓아가기 바빠 생각은 저 뒤에 제껴놓았지. 들고간 신형철의 <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비행기에 내려선 한 줄도 읽지 못했어. 눈 앞의 현실을 프로세싱하느라 그런 섬세하고 복잡한 사고를 따라갈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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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비엥 폐활주로

낡은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바라본 쏟아질듯한 방비엥 폐활주로의 별들이 마음에 가득해서, 최고급 세공품같은 신형철의 문장이건만 펼쳐볼 틈이 없었다구. 내 속에 아직도 이런 게 있었나 싶은, 순해지고 착해지고 빛이 나던 마음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조금 정리가 되는 것 같아. 한 달이 지났으니까. 마음이 빛이 생기를 잃어가고, 나는 그냥 내 나이의 대한민국 직딩으로 돌아오는 거지. 천천히 내 주변을 돌아보면서. ‘

그러면서 느낀 것 하나. 유교사상이란 게 아직도 얼마나 이 나라에 지배적인가. 여긴 내 집이니까 조금 더 막 던져 보자면, 유교가 얼마나 이 나라를, 내 삶을 망쳐버렸냐 하는 거야. 동방예의지국이라며 예의와 체면, 서열과 편가르기, 윤리 도덕, 사대, 효도, 남존여비, 상명하복, 가부장 따위들이 세련된 사회 규범으로 정제를 거듭해 왔지. 그 레가시에 매몰되어 남의 눈치보고, 경계 짓고, 가진 자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느라 정작 인간이 가진 본연의 순연함, 순수함,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감정들을 잃어버린거야.

그런 벽들이 없으니까, 사람과 사람이 저렇게 거리낌없이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가 있구나. 어린애와 청년과 아줌마와 할아버지가 한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농담따먹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구나. 가장 아름다움 춤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은 사람이 움직임이다.

펙킹오더를 따지지 않는 남자와 남자가 어울리는 건 참 멋진 그림이구나. 난 거대 건물에 끝도 없이 전시된 인류 최고의 예술품에 감상하듯 거리의, 거리에서 동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출물하는 다른 종의 인간들에게 감동하고 또 감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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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경에는 복잡한 규칙 대신 스킨쉽이 있어. 라오스에서 단 한 번도 유모차를 본 적이 없어. 비싸서 못 쓰는건가? 심지어 포대기도 몇 번 못봤어. 그냥 어른들이 애기들을 쌩으로 안거나 엎고 다녀. 그 밀착감이라니. 인간의 따뜻한 체온을 무한정 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참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애들이 또 다른 더 어린 애기들한테 그 온기를 거리낌없이 나누어 주는 거야. 내가 봤던 너무 놀랍고 예뻤던 그림들….

게다가 내 아이, 네 애기 이런 경계도 희박해. 애들을 동네에서 다들 같이 봐. 그리고 눈 앞의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아는 척 하고, 안고, 이뻐해.

물론 애기 자체는 한국도 이쁘지. 작은 모양과 갓 피어나 자리잡은 눈코입들. 근데 라오스에선 그냥 애기들이 애기들처럼 막 자유롭게 뛰어노니까 그게 좋았던 거야. 우리나라에서 어린애들은 늘 부모 옆에서 보호와 감시를 받잖아. 사유지에 속한 귀한 소유물로서. 근데 그 경계를 벗어나 마음껏 뛰노는 애기들은 진짜 예뻐. 소유가 아닌 존재가 뿜어내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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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것과 네 것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 비로소 라오스가 공산주의 국가라는 걸 떠올리게 됐어. 심지어 그것도 모르고 왔어;; 아 이런. 그런데 사는 걸 보니 미리 알고 오지 않았어도 냄새로 맡을 수 있었어. 공산주의란 게 아주아주 조금은 이런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 걸 지킬 수 있는 토대가 된건가. 그렇담 마르크스님에게 약간은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그냥 따라 주던 비어라오를 이해할 수 있었어. 왜 누구나 그냥 지나가는 나에게 이런 걸 베풀지? 왜 나한테 공짜 술을 먹으라고 하지? 왜 어디서나 같이 합석하라고 하지? 왜 집에 놀러오라고 하지? 왜 자고 가라고 하지? 아니…왜 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런 거겠지. 이렇게 위험스러운 행동과 제안들이라니!! 내 직업의 80%는 이유를 찾는 일인데, 이 사람들에게서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어.

하지만, 그건 그들과 많이 다른, 출발부터 다르게 시작하고 다르게 만들어진 나라에서 태어나고 길러진 나의 프레임이었어. 그리고, 반복되는 제안과 호의들 그리고 그 결과와 그 과정에서의 나의 경험의 총체가 점점 내가 가진 프레임을 내려놓게 만들었어.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는 뭔가 다른 프레임이 있다. 그건 내가 가진 것과는 다르다. 그제서야 나 역시 웃을 수 있었어. 아무 이유없이 말이야. 사람이 사람에게 웃는 그 순간이 좋아서.

라오스가 좋았던 거? 난 예의와 도덕을 벗어던진 인간의 민낯의 아름다움을 본 거야. 관념에 훼손되지 않은 본연의 아름다움. 옥판사 전국 보트 대회 결승전 국가 최대 행사에서 북치는 남자가 북에 엎드려 자더라. 그런데도 아무도 안 깨워. 자기 차례 되니까 또 부시시 일어나 북치더라. 읏흥. 이럴 수도 있네. 어여쁜 처자가 길을 걷다 노인네가 들고가던 짐보따리 떨어뜨리니까 상황을 살피다 얼른 뛰어가 도와.

야~~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아도 되고,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니 저렇게 젊은이와 아줌마, 노인들이 한 자리에 앉아서 즐겁게 농담따먹기 하면서 재미나게 수다떠는 구나. 세상 일이 이렇게 돌아갈 수도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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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어디서나, 도시든 시골이든 골목골목 모여앉을 한 평만 있으면 복붓이라도 한 듯 펼쳐지는 똑같은 모습이지만, 그건 도대체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풍경. 우린 다 끼리끼리지 않아. 비슷한 나이, 계급, 또 다시 그 안에서도 비슷한 높이들끼리 편갈라서 놀지 않아? 잘 생기고 예쁜 애들끼리, 비슷하게 사는 아줌마들끼리 …파편들의 사회. 서로가 서로에게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서로 할퀴어 대고. 기실 예의란 것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애정에서 시발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없어지고 지켜야할 규칙만 남아 사슬처럼, 그물처럼 일상을 옥죄는 거지.

조선이 건국하며 새로운 권력의 이념적 깃발이 필요해서 들여온 유교라는 사상에 물들기 전의 고려는 굉장히 활기차고 개방적인 나라가 아니었느냔 말이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는 남녀상열지사도 분분하고 만두 가게도, 절도, 우물도 흥하고. 외교도 활발하고. 중국을 대국으로 모시지 않고 자존감도 가지고. 그걸 학교 때는 국가, 민간, 종교의 총체적 부패라고 배웠지. 물론, 뭐 이건 좀 더 상세한 역사적 지식과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긴 해. 근데 고려에서 조선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지금으로 왔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계속 해보게 되는 거지. 뭔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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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에는 환경의 차이도 있을거야. 일년 내내 상온이라 돈없어도 어디서든 등붙이고 자면 되고. 공동체가 발달되서 아무리 못 벌어도 굶지는 않을 수 있고. 스님들께 음식바치는 탁발도 결국 스님들이 공양받은 음식들을 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기 위한 사회 안전망, 재분배 메카니즘인거지. 공산주의라 사유의 개념의 희박하고, 종교는 제 역할을 하고 있고. 다들 그 종교에 깊이 의탁하고. 무엇보다 모든 걸 결정하는 DNA부터가 다르잖아. 그런 세상과 우리 나라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잠깐 보고 남의 나라 이렇쿵 저렇쿵도 옳지 않아. 잘 알지도 못함서~~ 사람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진짜 그렇기만 하겠어!! 달의 반대편도 그렇기만 하겠냐고. 힝 => 이건 머리의 소리.

그래도 어쩐지 라오스는 그런 것 같아. 일단 난 라오스가 너무너무 좋아. 정작 난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살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그렇게 살고 싶으다 ㅠ) => 이건 마음의 소리 ㅎㅎㅎ

이런 걸 궁싯거리며 지난 한 달을 보냈고, 계속해서 겹쳐지던 두 개의 그림 중 한 쪽을 달래고 지워가며 아주 천천히 난 원래의 내 삶으로 돌아오게 된 거지. 짧지 않은 여정이었어. 여행이 끝나고도, 여행은 계속되기만 했지. 너를 사랑하고 돌아왔던 길도 꼭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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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제일 마음에 남는 사진

쓰고 나니 또 다시 그리워진다. 그 뜨거웠고 신기했고 설레였던 시간들.
다시 가야 하겠지.
가게 될 거다.
그게 몇 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또 가게 될 거야.
아직은 더 헝그리하게 다녀 보자. 배낭을 짊어지고, 카메라를 메고,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인간들을 만나보자.
다른 삶에 시선을 돌려보자. 더 넓혀보자. 이번엔 꽝시, 블루라군따윈 다 치우고 오롯이 삶을, 사람을 만나보자.
그리고 내가 세운 이 허접한 라오스에 관한 가설들을 실험하고 검증해보자.
다음 번엔 오토바이도 몰 수 있을까?? 내게 던지는 작고도 위험한 질문 ㅎㅎㅎ

끝으로 신.

Thank you, god. 그 어떤 여행 책자나 가이드, 트립 어드바이저 인터넷 서칭 보다 더 많은 것을 준비해 주신 분. 당신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나는 모르지만, 난 저 위에 있는 당신의 존재를 믿고, 당신이 나를 위해 내려준 그 넘치는 것들을 기꺼이 받고 감사합니다. And I will follow your calling, again and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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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Own Private LAOS

가슴은 터질 듯 하고
솟구쳐 오르는 말들은 무지 많으나…

일단 사진


MY OWN PRIVATE LAOS by CHOA Jung on Expo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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