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포토 첫 번째 사진전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꼭 하고 싶었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일이었다.

비록 액자도 도록도 없고, 포스터는 자작에
가격표는 사는 사람 맘대로 매겨 붙이는 포스트잇이지만
내가 몸담은 곳의 문화를 상징하는 뜻깊은 공간에서 첫 번째 사진전을 열게 되었다.

* 장소 : NAVER LABS 입구
* 기간 : 2014. 12.18(Thu)~ 30(Tue)

감사할 사람이 많다. 모두 고맙습니다.
여길 보진 못하겠지만…

신통한 라오스.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나에게 진짜 미소를 찾게 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
이렇게 첫 번째 사진전까지 열게 해 주었다.
역시 깊은 마음이 발휘되어야 어디엔가 닿게 되는 걸까.

어쨌든 올해 사진 농사는 이걸로 마무리~
사진이라는 분야에서는 한 뼘…아니 두 뼘 더 성장하고
전시회 소원도 풀고 꽤 의미있는 여러 성취들을 한 해 같아서 보람지다.
그냥 그냥 가버린 한 해 같지는 않다.

두 번째는 열린 공간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야지.
또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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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집에도 사진 좀 올려놔야지…맨날 이웃많다고 남의 집에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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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할정도로 급하게 사그라든 더위 덕분에 가을이 제법 길었는데, 정작 작년같은 깊은 아름다움을 찾지 못했다. 가을의 문제는 아닐거고, 딴 데 정신팔린 내 탓이다. 하지만, 나에게 지난 가을은 그랬다. 가을의 초입에 내 품에 안긴 K-3 + Sigma 16-35도 그렇게 제대로 진가를 발휘 못하고 이렇게 몇 장의 추억을 남긴 채 나를 떠나갔다.

어느 계절이든 상관없이 해질무렵의 아름다움은 늘 나를 매혹시킨다. 더 이상 저항못하고 어둑함에 묻어들기 시작하는 아스라한 나뭇가지와 잎새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저물어가는 빛 속에서 가까스로 발하는 퇴색된 컬러감. 마침 탄천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내가 애착하는 풍경 속을 헤메고 다녔던, 11월 어느 금요일 오후 땡땡이의 기억 ㅎㅎㅎ

돌아오는 길 from 라오스

한 달이 지났어. 가득했던 ‘라오스’가 이제서야 비로소 잦아들어. 서울의 공기가 더 이상 싸늘하게 느껴지지 않고, 도시의 소음에 적막함이라는 수식이 떨어져 나갔어. 몸과 마음이 둘 다 비로소 원래 자리로 돌아왔네. 한 달 만에야. 9일의 라오스 여행이 끝난 순간부터 시작된, 그 자체로 짧지 않은 여정이었어. 갈 때는 고작 몇 시간의 비행이었는데, 돌아오는 데는 한 달이 넘게 걸렸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떠나는 일도 비슷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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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여행이였어. 16년 전 떠났던 첫 번째 태국 여행에 비견할 만 했지. 전혀 기대도 정보도 없이 간 라오스. 전 날까지 DEVIEW하고 정신줄 끊긴 상태에서 다음 날 아침 허겁지겁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야말로 비행기표와 카메라만 들고 떠난 여행이었어. 숙소도 교통도 액티비티도 아무 정보도 사전 예약도 없이 그 흔한 가이드북 하나 안 들고. 참으로 패기있는 나다. ㅋㅋㅋ

게다가 이 좋은 한국의 가을 날씨를 두고 우기에 살을 태우는 무더위라는 라오스 배낭 여행을. 도당체 지금 당신이 그런 여행을 할 나이인가. 내 인생 마지막 헝그리 여행이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럭셔리한 휴양 컨셉이리…동남아는 또 왠말이더냐. 파리, 바르셀로나, 피렌체 등등은 대체 언제 갈텐가. 순간의 돌발 선택에 방향없는 짜증을 내며 나조차 종잡을 수 없는 감정으로 출발. 게다가, 표를 잘 못 끊어 하루에 서울-인천-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2번을 경유하며 4번의 입출국 수속;; 동남아 4개국을 순방하는 황당한 시작이었지.

하지만, 왓타이 공항에 내려 노련?하게 택시를 피해, 한참을 걸어나와 뚝뚝을 흥정해 잡아타고 비엔티엔 밤거리로 들어가는 순간, 쉴새없이 철커덩 거리는 뚝뚝의 승차감, 훅하고 몰려드는 무겁고 뜨끈한 공기와 이에 반응해 바로 이마와 등에 맺히기 시작하는 송글송글한 땀, 높아지는 몸과 마음의 온도, 덮치듯 밀려오는 시끄러운 엔진들의 소음, 코를 찌르는 싸구려 가솔린 냄새, 작은 오토바이에 2~3명씩 뒤엉켜 탄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살아있는 표정.

아, 처음 닿은 공간에서 원류에 합쳐진 듯한 편안함이 밀려왔어. 와야할 곳에 제대로 찾아 왔다는 걸 온 몸이 느끼는거야. 야! 이건 당첨이다. 대충 찍었는데 로또를 맞은거야.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9일 내내 늘 웃고 있었어. 상황을 살피며 뺨의 근육을 뒤틀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그런 거 말고. 마음을 내려놓고 멍하니 있으면 심장에서부터, 호흡에서부터 퍼져나와 혈관을 타고 온몸을 흘러 입가에 까지 다다르는 그런 웃음. 감염된 거다. 라오스 바이러스에. 없음이 있음이 되어버린 내가, 그것이 내공이라 믿었던 내가,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가르지 않는 무개념 사람들 속에서 무장해제 된거야. 그래봐야 고작 9일. 라오스의 백 만분의 일도 못 봤을테고, 내가 본 것의 천 분의 일도 못 찍었고, 찍은 것 중엔 십 분의 일도 못 건졌지만 <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앨범은 잊지 못할 장면들로 가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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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라오스의 귀요미들
* 애나 어른이나 착 달라 붙어, 서로를 끔찍히 돌보는 모습들
*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공동체 속에서 행복한 사람들
* 경계를 가르지 않으므로, 희박해보였는 소유의 개념
* 어디가든 한 컵 가득히 따라 권해 주던 Beer Lao
* 올라가야할 목적지를 특정하지 않은 이들이 가진 여유
* 차원이 다른 흥의 신세계 Okpansa
* easy come, easy go 뜨거운 나라 사람들의 심하게 쿨한 태도

난 말이야. 이게 진짜 럭셔리 여행이라고 생각해. 생각을 해봤어. 내가 보고 느낀 것, 내 감정에 생긴 일들, 주고 받았던 웃음들, 그 웃음이 내 마음에 한 일들…이런 걸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그건 도저히 가능하지가 않아. 바꿀 수가 없어. 몇 백만원? 몇 천만원? 몇 억?? 난 너무 많이 받고 왔다. 아름다운 것들을, 진짜인 것들을. 내 감정이 목말라하던 것들을.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가 않은 여행이었어.

하지만 왜? 왜 이렇게까지. 지난 한 달간 여러 각도에서 생각의 쿼리를 던져봤어. 여행 기간 중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생겼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를 여러 번 떠올렸어. 난 계속 걸었고, 걸어가다 보면 누군가를 만났고, 어떤 일이 생겼어. 그 순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가진 사람이, 내가 해야 할 경험을 하게 해줬어.

하지만 더 신기한 건 떠남이었어. 그들은 제 역할을 하고는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냐, 그들이 떠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계속 그렇게 끊임없이 걷고 있을 뿐이었던가. 그렇게 또 조금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다른 사람이 나타났고 다른 일들이 생겼어. 그런 일들이 9일 동안 매일 매 순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봐.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 이름모를 마을로 건너가. 거기선 마을 축제가 펼쳐지고, 신나게 춤을 춰. 자기 집에 놀러오라는 라오스 애기들을 따라 가, 쓰러져 가는 촌동네 집에서 11명의 형제 자매가 같이 사는 집에서 비어 라오를 대접받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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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털털털 해 지는 해 지는 시골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오면, 이번엔 시골길 한 구석 평상에 자리를 펼쳐놓은 옆 동네 사람들이 나를 불러세워. 맥주 한 잔 하고 가라고. 거기선 또 알딸딸해져서 스무살짜리 라오스 청년에게 사랑 고백을 받는다. 아이고 의미없다고? 근데 그 뜬금없음이, 그 기분이, 그 분위기가, 그 편안함이 ‘어떤’ 다른 의미를 만든다는 걸 짧은 글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네. 고백에 취해서가 아니야. 그 따위 즉발적인 고백이 난무하고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웃음 속에 잦아드는 그런 세상이 좋았으.

예술 초짜가 루브르에 들어 서면 이런 느낌일까. 쏟아지는 경험량에 압도되고 쫓아가기 바빠 생각은 저 뒤에 제껴놓았지. 들고간 신형철의 <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비행기에 내려선 한 줄도 읽지 못했어. 눈 앞의 현실을 프로세싱하느라 그런 섬세하고 복잡한 사고를 따라갈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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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비엥 폐활주로

낡은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바라본 쏟아질듯한 방비엥 폐활주로의 별들이 마음에 가득해서, 최고급 세공품같은 신형철의 문장이건만 펼쳐볼 틈이 없었다구. 내 속에 아직도 이런 게 있었나 싶은, 순해지고 착해지고 빛이 나던 마음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조금 정리가 되는 것 같아. 한 달이 지났으니까. 마음이 빛이 생기를 잃어가고, 나는 그냥 내 나이의 대한민국 직딩으로 돌아오는 거지. 천천히 내 주변을 돌아보면서. ‘

그러면서 느낀 것 하나. 유교사상이란 게 아직도 얼마나 이 나라에 지배적인가. 여긴 내 집이니까 조금 더 막 던져 보자면, 유교가 얼마나 이 나라를, 내 삶을 망쳐버렸냐 하는 거야. 동방예의지국이라며 예의와 체면, 서열과 편가르기, 윤리 도덕, 사대, 효도, 남존여비, 상명하복, 가부장 따위들이 세련된 사회 규범으로 정제를 거듭해 왔지. 그 레가시에 매몰되어 남의 눈치보고, 경계 짓고, 가진 자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느라 정작 인간이 가진 본연의 순연함, 순수함,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감정들을 잃어버린거야.

그런 벽들이 없으니까, 사람과 사람이 저렇게 거리낌없이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가 있구나. 어린애와 청년과 아줌마와 할아버지가 한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농담따먹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구나. 가장 아름다움 춤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은 사람이 움직임이다.

펙킹오더를 따지지 않는 남자와 남자가 어울리는 건 참 멋진 그림이구나. 난 거대 건물에 끝도 없이 전시된 인류 최고의 예술품에 감상하듯 거리의, 거리에서 동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출물하는 다른 종의 인간들에게 감동하고 또 감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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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경에는 복잡한 규칙 대신 스킨쉽이 있어. 라오스에서 단 한 번도 유모차를 본 적이 없어. 비싸서 못 쓰는건가? 심지어 포대기도 몇 번 못봤어. 그냥 어른들이 애기들을 쌩으로 안거나 엎고 다녀. 그 밀착감이라니. 인간의 따뜻한 체온을 무한정 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참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애들이 또 다른 더 어린 애기들한테 그 온기를 거리낌없이 나누어 주는 거야. 내가 봤던 너무 놀랍고 예뻤던 그림들….

게다가 내 아이, 네 애기 이런 경계도 희박해. 애들을 동네에서 다들 같이 봐. 그리고 눈 앞의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아는 척 하고, 안고, 이뻐해.

물론 애기 자체는 한국도 이쁘지. 작은 모양과 갓 피어나 자리잡은 눈코입들. 근데 라오스에선 그냥 애기들이 애기들처럼 막 자유롭게 뛰어노니까 그게 좋았던 거야. 우리나라에서 어린애들은 늘 부모 옆에서 보호와 감시를 받잖아. 사유지에 속한 귀한 소유물로서. 근데 그 경계를 벗어나 마음껏 뛰노는 애기들은 진짜 예뻐. 소유가 아닌 존재가 뿜어내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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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것과 네 것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 비로소 라오스가 공산주의 국가라는 걸 떠올리게 됐어. 심지어 그것도 모르고 왔어;; 아 이런. 그런데 사는 걸 보니 미리 알고 오지 않았어도 냄새로 맡을 수 있었어. 공산주의란 게 아주아주 조금은 이런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 걸 지킬 수 있는 토대가 된건가. 그렇담 마르크스님에게 약간은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그냥 따라 주던 비어라오를 이해할 수 있었어. 왜 누구나 그냥 지나가는 나에게 이런 걸 베풀지? 왜 나한테 공짜 술을 먹으라고 하지? 왜 어디서나 같이 합석하라고 하지? 왜 집에 놀러오라고 하지? 왜 자고 가라고 하지? 아니…왜 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런 거겠지. 이렇게 위험스러운 행동과 제안들이라니!! 내 직업의 80%는 이유를 찾는 일인데, 이 사람들에게서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어.

하지만, 그건 그들과 많이 다른, 출발부터 다르게 시작하고 다르게 만들어진 나라에서 태어나고 길러진 나의 프레임이었어. 그리고, 반복되는 제안과 호의들 그리고 그 결과와 그 과정에서의 나의 경험의 총체가 점점 내가 가진 프레임을 내려놓게 만들었어.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는 뭔가 다른 프레임이 있다. 그건 내가 가진 것과는 다르다. 그제서야 나 역시 웃을 수 있었어. 아무 이유없이 말이야. 사람이 사람에게 웃는 그 순간이 좋아서.

라오스가 좋았던 거? 난 예의와 도덕을 벗어던진 인간의 민낯의 아름다움을 본 거야. 관념에 훼손되지 않은 본연의 아름다움. 옥판사 전국 보트 대회 결승전 국가 최대 행사에서 북치는 남자가 북에 엎드려 자더라. 그런데도 아무도 안 깨워. 자기 차례 되니까 또 부시시 일어나 북치더라. 읏흥. 이럴 수도 있네. 어여쁜 처자가 길을 걷다 노인네가 들고가던 짐보따리 떨어뜨리니까 상황을 살피다 얼른 뛰어가 도와.

야~~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아도 되고,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니 저렇게 젊은이와 아줌마, 노인들이 한 자리에 앉아서 즐겁게 농담따먹기 하면서 재미나게 수다떠는 구나. 세상 일이 이렇게 돌아갈 수도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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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어디서나, 도시든 시골이든 골목골목 모여앉을 한 평만 있으면 복붓이라도 한 듯 펼쳐지는 똑같은 모습이지만, 그건 도대체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풍경. 우린 다 끼리끼리지 않아. 비슷한 나이, 계급, 또 다시 그 안에서도 비슷한 높이들끼리 편갈라서 놀지 않아? 잘 생기고 예쁜 애들끼리, 비슷하게 사는 아줌마들끼리 …파편들의 사회. 서로가 서로에게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서로 할퀴어 대고. 기실 예의란 것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애정에서 시발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없어지고 지켜야할 규칙만 남아 사슬처럼, 그물처럼 일상을 옥죄는 거지.

조선이 건국하며 새로운 권력의 이념적 깃발이 필요해서 들여온 유교라는 사상에 물들기 전의 고려는 굉장히 활기차고 개방적인 나라가 아니었느냔 말이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는 남녀상열지사도 분분하고 만두 가게도, 절도, 우물도 흥하고. 외교도 활발하고. 중국을 대국으로 모시지 않고 자존감도 가지고. 그걸 학교 때는 국가, 민간, 종교의 총체적 부패라고 배웠지. 물론, 뭐 이건 좀 더 상세한 역사적 지식과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긴 해. 근데 고려에서 조선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지금으로 왔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계속 해보게 되는 거지. 뭔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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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에는 환경의 차이도 있을거야. 일년 내내 상온이라 돈없어도 어디서든 등붙이고 자면 되고. 공동체가 발달되서 아무리 못 벌어도 굶지는 않을 수 있고. 스님들께 음식바치는 탁발도 결국 스님들이 공양받은 음식들을 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기 위한 사회 안전망, 재분배 메카니즘인거지. 공산주의라 사유의 개념의 희박하고, 종교는 제 역할을 하고 있고. 다들 그 종교에 깊이 의탁하고. 무엇보다 모든 걸 결정하는 DNA부터가 다르잖아. 그런 세상과 우리 나라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잠깐 보고 남의 나라 이렇쿵 저렇쿵도 옳지 않아. 잘 알지도 못함서~~ 사람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진짜 그렇기만 하겠어!! 달의 반대편도 그렇기만 하겠냐고. 힝 => 이건 머리의 소리.

그래도 어쩐지 라오스는 그런 것 같아. 일단 난 라오스가 너무너무 좋아. 정작 난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살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그렇게 살고 싶으다 ㅠ) => 이건 마음의 소리 ㅎㅎㅎ

이런 걸 궁싯거리며 지난 한 달을 보냈고, 계속해서 겹쳐지던 두 개의 그림 중 한 쪽을 달래고 지워가며 아주 천천히 난 원래의 내 삶으로 돌아오게 된 거지. 짧지 않은 여정이었어. 여행이 끝나고도, 여행은 계속되기만 했지. 너를 사랑하고 돌아왔던 길도 꼭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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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제일 마음에 남는 사진

쓰고 나니 또 다시 그리워진다. 그 뜨거웠고 신기했고 설레였던 시간들.
다시 가야 하겠지.
가게 될 거다.
그게 몇 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또 가게 될 거야.
아직은 더 헝그리하게 다녀 보자. 배낭을 짊어지고, 카메라를 메고,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인간들을 만나보자.
다른 삶에 시선을 돌려보자. 더 넓혀보자. 이번엔 꽝시, 블루라군따윈 다 치우고 오롯이 삶을, 사람을 만나보자.
그리고 내가 세운 이 허접한 라오스에 관한 가설들을 실험하고 검증해보자.
다음 번엔 오토바이도 몰 수 있을까?? 내게 던지는 작고도 위험한 질문 ㅎㅎㅎ

끝으로 신.

Thank you, god. 그 어떤 여행 책자나 가이드, 트립 어드바이저 인터넷 서칭 보다 더 많은 것을 준비해 주신 분. 당신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나는 모르지만, 난 저 위에 있는 당신의 존재를 믿고, 당신이 나를 위해 내려준 그 넘치는 것들을 기꺼이 받고 감사합니다. And I will follow your calling, again and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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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Own Private LAOS

가슴은 터질 듯 하고
솟구쳐 오르는 말들은 무지 많으나…

일단 사진


MY OWN PRIVATE LAOS by CHOA Jung on Exposure

홍상수스러운 여름, 토요일 밤.

광화문 – 종3 – 인사동. 이 동네만 오면 종종 홍상수의 영화 한 장면같은 상황들이 연출된다. 2014년 8월 9일(토) 한 여름의 꿈같았던 저녁도 그러했다.

# 광화문

야만의 시대에 ‘당연’은 지난한 투쟁의 대상이 된다. 그동안 문명은 무엇을 쌓아왔던건가. 우리가 쌓아온 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다해도, 최소한의 당연은 공유해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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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 사람들이 저래야 해요? 선배는 무거운 얼굴로 광화문의 하늘을 올려다 본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는 귀척을 했고, 선배는 폼을 잡았다.

# 종3 횟집

아줌마가 연하 아저씨 홀리는 스킬이 정말 대단했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한 점 거침없고 명쾌한 대시였다. 명화 아래의 중년의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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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욱겨 죽겠단다… 이렇게라도 웃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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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웃음과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야외 테이블로 이동…
하자마자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남자 넷이 치렁치렁한 복장을 하고 마술처럼 등장해 기타 연주와 함께 떼창을 시작한다. 야외 테이블이 늘어선 허름한 종3 뒷골목을 알람브라 어디메쯤으로 돌연 변신시킨다. 음악의 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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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낙원상가 뒷골목이 황홀하게 물이 좋아서, 선배에게 내가 너무 강북을 무시했다며. 지나치게 강남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속죄한 순간 …패턴이 보이고, 패턴이 보이니 이유가 보인다. 태어나서 남자 쌍쌍이 지나가는 모습을 가장 많이 목격한 날~ 버스 몇 대에서 내린 분위기로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려간다. 스타일들은 죄다 청담동 코어 1%. 몸관리들도 어찌나 훌륭하신지 다들 봉긋봉긋. 안구 정화의 희열과 소수자(?!)의 비애가 교차했던 토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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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커피빈도 죄다 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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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귀퉁이엔 아직 내가 기억하는 낙원상가 뒷골목의 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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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인사동의 야심한 밤은 버스킹 아해들이 접수했다. 홍대에서나 보던 애들을 가게들이 문닫은 늦은 인사동 메인 스트릿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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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취기가 올라 맥주 한 잔을 더 하자던 선배는 길을 잃고 헤맨다. 골목 골목을 헤매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마치 동화처럼 술집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던 그룹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반갑게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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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에 대한 걱정과 무기력한 현 상황에 대한 북받침. 그래도 조크하고 웃고 진저엘을 마신다. 집회 복장으로 요넥스 배드민터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오신 분을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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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안해룡 감독님
부디 감독님의 벨이 큰 소리로 울리기를….두 번 울리기를. 우리 모두에게 들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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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광화문으로

다시 종로까지 걸어왔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 앞을 삼 천배 신도들의 검은 그림자가 줄지어 걷고 있었다. 맨 앞에 사람이 두드리는 목탁소리가 어둠에 잠긴 광화문 광장에 낭창하게 울려퍼졌다. “이건 정말 홍상수스러워요.”

선배는 유족들이 밤을 지새울 텐트로 넘어가고 난 세종로 주차장에 맡겨 놓았던 차를 몰고 그제서야 겨우 나의 밤 속으로 진입했다. 밤은 계속해서 깊어져만 갔다.

레퀴엠 포 어 꼬리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이규리 시인 < 특별한 일> 중에서 앞 부분

처음 차 안에서 신형철의 목소리로 이 시를 들었을 때, 가슴에 전압이 확 오르고 아주 잠깐이지만 숨이 멈추어졌어. 몇 번인가 다시 돌려들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감전의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어.

그러다 한참 지난 오늘 그 시를 다시 찾아 읽다가 갑자기 꽤 납득할 만한 이유가 떠올라서 이렇게 기록해 두려고 해.

아마 나도 그런 식의 최선을 했던 적이 있었
던가봐. 내 꼬리를 내가 자르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던 때가. 뛰기 시작하기 바로 전, 부디 출발을 포기할 만큼 정신을 잃은 건 아니기를 기도했던 것이 기억나. 참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지. 돌이켜보면 아찔했고, 결과적으론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생물학 교과서에 써 있는 것 처럼 잘려나간 꼬리가 다시 돋아나진 않았어. 잘라낸 부위에 아물어가긴 했지만, 새 꼬리가 나진 않았어. 꼬리 따위 없는 채로 살아가면 어때. 살았으면 됐지! 그렇게 안도의 숨을 쉬며 살아왔지.

그런데 그 날 시인이 알려 준거야. 근데 그 때 니 꼬리는 어땠는 지 아느냐고. 네가 뒤도 못 돌아보고, 아픈 줄도 모르고 그저 살기 위해 죽자고 도망가는 동안 꼬리는 발버둥 치며 이미 끝나버린 생의 마지막 투혼을 펼쳤노라고.

그러니, 최선을 다한 것은 살기 죽기로 달음질을 한 니가 아니라, 끝까지 꿈틀대며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 꼬리였다고. “힘들었나요? 하지만, 최선은 그런 게 아니예요.” 라고 시인이 정정해 준거야.

그 때 잘려나간 채로 나를 위해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던 꼬리는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았던 그 꼬리는
대체 무엇을 감당하고 있었던 걸까.

또 나는 무슨 작정으로 꼬리까지 단숨에 도려내고 그리 뒤도 안 돌아보고 내뺐던 것일까.

그리하여, 남은 몸은 떠나지 않는 애닲음을 짊어지고 가는 거구나. 이미 몸을 떠난 몸이 감당했던 생의 무게가 여전히 떠나지 않은 몸에 전이 중인 거로구나. 깊이가 재어지지 않는 우물같은 꼬리의 마음이.

생존의 본능이란 참 무자비한 것이다.
감전의 실체는 이 라쇼몽적 깨달음이었오.

꼬리여 꼬리여.
나에게 있었던, 나에게는 없을 꼬리여.

나는
기어이
그 강을
건넜습니다.

6월의 끝, 줄리언 반스

굶주린 상태가 되어 허겁지겁 줄리언 반스를 두 권 연거푸 읽어치웠다. 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세이라 분류될 수 있을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주린 배에 제대로 씹지도 않은 쌀밥을 우겨넣듯, 음미보다는 정신줄 놓은 폭식이었다. 예상치 못한 허기가 치솟아 의자에 박혀있는 쇠못이라도 뽑아 씹어먹을 지경이었다.

<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 내 말 좀 들어봐> 을 까마득히 오래 전에 책장에 꼽아놓고도, 결국 펼치지 못했던 줄리언 반스와 2014년 6월의 끝자락에 마침내 이렇게 급만남했다. 다 읽고 나서는 묘한 당혹감이 드리운다. 이런 날 책을 읽다니…이 좋은 날을. 놀러나 가지. 차라리 쌓인 일을 치우던가.

반스가 나빴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날이 너무 좋았다. 1년 중 해질 무렵이 이렇게까지 좋은 때는 얼마 되지 않는다. 누리지 않음이 무책임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날이었다. 그런데도 기아는 그 어떤 조건에서도 생존을 최우선한다. 정서의 기아도 마찬가지다.

줄리언 반스.

영국 소설이 썩 맞지 않는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시….부커상 수상에 대단한 반전 소설 베스트 셀러로 꼽히나보다. 그런데 나에겐 묘하게 코드가 맞지 않았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까지 왜 이리 저 멀리 에둘러야 하는 것인가. 나의 지적 능력도 심하게 의심받는 느낌이었다.

결정적으로 난 반전이라는 장치가 대체로 참 별로다. 한 방의 역전을 위한 기나긴 설정들? 왜??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거길래. 기억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뭐 그건 기본 상식 아니였어. 췟.

한편으론 번역체. 정서가 고팠던 나에게 이 번역체는 쥐약이었다. 아름답게 쓰여진 모국어가 그리워졌다. 번역 작가는 자기가 무슨 말을 옮기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했던걸까.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책을 펼치고 첫 장부터 이건 완전한 사기라고 생각했다. 저 제목말이다. 기구 매니아들의 무용담을 펼쳐놓는 도입부에선 사랑은 커녕 사랑의 냄새도 맡을 수가 없다. 원제는 Levels of LIfe. 그것 또한 모르겠다.

책을 던져버릴까 계속 읽을까 무지 고심하며 꾸역꾸역 책장을 넘겨갔는데.

100페이지쯤…제 3부 부터, 내가 읽고 싶었던 바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 난 이게 읽고 싶었다. 근데, 이 책 돈 주고 사서 읽은 사람들은 다 이거 읽고 싶었던 거 아니겠음??? 아내를 잃은 줄리언 반스의 비통한 고백.

이건 마치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책을 붙여놓은 것처럼. 솔직히 앞의 100페이지는 읽을 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었다. 무지막지한 정보량도 그렇거니와 대체 이 정보들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가늠도 안되고…그저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었는데.

100페이지 3부. 그로부터 약 100 페이지를 읽는 동안 점점 난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사랑하는 그 곳으로. 오늘 같은 날 가고 싶었던 곳이다.

그래서 정말 오랫만에 술도 한 병 딸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술을 딸까도 고민도 많이했는데, 결국은 와인으로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차디찬 와인은 뒷향따윈 전혀 없어 목으로 바로 넘어가는 도수 낮은 소주같았다. 왜 땄니…ㅎㅎㅎ

그래 이거지.

매우 집중해서 읽었고, 읽는 내내 조앤 디디온의 < 상실(The Year of Magical Thinking)> 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포인트가 조앤 디디온과 정확히 조응했다. “이것은 극복할 수 없다”

사람이 이래. 고통에서조차 순도를 바라지. 소비의 대상이 가짜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단히 말해서, 본전 생각. 책값, 시간, 들인 내 마음보다는 더 값나가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그들의 결론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줄리언 반스는 이 책을 아내를 잃은 지 꼭 5년만에 냈다. 5년이라니…세상에. 말도 안돼. 그리고 그게 앞으로 10년, 20년이 될 수도 있다니. 그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세상에 있을까. 하지만, 완벽한 상실의 지옥도 못가는 좀비의 연옥은 누가 어떻게 풀어내 줄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지상과 지옥 사이를 떠돌며 아직도 지가 죽은 줄 모르고 지상의 해피엔딩을 꿈꾸는 원혼은.

책을 덮고 나니 세상은 다시 어둠이었다. 낮게 날던 비행기 소리도, 실용음악학원의 뚱땅거리던 피아노 소리도, 놀이터 아이들의 깔깔거림도 모두 잦아들었다. 나를 조기퇴근시키고야 만 그 아름다웠던 해질녘의 풍경도…

Me2day 미투데이 백업

2007년 4월부터 6월까지 한 석달.
하루도 안 빠지고 술을 먹었던 적이 있다.

그 앞 뒤로도 좀 심각한 음주가무의 나날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단 하루도 안 빠졌다. 만취도 종종이었고, 몇 번인가 필름도 끊겼다. 술 먹다 아침해 보며 집에 돌아와 셔틀에서 기절하기를 반복하는 나날이었다.

회사에선 서비스에서 기술 조직으로 이직 수준의 전배를 해, 무진장 일을 해치우던 중이었다. 그땐 기술 조직에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 몰랐다. 잠깐 왔다 기술 배우고 다시 돌아가 서비스의 문익점 선생이 되어보리란 어이없으리만치 얄팍한 요량이었다.

소주 한 병에 정신을 잃고 친구에게 들쳐 업혀온 날. 그날이 아버지 제사인 걸 오후 늦게 정신차려서야 알고 그 때부터 술을 끊지는 못해도 줄이기 시작했다.

그 기억들이 미투데이에 조각조각 남아있다. 내게 필요한 사람들이 모두 내 인생 안에 있었던 날들. 스샷을 뜨고, 백업을 한다. 모니터 앞에 펼쳐놓고 냄새라도 맡아볼 수 있을까 싶어…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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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years

배운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다.

많이 존경했고 좋아했던 누군가의 퇴사 인사말에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쓰려다가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결국 나는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왔을 뿐,
전혀 그 사람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말을 거둔 적이 있다.

사람들은 배운다는 말과
누군가 그렇게 하는 것을 오래 보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 쉽게 혼동한다.

그래서 그저 오래동안 지켜보기만 해 놓고는,
“배웠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알고, 분석하는 것과
실제로 그 순간에 그렇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

하지만, 10년.
10년이라면 어떨까.

짧지만은 않은 시간.
일을 했고, 여러 사람들과 만났고,
쪽도 팔고 성과도 내며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무엇을 이루었나, 출발점부터 얼마나 멀리 달려 왔나 돌아보면
그저 모든 것이 덧없는 공회전같을 때도 있었고
큰 바위 얼굴 같았던 이들이 오고 또 가는 것을 지켜보며
때로는 멈춰버린 정거장이 된 듯한 기분도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리하여 이 10년의 시간을 보낸 내가
이 10년의 시간을 보내기 전의 나와 얼마나 달라졌나이다.

10년간 정말로 애썼던 것은
나의 좋은 점들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기의 좋은 점들을 배우는 것.

애초에 서로 다른 세계를 태생으로 한
극과 극의 형질을 하나로 녹여내는,
불가능에 가까운…혹은 그것이 이루어진다 해도
대체 무엇에 소용이 있는가를 되묻게 되는 숙제였다.

그 과정에서, 조직의 큰 존재감 앞에
나의 좋은 점들이 싸그리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그리하여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도 있었으며
그에 비해 배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놓지 않았다.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 (지금의 나만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나여야 한다는 것. (나의 고유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양쪽에서 너무나도 팽팽이 끌어당기는 이 두 가지 끈을 잡고,
어느 한 쪽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10년을 왔다.

그래서 지금 결국 어떤 사람이 되었나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잃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고
턱없이 많이 쏟고, 아주 조금을 간신히 얻는 비생산적인 과정.

그러니, 이건 배웠다기 보다는
시간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흡수되었다라고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오랜 시간 강제로 붙어있어야만 했던 두 이질의 접면에서 발생된 변색.
그 색이 아름다운가. 그 색이 성장인가. 혹은 배움인가.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10년. 나의 色은 지금 이것이다.

여전히 난, 서울에서 태어나 부평초처럼 흘러흘러
지구의 반대편
아르헨티나 어느 촌구석에 둥지를 틀게 된 이방인.

고향도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숟가락질부터 피로연까지 모든 게 낯설기만한
Englishman in New York의 일상이다.

하지만, 어디든 어떻게든
꽤 재미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것.
이것이 유일하게 tangible한 성취랄까.
10년의 세월을 들여서 얻은…

끝으로, 지난 10년간 내내 여기서 받았던 질문.
넌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현재 진행형으로 남겨놓고 싶다.
계속해서 나아가고 싶으니까. 단 1cm, 1mm라도…

2004.5.31~2014.5.31

수고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또 수고해 주세요 ^^

“(…)알 수 없는 우주 속 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없이 노력하는 것뿐이야. 그 결과를 가지고 조급히 따지기에는 이 세계는 너무도 오묘해. 무엇을 해야 하나? 그건 자네들이 생각하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거야. 자네들 할 탓이야. 나로 말하면…… 달리 살았더면 하는 생각은 없어. 만족해…… 재미있었어.”
인생은 자기가 사는 거야. 재미있었어. 학은 손톱을 깨물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컹.
컹.
컹.
황선생은 손을 내밀어 학의 손목을 꼭 잡아 주었다.

최인훈 < 회색인(1963)>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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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화천여행

쓰나미 업무도, 알람머신 스마트폰도, 심장을 찢어 놓는 매일의 뉴스도, 세상에 대한 오갈 곳 없는 분노도 모두 끊었던 1박 2일의 블랙아웃. 스위치를 껐다 켜는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단절을 통해서만 회복할 수 있는 것을 얻었던 시간. 화천은 그러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몇 겹을 벗겨내고 원래의 질을 드러낸 듯한 공기와 물. 한 점의 이물질도 섞이지 않은 어둠.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던 별들. 담요로 몸을 두르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을 향해 깊은 숨을 토해냈다. 가슴 속에서 흘러나온 것들이 춤 비스무레한 것을 추며 어둠 속으로 아득히 날라 갔다. 꽤나 들이 부었던 알콜의 기운도.

아침에 눈을 뜨고, 펜션 창을 여니 이런 풍경
깜깜한 밤에 구불구불 산길 타고 올라와서 전혀 몰랐다. 이런 첩첩 산중이었다뉘;;

물론 그래봤자다. 얼마나 가겠나. 1박 2일 체험 타인의 삶의 현장에서 구한 힐링이란 것이. 하지만, 이렇게 긴급 대피하듯 도망쳐 나와 찍은 쉼표 하나가 간절했던 타이밍. 함께 했던 벗과, 환대해 준 벗에게 감사~ 근데, 이런 짧은 동행조차 십 수년 만에 가까스로 한 번이라니. 친구 맞어???-_-;

화천은 혜란이가 몸담고 있는 연극집단 뛰다(Tuida.com)가 5년전 터를 잡은 곳. 화천군이 10년간 무료로 내 준 폐교는 사무실과 연습실이 되었고, 거기에 극장과 제작실, 게스트하우스와 거주 공간, 텃밭 등 점점 살이 붙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강원도의 선명한 햇살 아래 하얀 이불 빨래가 널려 있었고, 화천에서 태어난 뛰다 멤버들의 2세들이 꺄르르거리며 뛰어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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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소박한 점심


본관 – 뛰다의 대표작 < 하륵 이야기>


뛰다의 주요 레퍼토리로 장식한 본관 입구


사무실 옆 작업실. place of making things.


잘 정리된 작업 재료와 도구들~ 와우


뛰다의 가장 최근 작품 < 바후차라마타> 성소수자를 다룬 작품. 인도극단과의 합작품이라고. 못봐서 아쉽~


연습실 칠판 – 이런 상황들을 가지고 연습을 하나보다~~


고품격 황토 연습실~ 연습실의 황토벽은 멤버들이 직접 발랐다고.


희랍스타일 야외 극장도 제법 폼을 갖췄다.


운동장에 심은 계수나무. 크도 두터운 나무로 자랄 때까지 뛰다의 역사와 함께 하길~


처음 만난 혜란이 동생. 학교때부터 구제불능 문제아, 트러블 메이커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젠 누나의 조언으로 무대제작의 길을 뛰어들어 아주 잘 해나가고 있단다. 오호 놀~라~워~라. 작업의 포스는 이미 장인~~


운동장 한 켠에서는 좋은 볕에 이불 말리고


뛰다 화천 1세대 나모양. 어떻게 커나갈지 기대되는.


연출가 부부 요섭~ 주야씨 댁에서 담소 나누시는 두 대학동기 여사님들.
둘 다 있다. 심지어 하나는 상당한 차이의 연하다. 짱나!!! ㅋㅋㅋ
이렇게 사택?? 제공도 되는 훌륭한 뛰다~


텃밭도 만들었다. 작게 시작했지만, 어쨌든 직접 길러 먹어볼 요량이란다.
예술을 하려면 결국엔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공동체라는 틀 안에서 실천하고 있는 그들!
근데 나모가 심어서 삐뚤삐뚤 자라고 있다는 건 귀여운 함정~


뛰다 제작실. 무대장치들? 같은 거 직접 만드는 모양이다. 능력자들!
이 옆엔 제법 잘 지은 극장도 있었다. 원래 한옥 학교?같은 것이었다는데 극장으로 개조했다고.
참 열심히도 많은 것들을 이뤄가고 있다.


명배우 재영씨의 오후 과업은 제초작업. 예생일치라면, 이 또한 예술의 일부이려니~~
이렇게 모든 걸 직접 자기 손으로 만들고 지켜 나간다는 거. 참 멋지구리~

그런데, 오래 간만에 만난 이들은 점점 더 생활인이라기보다는 구도자로 깊어진 느낌?

뛰다를 한 바퀴 둘러본 다음엔 혜란이의 안내로
화천으로 귀촌한 조각가 이정인, 생태화가 이재은 작가(보리 출판사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하셨던) 부부가 운영하는 갤러리와 작업실에 놀러갔다~


이정인님 기본적으로 가구 작업을 하시는데. 책상이며 의자의 퀄리티가 ㅎㄷㄷㄷㄷㄷ
가구에 아무 관심없는 최여사가조차 돈 벌어서 하나 업어가고 싶다는 발언을 할 정도.
눈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만졌을 때의 기분좋은 느낌이란! 읗ㅎㅎㅎㅎ


예기치 못한 힐링은 너무나 공들여 잘 만들어진 물건의 결에서도 왔다.


하지만, 그냥 유능한 기술자 목수에 그치지 않으시고
나무를 활용해 예술의 경지에 이르셨다. 화천의 나무에 화천을 담아내고 계셨다.


나뒹구는 죽은 나무들에 색과 뜻을 입혀 화천을 흐르는 물고기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심 ^^


자투리 나무들을 모아 ~ 작품명은 ‘잡어’ 가운데 등에선 빛이 퍼져나온다.
그래서 굳이 ‘잡어구이’라 불러보았다. 술땡기라고~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 여기에 화천의 주요 랜드마크를 그려넣어,
죽은 나무에 화천을 담으셨다. 곧, 뛰다도 넣어주신단다~~


불치병 진단을 받으셨다는 데 화천에 내려와 완치되었다는 이정인 작가님.
옆에 Gallery 1 표식 나무도 화천에서 폐쇄된 다리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작가의 작업실. 페인팅 류가 많은 것으로 보아 주로 그림을 담당하는 이재은 작가님의 작업실일듯


남편이 주요 소재가 되는 작업이라~ 남편이 이런 데도 쓸모가 있구나.


목수의 작업실 탐방 ~ 비밀 공간을 흔쾌히 열어주셨다!
뭔가를 만드는 사람의 공간은 늘 살아있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비어있을 때 조차도.


나와서 한 컷


작업실 바로 앞 화천 율대 정류장 – 지나는 사람도 버스도 거의 없는 외진 이 곳에, 작가는 이렇게 공을 들여놨다.


이웃집 문패도 작가님 선물이라고~ 안에서는 옥분 여사님과 그 친구분이 담소중였다.


혜란이가 거주중인 신아 아파트. 아파트에서 중세 수도원의 스멜이~~


그리고 동네 한바퀴


화천 애기들


해질 무렵 화천천

많은 얘기와 웃음 속에 보냈던 시간. 친구의 환대와 뭔가를 만들고 바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좋은 기운을 듬뿍 받았다! 호르몬의 이상이 야기한 나의 불치병도 잠시나마 호전되었다.

물론, 난 다시 숨가쁜 도시의 정글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 내가 선택한 혹은 나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장을 멈추지 않고 세계와의 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를 묻는 나의 실험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별도 뜨지 않는 하늘 아래서 도시의 더러운 공기를 휘감고, 너와 나에게 무심한 이 이방인적 관계 속에서, 너가 없는 이 세상에서도 그래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즐겁지 않아도 살고 즐겁더라도 여기서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가를 묻고 또 물을 것이다.

이번 여행으로 느낀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다른 삶을 일구는 사람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나를 설득한 것은, 어디냐의 장소가 아니라 꿈꾸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지닌 방향과 태도. 그러니, 화천의 그들도, 도시의 나들도 ~ 누구든 어디서든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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