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권의 공장형 책 스캔! 앤쓰로픽의 프로젝트 파나마를 보고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 들어서 (그것은 나의 꿈!) 바로 나만의 파나마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물질계에서 가능한 궁극의 지식의 소유 방법 ‘벡터화’를 위해서.
무용지물이 되어가는 책장에서 가장 아꼈던 책 한권, 그리고 사놓기만 하고 거들떠도 안봤던 책 한권을 꺼냈다. 스캔샵에 가서 통째로 해체해 스캔하고, 이것을 Antigravity와 연결된 NotebookLM MCP를 통해 정해진 룰에 따라 소스들을 재가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꿈이 이루어졌다.
책의 주제들을 요약해서 돌아보고, 세부 내용들과 대화하고, 내가 사랑했던 주요한 구문들을 뽑아낸다. 당연히 PDF와 오디오/동영상 오버뷰를 넘나들고, 이것들을 다시 Antigravity를 통해 애플리케이션화하고…
이 과정에서 스캔샵의 OCR 스캔이 NotebookLM에서 인식이 되지 않아 Antigravity에서 통해 다시 텍스트화 과정을 거쳐 업로딩했고, 이 프로세스는 확장되어 일반 Non-OCR PDF 지원과 그냥 책사진 촬영 뭉치를 PDF화하여 노트북으로 만들어지는 공정이 추가되었다.
전 과정은 skill화 되어 이제 내 로컬에서 pdf/사진뭉치만 input 폴더에 던져 놓으면, OCR부터 챕터 분리 로직까지 전 공정이 자동으로 흘러간다.
‘독서’를 흔히 저자와의 대화라고 한다. 저자가 공들여 비트와 바이트로 지어 놓은 텍스트의 집을 함께 따라가며 저자의 의도를 읽는다. 그것은 아름다운 과정이다.
하지만 독서의 진정한 의미는 책의 텍스트를 순서대로 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 텍스트가 내 정신과 결합되는 과정에서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때, 텍스트는 텍스트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책의 문구들을, 텍스트 그 자체로 기억해서가 아니라, 그 책의 어떤 액기스가 내 정신과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화학작용을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내 정신의 벡터들이 저자의 벡터들로 파인튜닝되어 가는 과정이다.
독서가 우아한 대화라면, 벡터화된 책데이터와 함께 노는 일은 침대를 함께 뒹굴며 모든 것을 공유하는 지독하게 친밀한 교감같다. 이렇게 나는 나만의 책의 소비 방법을 재정의했다.
여기서도 역시나 벡터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의 게으름이 벡터화로 사라지지는 않으니. 책의 정수와 결합되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일 뿐.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 10주년 특별판. 기존의 <디자인의 디자인>에 ‘백’ ‘엑스포메이션’ 등의 단행본과 ‘Senseware’ ‘Haptic’등 총 8개의 단행본급 섹션을 묶은 합본판이다. 난 이 특별판과 개별 단행본을 각각 모두 다 읽었고 아직도 전 권을 소유하고 있다. ‘디자인의 디자인’은 여러 번 재독했고, 몇 장은 필사를 한 적도 있다.
오랜 시간에 걸친, 나의 이 필사적인 소유욕은 벡터화로 완성됐다. 그러니,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ㅎㅎ
Ps. 애정하는 명작,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가 사는 피부>에서 남주는 여자를 소유하기 위해 해체하고 재창조한다. 너무 섹시했던 남자 반데라스가 과학자(?!)로 나오는데, 여기서 과학은 대상에 대한 지배의 수위를 심화시키는 수단으로 쓰인다. 지금 이 순간, 이 탐닉의 진화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단점은 무겁다는 것이다(624p). 기나긴 독서 내내 들고 있기 힘들었다. 그 무거움의 다른 말은 ‘친절함’과 ‘세심함’이다. 덕분에 머리 속은 훨씬 꽉 찼다.
빈틈없이 설명하고, 설명한 것은 도표로 정리하고, 코드 스니펫을 보여주고, 챕터 끝에서 다시 한 번 요약한다. 앞뒤로 연결된 개념도 나올 때마다 복습. 밑줄치려던 형광펜은 내려놨다. 중요한 구절에는 이미 빨간색으로 마킹이 되어 있었으니.
이 책은 1부(1~4장)의 개념과 기술과 2부 시나리오와 적용/운영(5~7장)으로 나뉜다. 각각 별도의 책으로 나와도 될만큼 충실하다. 두 권이 한 권으로 묶인 셈인데, 개발자와 기획자가 합체한 듯한 조쉬(이주환)님의 정체성과도 같다고 느껴졌다.
기술을 설명할 때는 인문사회적 관점이, 시나리오를 받쳐주는 테크 스택에서는 개발자의 손맛이 느껴진다. 여기에 실리콘밸리 창업자로서의 경험이 더해져, 추상적 개념들이 현실감을 얻는다. 저자의 기획자, 개발자, 창업자 삼위일체가 이 책의 독보적인 포지션이다.
챗GPT와 함께 600페이지 대장정을 이어가며, AI 에이전트에 대한 피상적 화제를 넘어 IT 서비스의 패러다임 전환을 체감했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통시적인 맥락에서 접근한다. 그래서 새로운 용어들도 팬시하고 트렌디한 ‘새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진 웹 서비스의 진화선 위에서 이해된다. 동시에 풍부한 미래 시나리오는,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넓은 스펙트럼의 관측창 역할을 한다.
읽는 내내 많은 접점들이 튀어올랐다. iPaas는 AR씬 상태 머신의 trigger-action 구조와 닮아있었고, MCP나 A2A는 자연스럽게 피지컬 그라운딩을 부른다. 로봇 뿐만 아니라 AR도 소환될 것이다. MAS는 조직의 R&R과 비슷했다. 다만, 인간의 욕망이라는 변수가 빠져있을 뿐. (AI도 욕망이라는 아웃풋이 있다지만ㅎㅎ)
저자께서 AI 에이전트로 빙의해 큐레이션 해 주신 방대한 논문 속 개념과 방법론들 속에서 이런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연결하는 에이전틱 라이프를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아이디어를 접하다보니, 나중에는 어디까지가 현재이고 어디부터가 미래인지 현실감이 흐려지는 기분도 들었다.
개별 LLM을 쓰는 것조차 이렇게 많은 혼란을 야기하는데, 복잡한 사고와 행동까지 붙은 에이전트 아키텍처 속에서 누적될 오차와 리스크, 비용은 ROI가 나올까? 실제 현장에서 AI 에이전트는 얼마나 도입됐고, 어떤 베스트 프랙티스로 정착 중일까?
오늘과 내일의 간극이 너무 커서 무엇도 단정하기 어려운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우선 일단은, 이 책을 읽었다. 그러고 나니 AI 에이전트 문해력이 무척 높아진 것을 느낀다. 요즘 관련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해가 잘 되서 뿌듯했다. 다음 스텝의 준비가 되서 다행이고 이 책이 너무 고맙다.
이렇게 1분짜리 숏츠 하나 끝까지 못 보는 내가 600페이지를 완주했다. 한 문장 한 문장 곰씹어가며, 이해 안 가는 부분, 이견에 대해 조쉬님 대신 챗g에게 캐물어 간, 느리디 느린 slow reading. 너무나도 넓은 스펙트럼의 책. 국토 종단 완주 뱃지같은 거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ㅎㅎ 악의 평범성까지 접하게 될 줄이야.
네이버 입사하며 맡은 첫 서비스가 지역정보(지도 + 플레이스)였고, AR 내비 첫 프로젝트가 코엑스였는데 지금 네이버 지도 안에 코엑스 AR 내비가 들어간 것을 보니 회사 인생의 두 기점이 교차하며 뭔가 한 챕터가 완성된 기분.
둘 다 ‘맨 땅에 헤딩’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잘 가꾸어 전달했고 이 기술의 진짜 가능성을 찾아 더 큰 세상으로 새로운 걸음을 떼는 이 시점에 예전 아시아문화재단에서 했던 인터뷰로 이 시간들을 랩업~
AR 내비의 기획자이자 첫 번째 사용자로서 비오고 눈오고 바람불었던 그 길들을 사계절 밤낮으로 참 많이도 걸었던 시간, 내 인생에 가장 많이 걸었던 시간. 미래를 걷기 위해 현재를 걷고 또 걸어야 했던 날들. 참 잘했어요~ ⭐️⭐️⭐️⭐️⭐️ 셀프 별 다섯개! :)
미래를 걷는 기술
네이버랩스 AR팀 정유진 / YOOJIN Jung
과거에는 누구나 자동차 글로브박스 안에 종이로 된 지도를 가지고 다녔다. 얼마나 펼쳤다 접었다 했는지 접힌 선대로 조금씩 찢어져 있던 지도. 그 지도는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 내장된 이후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지금, 스마트폰으로 내가 원하는 내비게이션 앱을 자동차와 연결해 사용하고 간편하게 업데이트도 가능하다.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걷다 길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켠다. 목적지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고 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표시해준다. 하지만 쇼핑몰이나 박물관처럼 커다란 실내 공간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속수무책으로 같은 자리를 빙빙 돌 수밖에 없다. 똑같은 자리를 세 번째 돌았을 때! 우리는 간절히 생각한다. 더 똑똑한 내비게이션이 필요하다고
Q. 어떤 일을 하세요?
A. 저는 네이버랩스의 AR(Augmented Reality)팀에서 기획과 콘텐츠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Q. AR이라면 증강현실인데, 처음 들었을 때는 ‘포켓몬 고(Pokémon GO)’ 가 생각났어요. 네이버랩스에서 다루는 AR은 어떤 건가요?
A.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복제한 디지털 트윈 데이터와 AR기술로 실제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AR 내비게이션을 개발하고 있어요. AR팀에서는 현실에 재미를 더해주는 일이라기보다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고민해요. 내비게이션, 즉 길을 찾는다는 건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 문제이고 낯선 곳에서의 길 찾기가 2D 방식의 지도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점이 있어요.
특히 실내에서는 지도에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도 눈앞에 있는 실제 환경과 추상화된 지도 속 그림을 매치하기 힘든 경우가 많거든요. 실제 환경과 정밀하게 연결되는 AR 내비게이션으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Q. 가장 먼저 갔던 장소는 어디예요? 왠지 굉장히 복잡한 곳이었을 것 같은데요.
A. 맞아요. 내비게이션이 필요한 장소여야 하잖아요. 낯설고 헷갈리는 공간을 우선적으로 찾았어요. 그곳이 바로 서울의 삼성역과 연결된 컨벤션센터인 코엑스(Coex)예요. 코엑스는 리모델링 이후 사람들이 길을 많이 헤매는 곳이 됐잖아요. 던전 같다, 미로 같다는 말까지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코엑스를 첫 번째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와, 저도 코엑스에서 진짜 여러 번 길을 잃었어요. 실내 AR 내비게이션은 복잡한 구조의 실내를 지도로 구현해내는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유진 님도 길을 많이 잃어버렸을 것 같아요.
A. 저보다 실내 매핑로봇이 가장 먼저 가서 그곳에 있는 지형지물의 위치나 간판 같은 정보들을 수집해 와요. 코엑스는 네어비랩스의 매핑로봇 초기 버전인 M1이 했고, 지금은 M2까지 나온 상태고요. 저는 실내 매핑로봇이 수집해 온 정보로 디지털 트윈 데이터를 구축하면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서비스 인터페이스를 담당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도 위에 여러 가지 인터페이스를 엮어서 사람들이 길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이죠.
Q. 어렵네요. 실내 공간에서 어떤 것들을 확인하고 구현해내는 건지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겠어요?
A. 예를 들면 사람들이 코엑스를 다니다가 어떤 지점에서 혼란스러워하는지, 어디를 찾아가려고 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특히 헷갈리는 곳은 어디인지를 살피는 거예요. 사람들의 주요 동선이나 많이 찾아가는 곳들도 파악하고요. 그런 지점들을 찾아서 사전 경로 시나리오를 정리하죠.
Q. 그렇군요. 이 일을 하시면서 정말 많이 걸어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A. 그렇죠. 일반적인 소프트웨어는 앉아서 테스트해볼 수가 있는데 제가 하는 일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고, 제대로 해결이 됐는지 확인하려면 다시 그 장소로 가서 경로를 테스트해야 하니까요. 똑같은 상황에서도 환경적인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여러 다른 현상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끊임없이 테스트해서 데이터를 쌓아두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걸을 수밖에 없는 거죠.
Q. 가장 많이 걸은 장소는 어디인가요?
A.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닐까 싶어요. 규모가 워낙 방대하니까요. 참, 판교 현대백화점은 하루에 세 번씩도 갔어요. 가까우니까 아침에 가서 테스트하고 다시 개발해서 점심에 가서 확인하고 다시 개발하고 저녁에 가서 확인하고 이렇게요.
Q. 네이버랩스 유튜브에서 ‘국립중앙박물관 AR 내비게이션 데모’ 영상을 봤는데 길을 안내해주는 내비모드, 3차원으로 유적지의 현장을 볼 수 있는 투어모드, 눈앞에 유물 이미지가 펼쳐지는 정보증강 같은 신기한 기능들이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박물관에 정말 유용한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A.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길의 끝에 결국 유물이 있을 거고 그 유물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를 보여주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유물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의 장점을 가장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싶었고요. AR만이 할 수 있는 임팩트 있는 정보전달을 하고 싶었죠.
예를 들면 앱을 켜서 카메라를 빗살무늬토기 앞에 대면 토기의 무늬들을 하나하나 다 보여주는 디지털 콘텐츠를 띄웠어요. 사용자 테스트 때 디지털 콘텐츠를 보고 난 사람들이 실제 빗살무늬토기의 무늬들을 하나씩 찾아보는 거예요. 가상의 디지털 콘텐츠가 단순히 소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것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한 거죠.
Q. 신기했던 게 화면에 뜨는 유물들이 정말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더라고요.
A. 공간과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조도도 계산하고 재질감도 확인하고 정확한 위치도 파악을 해야 해요. AR 단계만 해도 엄청나게 세분화된 파트들이 있어요.
Q. 실내 AR 내비게이션을 길 찾는 역할로만 생각했다가 국립중앙박물관 사례를 보니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확 와 닿더라고요. 적용되는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서 역할이 조금씩 달라지는 거네요?
A. 그렇죠. 장소마다 포인트들이 달라요. 길을 찾는다는 본연의 역할은 바뀌지 않지만 사람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동을 하는 거잖아요. 그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각 장소에 필요한 시나리오가 달라지는 거죠.
예를 들면 백화점 식품관이면 어떤 음식들이 있는지, 이 식당의 장점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쿠폰 같은 프로모션적인 시나리오가 필요하겠죠. 쿠폰북을 나눠주는 거랑 그 식당을 지나갈 때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눈앞에서 보여주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고요. 이걸 프론트 도어 프로모션(Front Door Promotion)이라고 하는데 여러 장소 중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거예요.
소비가 필요하지 않은 국립중앙박물관의 AR 콘텐츠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인 거고요
Q.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 내비게이션과 실내 AR 내비게이션과는 다른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실내를 구축하는 것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고 들었어요.
A. 지금 주제에서는 실외와 실내보다 차량과 도보의 구분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다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특징이 다른 거죠. 차량 내비게이션은 이동이 굉장히 빠르고 이동 범위도 넓어요. 정보 자체가 넓고 허용 범위도 커요.
반면에 도보 AR 내비게이션은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니까 정밀도가 높아야 해요. 차량으로 1m 오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도보에서 1m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정밀한 데이터를 더 정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어려움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또 이런 것들을 모두 3D로 정보를 구축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다고 할 수 있겠죠.
Q. 이렇게 수많은 기술의 과정을 거치는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일을 하면서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A. 길을 잃었다는 건 두 가지잖아요. 목표가 있는데 어떻게 가야 될지를 모르는 것 혹은 목표 자체가 없어지는 것. 목표가 있는데 길을 잃으면 그건 뭐랄까 저에게는 도전이에요. 그때는 최선을 다해서 그 방법을 찾는 것 같아요.
목표가 명확하면 멀리 돌아가든 더 빠른 길을 가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쨌든 갈 수 있는 방향을 찾아서 가면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거든요. 꼭 내가 생각했던 길로 가지 않아도 다른 길로 가면서 더 많은 걸 배우게 되기도 해요. 사실 저희 프로젝트도 그런 과정들이 있었고요.
AR이라는 걸 하겠다고 시작했지만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서 다른 길로 많이 돌아갔던 적들도 있어요. 어디로 가도 내가 맞는지 틀리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어요. 때로는 멈춰서야 할 때도 있고 거꾸로 가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제일 힘들었던 때는 수많은 동료와 정말 열심히 함께 달려왔는데 맞다고 생각해 온 목표가 틀렸을 때, 뒤돌아서면 그 동료들이 있잖아요. 그때 제일 힘들었어요. 그 과정들에서 배운 것들이 지금은 좋은 밑거름이 되었지만요.
Q. AR에 빠질 수 없는 기술인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 궁금해요. 이 기술은 디지털 세계와 현실을 겹치는 작업 같아요.
A.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를 그대로 옮겨 디지털 세계에 반영하는 게 목표예요. 디지털 트윈 데이터 자체가 현실을 정교하게 반영해야, AR 내비게이션과 같이 디지털 트윈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와 기술들도 좋은 성능을 낼 수 있고요. 문제는 현실이 계속해서 바뀐다는 점이죠. 그래서 한번 만들면 끝나는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에요. 작년의 강남역과 오늘의 강남역이 다른 것처럼요. 끝없이 업데이트를 해야 해요.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면 우리가 있는 이 방도 조금 전까지는 비어있었잖아요. 우리가 들어옴으로써 바뀐 거죠. 이런 실시간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것도 연구하고 있어요. 기술을 이용해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빠르게 업데이트하는 것이 저희의 연구주제 중 하나예요.�
Q. 하루 종일 AR을 보고 있으면 현실에서 착각하는 순간도 있지 않나요?
A. 국립중앙박물관의 각 부분에 유물 콘텐츠를 띄운 것처럼 저는 기본적으로 어떤 공간을 보면 어떤 콘텐츠가 어울릴까를 고민하게 돼요. 빈 공간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띄워봐요. 그런데 남들이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죠.
Q. 실내 AR 내비게이션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쓰이기를 바라시나요?
A. 그냥 필요한 거 아니고 꼭 필요한 거였으면 좋겠어요. AR의 가장 어려운 점은 앱을 설치하고 핸드폰 카메라를 들게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핸드폰은 AR 보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잖아요. 핸드폰 화면을 얼굴 앞에 계속 들고 다니면 팔 아프고 무거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볼만하다는 가치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스스로 회의감이 있었어요. 누가 이걸 이렇게 들고 세워서 볼까, AR 안경 같은 새로운 장치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에 저도 일정 부분 수긍했고요.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디지털 박물관 체험을 진행했었거든요. 그때 조그만 어린이들이 무거운 핸드폰을 내려놓지도 않고 집중해서 보는 거예요. 화면을 보며 만지고 싶어하기도 하고 비가 오는 설정에서는 실제로 머리를 가리기도 하고요. 그걸 보면서 명확한 이유만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겠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어려워할 것이라는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기획자가 내 기획에 너무 빠져들면 안 되니까요. 사용하지 않는 게 기본인 거예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제 역할이고요.
Q. 네이버랩스에서 연구하고 시도하는 것들은 굉장히 미래적인 기술인데요. 기술 사용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분명히 있잖아요.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사실 초기에는 그런 부분들까지 고민하지 못했어요. 일단 기술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이랑 직접 만나보니까 문제들이 튀어나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나이드신 분들은 일단 읽기가 힘들다, 잘 안 보인다, 터치가 안 된다고 말하세요. 기술 사용이 어려운 분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가면서 보완해나가고 있어요.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접근하는 것도 연구하고 있고요.
기술이라는 게 사람과 완전히 멀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기술을 위한 기술이 돼버리면 안 되니까요.
Q.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사람들이 산책하고 어딘가를 향해 걷는 시간이 현재라면 유진 님이 걷는 시간은 미래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진 님이 생각하시는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A. 제 일상생활에서 걷는다는 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목적일 거예요. 그런데 핸드폰을 들고 제 서비스를 사용하며 걷는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죠. 제가 하는 일의 시작이자 완성이에요. 때로 저는 AR 없이 그냥 카메라를 켜놓고 걷거든요. 여기에 뭐가 있어야 할까를 생각하며 제 아이디어와 기획의 시작점이 되는 거예요.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면 정말 훌륭한 개발자들과 디자이너들이 콘텐츠도 만들고 개발자들이 개발도 해주십니다. 그러면 저는 그 결과를 가지고 다시 한번 같은 길을 걸어요. 비어있던 공간이 채워진 길을요. 그러니까 저에게 걷는 건 제 일의 시작이자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일하게 허심탄회한 게이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료스케는 류타에 대해 말한다. “좋은데, 뭐랄까 아쉬워. 어떤 선을 넘지 않는 것 같아.”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하는 평가가 그러하듯, 이 말은 자기 자신에게 더 적절한 말이다.
탑 매거진 에디터로 명품을 두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또 한 사람은 피곤에 지쳐 낮과 밤으로 질나쁜 노동에 소모된다. 섹스하고, 생활비 주고, 고급 옷도 주고, 차도 사주고, 어머니의 병원도 함께 갔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주고 사랑을 산다는, 그 전제를 넘어 가지는 않았다. 기브&테이크 에고이스트적 최선은 늘 맑은 웃음을 웃는 류타가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 걸 구해내지 못한다.
그토록 사랑했다면, 그렇게 벼랑끝으로 내몰지 만들지 말았어야지. 10만엔은 제한하지 말았어야지. 밤에 일하러 나가게 하지 말았어야지. 그 드높은 펜트하우스에서 내려다보고 있지 만은 말았어야지. 남의 일은, 영화 속의 일은 이렇게나 쉽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질책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본다. “난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라는 고백처럼 정말로 사랑을 몰랐던 무지한 인간이 상실의 고통 끝에 너무 늦게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그 지점에서부터 료스케는 마치 거울 치료처럼 영화의 전반전을 거꾸로 하나씨 뒤집어간다. 높은 펜트하우스에서 내려와 허름한 바닥층에서 맞지 않는 목욕 가운을 받고, 맛있는 커피와 비싼 술 대신 류타의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이런 데칼코마니 같은 설정들 속에서 그는 비로소 에고이스트의 프레임 밖으로 걸어나와 한 인간의 손을 같은 공간 속에서 맞잡을 수 있게 된다. 타인을 구하려 했는데 결국 나를 구한 거였다는 그런 설정.
사랑을 잃고 나서야 모든 걸 다 내어주는 법을 배워가는 남자.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을 잃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애초에 잃을 거리가 없는 게 더 어울리는 남자였는데, 삶은 그에게 진짜를 발견하는 저주일지 축복일지 모를 것을 내렸다. Discover…이 앞에 여전히 마음이 무너진다.
그 둘이 둘 다 남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굉장히 수위가 높은데, 그런 장면들이 없었다면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실감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특히, 주인공 료스케 맡은 배우의 연기가 대단하다. 가끔씩 그들의 표정을 알 수 없어 잠깐씩 영화를 멈추고 머리로 생각해 봤지만, 역시 알 수 없었다.
대신, 류타의 방에서 자게 된 료스케가 발견한 트레이닝 결과지를 보고 아주 직관적으로 눈물이 터져 버렸다. 지옥 속에서도 놓지 않은 그 일상적 성실함. 매일매일 그 대단치도 않은, 아무도 신경쓰지도 않는 일을 열심히 반복하는 사람들. 같은 이유로 월E를 사랑했다.
그팩 입주 완료 기념 강연. 지휘자/오케스트라가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 가는 3일간의 과정이 제품/기술 개발과 어찌나 유사한 지.
가볍게 핵심만 메모하려했지만, 모든 단어, 문장이 다 핵심이었다….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스러웠던 강연…
좀 길지만 나 자신을 위해 남겨 보는 장한나 지휘자 강연 요약.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소리를 만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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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지휘자의 역할이란?
가장 훌륭한 연주를 연주가가 가장 쉽게 연주할 수 있게 하는 사람
– 가장 훌륭한 연주란? 악보가 완전하게 해석되어 있는 상태
– 악보에 남긴 작곡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오케스트라에게 그런 확신에 찬 말을 하게 되기까지 지휘자 혼자 엄청난 고민한다.
– 전체 악기의 악보가 종합된 총보를 보다보면 눈이 아프고 멀미가 날 정도지만, 그 모든 음을 다 세세히 알때까지 연구하고 보고 또 봅니다. 모든 음을 다 소화하고 나면 그 음이 왜 있는지, 그 음과 옆 음의 관계…음표 속의 음악이 서서히 드러남.
– 작곡가는 왜 이 음악을 썼을까? 여러 개의 가능성이 있는 것 같지만 이 음악은 꼭, 반드시 이렇게 연주해야만 해!라는 하나의 길이 나온다.
–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면 동상이 나온다고 했던 것처럼,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면 지휘자는 완전한 자기의 해석을 가지게 된다.
– 바로 이 완성된 해석 = 훌륭한 연주
– 여기저기 개개인의 흩어져 있는 소리를 바로 이 하나의 통일된 비전과 목표, 하나의 해석으로 포커스 되도록 해 주는 사람이 바로 지휘자.
– 그리고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2~3일의 짧은 연습기간동안 연주를 완성해야 함.
–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첫 리허설을 하기 전 분명한 해석이 마음 속에 있지만, 단정지을 수 없다. 단원을 모두 다 컨트롤할 수 없어. 지휘자가 지휘하는 건 악기가 아니라 100명의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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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 간보기, 쐐기, 비전&목표제시
– 첫 리허설 = 간 보는 날
– 첫 만남에서 지휘자는 ‘쐐기’를 박아야 함. 이 지휘자의 비전이 좋다. 동참하고 싶다. 함께 이루어보자는 확신을 줘야 함.
– 이 과정은 5분 안에 정리가 됨. 지휘자는 너무나도 확신에 찬 지휘를 보여줘서 단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함. 그래야 그 비전에 도달하는 연주를 3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음
– 반면, 단원들은 지휘자의 지휘 스타일을 파악해야 함. 그래서 틈도 좀 준다. 오케스트라 역시 자기를 보여주고 싶어하므로.
– 이것은 아마추어가 아닌 매주, 매달 정기 연주하는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만남. 즉, 프로들의 만남이다.
– 그래서 아침에 리허설 하고 연주할 레퍼토리 중 가장 긴 곡(교향곡 등)을 연주함. 실수가 있어도 멈추지 않고 쭉 연주함.
– 그 과정에서 함께 하고 싶은 비전을 보여줌. 아 이번 주 이 지휘자가 연주에 원하는 수준은 이런 거구나. 지난 주와는 이렇게 다르구나 적응할 시간을 줌. 단원의 성향도 파악
– 나의 지휘에 바로바로 민첩하게 반응 못하네. 내 지휘는 작아지는데 소리는 안 작아지네. 저 단원은 느려지네. 나를 보며 웃으면서 열린 마음으로 연주하네 등등. 이 과정에서 이번 주에는 어떤 식으로 리딩해야 하나를 파악함
– 어떤 단원들은 지휘자의 첫 만남에서 일부러 살짝 실수를 함. 들었나? 틀린 줄 아나? 분간을 할 수 있나. 들었으면 어떻게 지적을 하나? 멈추고 화를 내나?
– 그러면 저는 그 단원을 보고 활짝 웃고 아이컨택을 합니다. 그러면 그는 암. 나도 프로고 그도 프로니…아~내가 일부러 틀린 걸 아네. 콕 찔림이 가볍게 지나가면서 서로를 인정하고 관계가 좋아짐.
– 100명의 단원은 모두 다 다름. 일부러 틀리기도 하지만, 악보에 미스프린트가 있어서 틀리는 사람, 틀린 줄도 모르고 틀리는 사람…다양함.
– 가볍게 아이컨택하고 고쳐지지 않는 실수는 첫 순간에, 그 실수를 인식한 *즉시* 잡아야 함.
– 어떤 단원은 못알아듣는 척, 혹은 진짜 못 알아들음. 하지만 어떤 경우든 며칠 후가 아니라 바로 그 즉시 고쳐야 함.
– 악보가 있기 때문에. 얼마나 악보에 충실한 연주를 하느냐. 악보에 근거해 바로바로 고쳐야 함. 얼마나 쉽게 고치느냐도 기싸움의 연장전.
– 첫 날이 지나면 이런 문제는 없어짐. 신뢰가 쌓였기 때문에.
– 이렇게 90분하고 나면 브레이크 타임을 가짐. 그 시간동안 오케스트라의 특징, 소리의 색, 다양성이 더 많으면 좋겠다 등. 오케스트라의 특성과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남은 리허설을 어떻게 진행할 지 좀 더 자세한 플랜을 세움
– 첫 5분만에 나를 믿어, 내가 확실한 해석을 가지고 왔어. 라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팀 스피릿이 생겨. 첫 날에 가장 길고 어려운 악장을 연습함. 연주날이 가까워질 수록 변수가 있으면 안됨. 가장 어려운 것 부터 극복을 해야 함.
– 첫날에 가장 신기한 점은 쭉 연주하며 제 해석을 소개하는데. 서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제가 전하는 해석은 오케스트라에 진한 인상을 남김. 빈 백지에 챠콜로 그림을 그리듯이.
– 그래서 다음 연습 때는 바꾸기가 무척 힘듬. 그만큼 확신이 있는, 준비된 해석을 가지고 오케스트라를 만나야 함. 그 비전에 흔들림이 없어야 모든 멤버들이 그 길로 직진함.
– 가다가 바꾸면 프로페셔널 아님. 그러기 위해서는 악보를 완전히 알고 그 해석에 깊이가 있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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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 본격적으로 다듬고 연주를 완성하는 날
–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 지나갔음. 이제는 음 하나하나 다듬고 하나의 소리를 찾아가는 길.
– 이 음이 작곡가가 표현한 의도를 담고 있는지. 감정전달의 수단을 확실히 하고 있는지. 의미있는 소리인지. 듣는 사람 귀를 통해 마음을 떨리게 하는 음인지…
– 반복적으로 연습을 시작합니다. 음정 틀려~ 맞게 합시다. 음과 음의 연결이 더 매끄러워야 해. 혼 소리 너무 커~ 지금은 현이 중요해. 요구할 사항은 무척 많습니다.
– 이 요구사항들을 통해 내 비전과 내 귀에 들리는 현실의 소리를 점점점 간격을 줄여나가는 것이 제가 할 일. 설득하고 연습시키고 또 다시, 또 다시 요구하는 것이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
– 여러가지 방법으로 단원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해. 말로, 표정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지휘의 제스처로 …도움을 주기 위해 말을 해.
– 다시 연습할 때는 디테일하게 말하는 것이 정말 중요. 아주 초디테일한 인스트럭션을 줘서 바꿀 수 있도록 명쾌한 리더쉽을 발휘해야 함
– 과학만이 아닌 예술이기에 소리에 더 감정을 싣는 작업도 해야 해. 그럴 때는 다른 표현이 필요함.
– ‘작게’ 보다는 새벽에 안개가 쫙 꼈어. ‘짧게’ 보다는 별빛이 반짝반짝 톡톡 튀네. 비와서 덤벙덤벙 진흙탕 속을 거니는거니? 발레리나 처럼 가볍게 뛰어봐~
– 그것이 예술가의 소리…안개를 생각하면서 내는 소리, 마음속으로 그 풍경을 상상하며 내는 소리는 ‘그냥 작게’ 내는 소리와는 달라.
–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지는 단원마다 다 달라. 개개인이 매일 수 시간씩 자기 악기 연주하면서 어릴 때부터 실력을 다듬어 왔음. 각자 교육환경도 다르고, 악기마다 소리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라. 바이로린과..
– 좋아하는 지휘자의 리더쉽과 스타일도 모두 달라. 그렇기 때문에 개인 파트만 연습하고 전체 해석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아. 나름 이 연주를 해봤기 때문에 이 곡에 대한 생각과 고집이 있어.
– 지난 번엔 굳이 이 새벽별같은 소리 안했는데. 그냥 하던대로 해도 괜찮았는데. 뭐지? 이런 생각들도 있어.
– 그럴 때 이 소리가 너무너무 필요한 소리, 이 악보, 이 작곡가의 의도가 장조에서 단조로 넘어가기 때문에 필요하다…등 악보를 토대로 모든 설명을 합니다.
– 가장 중요한 무기는 악보와 작곡가. 그렇기 때문에 악보를 잘 아는게 너무 중요합니다. 바이올린 1파트의 악보를 바이올린 1파트 연주자보다 더 잘아야 해. 첫번째 스타카토 더 짧게 하자. 왜? 두번째 부분은 스타카토 없지? 찾아보면 진짜 없어. 그 정도로 악보를 잘 알고 있어야 함.
– 이 음악이 왜 그리 좋은지. 이 부분 좀 봐봐. 화음 이렇게 썼어. 너무 환상적이지 않아? 이런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그 소절에 지휘자의 말이 생각나고 특별한 의미가 생겨서. 소리가 달라짐.
– 지휘자로서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음까지 모든 소절을 이런 추억으로 가득 찬, 단원들이 스스로 감동하면서 만드는 소리여야 함. 그것이 청중에게도 감동을 줘.
– 청중은 전체를 듣지만, 오케스트라는 옆 사람, 두 줄 뒤에 있는 사람 소리는 안들려. 옆사람과 맞는 지도 들을 수가 없고 퍼스펙티브가 없어서 알 수가 없어.
– 지휘자는 모든 개별 소리 뿐만 아니라 모든 어우러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이것을 하나의 소리로 만들어가는 일.
– 아울러 육체적인 귀로 듣는 소리의 발란스 뿐만 아니라 단원들의 마음으로 내는 소리가 진짜 소리라고 생각함. 사람이 하는 음악이므로…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수 천만 가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소리. 사람, 사람의 숨결, 손맛, 호흡, 성격, 영혼이 들어간 소리…
–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소리를 얻어낼까? 2007년부터 지휘했지만, 방법은 하나. 저의 진심을 다해서, 저의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어.
– 왜 음악이 이렇게 좋은지, 모든 열정 지혜, 유머, 지식을 다 동원해서 오케스트라와 나눔. 내가 열심히 하면 오케스트라도 열심히 해. 나의 모든 열정과 최선을 다함.
– ‘진정성’이야말로 지휘자의 리더쉽에 있어 파운데이션.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원하고, 음악을 사랑해서 나오는 그 마음이 바로 카리스마라고 생각함.
– 카리스마는 나도 모르는 힘이 나오는 것. 분명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 100명의 개인을 하나의 비전을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힘. 진정성. 음악에 대한 진정한 열정과 사랑이라고 믿고 해오고 있음.
– 단원들이 지치지 않도록 그 발란스도 유지해 나감. 지휘자는 선생님 아님, 우리는 함께 음악 연주는 동등한 파트너. 100:1이 이나리고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하나의 마인드가 되어야 함. 반복적으로 기계적을 시키는 게 아니라 음악 안에 신뢰가 쌓이면서 해나가는 게 중요.
– 지휘자는 가장 훌륭한 연주를 가장 쉽게 하는 facilitator이지 control 하는 사람이 아님.
– 모순이 많은 역할. 분명히 제시하고 가르치고 연습시키고 리딩하는 컨트롤에 가깝지만 자유도 줘야 함. 너의 휴먼 터치, 너의 자유, 콘트롤과 프리덤을 교묘하게 오가며. 미세하게 조절. 정답은 없다.
– 지금 우리가 연주를 하고 있어요. 오보에의 솔로가 있어. 조금 더 자유를 줘보다고 줬는데 무너져. 박자감도 없고 느려지고. 그러면 바로 컨트롤해야 돼. 조금 자유를 줬는데 너무 환상적이야…그러면서 손잡고 같이 가요. 너무 행복해.
– 치열하게 연습해서 끝장을 보고 맥시멈 포인트까지 완성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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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 쌓인 신뢰를 컨펌하는 날.
– 첫 날 교향곡을 했다면 이 날은 인터미션, 서곡, 협주곡 등을 연습함.
– 협연자와 쉬는 시간에 간단한 미팅하고 특별히 원하는 것 있어? 유별나게 하는 부분?
협업자와 함께 연주를 함. 음악적 대화하며 오케스트라와 협연자의 해석을 하나로 만듬.
– 교향곡을 다 연습하지는 않아. 이미 충분히 다 했기 때문에.
– 불필요한 부분은 건너 뛰고 필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결정을 반드시 해야 함. 잘하는 거 반복하는 건 좋지 않음
– 꼭 필요한 연습만 하면 뭐가 좋냐. 단원들이 좋아하죠. 어 아네. 우리가 필요한 부분만 시키네, 그래, 해 줄께.
– 무게있으면서도 유연한 소리. 깊이 있으면서도 투명한 소리가 필요해. 강이 깊으면 안보이는데, 너무너무 깨끗한 생수가 깊어. 무거운데 뭔가가 되게 플렉서블해. 그러면 이런걸 끝까지 말해줘요. 좀 더 노스탤지아가 있고, 좀더 인템포로 해줘, 말해주면…아무 생각 없이 내는 소리와 너무 달라.
– 내 생각 100프로, 내 소리에 대한 비전과 아이디를 공유하고 소리를 내는 순간 완전히 다른 소리 another world.
– 그래도 한 번 더 해봐야겠다는 부분만 연습을 해.
– 맘 먹은 거 다 하고 15분 남았어. 그러면 연습을 끝냅니다. 굳이 시간 맞추지 않아. 단원들이 좋아해. 아, 지휘자가 우리를 믿는 구나. 우리의 수고를 아는 구나. 지휘자와 자신들 사이의 두터운 파트너쉽, 말할 수 없는 느낌을 컨펌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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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 연주>
– DAY 1 – 지휘자의 존재감을 오케스트라에 심어주고 나 또한 그들을 알고.
– DAY 2 – 치열하게 노력하며 완성
– DAY 3- 함께 한 노력을 토대로 서로 믿고 신뢰하고 궁극적으로 인조이 하자. 함께 아름다운 음악 만들기에 너무 좋음
– 리허설 – 아침에는 가볍게만 연주함. 저녁에 해야 하기 때문에 지치는 걸 원하지 않아.
– 단원이 요구할 때, 자발적인 연주를 오케스트라가 할 수록, 지휘자는 쉬워져.
– 처음에는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뒤로 갈수록 오케스트라 스스로가 해석을 책임지는 분량이 커지는 것이 성공적인 파트너쉽.
– 연주 – 우주선이 뜨는 것. 청중이 있고 모든 세부적인 노력이 하나로 붐~ 모이는 신나는 일. 우리가 음악을 사랑한 이유, 작곡가가 이 곡을 작곡한 이유 그 감동을 전해 주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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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 음악은 유일하게 매 번 재창조를 해야 하는 예술. 미술, 문학 등은 언제든지 예술가가 만든 그대로 보고 이해할 수 있어.
– 음악은 달라. 베토벤 5번 교향곡. 종이에 있는 음표를 소리로 재창조해서 청중에게 들려줘야 함. 그래서 지휘자의 이 짧은 시간동안 매우 명쾌하고 효과적인 리더쉽이 중요합니다.
– 이러한 장한나의 파운데이션을 acronym(두문자)로 표현해 보면, 바로 VISA.
1. Vision
– 모든 리더쉽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비전 없이는 리더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누가 리더에게 이래라 저래라 해. 그걸 정하는 사람이 리더고 지휘자.
– 해석을 비전으로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연주. 이 수준은 지휘자가 스스로에게 주는 도전.
– 정말 끝없이, 정말 깊게, 한없이 높게 갈 수 있기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만큼 할 수 있어.
– 모든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력할 만한 무게감있는 가치있는 해석. 비전은 온전히 내것. 지휘자가 노력하고 애써서 만든 비전이 지휘자를 리더로 만들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능력이자 책임 그리고 에셋(자산)
–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현실화 하겠다는 뚜렷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해. 이거 어떻게 할 수 있지? 왜 중요하지? 바로 이것이 리더를 움직이는 원동력.
2. Inspiration
– 비전과 나란히 있어야 함. 지휘자의 비전은 음악. 작곡가, 악보에서 영감을 받아야돼. 지휘자가 감동을 못 느끼는 데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 타고난 음악성, 재능이 필요한 부분.
– 나는 이 일이 너무 좋아서. 이 음악을 할 때 너무 행복해서. 이런 지휘자가 스스로 인스파이어드 되어 있으면 단원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어. 서로 영감를 나누고, 왜 이 연주가 중요한지 해석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청중들에게 중요한지.
– 음악 안에 살아나서 감동을 주고. 왜 연주가 왜 특별한지 마음을 공유할 때 차원이 다른 연주가 태어남. 100명이 한 마음이 됐어.
– 그 묶어주는 띠의 이름이 영감. 필수조건.
3. Service
– 섬기는 것.
–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왜 이렇게 모여서 노력해. 음악을 위해서. 청중들은 음악을 들으러옴. 작곡가를 섬겨야 함. 악보를 해석하는 사람은 원본이 충실해야 함. 작곡가와 음악, 오케스트라를 섬겨야 함.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연주 단체를 섬겨야 함.
– 가장 훌륭한 연주를 가장 쉽게 해주는 사람. 오케스트라가 필요로 하는 연습을 하고 지휘를 하는 사람. 안아주는 동그라미. 허그같은 것. 필요하면 앞으로 이끌고. 내가 진행할게 이건 절대 안됨.
– 섬기는 마음
4. Achievement
– 열심히 연구하고 협업해서 하고자하는 음악을 이뤄냈어. 청중들에게 감동을 줬어.
– 베토벤은 200년 전 9번 합창을 작곡했을 때 인류에게 사랑과 평화를 메시지 주기 위해 썼어. 우리는 베토벤의 숨결이 들어간 악보를 토대로 연주하고, 우리 모두가 베토벤의 음악에 열광해. 오늘 이뤘어.
– 궁극적으로 음악이 있는 이유를 어치브(achieve)한 것. 50년 100년 후에도 또 이뤄낼 거예요. 300년 후에도 또 누군가는 베토벤을 연주할거야.
– 이렇게 클래식의 생명력이 연장됨. 매일 매일 기쁘게 이 연장선 속에 있는 것으로 기쁘게 가고 있는 장한나 였습니다.
장한나 지휘자의 총보는 예전에 뵈었던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 교정본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마지막 도쿄도 출장. 5년 만에 다시 온 도쿄도 출장. 없는 기술 가지고 사기치러 왔었는데, 하필 거기서 절대 보스가 회사를 그만둔단 소식을 듣고 눈 앞이 새하애져서, 신주쿠 선술집에서 밤새 술을 먹었다. 멘탈이 아작 난 채로….
다음 날 반다이 들어가서 PT하는데, 어짜피 먹힐 사기도 아니었지만 준비도 해갔던 매우 쉬운 영어 단어들 조차 생각이 안 나더서 어버버 어버버….일본 출장씩이나 와서 그딴 식으로 말아먹었는데도 하나도 슬프지가 않았다. 뭣이 중하냐….인천공항으로 와서 헤어질 때 그 무겁던 표정과 공기…그건 매우 적절한 반응이자 본능적 직감이었다. 그 후에 일어날 일들에 걸맞는.
그리고 다시, 글로벌 탑클 기술과 진짜 경험을 들고 도쿄로 왔다. 도장을 깰 수록 더더욱 설레이는 일정과 미션들. 마지막 밤, 동료들과 로컬 선술집을 돌며 입에서 녹아내리는 안주들에 나마비루와 니혼슈, 쇼주를 돌아가며 쏟아붓는다. 우리는 다 할 수 있다….이미 해 왔다…이번에도 해보자.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토록 절대자?였던 그 분이 이제 내 인생에서 1도 중요하지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만감이 교차한다. 다시 여기 오기까지 5년,,,죽어라 걸어왔다…….
Tokyo 2024.2
Tokyo 2018.12
LINE JAPAN, LINE GAMES, TAITO, BANDAI, RAKUTEN까지,,,
돌아보니 미팅 리스트 엄청났네. 대체 뭔 생각으로 만난겨 ㅎㅎㅎ
잔잔한 일본 가족 영화라는 둥…
가족끼리 보면 좋을 영화라는 둥….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영화 포스터…
완전히 속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의 섬뜩함에 속이 미식거렸다. 같은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대런 애로노브스키 <레퀴엠>을 봤을 때와 비슷한 신체 반응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닿지 않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
아무리 애써도 이해될 수 없는 나
죽음이라는 형태로 최종 봉인되는 인간의 심연
지금 내 속에 존재하는
내가 지니고 있으며
아직도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에 닥칠 운명이란…그런 것이다…
이 잔인한 선언이 어린 날 여름 방학 풍경처럼 아름답게 그려졌다. 따뜻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 표정 그대로 등에 칼을 꼽는다. 칼을 맞고 나서야 드디어 정신이 차려 진다. 그래 이렇게 될거야. 다른 길은 없어,,,
## 킬링디어
넷플릭스로 보다가 몇 번을 멈췄다. 역시 사전 정보없이 봤고 흥미진진한 범죄 추리극이라고 예상했는데, 결과는 내 인생 최대의 기분 나쁜 영화.
극광각의 프레임 속에 생체실험실의 생쥐처럼 놓여진 존재들, 괴상한 시점숏들, 기분이란걸 긁어내리는 듯한 엇박자의 사운드들ㅣㅣㅣ ㅠㅠㅠ
세상의 모든 시청각적 기분나쁨을 쪽집게처럼 뽑아내서 똘똘 뭉쳐놓은 영화,,,하지만 제일 기분 나쁜 건 그 실험 상황들!!! 그 중에서도 진실로 기분이가 나쁜 장면은,,,자식이란 존재를 두고, (자기 살려달라고) 실실대며 남편 유혹하는 니콜 키드먼.
인간 관계의 정점으로 꼽히는 엄마와 자식. 엄마로서 지니는 본능적 모성. 모성의 부정, 모성의 재해석, 모성의 한계 등등을 다룬 영화는 많다.
하지만, 생존 본능이 모성의 절대성을 가볍게 짓밟아 버리는 순간의 목격은 진실로 구역질났다. 마지막 랜덤 초이스까지도….ㅠㅠㅠ 인간의 가치를 산산히 부숴버린다. 절대 왕권의 붕괴를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나 어떤 상황이 되면 인간에게 남는 건 살려는 발버둥뿐이다. 그러니까 뭔가 가치를 지닌 척 계속 해 봤자 그건 껍데기일 뿐이야. 그 껍데기는 이렇게나 한심한거야.
왜 이렇게까지 부정해야 하는걸가. 무엇을 위하여,,,감독에게 따지고 싶었다. 이래서 얻는 게 뭐냐고. 우리 다 그냥 정글에서 동물로 살까??? 응????
요르고스 란티모스!!!
이제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보는 영화가 많은데 절대 잊혀지지 않을 존재감으로 각인된 이 감독. 너무 황당해서 인터뷰 찾아봤는데 역시나 너무나 평범하고 온화하게 조근조근,,, 괴상한 똘아이 아니었음 ㅠㅠ 아 놔
그런데 왜 이 감독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있는 걸까. 역겨움의 밑바닥에 변태적 쾌감은 무엇일까? 정글 속 동물로 사는 것이 사실 이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일깨워줬기 때문일까. 지구상 인간들이 정성과 지성을 다 합쳐서 영차영차 덮고 있는, 절대 봉인의 뚜껑 속 진실을 한 감독이 영화란 힘으로 까발려줘서?
난 물론 다시 덮고 살아가겠지만은, 그 껍질을 열고 봤던 순간들을 잊지못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그의 다른 영화들을 통해 잠시나마 그 속을 다시 열어 보고 싶은 것이다. 문명이니 사회니 하는 것들 밑바닥의 인간의 본성을….
아뭏튼 두 개의 굉장한 영화로 혼이 났다. 간만에 이렇게 주절거릴 만큼,,,혼나느라 힘들었으니 이제 바차타를 들어야겠다….내 꿀. 내 마약.
입장은 나의 삶에서 다져온 철학이라는 알고리즘에 개별 사건이 인풋으로 들어가 나온 아웃풋이다.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이라는 말처럼 데이터가 왜곡되거나 부실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고, 아무리 좋은 데이터가 들어가도 처리가 부실하면 결과는 취약하다.
그런 입장은 힘을 가질 수 없어서, 타인을 설득하긴 커녕 나 하나를 지키기도 힘들다.
좋은 알고리즘이란 결국 그 사람의 삶의 경험의 총체를 학습한 결과가 정제된 수식이고, 최신의 데이터가 더해진 새로운 학습을 통해 엔진의 최신성을 유지보수하지 않으면 그 엔진은 금방 낡은 것이 된다.
문제는, 인생의 오랜 시간에 걸쳐 뽑아낸 엑기스 알고리즘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검증된 알고리즘은 패턴화되어 어떤 데이터를 넣어도 단순한 결과를 밷어낸다. 예측 가능한 엔진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옳아, 이것은 옳아. 어떤 상황에서도 난 피해보지 않을거야. 나는 그것을 이미 내 삶으로 검증했어. 라는 식의 알고리즘은 구체적 사안의 개별적 인사이트를 압도한다.
한편, 너무나 압도적인 이벤트는 그 알고리즘 자체를 보정하기도 한다. 사건의 개별성이 기존 알고리즘의 로직을 무너뜨린다.
이런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상호보완적 충돌속에서 우리는 각자 어떤 입장의 지점에 도착한다. 그 입장의 클러스터들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갈 곳을 정하고 다른 클러스터와 구분된다.
나의 혼란, 나의 입장
피해와 가해가 옳고 그름과 곧바로 정렬되지 않아 오는 혼란. 그 속에서 입장을 가질 수 없었다. 엔진이 고장났고 데이터 접근은 한계가 명확했다. 사건의 현장에서 이리저리 튄 파편들을 크롤해 거대한 심연같은 블랙박스 안으로 들어가려 애쓴다. 그걸 넘어야 저 사건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블랙박스 안은 블랙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데이터가 너무 많았다. 시간과 관계 속에서 쌓인 여러 데이터들이 각자의 말을 쏟아냈다. 놀랍게도 그 모든 데이터 포인트들이 오늘의 이 사건과 연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지독한 소음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짧은 선으로는 연결되지 않는 사건의 흐름이 17년의 추세선으로 각이 잡힌다. 그게 유령의 선일까, 아니면 실제하는 것일까?
난 아무 것도 모르는데, 모든 것이 너무 명료하다. 어둠 속의 형체가 나에겐 또렷한 스케치처럼 선명해져 간다. 이것은 사실일까 뇌피셜일까. 아무 것도 모른다는 좌뇌무리와 다 알겠다는 우뇌무리가 맞붙어 머리 속은 전쟁통이다.
입장이 되기전 불분명하게 공기중을 떠다니는 먼지같은 입자들이 내 숨을 틀어막는다. 터지지 않는 울음과 울분의 감옥. 제발 이 모순을 잦아들게 할 새로운 현실이 찾아들길 기다리는 초조한 낮과 밤들.
지옥에서 벗어나기
어느 날 밤 나는 문득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선을 생각한다. 그들이 넘은 선과 선 넘은 그들을 단죄할 방법이 아니라 내가 넘지 말아야 할 나의 선을.
내 삶은 남의 일에 소모될 수 없다.
남의 일 같지 않지만 오늘의 나의 일은 아니다.
그리고 형식을 갖춘다. 고인을 보내는 내 방식의 제의. 고인을 추모하고, 고인의 빙의한 작은 굿 속에서 방언을 흉내낸다. 이게 효과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애초에 제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형식으로 구원받는 스킬
여기까지다. 뭔가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위안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복잡하고 자잘한 일들에 마음쓰지 않기로 한다. 어디로 가고 있었나? 거기로 가야 한다.
발생한 감정은 존재하는 것이고, 무시할 수 없다. 그 감정은 어디론가를 향한다. 그게 내 안으로 향하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형식이라는 매듭, 형식이라는 메시지로 외부에 발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