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Own Private LAOS

가슴은 터질 듯 하고
솟구쳐 오르는 말들은 무지 많으나…

일단 사진


MY OWN PRIVATE LAOS by CHOA Jung on Exposure

홍상수스러운 여름, 토요일 밤.

광화문 – 종3 – 인사동. 이 동네만 오면 종종 홍상수의 영화 한 장면같은 상황들이 연출된다. 2014년 8월 9일(토) 한 여름의 꿈같았던 저녁도 그러했다.

# 광화문

야만의 시대에 ‘당연’은 지난한 투쟁의 대상이 된다. 그동안 문명은 무엇을 쌓아왔던건가. 우리가 쌓아온 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다해도, 최소한의 당연은 공유해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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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 사람들이 저래야 해요? 선배는 무거운 얼굴로 광화문의 하늘을 올려다 본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는 귀척을 했고, 선배는 폼을 잡았다.

# 종3 횟집

아줌마가 연하 아저씨 홀리는 스킬이 정말 대단했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한 점 거침없고 명쾌한 대시였다. 명화 아래의 중년의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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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욱겨 죽겠단다… 이렇게라도 웃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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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웃음과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야외 테이블로 이동…
하자마자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남자 넷이 치렁치렁한 복장을 하고 마술처럼 등장해 기타 연주와 함께 떼창을 시작한다. 야외 테이블이 늘어선 허름한 종3 뒷골목을 알람브라 어디메쯤으로 돌연 변신시킨다. 음악의 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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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낙원상가 뒷골목이 황홀하게 물이 좋아서, 선배에게 내가 너무 강북을 무시했다며. 지나치게 강남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속죄한 순간 …패턴이 보이고, 패턴이 보이니 이유가 보인다. 태어나서 남자 쌍쌍이 지나가는 모습을 가장 많이 목격한 날~ 버스 몇 대에서 내린 분위기로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려간다. 스타일들은 죄다 청담동 코어 1%. 몸관리들도 어찌나 훌륭하신지 다들 봉긋봉긋. 안구 정화의 희열과 소수자(?!)의 비애가 교차했던 토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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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커피빈도 죄다 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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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귀퉁이엔 아직 내가 기억하는 낙원상가 뒷골목의 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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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인사동의 야심한 밤은 버스킹 아해들이 접수했다. 홍대에서나 보던 애들을 가게들이 문닫은 늦은 인사동 메인 스트릿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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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취기가 올라 맥주 한 잔을 더 하자던 선배는 길을 잃고 헤맨다. 골목 골목을 헤매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마치 동화처럼 술집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던 그룹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반갑게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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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에 대한 걱정과 무기력한 현 상황에 대한 북받침. 그래도 조크하고 웃고 진저엘을 마신다. 집회 복장으로 요넥스 배드민터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오신 분을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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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안해룡 감독님
부디 감독님의 벨이 큰 소리로 울리기를….두 번 울리기를. 우리 모두에게 들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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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광화문으로

다시 종로까지 걸어왔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 앞을 삼 천배 신도들의 검은 그림자가 줄지어 걷고 있었다. 맨 앞에 사람이 두드리는 목탁소리가 어둠에 잠긴 광화문 광장에 낭창하게 울려퍼졌다. “이건 정말 홍상수스러워요.”

선배는 유족들이 밤을 지새울 텐트로 넘어가고 난 세종로 주차장에 맡겨 놓았던 차를 몰고 그제서야 겨우 나의 밤 속으로 진입했다. 밤은 계속해서 깊어져만 갔다.

레퀴엠 포 어 꼬리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이규리 시인 < 특별한 일> 중에서 앞 부분

처음 차 안에서 신형철의 목소리로 이 시를 들었을 때, 가슴에 전압이 확 오르고 아주 잠깐이지만 숨이 멈추어졌어. 몇 번인가 다시 돌려들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감전의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어.

그러다 한참 지난 오늘 그 시를 다시 찾아 읽다가 갑자기 꽤 납득할 만한 이유가 떠올라서 이렇게 기록해 두려고 해.

아마 나도 그런 식의 최선을 했던 적이 있었
던가봐. 내 꼬리를 내가 자르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던 때가. 뛰기 시작하기 바로 전, 부디 출발을 포기할 만큼 정신을 잃은 건 아니기를 기도했던 것이 기억나. 참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지. 돌이켜보면 아찔했고, 결과적으론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생물학 교과서에 써 있는 것 처럼 잘려나간 꼬리가 다시 돋아나진 않았어. 잘라낸 부위에 아물어가긴 했지만, 새 꼬리가 나진 않았어. 꼬리 따위 없는 채로 살아가면 어때. 살았으면 됐지! 그렇게 안도의 숨을 쉬며 살아왔지.

그런데 그 날 시인이 알려 준거야. 근데 그 때 니 꼬리는 어땠는 지 아느냐고. 네가 뒤도 못 돌아보고, 아픈 줄도 모르고 그저 살기 위해 죽자고 도망가는 동안 꼬리는 발버둥 치며 이미 끝나버린 생의 마지막 투혼을 펼쳤노라고.

그러니, 최선을 다한 것은 살기 죽기로 달음질을 한 니가 아니라, 끝까지 꿈틀대며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 꼬리였다고. “힘들었나요? 하지만, 최선은 그런 게 아니예요.” 라고 시인이 정정해 준거야.

그 때 잘려나간 채로 나를 위해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던 꼬리는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았던 그 꼬리는
대체 무엇을 감당하고 있었던 걸까.

또 나는 무슨 작정으로 꼬리까지 단숨에 도려내고 그리 뒤도 안 돌아보고 내뺐던 것일까.

그리하여, 남은 몸은 떠나지 않는 애닲음을 짊어지고 가는 거구나. 이미 몸을 떠난 몸이 감당했던 생의 무게가 여전히 떠나지 않은 몸에 전이 중인 거로구나. 깊이가 재어지지 않는 우물같은 꼬리의 마음이.

생존의 본능이란 참 무자비한 것이다.
감전의 실체는 이 라쇼몽적 깨달음이었오.

꼬리여 꼬리여.
나에게 있었던, 나에게는 없을 꼬리여.

나는
기어이
그 강을
건넜습니다.

6월의 끝, 줄리언 반스

굶주린 상태가 되어 허겁지겁 줄리언 반스를 두 권 연거푸 읽어치웠다. 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세이라 분류될 수 있을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주린 배에 제대로 씹지도 않은 쌀밥을 우겨넣듯, 음미보다는 정신줄 놓은 폭식이었다. 예상치 못한 허기가 치솟아 의자에 박혀있는 쇠못이라도 뽑아 씹어먹을 지경이었다.

<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 내 말 좀 들어봐> 을 까마득히 오래 전에 책장에 꼽아놓고도, 결국 펼치지 못했던 줄리언 반스와 2014년 6월의 끝자락에 마침내 이렇게 급만남했다. 다 읽고 나서는 묘한 당혹감이 드리운다. 이런 날 책을 읽다니…이 좋은 날을. 놀러나 가지. 차라리 쌓인 일을 치우던가.

반스가 나빴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날이 너무 좋았다. 1년 중 해질 무렵이 이렇게까지 좋은 때는 얼마 되지 않는다. 누리지 않음이 무책임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날이었다. 그런데도 기아는 그 어떤 조건에서도 생존을 최우선한다. 정서의 기아도 마찬가지다.

줄리언 반스.

영국 소설이 썩 맞지 않는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시….부커상 수상에 대단한 반전 소설 베스트 셀러로 꼽히나보다. 그런데 나에겐 묘하게 코드가 맞지 않았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까지 왜 이리 저 멀리 에둘러야 하는 것인가. 나의 지적 능력도 심하게 의심받는 느낌이었다.

결정적으로 난 반전이라는 장치가 대체로 참 별로다. 한 방의 역전을 위한 기나긴 설정들? 왜??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거길래. 기억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뭐 그건 기본 상식 아니였어. 췟.

한편으론 번역체. 정서가 고팠던 나에게 이 번역체는 쥐약이었다. 아름답게 쓰여진 모국어가 그리워졌다. 번역 작가는 자기가 무슨 말을 옮기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했던걸까.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책을 펼치고 첫 장부터 이건 완전한 사기라고 생각했다. 저 제목말이다. 기구 매니아들의 무용담을 펼쳐놓는 도입부에선 사랑은 커녕 사랑의 냄새도 맡을 수가 없다. 원제는 Levels of LIfe. 그것 또한 모르겠다.

책을 던져버릴까 계속 읽을까 무지 고심하며 꾸역꾸역 책장을 넘겨갔는데.

100페이지쯤…제 3부 부터, 내가 읽고 싶었던 바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 난 이게 읽고 싶었다. 근데, 이 책 돈 주고 사서 읽은 사람들은 다 이거 읽고 싶었던 거 아니겠음??? 아내를 잃은 줄리언 반스의 비통한 고백.

이건 마치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책을 붙여놓은 것처럼. 솔직히 앞의 100페이지는 읽을 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었다. 무지막지한 정보량도 그렇거니와 대체 이 정보들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가늠도 안되고…그저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었는데.

100페이지 3부. 그로부터 약 100 페이지를 읽는 동안 점점 난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사랑하는 그 곳으로. 오늘 같은 날 가고 싶었던 곳이다.

그래서 정말 오랫만에 술도 한 병 딸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술을 딸까도 고민도 많이했는데, 결국은 와인으로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차디찬 와인은 뒷향따윈 전혀 없어 목으로 바로 넘어가는 도수 낮은 소주같았다. 왜 땄니…ㅎㅎㅎ

그래 이거지.

매우 집중해서 읽었고, 읽는 내내 조앤 디디온의 < 상실(The Year of Magical Thinking)> 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포인트가 조앤 디디온과 정확히 조응했다. “이것은 극복할 수 없다”

사람이 이래. 고통에서조차 순도를 바라지. 소비의 대상이 가짜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단히 말해서, 본전 생각. 책값, 시간, 들인 내 마음보다는 더 값나가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그들의 결론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줄리언 반스는 이 책을 아내를 잃은 지 꼭 5년만에 냈다. 5년이라니…세상에. 말도 안돼. 그리고 그게 앞으로 10년, 20년이 될 수도 있다니. 그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세상에 있을까. 하지만, 완벽한 상실의 지옥도 못가는 좀비의 연옥은 누가 어떻게 풀어내 줄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지상과 지옥 사이를 떠돌며 아직도 지가 죽은 줄 모르고 지상의 해피엔딩을 꿈꾸는 원혼은.

책을 덮고 나니 세상은 다시 어둠이었다. 낮게 날던 비행기 소리도, 실용음악학원의 뚱땅거리던 피아노 소리도, 놀이터 아이들의 깔깔거림도 모두 잦아들었다. 나를 조기퇴근시키고야 만 그 아름다웠던 해질녘의 풍경도…

Me2day 미투데이 백업

2007년 4월부터 6월까지 한 석달.
하루도 안 빠지고 술을 먹었던 적이 있다.

그 앞 뒤로도 좀 심각한 음주가무의 나날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단 하루도 안 빠졌다. 만취도 종종이었고, 몇 번인가 필름도 끊겼다. 술 먹다 아침해 보며 집에 돌아와 셔틀에서 기절하기를 반복하는 나날이었다.

회사에선 서비스에서 기술 조직으로 이직 수준의 전배를 해, 무진장 일을 해치우던 중이었다. 그땐 기술 조직에 이렇게 오래 있게 될 줄 몰랐다. 잠깐 왔다 기술 배우고 다시 돌아가 서비스의 문익점 선생이 되어보리란 어이없으리만치 얄팍한 요량이었다.

소주 한 병에 정신을 잃고 친구에게 들쳐 업혀온 날. 그날이 아버지 제사인 걸 오후 늦게 정신차려서야 알고 그 때부터 술을 끊지는 못해도 줄이기 시작했다.

그 기억들이 미투데이에 조각조각 남아있다. 내게 필요한 사람들이 모두 내 인생 안에 있었던 날들. 스샷을 뜨고, 백업을 한다. 모니터 앞에 펼쳐놓고 냄새라도 맡아볼 수 있을까 싶어…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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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years

배운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다.

많이 존경했고 좋아했던 누군가의 퇴사 인사말에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쓰려다가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결국 나는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왔을 뿐,
전혀 그 사람처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말을 거둔 적이 있다.

사람들은 배운다는 말과
누군가 그렇게 하는 것을 오래 보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 쉽게 혼동한다.

그래서 그저 오래동안 지켜보기만 해 놓고는,
“배웠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알고, 분석하는 것과
실제로 그 순간에 그렇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

하지만, 10년.
10년이라면 어떨까.

짧지만은 않은 시간.
일을 했고, 여러 사람들과 만났고,
쪽도 팔고 성과도 내며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무엇을 이루었나, 출발점부터 얼마나 멀리 달려 왔나 돌아보면
그저 모든 것이 덧없는 공회전같을 때도 있었고
큰 바위 얼굴 같았던 이들이 오고 또 가는 것을 지켜보며
때로는 멈춰버린 정거장이 된 듯한 기분도 들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리하여 이 10년의 시간을 보낸 내가
이 10년의 시간을 보내기 전의 나와 얼마나 달라졌나이다.

10년간 정말로 애썼던 것은
나의 좋은 점들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기의 좋은 점들을 배우는 것.

애초에 서로 다른 세계를 태생으로 한
극과 극의 형질을 하나로 녹여내는,
불가능에 가까운…혹은 그것이 이루어진다 해도
대체 무엇에 소용이 있는가를 되묻게 되는 숙제였다.

그 과정에서, 조직의 큰 존재감 앞에
나의 좋은 점들이 싸그리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그리하여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도 있었으며
그에 비해 배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놓지 않았다.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 (지금의 나만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나여야 한다는 것. (나의 고유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

양쪽에서 너무나도 팽팽이 끌어당기는 이 두 가지 끈을 잡고,
어느 한 쪽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10년을 왔다.

그래서 지금 결국 어떤 사람이 되었나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잃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고
턱없이 많이 쏟고, 아주 조금을 간신히 얻는 비생산적인 과정.

그러니, 이건 배웠다기 보다는
시간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흡수되었다라고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오랜 시간 강제로 붙어있어야만 했던 두 이질의 접면에서 발생된 변색.
그 색이 아름다운가. 그 색이 성장인가. 혹은 배움인가.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10년. 나의 色은 지금 이것이다.

여전히 난, 서울에서 태어나 부평초처럼 흘러흘러
지구의 반대편
아르헨티나 어느 촌구석에 둥지를 틀게 된 이방인.

고향도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숟가락질부터 피로연까지 모든 게 낯설기만한
Englishman in New York의 일상이다.

하지만, 어디든 어떻게든
꽤 재미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것.
이것이 유일하게 tangible한 성취랄까.
10년의 세월을 들여서 얻은…

끝으로, 지난 10년간 내내 여기서 받았던 질문.
넌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현재 진행형으로 남겨놓고 싶다.
계속해서 나아가고 싶으니까. 단 1cm, 1mm라도…

2004.5.31~2014.5.31

수고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또 수고해 주세요 ^^

“(…)알 수 없는 우주 속 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없이 노력하는 것뿐이야. 그 결과를 가지고 조급히 따지기에는 이 세계는 너무도 오묘해. 무엇을 해야 하나? 그건 자네들이 생각하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거야. 자네들 할 탓이야. 나로 말하면…… 달리 살았더면 하는 생각은 없어. 만족해…… 재미있었어.”
인생은 자기가 사는 거야. 재미있었어. 학은 손톱을 깨물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컹.
컹.
컹.
황선생은 손을 내밀어 학의 손목을 꼭 잡아 주었다.

최인훈 < 회색인(1963)>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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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화천여행

쓰나미 업무도, 알람머신 스마트폰도, 심장을 찢어 놓는 매일의 뉴스도, 세상에 대한 오갈 곳 없는 분노도 모두 끊었던 1박 2일의 블랙아웃. 스위치를 껐다 켜는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단절을 통해서만 회복할 수 있는 것을 얻었던 시간. 화천은 그러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몇 겹을 벗겨내고 원래의 질을 드러낸 듯한 공기와 물. 한 점의 이물질도 섞이지 않은 어둠.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던 별들. 담요로 몸을 두르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을 향해 깊은 숨을 토해냈다. 가슴 속에서 흘러나온 것들이 춤 비스무레한 것을 추며 어둠 속으로 아득히 날라 갔다. 꽤나 들이 부었던 알콜의 기운도.

아침에 눈을 뜨고, 펜션 창을 여니 이런 풍경
깜깜한 밤에 구불구불 산길 타고 올라와서 전혀 몰랐다. 이런 첩첩 산중이었다뉘;;

물론 그래봤자다. 얼마나 가겠나. 1박 2일 체험 타인의 삶의 현장에서 구한 힐링이란 것이. 하지만, 이렇게 긴급 대피하듯 도망쳐 나와 찍은 쉼표 하나가 간절했던 타이밍. 함께 했던 벗과, 환대해 준 벗에게 감사~ 근데, 이런 짧은 동행조차 십 수년 만에 가까스로 한 번이라니. 친구 맞어???-_-;

화천은 혜란이가 몸담고 있는 연극집단 뛰다(Tuida.com)가 5년전 터를 잡은 곳. 화천군이 10년간 무료로 내 준 폐교는 사무실과 연습실이 되었고, 거기에 극장과 제작실, 게스트하우스와 거주 공간, 텃밭 등 점점 살이 붙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강원도의 선명한 햇살 아래 하얀 이불 빨래가 널려 있었고, 화천에서 태어난 뛰다 멤버들의 2세들이 꺄르르거리며 뛰어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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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소박한 점심


본관 – 뛰다의 대표작 < 하륵 이야기>


뛰다의 주요 레퍼토리로 장식한 본관 입구


사무실 옆 작업실. place of making things.


잘 정리된 작업 재료와 도구들~ 와우


뛰다의 가장 최근 작품 < 바후차라마타> 성소수자를 다룬 작품. 인도극단과의 합작품이라고. 못봐서 아쉽~


연습실 칠판 – 이런 상황들을 가지고 연습을 하나보다~~


고품격 황토 연습실~ 연습실의 황토벽은 멤버들이 직접 발랐다고.


희랍스타일 야외 극장도 제법 폼을 갖췄다.


운동장에 심은 계수나무. 크도 두터운 나무로 자랄 때까지 뛰다의 역사와 함께 하길~


처음 만난 혜란이 동생. 학교때부터 구제불능 문제아, 트러블 메이커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젠 누나의 조언으로 무대제작의 길을 뛰어들어 아주 잘 해나가고 있단다. 오호 놀~라~워~라. 작업의 포스는 이미 장인~~


운동장 한 켠에서는 좋은 볕에 이불 말리고


뛰다 화천 1세대 나모양. 어떻게 커나갈지 기대되는.


연출가 부부 요섭~ 주야씨 댁에서 담소 나누시는 두 대학동기 여사님들.
둘 다 있다. 심지어 하나는 상당한 차이의 연하다. 짱나!!! ㅋㅋㅋ
이렇게 사택?? 제공도 되는 훌륭한 뛰다~


텃밭도 만들었다. 작게 시작했지만, 어쨌든 직접 길러 먹어볼 요량이란다.
예술을 하려면 결국엔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공동체라는 틀 안에서 실천하고 있는 그들!
근데 나모가 심어서 삐뚤삐뚤 자라고 있다는 건 귀여운 함정~


뛰다 제작실. 무대장치들? 같은 거 직접 만드는 모양이다. 능력자들!
이 옆엔 제법 잘 지은 극장도 있었다. 원래 한옥 학교?같은 것이었다는데 극장으로 개조했다고.
참 열심히도 많은 것들을 이뤄가고 있다.


명배우 재영씨의 오후 과업은 제초작업. 예생일치라면, 이 또한 예술의 일부이려니~~
이렇게 모든 걸 직접 자기 손으로 만들고 지켜 나간다는 거. 참 멋지구리~

그런데, 오래 간만에 만난 이들은 점점 더 생활인이라기보다는 구도자로 깊어진 느낌?

뛰다를 한 바퀴 둘러본 다음엔 혜란이의 안내로
화천으로 귀촌한 조각가 이정인, 생태화가 이재은 작가(보리 출판사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하셨던) 부부가 운영하는 갤러리와 작업실에 놀러갔다~


이정인님 기본적으로 가구 작업을 하시는데. 책상이며 의자의 퀄리티가 ㅎㄷㄷㄷㄷㄷ
가구에 아무 관심없는 최여사가조차 돈 벌어서 하나 업어가고 싶다는 발언을 할 정도.
눈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만졌을 때의 기분좋은 느낌이란! 읗ㅎㅎㅎㅎ


예기치 못한 힐링은 너무나 공들여 잘 만들어진 물건의 결에서도 왔다.


하지만, 그냥 유능한 기술자 목수에 그치지 않으시고
나무를 활용해 예술의 경지에 이르셨다. 화천의 나무에 화천을 담아내고 계셨다.


나뒹구는 죽은 나무들에 색과 뜻을 입혀 화천을 흐르는 물고기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심 ^^


자투리 나무들을 모아 ~ 작품명은 ‘잡어’ 가운데 등에선 빛이 퍼져나온다.
그래서 굳이 ‘잡어구이’라 불러보았다. 술땡기라고~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 여기에 화천의 주요 랜드마크를 그려넣어,
죽은 나무에 화천을 담으셨다. 곧, 뛰다도 넣어주신단다~~


불치병 진단을 받으셨다는 데 화천에 내려와 완치되었다는 이정인 작가님.
옆에 Gallery 1 표식 나무도 화천에서 폐쇄된 다리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작가의 작업실. 페인팅 류가 많은 것으로 보아 주로 그림을 담당하는 이재은 작가님의 작업실일듯


남편이 주요 소재가 되는 작업이라~ 남편이 이런 데도 쓸모가 있구나.


목수의 작업실 탐방 ~ 비밀 공간을 흔쾌히 열어주셨다!
뭔가를 만드는 사람의 공간은 늘 살아있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비어있을 때 조차도.


나와서 한 컷


작업실 바로 앞 화천 율대 정류장 – 지나는 사람도 버스도 거의 없는 외진 이 곳에, 작가는 이렇게 공을 들여놨다.


이웃집 문패도 작가님 선물이라고~ 안에서는 옥분 여사님과 그 친구분이 담소중였다.


혜란이가 거주중인 신아 아파트. 아파트에서 중세 수도원의 스멜이~~


그리고 동네 한바퀴


화천 애기들


해질 무렵 화천천

많은 얘기와 웃음 속에 보냈던 시간. 친구의 환대와 뭔가를 만들고 바꾸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좋은 기운을 듬뿍 받았다! 호르몬의 이상이 야기한 나의 불치병도 잠시나마 호전되었다.

물론, 난 다시 숨가쁜 도시의 정글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 내가 선택한 혹은 나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장을 멈추지 않고 세계와의 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를 묻는 나의 실험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별도 뜨지 않는 하늘 아래서 도시의 더러운 공기를 휘감고, 너와 나에게 무심한 이 이방인적 관계 속에서, 너가 없는 이 세상에서도 그래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즐겁지 않아도 살고 즐겁더라도 여기서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가를 묻고 또 물을 것이다.

이번 여행으로 느낀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다른 삶을 일구는 사람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나를 설득한 것은, 어디냐의 장소가 아니라 꿈꾸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지닌 방향과 태도. 그러니, 화천의 그들도, 도시의 나들도 ~ 누구든 어디서든 화이팅! :)

the day after

1.
그날 오전에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제목으로만 보고, 전원 구출이라고 해서 또 무슨 이상한 사고가 났구나, 이 나라가 뭐 그렇지 ㅉㅉ 그렇고 말았지. 그 날은 왜 그리 바쁘던지. 쓸 것도 많고, 기술 세미나도 있어서 강사분 에스코트에, 세미나 진행에, 회사 투어까지 시켜드리고, 자리에 돌아와 밀린 몇 가지 일을 처리하니 저녁이었어. 운동을 조금 하고 나서 또 허둥지둥 식당 마감시간에 맞춰 밥을 먹으러 갔었지. 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텅빈 B1에서 김조가리에 밥을 비비며, 뭐 재밌는 거 없나 하고 스마트폰을 열어보는데 바로 그 뉴스를 보게 된거야.

식판을 앞에 두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어. 식당을 정리하던 아줌마는 그런 나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먹고 가세요.” 그러고 가셨지. 그런데 이상하게 밥이 잘 넘어가더라구. 더러운 손바닥으로 연신 뺨을 닦으며 애들 어떡해 애들 어떡해 하면서도, 오른손으로는 부지런히 수저질을 하고 있더라구.

야근을 해야 하는데, 일 대신 뉴스를 뒤지기 시작했어. 나는 이제 프로 직딩이 맞는가봐. 거기서도 일 걱정이 먼저 되더라구. 대응할 부분들을 정리하고, 마음의 각오도 했지. 집에 와서는 TV를 켰어. 그제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된 TV 뉴스를 보게 됐지만, 채널을 몇 바퀴 돌리니 계속 똑같은 화면,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되는 거였어.

그래서 아주 오랫만에 트위터란 곳도 들어가 보게 되었어. 아수라장, 감정과 분노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거기를. 하지만 새벽이 되자, 시차가 반대인 저 반대편 나라의 기술 뉴스들이 도배되더라. 그런 뉴스를 기다린 게 아닌데, 그런데도 계속 리프레시를 할 수밖에 없었어.

그 날은 왜 이리 재미있는 기사도 많던지. 구글이 유난히 많은 걸 쏟아낸 날이기도 했어. 크롬 데스크탑에, 아웃포커싱이 되는 카메라 앱에, 스트리트뷰 이미주 주소 OCR 인식률이 90%를 넘었다고도 했어. 미친 듯이 기사를 fav하고, 읽기 시작했어. 하루 밤에 이렇게 많은 테크 뉴스를 읽은 게 언제였더라.

특히, NYT Farhad Manjoo의 기자의 마크 주커버그 인터뷰는 특A급이었지. 너무 많은 리프레시끝에 나는 그 새벽에 마크 주커버그 인터뷰 기사를 번역에 몰두하기 시작했어. Can Facebook Innovate? 그건 정말 훌륭한 기사였어. 질문도 대답도 모두. 번역을 끝내고 생각했지. 아침에 눈을 뜨면 몇 명을 구했다는 기사가 뜰까. 내일 아침에는 뭔가가 뜨겠지?

두어 시간 얕은 잠에서 깨어나,바로 폰을 들고 뉴스를 열어봤지만. 아직? 아직? 아직은?

회사에 출근을 해서도 누구와 무슨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아.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 대응 원칙을 다시 확인하하고, 회사에 번역한 인터뷰 기사를 돌렸고, 그리고 할 일들이 있었지. 가끔씩 뉴스만 리프레시 했지만, 애들을 구했다는 소식은 없었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어. “이러고 있다고 해서, 제가 싸이코패스는 아니랍니다. 정말이예요. 믿어주세요.”

그날은 마침 미리 정해놓은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적당히 웃고 떠들며 밥을 먹었지. 노땅의 회사생활에 대하여 셀프 디스를 하기도 하고, 겹치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나눌까 논의하고, 건더기를 분석하며 돼지순대국밥과 소순대국밥의 차이를 따지기도 하면서. 하지만, 아무도 아이들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어. 그냥, 날씨가 왜 이래…왜 이리 우중충해. 바람은 왜 이리 많이 불어. 그러고 말았지. 흐리고 바람이 심한 봄날이었지.

거기서부터 12일 아니 13일이 지난 거야.

처음엔 그랬어. 아, 역시 이 세상은 시궁창이구나. 더럽고 역겨운 냄새로 가득해. 하지만, 줄줄이 엮인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천천히 난 이게 그런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런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메두사처럼 한 몸을 하고선, 서로의 머리를 꽈배기처럼 비비 꼬아, 수면 아래서 목을 치켜든 가공할 악의 실체가 내 눈앞에 드러난거야.

2.

아이들을 태웠던 배의 실질적 소유주는 27년전 한 공예품 공장에서 공장장과 직원들 32명이 자살한 사건의 배후로 지목받았다고 해. 하지만, 그는 그 역시 살인마와 다를 바 없는 당시 대통령, 그리고 그의 동생을 등에 엎고 무사히 빠져나갔대. 당시 죽은 직원들 앞으로 쓴 170억의 사채는 지금으로 치면 수천억원에 이르는 돈이래.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 전 세계에 묻어놓은 그 사람의 재산은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래. 하지만, 그 사건은 어떤 사이비 종교집단의 엽기적 행각으로 마무리되고 말았지.

그는 그 종교집단에서 살아있는 예수로 불렸다고 해. 야훼를 변형한 이름을 아명으로 쓰면서 말이야. 종교 서적도 여럿 집필했다더군. 교리의 핵심은 일단 입교를 하고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거래. 육신의 죄는 지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거래. 그 배의 선원들 90%가 이 종교를 믿었대. 선장부터 말이야. 그들은 이미 구원받았다고 믿는 사람들이었어. 자기가 무슨 짓을 하든지말야.

아, 그런데 이 종교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고 말이야, 신도의 폭도 상당히 넓대. 이 종교에서는 심지어 꽤 성공적인 다단계 사업도 펼치고 있다지. 국내 다단계 매출 순위 4위? 쯤으로 집계가 된 표가 나돌더군.

또 그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래. 그의 전시회는 예술의 성지와도 같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공원과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열렸대. 루브르 관장님은 그의 미술을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라고 불렀고, 베르사이유 궁전의 관장은 ‘영원과 혼동되는 순간’이라는 평을 남겼대. 작가는 전시에 앞서 각각 16억, 20억을 기부했다고 알려져 있어. 파리 시내 버스에 랩핑 광고도 했다지. 물론, 전시회를 기념해 초호화 파티도 열렸대. 유명인사와 각국의 대사가 참석하고 왕립 오페라, 유명 음악인들의 콘서트, 불꽃놀이가 미니 이벤트로 진행된, 도저히 얼마를 들였을지 상상하기도 힘든 그런 파티말이야.

하지만, 그 정도는 합당한 투자였을거야. 이후 그의 사진은 계열사에 판매되어 500억 이상의 비자금으로 변신했다니 말이야.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도 당시 그의 사진이 수 백억의 가치가 있다고 의견을 냈었대. 이 정도면 꽤 높은 ROI가 아니겠어. 게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 그 낡은 배를 불법 개조해 자신의 전시실로 쓸만큼 드높은 예술혼을 불태웠던 예술인이었던거지.

그는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래. 그리고, 자신의 작업실 창에서만 촬영하는 특이한 방식을 고집한대. 그래서, 프랑스의 너무나 작고 아름다운 마을을 통째로 사들였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누리고, 또 자신의 작품으로 남겨두기 위해서. 물론 그 외에도 세계 곳곳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지. 더욱 값비싼 땅을 사들일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예술을 위해 그 작은 마을을 사들였던걸까.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어. 그는 이미 해외로 출국했고, 사이비 종교 집단 자살 사건 이후에도 끊임없이 유력 정치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다지고 있었다니까. 말하자면 그는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빠졌던 때도 없이 어두운 어딘가에서 면면히 그 맥을 이어온거야.

그러니 또라이 선장놈이 그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힐 지는 몰라도, 그가 단두대에 설 일은 아마 없을거야. 그는 세계적인 예술가이지, 사업가이자, 종교인이니까. 우리가 갈구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영원불멸의 언터쳐블이니까.

3.

화사한 하늘색 정장. TV에서 그 분의 의상을 보고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그 색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을 미처 몰랐던 미개한 국민이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녀는 직접 현장에 내려와 국민을 대신해 실무자들을 협박하기도 했어. 잘 못하면 다 짤릴거라고. 애들을 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간을 그렇게 쓰고 있었지.

이후, 정부가 한 일을 다 나열할 필요는 없어. 지치도록 생산되고 있으니까. 컵라면의 소중함, 계란의 중요성, 앰뷸런스의 용도변경과 피로한 시간에 몰려드는 졸음에 대하여. 이 정부가 썪었다고 거대하게 말하는 것은 별 감흥을 주지 않아. 하지만, 이런 깨알같은 소립자 에피소드가 가진 구체성의 힘이라니! 그 덕에 난 이 정부에 대해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상을 그릴 수 있게 되었어. 하루에도 몇 번씩 피가 거꾸로 솟아 뇌를 정지시켜 버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하지만 시간에 이르면 말이야. 혹여나, 그 아이들을 살릴 수도 있었던 그 시간에 이르면 말야. 그들이 그 시간을 어떻게 써버렸는가 하는 대목에 이르면 말이야. 여기선 그냥 우린 다 죽어야 하는 거야. 그래 이 정부말고, 다 포함해 우리 말이야.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직접 뽑아준 이 정부가 한 짓이니까 말이야. 결국 이런 세상을 만드는데 어떤 식으로든 일조한 우리니까 말이야. 고작해야 SNS에서 의로움과 분노를 떠들어대는 짓,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말이야.

그 서글픈 풍경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어. 그건 너무나도 초라한 자화상이라서 말야. 거기에서조차 유족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구호품을 빼돌린다는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너무나도 충분히 뭉크의 절규스러워서 말이야.

결국 우린 도처에 악마들을 살아남고, 악마들이 머리를 키우고, 악마가 떵떵거리는 세상을 만든거야. 악마는 또 다른 악마를 인큐베이팅하고, 그들이 서로 합심해 세력을 넓혀간다는 이야기지. 참, 악마라고 하니 이 대목에 말이야. 20년 연한이었던 운항 배의 연한을 30년으로 늘려준 것이 바로 전 2byte 정권때 이루어진 일이었다는군. 그 덕에 18년이나 된 낡은 배를 수입해 세월호라 이름붙일 수 있었대. 절묘하지 않아. 단 한 명도, 단 한 축의 악도 이 이야기에서는 빠지는 게 없어.

종교와 예술, 정치와 돈. 무방비하고 무기력한 다수와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소수가 참으로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각각의 악이 얽히고 설켜 서로를 지지하고 버텨가면서 수 십년간 차근차근 이 비극적인 사건을 향해 오고 있었어. 우리가 만든, 혹은 방치한 거대한 악의 플랫폼 위에서. 그리고, 그 정점에서 아무 죄 없는 수 백명의 아이들이, 또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거야. 마치 하나의 상징처럼.

따라서, 이 사건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또 일어나. 이 사건은 매우 명백한 메커니즘에 의해 발생했고, 그 메카니즘은 단 한 조각도 바뀌지 않을거거든. 오히려, 더욱 더 공고해 지겠지. 안전지대는 없을거야. 있는 자들은 그들만의 ‘노아의 방주’에 더욱 단단하게 쌓아올리겠지. 나머지는 다 똑같애. 내 차례, 혹은 당신 차례인거지. 예외는 없다. 확률과 재수의 문제일 뿐.

누군가 나를 던져 남을 먼저 돌본다거나 하는 짓은 점점 더 하지 않게 될거야. 그야말로 무법천지, 그냥 정글인거야. 이런 삶을 살게 되어 유감이야. 나에겐 자식이 없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인거지.

그러니 이건 또라이 선장 한 놈의 무책임이 빚어낸 어이없는 사고 정도가 전혀 아닌거야. 이 사건은 이 세상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야.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은 없다는. 구원은 오지 않을 거라는.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자기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을 구출시켰어. 아이들은 서로의 몸을 묶고, 핸드폰으로 구조를 요청하고, 학생증을 입에 물었어. 끝까지 뭔가를 하고 있었어.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동안. 마음 아픈 이들은 현장으로 뛰어가 자원봉사를 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돌보려 치유 프로그램을 준비한대. 합동 분향소는 줄이 너무 길어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조금씩 돈을 모금하기도 한다는 거야. 오대양에서 세월호까지 수 천억씩 재산을 축적한 싸이코패스 살인마는 벌써 저 멀리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곳으로 튀어버렸다는 데 말이야. 다 썩어버린 세상에서도 또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 있다는 거야.

설국열차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어. 이 영화를 그리 재밌게 보진 않았어. 난 < 살인의 추억>과 < 마더>를 사랑하는 봉준호의 팬이거든. 그런데도, 가장 자주 떠올리는 영화를 꼽으라면 그건 설국열차야. 설국열차는 말이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야. 이미 빙하기는 닥쳤고, 생존자들은 설국열차에 칸칸히 분류되어 갇혀있어.

봉준호는 너무나도 정확히 지금의 현실을 보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꼭 말하고 싶었던 거야. 세상은 이미 멈출 수 없는 설국열차라고.

예프게니 키신 내한공연 – Mission Done!

kissin

키神을 만났다. 두 번째 만남.

클래식은 문외한이지만 그냥 보고, 직접 듣고 싶었다. 발레는 몰라도 강수진의 움직임을, 토슈즈를 신고 사뿐히 뛰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처럼. 그저 그 뿐이었다. 쇼팽이든 스크리아빈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게 뭐든, 그건 한 인간이 자기 생의 거의 모든 것을 바친 결과물이니까. 이런 관점의 관람객에게, 퍼포먼스의 소소한 부침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승부나 대면이라기 보다는, 받아야 할 감동은 모두 미리 채웠고 남은 것은 인증정도인 좀 재미없는, 전폭적으로 치우친 태도니까^^;;

결혼도 하지 않고, 콩쿨도 나가지 않았다. 부모님과 6살에 만난 스승 칸토를 제외하면 거의 누구와도 접하지 않는 격리된 삶이라고 한다. 난 지극한 기계적 성실함이 자아내는, 오그라드는 감수성이 배제된 무심한 열정에 매혹된다. 그저 손가락이 망치인양 쳐두드리듯이 연주한 키신의 라깜빠넬라가 나에게는 최고인 이유다.

윤디리가 그렇게 좋다고들 한다. 그 빠른 속도에도 전혀 손상되지 않는 서정성이 놀랍다고들 한다. 막귀인 나에게도 느껴지는 선명한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연주는 너무 달았다. 너무도 섬세하고, 정교했고, 감정이 많았다. 그래서 내 미천한 개취로는 도저히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시드니 심포니의 지휘자로 등극한 아쉬케나지의 끼워팔기같은 느낌이었던 키신과의 첫 번째 만남. 아쉬케나지의 라흐마니노프로 젊음의 짧은 한 때를 누렸던 나에게는 뭔가 헛헛한 만남이었고, 메인 연주 한 곡으로 만난 키신은 두고두고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롯이 키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놀랐던 것은 내가 열광했던 그 키신이 아니었다는 것. 풍요롭고 서정충만하고. 내가 피상적으로 이해한 기계적, 구도자적, 자폐적 연주가 전혀 아니었다. 당근!!! 그런 어마어마한 천재, 대가가 이런 문외한의 이해 영역에 머물러 있을 리가.

그런데도 감동스럽더라. 전혀 알거나 범접할 수 없는 순정의 알고리즘을, 수식 자체는 아니라더라도 최소한 그 최초의 발상이나 아이디어, 세계관을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주는 누구처럼. 대가는 그렇더라. 첨 듣는 스크리아빈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줄이야. 난해할 거라 지레 짐작했었는데, 그저 아름다웠다. 물론, 내내 내가 보고 듣고자 했던 것은 기계적 성실함뿐이었지만.

어쨌든 이리하여, 내가 가장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세 명의 아티스트를 모두 영접했다. 인생의 중요한 미션을 간신히 마친 느낌? ㅎㅎ 키스 자렛, 강수진, 키신. 모두 K를 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키신은 10대, 키스 자렛과 강수진은 20대 초반에 만났다. 세 사람에게는 모두 대번에 사로잡혔었다. 그 때는 그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아주 머나먼 꿈이었다. 그들을 너무나 먼 세계에서 왔고, 그들을 실제로 만날 수도 있다는 상상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 다른 세상의 도장이 찍혀져 밀봉된 음반과 영상 속에서만 간신히 접선할 수 있는 별에서 온 그대들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고작 돈 얼마를 내고 이룰 수 있는 쉬운 꿈이 아니었는데, 살다보니 그렇게도 될 날도 맞이하고 있다.

그냥 살면서 한 번쯤 이들 세 사람을 내 눈, 내 귀로 듣고 봤으니 어느 정도는 됐다 싶으다. 에릭 클랩튼 포함하면 네 명~

올해는 강수진을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고. 자렛 옹과 키신은 몇 번은 더 올 것 같구. 쫌 넓혀보면, 약간 다른 기분으로 곤잘로 루발까바 정도? (요새 모하심??) 달달마왕 곤잘로님은 반드시 남자와 함께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교과서적인 구상 정도만. 마이클 잭슨은 갔고, 김현식 유재하도 갔으니 별로 욕심나는 인간도 없다. 문명진 또 볼 거구, 장국영은 갔고.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쳇 베이커… 근데 죽은 사람들만 그리워하고 있기엔 너무 좋은 봄날이다.

방에 음악을 틀어놔야겠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음악을.

키스 날리는 키신 ~ 걷는거 땀닦는거 웃는 거 인사하는 거. 피아노 치는 거 빼고 죄다 어색어색. 그래서 더 좋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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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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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es24.com/24/Goods/11935043?Acode=101

경 축! 빰빠라라밤…

내가 쓴 한창민 작가의 < 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 리뷰가 YES24 주간 우수작에 선정이 되었당!
좋은 책을 읽고 그냥 느낀대로만 발로 끼적끼적 썼을 뿐인데, 이런 경사가 ㅋㅋㅋ (으쓱으쓱)

오랜 벗이 낸 멋진 책에 한 마디를 얹을 수 있고,
그 한 마디가 또 작지만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선순환의 주고받음이 기쁘고
상품으로 YES 24 상품권 3만원을 받아서 더 기쁘다.
글써서 돈 벌 때가 젤로 기분이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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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런 사진책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진을 펼쳐놓고 편하게 얘기하는 듯 하지만, 섬세하게 세공한 듯 편집된 사진이며 말이며 작가가 뿜어내는 감각의 내공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그 감각이 스마트폰이라는 열악한 사진 장비를 만나, 비루한 일상의 순간을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찰나의 순간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 드라마틱했다.

거창한 출사도, 고가의 장비도 없이, 그 흔한 라이트룸과 스트로보 하나 없이, 달랑 스마트폰 하나를 들고, 이런 멋진 순간들을 포착해 내다니. 대체 어떻게?!! 평소에 인스타그램에서 작가의 사진을 보며, 어떤 눈을 가졌기에, 무슨 비법을 숨기고 있기에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그 비밀을 조금은 엿본 느낌이다. 하지만, 알아도 따라하지 못하는 게 전략이라 했던가. 비법을 전수를 받고 나니 오히려 숙제가 더욱 어려워진다.

옛날식 고무 다라에 놓인 흰 플라스틱 대야를 찍어놓고 ‘다라이_달아이’라고 이름 붙인 센스며, 낭창하게 흐드러진 장미를 여왕폐하라 부르며 제멋대로 사진 찍기를 허락받는 능청스러움, 철거를 앞둔 빈집을 다시 찾아 무력함과 덧없음에 비감을 느끼는 작가의 다채로운 성정에 매료된다.

콩국수에 방울토마토를 얹어 ‘콩국수_마우스’라며 찍어놓고 ‘국물까지 다 들이마시고 방울 토마토로 입가심을 하니 깔끔했다.’는 마무리에서 어느 무더운 여름날, 북촌을 쏘다니며 제 철의 맛과 멋을 누리는 느긋한 한량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SNS 예찬에 이르면 문득 시간을 뛰어 최첨단의 ‘지금’을 달리기도 한다.

풀떼기를 찍어놓고 대뜸 추사의 향조암란에 헌정한다거나 성탄 전야에 카페에 혼자 앉아있는 흑인 남자에게서 에드워드 호퍼를 짚어내는 자유분방한 연상. 북촌의 평범한 담벼락과 배치한 오규원의 시와 소설가 윤후명, 영화감독 허진호 등 문화 예술계 인사들과의 인연,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 사랑방 ‘평화만들기’의 유혜심 대표가 걸어둔 ‘각선_미인’을 틈만 나면 카페의 남자 손님들이 달라고 떼쓴다는 에피소드 등. 평범하다는 남자가 무심히 풀어놓는 이야기에는 전방위 문화 예술 코드가 숨가쁘게 쏟아진다. 그런데도, 스마트폰만 들고 있으면 나도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평범한 일상인으로 말한다. 힘주어 거창하거나 인상쓰며 심각하지 않다. 크롭된 사진의 화질에 안타까워 하면서도, 그래도 찍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달래는 수수한 낙관이나, 잘 모르는 것은 모른다며 좀 더 배워야겠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대목에서 그와 내가 그렇게 다르지만도 않음을 실감한다. 우연히 찍힌 걸인과 다음에 만나면 소주 한 잔 걸치며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에는 마음에 오래 배인 다정함이 묻어난다. 책 곳곳이 그렇다.

그렇게 다정하게 다가와 슬그머니 어깨를 두드리며 사진을 찍어보라고, 또 뽑아보라고 부추킨다. 예술가의 드높은 자의식이 아닌, 한 세상을 같이 살아 가는 동시대인의 언어로 꼬득인다. 우리, 거창하지 않게 ‘일상의 예술’을 해 보자고. 내 눈과 마음만 열어 두면, 날마다의 일상이 예술이 되고, 또 그 예술이 일상이 되는 거라고.

스마트폰 사진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깃발을 꼽은 라이징 스타의 작품집으로 읽어도 재미있고, 스마트폰 사진찍기의 따라하기식 교본으로 활용해도 유용하고. 사진 쌩초보이자 똑딱이조차 거부했던 귀차니스트 중년 남자의 인생 후반 반전 스토리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피카소의 그림같은 정체불명의 입체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오래 옆에 두고, 그 중 하나씩을 뽑아 새로운 책으로 다시 독해해가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이 책은 이태준의 < 무서록>, 김용준의 < 근원수필>을 잇는, 고전적 아취가 듬뿍 묻어나는 한 폭의 사진 수필로 읽힌다. 세상사는 멋과 풍류도 알고, 인간사의 이모저모를 꿰뚫어 보면서도 그저 껄껄껄 웃고 마는 눈 밝은 한 사내가 붓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난 대신 세상을 쳤다.

그 결과는 수묵의 담박함과는 거리가 먼, 세상 온갖 것들이 제멋대로 뒤섞여 뛰노는 요지경 난장이지만, 스마트폰 하나로 세심히 풍경들을 건져올린 사내의 글과 그림에는 빠르고 거칠게 달려가는 요즘 세상에서 맡기 힘든 그윽한 난향이 풍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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