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나이 되도록 밥 한 끼 차릴 줄 몰랐던 내가 회사 동호회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다.
이번 달의 주제는 Italian Cooking…덕분에 주말 점심이 맛있어졌다 :-)

토마토 해산물 스파게티
토마토 홀이 없어서 집에 있는 토마토 소스와 피자소스를 응용. 맛을 내야 할 토마토가 부족하다보니 좀 희어멀건 아쉬웠지만 맛은 OK!

파르미지아노멜란자네
이름 복잡한데 가지랑 삶은 달걀 슬라이스를 토마토 소스, 치즈와 함께 겹겹이 층을 쌓아 오븐에 구운 요리다. 집에 가지가 조금 밖에 없어서 많이 못 만들었지만 정말 맛있는 요리. 단 가지는 물이 많아, 손질할 때 물빼기 전쟁을 치뤄야 한다. 가지의 맛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 준 요리.

사이비 판자넬라 샐러드
호박과 가지를 구워 바게뜨 빵, 모짜렐라 치즈와 함께 발라믹 샐러드 드레싱에 믹스한 샐러드 요리. 모짜렐라 치즈는 없어서 생략하고 빵은 따로 찍어 먹었다. 열튼 요즘 유진이는 맛있고 만들기 간편한 샐러드에 버닝 중.

볼로냐식 라자냐~…가 아니고 펜네
원래 넙적한 판같은 라자냐를 만들어야 하는데, 반죽하기가 귀찮아서 삶은 펜네를 반으로 갈라 응용. 보기는 이래도 베샤멜 소스와 라구볼로네제까지 제대로, 쌤이 가르쳐 준 대로 곧이 곧대로 만들어 오븐에 구워낸 정통 볼로냐 스파게티. 역시나 유진이 표 스파게티 중에 가장 맛과 완성도 높음. 근데 사진은 왜 이래? -_-a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와 닭가슴살 곁들인 시저 샐러드
레스토랑에서 만 원 넘는 스파게티 원가의 실체를 까발려 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생크림과 우유만 있으면 정말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육수가 조금 첨가되어도 맛날 듯. 시저 샐러드는 로메인 상추대신 각종 유기농 쌈채소로 대체. 앤초비와 레몬즙, 와인비네거, 머스터드 등 각종 생생 첨가물로 맛있게. 이태리 요리 역시 소스랑 각종 재료 공수가 관건이다.

봉골레…를 응용한 해물 스파게티
조개 대신 냉장고에 얼려둔 조개살과 새우를 응용해서 만든 해물 스파게티. 대신 올리브 오일에 충분히 조개살와 새우를 볶아 맛을 내고, 다시마 육수로 감칠맛 더하고, 화이트 와인으로 잡내를 제거해 비교적 봉골레스러운 맛을 완성했다. 봉골레는 만들기는 되게 쉬운데, 맛있게 만들기는 정말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태리 레스토랑이 잘 하는 집인지 확인하려면, 그 집의 봉골레를 맛 보면 된다고.

초여름 디저트는 와인 빙수
뎀비표 빙수와 유진이가 아끼는 와인이 맛나 환상의 궁합을 이뤘다. 19.5도 독하고 단 포르투갈산 포투 와인와 차가운 얼음 가루는 환상의 맛을 선사한다. 수박까지도 좋았는데, 미숫가루에서 왠지 시골틱해져버린 2프로 아쉬운 비주얼.

와인이라기보다는 소주 대용에 가까운 포도 알콜 음료 포트 와인. 와인 즐기는 분들은 별로라고 하시던데, 난 처음부터 좋아했다.

우아(?)하게 쿠킹 중이신 정쉪

요리끝나면….@.@ 정신줄 어디로

부엌은 전쟁터…초토화…스파게티 하나 만드는 데 무슨 종가집 제사 지낸 듯.

사진 출처 : http://cafe.naver.com/superecipe/981
싸부 신지연 쌤, 이태리 ICIF 졸업하시고 한국 ICIF 강사, 라퀴진 아카데미 주임강사, 푸드 채널 챌린지 투 쉐프 지도 강사로 활약하셨다고. 드라마 < 온니유> 음식 자문까지도…꼼꼼하게 지대로 잘 가르쳐 주신다. 쌩유 쌤!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지만 어디 안 나가고 집에서 맛있는 거 해 먹으니 좋다. 점입가경 쥐새끼 일당때문에 도통 우울한 세상인데 입이라도 맛있어야 버티고 살지. 특히 개인적으로 너무나 공사다망하고 피곤하고 정신없이 종종댔던 6월이었다. 그래도 주말마다 빠뜨리지 않았던 스페셜 요리 한 접시로 원기 회복하고 기분을 업시켜 그 나머지 시간들을 버텨왔던 것 같다.
그 복잡부산했던 6월도 이제 지나간다. 벌려놨던 일들도 정리가 됐고, 요행 심리는 가차없이 짓밟혔고 T_T, 복잡한 동선에 극에 달했던 어리버리 실수만발을 통해 나의 덜랭 본능을 재확인했고, 그 실수를 극복하기 위해 도와준 사람들 덕분에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 이라는 새삼스런 교훈을 얻기도 했다. 어쨌든 지나갔다. 7월의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서 난 좀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다. 그 느린 걸음으로 작은 깊은 그늘 한 점을 찾아보고 싶다.
마더 (2009)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7701
1.
엄마의 불안한 눈동자는 필사적으로 자식의 육체를 배회하지만, 자식의 영혼은 어디론가 빠져나가 엄마가 붙잡을 수 없는 먼 곳으로 흘러간다.
자식은 여자에게 홀려 넋을 잃고 뒤를 쫓는다. 엄마는 그런 자식의 뒤를 쫓는다. 여자와 자식이 홀연히 사라지면, 쫓던 이들이 남겨진 곳은 미로.
그렇게 영화는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향한다. 강물의 흐름처럼 서서히 방향을 뒤틀어, 반대편 기슭에 숨어있던 경악스런 사실에 다다르기까지. 엄마는 이 음산한 회전의 중심축이다. 자식에게 속아야 할 모든 이유를 가진 사람, 바로 엄마다.
2.
꿈을 꾼 듯한 시간이 흐르고 천천히 눈을 뜬다. 손은 흥건히 피범벅이다. 손에 묻은 피는 닦아낼 수 있지만, 영혼이 두른 피칠갑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누구의 죄일까.
다쳐서 처음 피를 본 사람은 놀래서 피를 닦지만, 피에 흥건히 젖어 있는 자는 더 이상 피를 닦지 않는다. 그는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다. 미소를 지을 수도, 다정하게 말을 걸 수도 있다. 뭐든 다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선을 넘어가면 소리가 안 나온다. 그 어떤 것도 아닌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
난 그래도 사는, 살아야 하는,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엉망진창인 채로라도.
3
여전히 < 마더>에서는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아무리 잔인하고 음습한 현실 속에서도, 밥을 하고 먹여주는 한 걱정없다. 난 봉감독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 모든 밥 먹는, 정확히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밥먹이는 장면이 너무나 살갑다. 얼어붙어 가는 지구를 달리는 < 설국열차>에서는 또 누가 누구에게 어떤 밥을 먹일까? 폐쇄된 극한의 상황에서 밥은 보다 절실한 생존의 상징이 되리라.
인식의 균열이 임계치에 이르러 단순한 한 마디의 질문으로 발화되는 것도 여전하다. “엄마 없어?” 질문인지 절규인지 모를 이 말은 < 살인의 추억>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 필적하는 세기의 명대사다.(나에게는^^) 물론 후자는 송강호의 애들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죽도록 뒤쫓아도 연기처럼처럼 빠져나가고 마는 징그러운 놈이지만, 그래서 억울하고 분하기 짝이없지만 그런 놈조차 밥 먹고 똥싸고 숨쉬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모든 게 엉망징창이 되어버린 순간, 짠~하고 나타나 누명을 뒤집어쓰고 내 자식 살려주는 하늘이 내린 동앗줄처럼 반가운 희생양이지만 내 자식보다 더 덜떨어진 저 아이조차 어떤 엄마에게는 귀한 자식일 것이다.
< 괴물>에서 강두는 현서 대신 살아온 아이를 자기 자식인 양 극진히 키우지 않는가. 칼바람 부는 추운 겨울날, 뜨거운 밥을 해 먹이며. 혜자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혜자는 자기 자식 살리자고 또 한 자식을 죽여야 한다. 내 자식을 살린 기쁨과 동시에 자기 자식을 지키지 못하는 세상 모든 엄마의 고통이 혜자에게 쏟아진다. 보편성과 특수성은 뜯어내지지 않는 악귀처럼 쌍으로 들러붙어, 천국같은 지옥을 선사한다.
4.
< 박쥐>란 영화는 그냥 보면 안되는 영화같았다. 자꾸 뭔가 해석을 하게 했다. 이야기와 영화에서 중간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해설자의 시점이 걸리적 거렸다. 그가 설명하려는 대상은 잘은 몰라도 어쩐지 대단히 심오하고 멋들어진 것일 것만 같다. 때깔도 죽여줘서, 매우 유혹적으로 지적 도전 혹은 허영을 부추긴다. 아무 생각없이 살던 와중에 뜬금없이 죄니 구원이니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신선한 경험이다. 그냥 그렇다. 멋지지만 어디 먼 나라 의상을 고쳐 입은 듯한 이질감…
< 밀양>은 거대한 세계이지만 너무 칙칙하다. 그냥 눈을 돌려 버리게 된다. < 밀양>이나 < 박하사탕>은 왠만한 영화라면 감히 시도할 수도 없는 영혼의 깊은 곳으로 인도하지만, 그 밑바닥은 너무 이상한 곳이서 다시 혹은 자주 가고 싶지는 않다.
< 마더>는 오리지널하다. 공식도 해석도 아닌 진짜배기 원형의 텍스트. 한국 사람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 너무 사랑해서 죄를 짓는 줄도 모르는 한 사람의 이야기. 고독한 줄도 모르고 거대한 풍경 속을 홀로 헤쳐 걸어 들어가는 너무 많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 .
5.
첫 장면의 물음표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느낌표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 어떤 설명도 필요없이 그 춤안에는 모든 ‘이유’가 다 들어 있었다. 꿈꾸듯 흐르는 영화 속에 푹 젖어 두 시간을 보내고 난 후, 극장 안에서 나 혼자 박수를 쳤다. 참 나, 이렇게 잘 만들 수가 있나.
생략하고 더 생략해서, 알짜배기만 남겨야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인류에 도움되는 일 해보고 싶었던 좋은 남자의 이야기다. 항상 그렇듯 의도는 빗나가고, 때마침 등장하는 나쁜 여자의 유혹에 상황은 더더욱 엉망이 된다. 결국 선택한 거창한 순교의 결과는 고작해야 사태를 원점으로 돌리는 정도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죽어야 했던 남자의 선택에는 숭고함에 깃든다.
박찬욱의 죽여주는 스타일과 국민 배우 송강호라는 간판, 영화의 핵심을 잘라내고 적절히 호기심만 자극한 마케팅의 3박자가 어울려 다시 한 번 초특급 A급 대접 받는 B급 무비를 탄생시켰다. 친절한 장금씨와 싸이보그라도 괜츈해에 이어. A급 영화에 밀리지도 않고, 적지 않은 예산에 다들 탐내는 A급 배우들을 써 오래 공들여 찍고 전국 개봉관에서 일제히 상영하는 고품격(?!) B급 무비. 그래도 인간의 내장을 후벼내 늘어놓은 것 같은 불편한 감정들과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질주하는 유혈낭자 살색만발 비주얼은 여전히 자신이 타협하지 않는 B임을 주장한다. 몇몇 사람들은 견디지 못해 중간에 극장을 나가 버리게 만들 만큼의 강력한 파워로.
인상적인 것은 뱀파이어 영화답지 않은 일상성이다. 순교집단이 모인 프랑스의 병원에서는 다들 모여 배구를 하고, 불치병을 고친 신부는 초딩 동창이며, 동네 한복집 주인여자는 보드카를 마시며 마작을 한다. 이런 낯선 것과 익숙한 것과의 이종교배가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느낌은 송강호에 이르러 극에 달한다. 평범한 우리를 대표하는 캐릭터였던 송강호가 전혀 해 본적 없는 이상한 뱀파이어가 되었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뱀파이어가 뭐 별건가. 이건 뭐 식성이나 생활 습관 같은 문제라구요.” 이 송강호는 뱀파이어라는 기괴한 존재가 아니라 마치 밀양이나 우아한 세계의 한 장면에 등장할 법한 송강호다. 이 영화 속에서 송강호의 뱀파이어 스토리는 정말 그렇게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그렇지…저런 게 고민이 되겠지. 특별히 분류되는 뱀파이어 영화 속의 뱀파이어가 아니라 오늘 내가 정말 뱀파이어가 됐다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하루를 보냈을까를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가끔은 키득키득 블랙한 실소를 자아내지만, 사실은 그래서 더 큰 충격을 주는 것이다.
그의 최후가 피빛을 넘어서 진한 황금빛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사람인데 두 번씩 죽어야 한다는 것은 참 X같은 일일 것이다. 게다가 마침 이전엔 몰랐던 삶의 꿀맛도 알게 되어버렸거늘. 너무 좋은 나머지 이게 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걸 알아버리고 나서도 선택한 두 번째 죽음이야 말로 진짜 순교이며 더욱 거룩하다. 삶을 초월한 종교인이 아니라 삶에 연연하는 한 평범한 인간…아니 뱀파이어로서 내린 선택이니까. 역시나 지옥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일까……..
그런 저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려했으나, 역시나 나를 압도하는 건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런 걸 느끼기 위해 아름다운 5월의 황금연휴에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이런 순간 순간을 다 견디고 싶지 않다. 영화에게 빨대 꼽힌 느낌이랄까? 보고나니 기운이 쪽 빠지고 어지럽고 멍때린다. 잘 가지도 않는 스타벅스가 눈에 띄길래 차가운 망고 슬러시를 사 벌컥벌컥 마셔댄다. 극장 밖 밤공기가 이렇게 시원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어디선가 박찬욱 감독은 이런 풍경을 망원경으로 훔쳐 보며 혼자서 ㅋㅋ 거리고 있는 거 아닐까? ㅋㅋ
주류의 피를 수혈받은 B급 무비는 그 자체로 변종 뱀파이어다. 사람들의 지갑에 링겔을 꽂고 쪽쪽 돈을 뽑아마신다. 물론 인터넷으로 자살단을 모집하는 영화 속 송강호처럼, 관객들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 이것은 그저 그런 인생에서 위대한 혹은 강력한 뭔가를 갈구하는 관객과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는 거장 감독의 의기투합이 이루어낸 괴상한 타협점일까? 아무래도 난 영화보다는 제법 차려입고 서로의 팔장을 낀 채 극장에 들어선 이 수많은 사람들이 스크린 앞에서 이 영화를 만나고 있는 장면이 더 재미있다. 대체 저들은 뭘 보러 왔던 걸까? 또 난? ㅋㅋ 네이버 영화평을 찾아보니 아주 난리가 났다. 확실히 박찬욱 감독은 한 방 제대로 날린 것이다. 그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남을지 몹시 궁금하다. 거장의 브랜드를 내세워 관객과 아슬아슬하게 유지해온 이 흡혈 관계의 전개가.
악마에게 시력을 바치고 대신 재능을 얻었나보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가 내 눈 속에 비친 네 모습을 보라고 한다. 그 안에 영원이 펼쳐져 있다고 한다. 그가 보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무한한 우주인가보다. 세션도 하나 없이 기타 하나 들고 혼자서 2시간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이 넘치고 풍요롭다. 대충 봐도 백만 년만에 이벤트에 당첨되어 다녀왔는데, 너무 멋진 공연이었다. 간만에 문화생활로 잠시나마 마음이 싱그러워진다. 그러고 보니 5월이네…
⊙ Waited All My Life
http://blog.naver.com/hirokun83/110007768413
무명시절, 그는 앞이 보지 않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줄게 없었고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녀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주는 것 뿐이었다고 한다. 클럽에서 그녀에게 이 노래를 불러줬고, 그녀가 지금 현재의 아내가 되었다고 한다.
⊙ State of Mind
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80422
이거 보고 뿅가서 이벤트 신청했었다. 감성이나 분위기 등등의 장식에 기대지 않는 압도적 재능. 기타가 타악기였나?


분당의 봄은 예쁘다. 높이 들어선 아파트를 배경으로 흩날리는 벚꽃과 오리 떼들이 둥둥 떠다니는 탄천이 한 프레임 안에 어우러지면 내내 24시간 먼지만 털고 있는 것 같은 어수선한 마음도 어느새 차분히 제 자리를 찾는다. 분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평일 낮에는 다들 일하러 나간다. 난 돈 벌러 이 먼(?) 곳까지 와서,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볼펜을 티셔츠에 꼽고 저쪽 오피스에 회의를 하러 간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칩거모드 박쥐 인생을 ‘현장검거’ 당하기도 한다. 인연이란…
근데 회사 게시판 쿨 매물로 잡은 이 철티비의 무거운 페달은 그야말로 OTL이다. 서현-정자의 짧은 거리조차 부담의 식은 땀이 줄줄 나게 한다. 짧은 봄날같은 인생인데 페달을 돌리기가 너무 힘겹다. 조만간 나는 굉장히 (지금보다도 더) 두꺼운 다리를 갖게 되거나, 아니면 4만원짜리 중고 철티비 대신 자출사 정모에 나가도 빠지지 않을 가볍고 산뜻한 새자전거를 구입하게 되겠지. 어느 쪽이든 계속 나아갈 수 밖에 없다.
Style H 3월호에 기고한 글. 매거진 타겟 대비 너무 튄다고 제목부터 내용까지 싹 워싱되어 나갔지만, 내 블로그니까 Blogger’s cut으로 실어본다.
간만의 원고청탁에 봄이란 오감으로 달려든다고 지지배배 울어봤는데, 어느덧 지애 데뷔전도, WBC도, 3월도 모두 지나갔구려.
그녀의 봄 불감증 탈출기

사진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kuzdra/2313716023/
겨우내 붙여두었던 문풍지를 뜯고 창문을 여니 영장 발부 받고 대기 중이었다는 듯 따순 기운이 왈칵 덮쳐온다. 틀어놓았던 라디오에서 친숙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전쟁의 종식을 선포하듯 봄의 도래를 일방적으로 공지하는 이 역사적인 순간, 내 머리 속에 떠오른 말.

사진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shexbeer/2183020131/
어느 대학교 화장실의 낙서라던가? 그래, 바로 이거야. 아직 글로브도 끼지 않았는데 한 방 먹은 것 같은 이 느낌. 준비가 안 된 나 같은 사람은 어떡하라구? 겨울에서 봄으로 곧장 이어지는 이 극적인 비약에 적응하지 못하겠는 나 같은 사람은! 난 마치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한 세상에서 홀로이 고독한 광야의 초인처럼 절규했다.
“불감증이야.” 친구들의 진단은 명쾌했다. 기분이 나빴던 건 이어지는 A의 말이었다. “세밀한 진단을 받아봐야 하겠지만, 봄 불감증은 그리 치료가 어려운 병이 아니니까.” 뭐야, 지금 내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구?” 나이가 들수록 외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신체 구조로 인해 일시적으로 세포의 감각이 무뎌지는 현상이지.” 친구 B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걱정 마. 너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니까. 원인은 다양하대. 심지어 우리 모두가 사랑해 마지 않는 하이힐도 불감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잖아.” 나는 어느새 친구들이 짠 단단한 스크럼 안에 갇혀 있었고, 그녀들은 자청하여 나의 치료사로 나섰다. 그녀들 얼굴에 도는 화색은 왠지 만만한 먹이감을 만난 사자를 떠올리게 했지만, 애정을 앞세운 동시다발적 공세에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우선 귀가 트여야 해. 봄은 소리를 타고 온다구.” 감각쟁이로 소문난 음악녀 A는 노래를 처방했다. “자고로 봄 노래라면 말이야, 봄 같아야 한다구. 하느작거리는 나비의 날개처럼 투명한 공기 속으로 휘발되어버릴 듯한 가벼움, 거품이 솟아오르는 스파클링 와인처럼 톡 쏘는 달콤함,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어질어질한 약간의 미열까지를 모두 동반해야 하는 법이지. 포트 오브 노츠의 More Than Paradise처럼. 키린지의 Alien처럼. 팻 메스니 그룹의 보이스를 담당했던 페드로 아즈나르의 Amor de Juventud처럼. 아모~~~오르 데 호벤투드! ‘청춘의 사랑’이라니 정말 딱 봄이라고 할 밖에. 이런 음악으로 귀를 열고 나면, 비로소 넌 벚꽃이 피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거야. ”
Pedro Aznar / Amor de Juventud [Aznar Lebon Vol.1//2007]
책 읽어주는녀 B는 자신의 검은 뿔테 안경을 끌어올렸다. “노노~ 선율만으로는 부족해. 따스하게 흐르는 봄날의 햇살, 그 아래서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행위는 바로 독서! 영화 < 러브레터>봤니? 팔랑거리는 새하얀 커튼 사이에서 햇살을 가득 받으며 한 권의 책 속에 빠져있던 후지이 이츠키야 말로 청춘, 즉 봄의 완벽한 구현이야. 그가 들고 있는 책은 무엇이었을까?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요시다 슈이치? 아냐. 이 시대 젊음의 초상이라면 좀 더 모던하고 발랄할 필요가 있어. 대만작가 왕원화의 < 끝에서 두 번 째 여자친구>처럼.” 그녀는 수첩을 뒤적였다.
“봄은 그녀가 사랑하는 계절/산들바람이 멋대로 그녀의 머리칼을 날릴 때/그녀는 세상의 소란함은 마음에 두지도 않고/자기 생이 바뀌는 것만 생각하지~어때, 멋지지 않아? 왕원화의 또 다른 작품 < 단백질 소녀>도 최고야. 만화같은 제목이지만, 뼈와 살로 충만해 일본 소설에서 허기진 2% 아니 20%를 채워주지. 예로부터 서사가 강한 중국 소설의 전통도 있겠지만, 그건 아마도 스탠퍼드 대학에서 MBA를 하고 타이완 MTV 부사장과 컬럼비아 영화사 마케팅 매니저를 하고 있는 작가의 이력 때문이기도 할거야. 거품을 쏙 뺀 이 시대 도시남녀들이 생생히 그려져 있거든. 게다가 정신적 불감증에 시달리는 인물들도 꽤 나오니 말이야…” 마지막 문장을 내뱉으며 그녀는 슬쩍 내 눈치를 봤다. .
“약해.” 스포츠녀 C는 단호히 B의 말을 끊었다. “지금 얘의 상태는 그 정도로 치유가 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야. 중증이라구. 좀 더 다이내믹하고 강렬한 뭔가가 필요해.” 그녀는 카페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화분의 초록색 잎사귀를 가리켰다. “그린. 푸른 잔디. 눈이 시릴 정도로 초록색 위에서 펼쳐지는 스포츠의 들끓는 에너지만이 봄 불감증을 치유할 수 있어. 작년 올림픽에서 이승엽이 친 홈런 기억나니? 삼진과 병살 행진으로 이어진 지독한 부진 속에서도 김경문 감독의 신뢰 야구가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역전 홈런을 불렀잖아. 지금도 그 생각을 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군. 마침 3월엔 WBC가 벌어져. 한국, 일본, 쿠바, 미국…전 세계 16개국 영웅 호걸들의 대전이지. 이 봄, 대한민국은 야구로 또 한 번 들썩일거야.
유럽에서는 축구가 불붙어. 시즌 막바지로 치달으며 매 년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봄에 최고의 절정에 달하거든. 유럽의 월드컵, 챔피언스 리그는 어떻구. 마침 우리의 히딩크 감독님께서 첼시의 감독으로 긴급 투입되셨잖니. 부진에 빠진 부자구단 첼시에 히감독님의 매직이 다시 한 번 발휘될까? 히감독님이 이끄는 첼시와 지성이가 뛰는 맨유가 붙는다면 어떨까?” 그녀는 정말로 잠시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골프는 또 어떻구? 천사의 미소와 악마의 멘탈을 지닌 신지애와 밑바닥에서 재기한 천재 미녀골퍼 미쉘 위의 LPGA 격돌. 물론 난 지애가 단군 이래 가장 유명한 한국 여성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아, 이처럼 흥분되는 봄 시즌이 또 있을까?”
열정적인 C의 웅변 앞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영화 매니아 D였다. “춘.곤.증! 너무나도 달콤하고 유혹적인 봄날의 단꿈. 이 신체 현상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는 미쉘 공드리의 < 수면의 과학>이지. 제목과는 달리 절대 졸립지도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아. 쇼 윈도우에 마네킹, 거리의 간판들, 길가의 비둘기…회춘한 마음에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달콤하게 말을 걸어 오지. 오색찬란한 화면 위로 펼쳐지는 한 편의 동화같은 깜찍한 태국 영화 < 시티즌 독>은 어떨까? 대도시 방콕으로 올라와 한 눈에 진에게 반한 시골총각 주인공은 이렇게 말해 “진, 너의 모든 행동들이 내겐 마법같아” 무감각하게 굳어 버린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건 봄날보다 더 신비로운 스크린의 마법이라구.”
영화 < 시티즌 독>
그 순간 우리가 주문한 특선 봄나물 샐러드를 포크로 집어 내 코 앞에서 살짝 흔들었다 입 안에 넣어준 것은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는 E였다. “뭐니뭐니해도 봄은 맛과 향기로 느끼는 거야. 혀와 코가 느끼지 못하는 봄을 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두른 스카프에는 하얀 바탕에 새빨간 딸기들이 먹음직스럽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봄 딸기의 매혹적인 향기는 마취제를 맞은 무딘 영혼도 깨울 수 있어. 생크림에 찍어 한입 베어 물고, 모엣 샹동이나 무스카토 다스티처럼 달달한 샴페인이나 와인을 곁들이면~왜 사람들이 천국은 매일 봄이라고 하는지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봄 속으로 빠져들지 못한다면, 무창포로 가서 제철 맞은 알이 꽉 찬 쭈꾸미를 먹자. 씹으면 씹을 수록 쫄깃쫄깃 감칠맛 우러나 봄바람 난 바다의 속내음을 그대의 우울한 혈관 속으로 침투시켜 봄 바이러스를 퍼트릴 테니.”

그녀들의 열기는 100분 토론처럼 후끈 달아올랐고, 또 그만큼 결론을 합의하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명쾌하게 정리해 줄 손석희도 없지 않은가. 게걸스러운 난상 토론장이 되어버린 친구 모임에서 차가운 국처럼 식어버린 사람은 나 뿐이었다.
각자의 저녁 2부를 향해 뿔뿔히 흩어진 그녀들이 떠난 자리, 홀로 앉은 나는 하얗게 올라오는 손바닥 각질을 뜯어내고 있었다. 긴 겨울잠을 끝내고 털갈이를 하는 동물들처럼 봄마다 내 손바닥에는 뜯어내야 하는 하얀 각질들이 솟아났다. 그 무엇보다 강력하게 봄이 왔음을 알리는 내 몸의 시그널. 확실히 봄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증거였다. 이 때 문자 한 통이 날라왔다.
아아, 이 번호는…바로 그였다. 심장에 휘몰아치는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따순 기운 하나가 훅~하고 솟아올랐다. 이 봄도 맨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 아닐까? 어느 심심한 저녁에 보낸 문자 한 줄만큼이나 작고 사소하게. 그녀는 답장을 찍기 시작했다. “”간신히 승선했어요. 아직은 도착을 못 했네요~” 어쩌면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을까? 우리는 함께 이 봄을 보게 될까? 함께 키린지를 들으며, 단백질 소녀를 펼쳐 놓고, 한국 야구 대표팀을 응원하고, 서로의 입가에 생크림을 묻히며 산딸기를 먹여주며 수면의 과학 혹은 혼곤한 봄날의 수면 속으로 빠져들게 될까? 핸드폰의 확인 버튼을 누르자, 저 멀리 신기루처럼 뿌옇던 봄의 라인이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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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 정유진의 웹 기획론> < 정유진의 웹 2.0 기획론>의 저자.
낮에는 기술혁신팀 차장, 밤에는 유진닷컴(www.youzin.com) 운영자. 평일에는 프로 직딩, 주말에는 초보 골퍼.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에 약하고, 이중생활이 즐거운 사람.



울 지애의 화려한 복귀~ LPGA 투어 HSBC위민스 챔피언스 우승!!
프로 데뷔 첫 트리플 보기에서 파이널 라운드 1~4홀 연속 줄버디까지
해설가의 말처럼 정말 지하실에서 천국까지 모든 걸 다 보여줬다.
1시 땡 맞춰 중계를 틀었는데 전반에 줄인 타수보고 소름이 좍- 연속 버디 영상에 또 한번 좍- 그야말로 미라클~!
이렇게 짜릿하고 감동스러울 수가.
2R에서 더블, 트리플 보기 했다는 뉴스를 보고서 안타까웠는데
이겨도 이런 식으로 이기나. 역시 수.퍼.스.타.는 뭔가 다르다.
잘 친다는 거,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니까.
투온에 원펏, 투펏을 무난하게 잘 해낸다가 아니라 (이 정도면 LPGA 프로 선수들 대부분이 갖추고 있는 능력)
뒤쳐져 있어도 한 순간에 몰아쳐 따라붙고, 정말 넣어야 할 때에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넣어주는 그 강심장과 특별함이 팬들을 경악하고 또 열광하게 만든다.
앞에 있어도 그들이 뒤에 있는 한 언제나 떨게된다. 3,4타 정도의 차이는 그들의 몰아치기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걸 해내는 선수가 특 A+++급의 스타가 되는 거고, 우승을 하는 거고, 존재감을 인정받는 거다.
타이거 우즈가 미쉘 위에게 했다는 말처럼.
“너는 훌륭한 선수지만, 우승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보너스로 얄미운 폴라 크리머를 제껴줬다는 것도 통쾌하고~ 지애한테 말려서.
그래도 최종 타수를 보면 무너지지 않으니 폴라도 훌륭한 선수임에 분명. (지애와 초아땜에 영원히 2인자에 머무를 슬픈 운명이지만)
제인박, 유선영…교과서적으로 잘 배운 처자들이
멘탈에서 흔들리며 줄줄이 숏퍼트를 놓치고 3펏 행진을 이어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안습.
SBS 오픈에서도 1등을 지키던 미쉘 위 파이널 라운드에서 3R내내 잘했던 퍼팅 무너져 2위에 머문 것도 그렇고.
지애가 왜 훌륭한지 다시금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스킬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골프가 진정 어떤 덕목을 필요로 하는지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지애는 앞으로 20년은 더 LPGA를 뛸 거고, 우린 겨우 그 첫 해의 3경기만을 본 것 뿐이라는 거.
거대한 역사가 펼쳐져 있다라고 밖에는. 이 경이로운 현실 앞에 내가 다 떨린다…ㅎㅎ
신 is God.

울 지성의 맨유 통산 10호골…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그토록 골문을 두드리며 안타깝게 하건만 결국은 넣었다.
약간은 아쉽게도 3-0 리드 맘 편한 상황에서의 골이었지만, 사각지대를 노린 너무나도 환상적인 골이었다.
울 지성이, 울 지애, 지남매의 활약…우울한 대한민국에 너무나도 므흣한 뉴스.
와중에 양용은 PGA 우승, 쇼트트랙 이호석 2관왕, 야구는 콜드게임(대반전을 예상케하는 초장 개끗발이 막판 끗발~ 박찬호의 말처럼 “후배들아 시원하게 잘~졌다!”), 밀란과 맨유의 챔스리그 2차전. 기선 제압용 퍼기 영감님의 독설은 시작되고…
열튼 스포츠로 후끈 달아오르는 2009년 봄의 시작이다.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다. 나이 들 수록, 알게 될 수록 더욱 그렇다. 다이도는 이 고통스러운 패러독스를 별 것 아니라는 듯이 툭 던져 놓는다. 내지르는 괴성보다 더 세차게 마음을 파고드는 무심함. 다이도에 매혹되고마는 이유.
엘베서 만난 모 팀장님 “정 차장님, 다이도 CD에 글 쓰셨어요?” 네? 헥, 쑥쓰럽구만~ =.=
나른 고양군의 긴급 청탁으로 보냈던 다이도 Don ’t Believe in Love 100자 코멘트. CD 속지에 삽입할 용도로 작년에 부탁받은 건데, 코멘트만 보내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마침 아는 팀장님이 CD를 보시고 저렇게 리마인드 해주셔서 급 수배했다.
열튼 이것도 기념인데, 인증샷 남겨봄. 직함은 코멘트와 너무 안어울려서 블라인드 처리.
작년 10월, 음반사에서 리뷰용으로 보내 준 노래를 들으며 왠지 울적했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점점 차가와지고, 또 한 해가 기우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 시점.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겨울은 여느 때와 같이 깊고 검고 매서울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또 한 번 치뤄냈고, 잘 했든 못 했든 지나가서 다행이다.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이건 까뮈씨가 < 작가수첩>에 쓴 톨스토이와 관련된 메모를 떠올리며 쓴 것이다.
종교없이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믿을 수가 없다 (작가수첩 95p, 1951년 3월~ 1954년 7월)
넌 지나간 세월 앞에서 미친 개마냥 미쳐 버릴 수도 있어…운명을 탓하며 욕을 할 수 도 있어. 하지만 결국 끝이 다가오면 그냥 가게 나 둬야 해.
노인에서 시작해 역순으로 살아가야 하는 벤자민 버튼. 하지만 영화는 원치 않는 삶, 풀 수 없는 숙제가 강제된 이의 내면의 고뇌를 파고 들기보다는 불평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벤자민의 삶의 흐름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가 하루 밤 사이에 갑자기 사라져도, 자기를 버린 아버지가 느닷없이 등장해도,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놀러 가도, 사랑하는 가족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순간이 와도, 그는 말없이 모든 것에 순응한다. 참 좋은 사람. 물려 받은 단추 공장 따위 관심이 없어 모든 걸 팔아 사랑하는 이와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사람. 욕심이 없다. 극단적인 비정상이 애초에 불필요한 욕심따위 거세해 버렸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조건 속에서도 황폐해지기 보다는 삶의 지평을 넓혀가며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시간이 거꾸로 가든 똑바로 가든 영원한 것은 없으며, 뭐가 닥치든 어떤 인생을 보내든 우리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결론은 let it go라는 것. 영원하기를 바래야 마땅할 사랑하는 이와 보낸 그 짧은 스윗 스팟의 순간조차도, 그는 다음 순간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벤자민과 우리는 모두 같은 흐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벤자민의 담담함보다는 ‘유한’이라는 실존의 벽 앞에서 울부짖는 데이지의 절규가 더 가깝게 와 닿는다. 그 절규조차도 지속되지 않지만.
간만에 우디 알렌 영감님. 게다가 내가 동경해 마지 않는 스페인…그 중에서도 바르셀로나. 게다가 하비에르 바르뎀! …하비에르 바르뎀!! 말라비틀어진 건어물녀의 가슴조차 다시 콩닥콩닥 뛰게 만들 수 이 남자.
♨ 하비에르 바르뎀, 그 남자의 하체 수난기 (2007.10.10) ♨
각개로 보면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베스트이지만, 합쳐놓고 보면 좀 해괴한 조합이기도 하다. 뉴욕쟁이 영감님의 스페인 출장이라니, 게다가 페르소나 운운하기엔 너무 동떨어진 이미지의 바르뎀씨. 실제로 연인인 페넬로페 크루즈양. 하몽하몽에서의 그 끈끈하고 섹시한 두 분의 궁합이 어찌나 강력한지 아직도 눈에 선한데. 계열화시키면 180도 반대편에 찍히실 영감님의 영화. 영감님의 시니컬과는 영 거리가 멀 것 같은 열정으로 충만한 가우디의 도시. 이 의외의 콤비네이션이 익숙한 이야기를 새로운 컨텍스트에서 보게 만든다. 새로운 공간과 인물을 결합시킨 효과이다. 결국 소비하고 싶은 건, 혁명적이고 새로운 영화적 실험이 아니라 우디 알렌이었거든.
크리스티나는 실체도 없는 열정을 추구하지만, 재능이 동반되지 않은 열정은 초라하고 그 멋드러진 열정에 수반되는 인생은 피곤하기만 하다. 게다가 진정한 열정-모순 커플의 깍두기 노릇까지 해줘야 한다. 비키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오비에도에서의 휴가를 통해 더 이상 과거의 안정된 삶에 만족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마주한다. 그들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 이 두 명의 들끓는 스페인 피는 삶의 클리쉐를 부서뜨리는 역할에 너무나 딱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나, 이럴 것이라고 흔히 받아들여지는 이면의 적나라한 실체를 까발리는 것. 영감님 영화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잘난 주인공들은 그 모순 앞에서 당황하고, 스스로 예상치 못했던 결론 속으로 치달아 간다. 그 바닥에서 한 줌의 씁쓸한 진실이 걸러질 때까지. 그래봤자 고작 한 인간의 좁다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무슨 CIA니 FBI니 외계인의 거대 음모를 밝혀내는 것보다 백 만배는 더 재미있다. 내 안의 펼쳐진 우주의 신비를 탐험하게 해 주고 그 지평을 넓힐 기회를 주는 진정한 어드벤쳐 무비다.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는 정말 간만에 부부일기나 애니홀 계열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바르셀로나의 두 달간 자신을 어드벤처한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비키를 작업하기 위해 데려간 기타 신이 넘흐넘흐 좋았다. 깊어가는 여름 밤 바르셀로나. 오래된 건물의 베란다에 드문드문 둘러앉아 황홀한 기타 연주를 듣는다라. …휴우. 그 오감의 어택에 인생을 다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봤자 돌아갈 수 밖에 없지만. 영감님의 이야기에서 딱 하나, 달라진 부분은 바로 이 결론이었다.
박용하는 조승우, 김민정은 김혜수, 또 누구는 누구…타짜의 공식을 그대로 주식에 대입한 듯한 영화인데, 의외로 재밌었다. 영화 자체가 빼어났다기 보다는 영화가 건드리는 이야기가 한 번쯤 직간접으로 주식을 접해 본(당해 본?) 사람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려 자극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 가까이에서 들어봤던 말들, 쓰라린 경험들을 잘 비벼냈다.
그래도, 타짜보다는 한 수 아래다. 연기들도 조금씩들 어색하고. 특히 중심을 잡아줘야 할 김민정 캐릭터가 약했다. 고운 처자처럼만 보이고, 박용하에 맘 주는 부분도 너무 순진하시다. 좀 더 쎄게 하드코어로 밀어부쳐 줬어야 영화가 사는 건데. 명대사도 꽤 나오지만, 막말 한국어의 마법사 최동훈 감독에는 못 미친다.
돈과 욕망의 관계는 뻔하다. 그런데 알면서도 당하는 게 사람이다. 나는 예외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너무나 똑 같은 마음에 똑같이 처신하고 똑같이 당한다. 그걸 이용해 한 탕 헤쳐먹는 놈들의 작전 이야기는 범국민적으로 놀아난 대한민국 대표 재테크 주식을 더러운 한 면을 씁쓸히 곰씹게 한다.
# 기억나는 대사들
주식 시장에 그동안 꼬라 박은 수업료를 모았으면 그랜저 세 대는 뽑았겠다 – 현수
바닥인 줄 알고 사는 놈들 지하실 구경하게 될 겁니다 – 주식 살인마 우박사
대가리 딸려서 깡통찼단 소린 죽어도 안해요 – 현수
주식은 전쟁이야. 미사일 팡팡 쏘는데 달랑 총알하나 들고 달려는 개미들 – 증권 브로커
아무리 발악을 해도.. 안되는 놈은 안되는게 세상이구만.. 좆같네.. – 독가스 황종구
1920년대 LA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2009년 대한민국의 오늘이 낱낱이 들어있다. 어이없는 공권력의 횡포와 촛불집회, 그리고 연쇄살인과 사이코패스까지. 심지어 그 싸이코패스의 인권까지도. 현재 상태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는 다 모아놨다. 엉뚱한 아이를 찾아 준 경찰에 맞서는 엄마의 눈물겨운 투쟁 정도로 기대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니 가장 선명한 것은 사이코패스의 불가해한 행적. 지난 몇 주 쏟아지는 뉴스에 속수무책으로 시달렸던 탓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힘겨웠다. 어설픈 정의의 구현대신, 희망을 가장한 고문의 뫼비우스 띄를 이어가야 하는 남은 자의 비극에 가슴이 먹먹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죽음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모습에서 내 안의 감춰둔 공포를 대면했다. 닭장의 헐거운 틈을 찾아내는 생존에의 욕구가 가여웠다. 여유로이 썩쏘를 날리는 경찰의 표정에서 싸이코패스의 또 다른 얼굴을 봤다.
하지만 거기의 피켓집회는 변화를, 희망을 만들어 낸다. 오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수준은 80년 전 LA에도 못 미치는 것일까?
영화의 완성도니 이런 건 잘 모르겠다. 이 정도면 끝날 때가 됐는데 쯤에서 타협하지 않고 계속 밀어 부쳐 그 이상을 끌어내는 감독의 경지에 감탄할 기분도 아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선택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영화의 시작부에 A True Story라는 자막이 뜬다. 이 말의 정체는 영화가 전개될수록 더욱 소름끼친다. 현실은 언제나 픽션을 압도한다. 2009년 2월의 대한민국 역시, 그 현실을 살아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