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마이 변해간다고들,,,,변했다고들 한다.

나는 사실 이런 변화가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다.

어짜피 난

행복이나
잘 산다는 것 보다는
살아남는 것만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특별히 날리게 산 기억은 없어도
그렇다고 살아남지 못한 적도 없으니까.

근데 실은 그런 인생의 멋과 맛을 살려내 잘 굴러가는거,
그게 제일 잘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도가 트이려나?

걍 그렇다고.

이런 것도 좀 써놔보면 어떨까 싶어???? 누가 뭐랜다고….은근히 고품격 추구하는 경향도 없지 않으심 블로그에서만 ㅋㅋㅋ

2014 촤판 종료~ 사진 첫 매출 오예

NAVER LABS에서 열린 촤포토 제1회 사진전 <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오늘 모두 마쳤습니다. 총 61장의 사진을 판매하여, 40만 9천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장당 평균 6,700원, 내 사진을 팔아서 남긴 첫 매출입니다.
애초에 너그럽기 그지없는 홈어드밴티지의 이점을 끼고 진행한 짜치고 행사였지만, 입구를 점유하고 촤판을 벌여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내가 찍은 사진을 설명하고 팔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느끼는 사진의 가치와 대중(?)의 선택 사이의 엄연한 간극을 손으로 어루만지듯 구체적으로 느꼈고, 한편으로는 그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뭐 하나라도 돈이란 걸 받고 팔게 되니 사람을 보고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목과 관계는 결정적이었습니다. 온실 속 직딩의 pseudo 장사 경험이지만 앞으로 사진찍는 것 뿐만 아니라 일하는 데도 조금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고급진 액자나 걸린 장소의 아우라에 기대지 않고 이렇게 오가는 벽에 무심하게 붙여놓은 사진전의 방식이 꽤 마음에 듭니다. 보부상, 장똘뱅이이처럼 여기저기를 떠돌며 보따리 장수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펼쳐놓고 이 얘기 저 얘기 풀어놓는 게 재밌습니다. distributed & disruptive… 면대면 오프라인 컨텐츠 유통의 어떤 소박한 포맷을 궁리해봅니다.

무엇보다 내 사진을 돈 받고 파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한 해를 마치며 꼭 바랬던 소원 하나를 이루어 뿌듯합니다. 예전에는 내 책을 쓰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을 두 번이나 이뤄버려서(ㅋㅋ) 심심하던 차였습니다. 이젠 두 꿈을 결합해 사진책을 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다들 작은 꿈이라도 정하고, 소박한 형태로라도 직접 이루어보시길 바랍니다. 궁극의 무엇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구도자적 성취는 아니지만, 끝도 없는 인생길에 작은 점 하나를 찍는 재미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는 소중한 것이지요.
사진을 팔아주신 분, 또 보아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 오프라인으로 봐 주신 분도, 온라인으로 봐주신 분도 모두 똑같이 감사합니다. ‘본다는 것’의 깊은 의미를 생각합니다. 매출액 전액은 NAVER LABS 이름으로 기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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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나머지 반쪽을 셀프 리뷰함

나의 동료들의 한 해의 업무 성과를 리뷰해서 점수까지 달아 회사에 제출했다. 인센티브를 목전에 두고 돌파해야 할 셀프 밥값 정산, 직딩의 최고 레벨 미생의 순간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모임을 하고 와서 늦은 시간 사무실에 홀로 앉아 스탠드 불빛 아래 돌이켜 보는 한 해. 예기치 않게 발휘되는 밤의 매직은 소소한 미생이 한 순간이나마 성찰 가득한 전인격적 완생으로 변신한 듯 착각하게 하고, 매 년 반복되는 가혹한 평가 프로세스를 ‘진실의 순간’으로 승화시킨다.

재밌는 아니 당연한 사실은 업무에 투여한 시간에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밤들을 머리를 싸매고 사무실에서 죽때리며 아둥바둥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 해 내 업무에서는 감동적이라거나 아웃스탠딩한 성취를 꼽기 힘들다. 작년에 자신있게 내놓았던 성취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고, 더 빨리 버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과감히 뛰쳐나갔어야 하는 타이밍을 늦췄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쨌든 이렇게 업무 정리를 했고 교훈이 있었고 내년의 작전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제출하고 나니 뭔가 아쉽다. 이게 전부인가. 이 평가는 반쪽짜리다. 사무실과 업무 시간으로 제한하지 않고, 내 삶을 360도 전면적 총체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내 지난 1년의 의미를 바로 정리할 수 있다.

한 단계를 뛰어 넘은, 큰 변곡점들을 그린 한 해였다. 나 자신과 수없이 싸웠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운동 – 4점

지난 2월 생전 처음으로 근력 운동을 시작했고, 12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새로운 세상에 침투해 들어가기 위한 집중 물량공세로 한 주에 4~5번을 할 때도 있었고, 다사다난한 일정에 한 주에 한 번을 겨우 할 때도 있었고, 여행가서 아예 휴업을 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잠시 쉬긴 했을망정 아예 멈추지는 않았다. TBD, TBD…

안정이 된거라고?? 설마. 아직도 운동을 하러 가야 하면, 땅이 꺼지도록 한숨 푹~ 어디론가 도망가고만 싶다. 그럴 땐 “성공의 9할은 출석”이라고 했던 우디 알렌의 말을 읊조리며 일단 간다. 똑바로 서서 살포시 정신줄을 내려 놓고,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내가 정한 단계들의 첫번째 세트를 수행한다. 끝나면 또 그 다음 단계의 횟수와 시간을 채우는 거다. 쓰러지거나 내려놓고 싶은 마음과 싸우며. 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할까. 종종 끝이 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가 된한 기분으로.

“죽지 않은려고” 정말로 그 이유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각종 맨몸 운동을 꽤나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닥 스쿼트 2~300개 정도는 그냥 부담없이 ㅎㅎ 아직도 제일 힘든 건 플랭크다. “인생이 짧다고 느껴진다면, 플랭크를 해보라”라는 말이 있다. 30초, 1분이라는 시간을 영원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악마의 운동. 하지만, 아무 도구도 움직임도 없이 내 힘으로 내 몸을 지탱하는 단순한 자세의 유지만으로 전신의 근력을 키우는 이 운동의 원리와 결과가 더할 수 없이 우아하다.

허벅지는 근육이 붙어 탄탄해졌고, 체력에 자신감도 생겼으며, 일상생활의 여러 움직임들이 훨씬 편해졌다. 반면, 작년에 재미를 붙였던 유산소 운동(뜀박질)을 거의 못한 것, 그리고 커피와 달다구리 홀릭 지수가 극에 달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식이 (식단 조절이 아니라)를 곁들이지 못한 것이 아쉬운 포인트다.

드라마틱한 감량이나 꿀복근같은 건 못 했지지만, 큰 숙제처럼 미뤄뒀던 분야에 마침내 뛰어들어 개척을 실행한 점과 그 과정에서의 눈물겨운 노력을 인정해 기꺼이 4점을 준다. 내년엔 더 뛰고, 가능한 몸에 좋은 것들을 골라 먹어 보는 걸로. 지금 하는 건 그대로 다 해야 한다는 건 함정;

사진 – 4점

작년 DEVIEW를 기점으로 취미로 끼적였던 사진이 업무와 연결되는 경험을 했고, 전시는 아니지만 내가 만드는 서비스의 컨텐츠로 기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경험을 했다. 올해는 그 기조가 더욱 이어졌다. 랩스와 D2 마케팅이 본격화되며, 각종 행사에서 불려가 더 많은 곳에서 찍사로 활약하게 되었다. SNS 마케팅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 이미지컷으로도 쓰이고, 비록 분야에 특화된 학회지지만 지면 광고에도 쓰이게 되었다. ‘쓰임새가 있는 사진’을 찍게 되었다.

NAVER LABS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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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오스. 라오스에서 드디어 나는 내가 정말로 찍고 싶었던 피사체를 만나는 행운을 경험했다. 부족함 없이 넘치는 광량과 튀어나올 듯한 동남아풍의 색채, 그리고 사람들. 문화나 예의범절 같은 것으로 가리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 카메라를 들이댄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 이 3종 셋트의 결합은 찍사에게는 천국을 선사했고,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셔터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새로 산 카메라에 적응 못 해 부들부들 떨었던 순간들도 있다. 옹고집인지 사서 고생인지 모를, 하지마 어떤 결과물들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MF의 한계.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지는 순간들을 눈 앞에 두고, 어찌해도 흐릿하기만 한 뷰파를 초집중으로 들여다보며 제발 내가 이 장면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까지 해 가며. 절박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통했던가. 그 결과물로 난 작은 사진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진전 보다 더 하고 싶은건, 이 사진 속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찍었던 사진을 모두 사람 숫자대로 뽑아서 가져가 이 사람들을 찾아서 다시 그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돌려주고 싶다. 그리고 스쳐지나간 그들의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여주고 쥐어주고 싶다. 액정만 보여줘도 가득히 환해지던 그들의 표정을 다시 보고 싶다. 그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여행자로서 열린 마음과 찍사로서의 절실했던 마음이 콜라보해 잡아냈던 살아있는 순간들. 기꺼이 4점을 준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눈 앞에 스쳐지나가는 순간 포착을 넘어선 피사체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다. 눈에 띈다거나 신기해서가 아니라 아니라 그 관심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셔터를 누르게 되기를 바란다. 눈에 띄는 피사체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 유일무이한 고유함을 가진 대상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그래야 진짜 순간을 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순간에 스토리가 더해질 것이고, 그 스토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5점의 조건이다.

4점과 5점의 간극은 결정적이다. 3점과 4점의 간극보다 훨씬 더.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다른 과정으로 찍어야 한다. 그렇게 찍고 싶다. 2015년에는.

유흥 – 4점

올해서야 비로소 고기 맛을 봤다고나 할까. 한 단계 이상 레벨 업한 것이 분명하다. 왠만한 패턴은 모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벽에 부딪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척 무척 놀랍고 황홀하고 뜨거운 순간들이 있었다. 잊지 못할 것이다. 그냥 막연한 가능성을 꿈꾸며 억지로 끌려가는 심정이었던 작년과는 많이 달랐다. 주저없는 4점. 내년에는 나만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조금은 가져보고 싶다. 그 전에 기존의 스타일부터 습득해야겠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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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했던 세 분야에 얼마나 노력했나. 일주일을 쪼개 쪼개 하루씩을 간신히 돌려 막기하며 보냈던 한 해. 하지만 포기한 것들도 있다. 올해를 기점으로 난 보다 확실하게 거의 모든 연락수단을 확인하지 않게 되었다. 카톡은 아예 안 보고, 안 읽은 SMS도 수 백개가 쌓여있다. 지메일은 오피셜리 쓰레기통을 선언했다. 웃긴 건 실험 결과 그래도 아무 문제 안 생긴다는 것이다. 그게 진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가까웠던 사람들을 자주 못 보는 것은 아쉽다. 다들 잘 살고 있으리라 믿을 뿐이다. 자랑질쟁이 페북이 전해주는 딱 그만큼씩은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월호와 신해철과 이런 세상과 기타 등등 때문에 슬퍼하면서도, 점점 더 미쳐가는 나라에 울분을 토하면서도 어떻게든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 이상 이런 일들에도 더 많이 관심을 보내고 행동할 수 없게 되었다. 깊은 패배감과 무력감을 인정한다. 그 전의 5년에 너무나 지쳐버렸음을 인정한다. 빛이 보이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 반대급부로 방향을 틀어 ‘개인’의 삶 속으로 더욱 깊숙히 코쿠닝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나이. 올해 본격적으로 내 나이를 인정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의연하기란 각오나 예상보다 힘들다. 닥치지 않고 알 수 있는 게 없음을 다시금 실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무수한 가능성의 연속이다.

다시 봐도 일이 좀 아쉬웠네…그렇게 일에 매달렸는데도 ㅠ 점프 업 해야 했는데. 아니면 한없이 뒷걸음질 하게 되는 나이다. 한 해 한 해 나이값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어쨌든 꽤 멋진 순간들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평가해보면 초아님은 승진 요건에 부합합니다. 한 살 더 먹어도 좋습니다!!! 인정 ^^ (대충 마무리 ㅎㅎㅎㅎ )

촤포토 첫 번째 사진전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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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도 도록도 없고, 포스터는 자작에
가격표는 사는 사람 맘대로 매겨 붙이는 포스트잇이지만
내가 몸담은 곳의 문화를 상징하는 뜻깊은 공간에서 첫 번째 사진전을 열게 되었다.

* 장소 : NAVER LABS 입구
* 기간 : 2014. 12.18(Thu)~ 30(Tue)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일이었다.

이 소중한 꿈을 하필이면 이런 미쳐돌아가는 시국에 펼치게 될 줄이야.
이런 세상에 사진이, 라오스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에.
그와는 전혀 동떨어진 또 다른 매트릭스의 치열한 어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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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입구에 서서 양면 테이프로 비뚤비뚤 벽에 붙여진 내 사진들을 바라본다.
여기서도 거기서도, 이 사진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없다.
당신에게 이 사진들은 어떤 의미일까.
답은 없고 사진만이 덩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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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계속 바라본다.
비바람 속에 흔들리는 미약한 작은 촛불을 양 손으로 둥글게 감싸듯이.
어떻게든 계속 존재해 나가면서, 어떤 의미가 생기기를 바라면서.
더 정확히는, 어떤 의미가 생길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궁리해보면서.

온 세상을 밝히려함이 아니라
아무도 기사로 내 주지 않는, 시위를 하지도, 고공 농성을 벌여주지도 않는
내 마음때문에.

혹시나 당신에게 닿을지도 모르는,
그래서 한 점 위안이든 공감이든 발견이든 뭔가 될지도 모를 그 마음때문에.

3루타, 홈런은 못 치더라도
번트로라도, 불쌍하게 데드볼 몸빵으로라도 일단 무조건 진루해보자.
그러다보면 득점을 하고, 또 타석에 오를 기회가 생기고 그때는 안타를 칠 수 있을 지도 몰라.

신통한 라오스.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잠시나마 나에게 진짜 미소를 찾게 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
이렇게 첫 번째 사진전까지 열게 해 주었다.
역시 깊은 마음이 발휘되어야 어디엔가 닿게 되는 걸까.

어쨌든 새로운 숙제를 안은 채로 올해 사진 농사는 이걸로 마무리~
사진이라는 분야에서는 한 뼘…아니 한 뼘 반 더 성장하고
전시회 소원도 풀고 꽤 의미있는 여러 성취들을 한 해 같아서 보람지다.
최소한 그냥 저냥 가버린 한 해 같지는 않다.

두 번째는 열린 공간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야지.
숙제들고 또 걸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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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집에도 사진 좀 올려놔야지…맨날 이웃많다고 남의 집에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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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할정도로 급하게 사그라든 더위 덕분에 가을이 제법 길었는데, 정작 작년같은 깊은 아름다움을 찾지 못했다. 가을의 문제는 아닐거고, 딴 데 정신팔린 내 탓이다. 하지만, 나에게 지난 가을은 그랬다. 가을의 초입에 내 품에 안긴 K-3 + Sigma 16-35도 그렇게 제대로 진가를 발휘 못하고 이렇게 몇 장의 추억을 남긴 채 나를 떠나갔다.

어느 계절이든 상관없이 해질무렵의 아름다움은 늘 나를 매혹시킨다. 더 이상 저항못하고 어둑함에 묻어들기 시작하는 아스라한 나뭇가지와 잎새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저물어가는 빛 속에서 가까스로 발하는 퇴색된 컬러감. 마침 탄천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내가 애착하는 풍경 속을 헤메고 다녔던, 11월 어느 금요일 오후 땡땡이의 기억 ㅎㅎㅎ

돌아오는 길 from 라오스

한 달이 지났어. 가득했던 ‘라오스’가 이제서야 비로소 잦아들어. 서울의 공기가 더 이상 싸늘하게 느껴지지 않고, 도시의 소음에 적막함이라는 수식이 떨어져 나갔어. 몸과 마음이 둘 다 비로소 원래 자리로 돌아왔네. 한 달 만에야. 9일의 라오스 여행이 끝난 순간부터 시작된, 그 자체로 짧지 않은 여정이었어. 갈 때는 고작 몇 시간의 비행이었는데, 돌아오는 데는 한 달이 넘게 걸렸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떠나는 일도 비슷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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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여행이였어. 16년 전 떠났던 첫 번째 태국 여행에 비견할 만 했지. 전혀 기대도 정보도 없이 간 라오스. 전 날까지 DEVIEW하고 정신줄 끊긴 상태에서 다음 날 아침 허겁지겁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야말로 비행기표와 카메라만 들고 떠난 여행이었어. 숙소도 교통도 액티비티도 아무 정보도 사전 예약도 없이 그 흔한 가이드북 하나 안 들고. 참으로 패기있는 나다. ㅋㅋㅋ

게다가 이 좋은 한국의 가을 날씨를 두고 우기에 살을 태우는 무더위라는 라오스 배낭 여행을. 도당체 지금 당신이 그런 여행을 할 나이인가. 내 인생 마지막 헝그리 여행이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럭셔리한 휴양 컨셉이리…동남아는 또 왠말이더냐. 파리, 바르셀로나, 피렌체 등등은 대체 언제 갈텐가. 순간의 돌발 선택에 방향없는 짜증을 내며 나조차 종잡을 수 없는 감정으로 출발. 게다가, 표를 잘 못 끊어 하루에 서울-인천-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2번을 경유하며 4번의 입출국 수속;; 동남아 4개국을 순방하는 황당한 시작이었지.

하지만, 왓타이 공항에 내려 노련?하게 택시를 피해, 한참을 걸어나와 뚝뚝을 흥정해 잡아타고 비엔티엔 밤거리로 들어가는 순간, 쉴새없이 철커덩 거리는 뚝뚝의 승차감, 훅하고 몰려드는 무겁고 뜨끈한 공기와 이에 반응해 바로 이마와 등에 맺히기 시작하는 송글송글한 땀, 높아지는 몸과 마음의 온도, 덮치듯 밀려오는 시끄러운 엔진들의 소음, 코를 찌르는 싸구려 가솔린 냄새, 작은 오토바이에 2~3명씩 뒤엉켜 탄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살아있는 표정.

아, 처음 닿은 공간에서 원류에 합쳐진 듯한 편안함이 밀려왔어. 와야할 곳에 제대로 찾아 왔다는 걸 온 몸이 느끼는거야. 야! 이건 당첨이다. 대충 찍었는데 로또를 맞은거야.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9일 내내 늘 웃고 있었어. 상황을 살피며 뺨의 근육을 뒤틀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그런 거 말고. 마음을 내려놓고 멍하니 있으면 심장에서부터, 호흡에서부터 퍼져나와 혈관을 타고 온몸을 흘러 입가에 까지 다다르는 그런 웃음. 감염된 거다. 라오스 바이러스에. 없음이 있음이 되어버린 내가, 그것이 내공이라 믿었던 내가,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가르지 않는 무개념 사람들 속에서 무장해제 된거야. 그래봐야 고작 9일. 라오스의 백 만분의 일도 못 봤을테고, 내가 본 것의 천 분의 일도 못 찍었고, 찍은 것 중엔 십 분의 일도 못 건졌지만 < 이상한 라오스 나라의 정초아> 앨범은 잊지 못할 장면들로 가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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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라오스의 귀요미들
* 애나 어른이나 착 달라 붙어, 서로를 끔찍히 돌보는 모습들
*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공동체 속에서 행복한 사람들
* 경계를 가르지 않으므로, 희박해보였는 소유의 개념
* 어디가든 한 컵 가득히 따라 권해 주던 Beer Lao
* 올라가야할 목적지를 특정하지 않은 이들이 가진 여유
* 차원이 다른 흥의 신세계 Okpansa
* easy come, easy go 뜨거운 나라 사람들의 심하게 쿨한 태도

난 말이야. 이게 진짜 럭셔리 여행이라고 생각해. 생각을 해봤어. 내가 보고 느낀 것, 내 감정에 생긴 일들, 주고 받았던 웃음들, 그 웃음이 내 마음에 한 일들…이런 걸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그건 도저히 가능하지가 않아. 바꿀 수가 없어. 몇 백만원? 몇 천만원? 몇 억?? 난 너무 많이 받고 왔다. 아름다운 것들을, 진짜인 것들을. 내 감정이 목말라하던 것들을.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가 않은 여행이었어.

하지만 왜? 왜 이렇게까지. 지난 한 달간 여러 각도에서 생각의 쿼리를 던져봤어. 여행 기간 중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생겼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오즈의 마법사를 여러 번 떠올렸어. 난 계속 걸었고, 걸어가다 보면 누군가를 만났고, 어떤 일이 생겼어. 그 순간에 나에게 필요한 것을 가진 사람이, 내가 해야 할 경험을 하게 해줬어.

하지만 더 신기한 건 떠남이었어. 그들은 제 역할을 하고는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냐, 그들이 떠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계속 그렇게 끊임없이 걷고 있을 뿐이었던가. 그렇게 또 조금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다른 사람이 나타났고 다른 일들이 생겼어. 그런 일들이 9일 동안 매일 매 순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봐. 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너 이름모를 마을로 건너가. 거기선 마을 축제가 펼쳐지고, 신나게 춤을 춰. 자기 집에 놀러오라는 라오스 애기들을 따라 가, 쓰러져 가는 촌동네 집에서 11명의 형제 자매가 같이 사는 집에서 비어 라오를 대접받고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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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털털털 해 지는 해 지는 시골길을 따라 언덕을 넘어오면, 이번엔 시골길 한 구석 평상에 자리를 펼쳐놓은 옆 동네 사람들이 나를 불러세워. 맥주 한 잔 하고 가라고. 거기선 또 알딸딸해져서 스무살짜리 라오스 청년에게 사랑 고백을 받는다. 아이고 의미없다고? 근데 그 뜬금없음이, 그 기분이, 그 분위기가, 그 편안함이 ‘어떤’ 다른 의미를 만든다는 걸 짧은 글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네. 고백에 취해서가 아니야. 그 따위 즉발적인 고백이 난무하고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웃음 속에 잦아드는 그런 세상이 좋았으.

예술 초짜가 루브르에 들어 서면 이런 느낌일까. 쏟아지는 경험량에 압도되고 쫓아가기 바빠 생각은 저 뒤에 제껴놓았지. 들고간 신형철의 <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비행기에 내려선 한 줄도 읽지 못했어. 눈 앞의 현실을 프로세싱하느라 그런 섬세하고 복잡한 사고를 따라갈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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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비엥 폐활주로

낡은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바라본 쏟아질듯한 방비엥 폐활주로의 별들이 마음에 가득해서, 최고급 세공품같은 신형철의 문장이건만 펼쳐볼 틈이 없었다구. 내 속에 아직도 이런 게 있었나 싶은, 순해지고 착해지고 빛이 나던 마음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조금 정리가 되는 것 같아. 한 달이 지났으니까. 마음이 빛이 생기를 잃어가고, 나는 그냥 내 나이의 대한민국 직딩으로 돌아오는 거지. 천천히 내 주변을 돌아보면서. ‘

그러면서 느낀 것 하나. 유교사상이란 게 아직도 얼마나 이 나라에 지배적인가. 여긴 내 집이니까 조금 더 막 던져 보자면, 유교가 얼마나 이 나라를, 내 삶을 망쳐버렸냐 하는 거야. 동방예의지국이라며 예의와 체면, 서열과 편가르기, 윤리 도덕, 사대, 효도, 남존여비, 상명하복, 가부장 따위들이 세련된 사회 규범으로 정제를 거듭해 왔지. 그 레가시에 매몰되어 남의 눈치보고, 경계 짓고, 가진 자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느라 정작 인간이 가진 본연의 순연함, 순수함,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감정들을 잃어버린거야.

그런 벽들이 없으니까, 사람과 사람이 저렇게 거리낌없이 서로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가 있구나. 어린애와 청년과 아줌마와 할아버지가 한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농담따먹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구나. 가장 아름다움 춤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은 사람이 움직임이다.

펙킹오더를 따지지 않는 남자와 남자가 어울리는 건 참 멋진 그림이구나. 난 거대 건물에 끝도 없이 전시된 인류 최고의 예술품에 감상하듯 거리의, 거리에서 동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출물하는 다른 종의 인간들에게 감동하고 또 감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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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경에는 복잡한 규칙 대신 스킨쉽이 있어. 라오스에서 단 한 번도 유모차를 본 적이 없어. 비싸서 못 쓰는건가? 심지어 포대기도 몇 번 못봤어. 그냥 어른들이 애기들을 쌩으로 안거나 엎고 다녀. 그 밀착감이라니. 인간의 따뜻한 체온을 무한정 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참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애들이 또 다른 더 어린 애기들한테 그 온기를 거리낌없이 나누어 주는 거야. 내가 봤던 너무 놀랍고 예뻤던 그림들….

게다가 내 아이, 네 애기 이런 경계도 희박해. 애들을 동네에서 다들 같이 봐. 그리고 눈 앞의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아는 척 하고, 안고, 이뻐해.

물론 애기 자체는 한국도 이쁘지. 작은 모양과 갓 피어나 자리잡은 눈코입들. 근데 라오스에선 그냥 애기들이 애기들처럼 막 자유롭게 뛰어노니까 그게 좋았던 거야. 우리나라에서 어린애들은 늘 부모 옆에서 보호와 감시를 받잖아. 사유지에 속한 귀한 소유물로서. 근데 그 경계를 벗어나 마음껏 뛰노는 애기들은 진짜 예뻐. 소유가 아닌 존재가 뿜어내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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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것과 네 것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 비로소 라오스가 공산주의 국가라는 걸 떠올리게 됐어. 심지어 그것도 모르고 왔어;; 아 이런. 그런데 사는 걸 보니 미리 알고 오지 않았어도 냄새로 맡을 수 있었어. 공산주의란 게 아주아주 조금은 이런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 걸 지킬 수 있는 토대가 된건가. 그렇담 마르크스님에게 약간은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그냥 따라 주던 비어라오를 이해할 수 있었어. 왜 누구나 그냥 지나가는 나에게 이런 걸 베풀지? 왜 나한테 공짜 술을 먹으라고 하지? 왜 어디서나 같이 합석하라고 하지? 왜 집에 놀러오라고 하지? 왜 자고 가라고 하지? 아니…왜 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지???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런 거겠지. 이렇게 위험스러운 행동과 제안들이라니!! 내 직업의 80%는 이유를 찾는 일인데, 이 사람들에게서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어.

하지만, 그건 그들과 많이 다른, 출발부터 다르게 시작하고 다르게 만들어진 나라에서 태어나고 길러진 나의 프레임이었어. 그리고, 반복되는 제안과 호의들 그리고 그 결과와 그 과정에서의 나의 경험의 총체가 점점 내가 가진 프레임을 내려놓게 만들었어.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는 뭔가 다른 프레임이 있다. 그건 내가 가진 것과는 다르다. 그제서야 나 역시 웃을 수 있었어. 아무 이유없이 말이야. 사람이 사람에게 웃는 그 순간이 좋아서.

라오스가 좋았던 거? 난 예의와 도덕을 벗어던진 인간의 민낯의 아름다움을 본 거야. 관념에 훼손되지 않은 본연의 아름다움. 옥판사 전국 보트 대회 결승전 국가 최대 행사에서 북치는 남자가 북에 엎드려 자더라. 그런데도 아무도 안 깨워. 자기 차례 되니까 또 부시시 일어나 북치더라. 읏흥. 이럴 수도 있네. 어여쁜 처자가 길을 걷다 노인네가 들고가던 짐보따리 떨어뜨리니까 상황을 살피다 얼른 뛰어가 도와.

야~~부모에게 효도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아도 되고,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니 저렇게 젊은이와 아줌마, 노인들이 한 자리에 앉아서 즐겁게 농담따먹기 하면서 재미나게 수다떠는 구나. 세상 일이 이렇게 돌아갈 수도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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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어디서나, 도시든 시골이든 골목골목 모여앉을 한 평만 있으면 복붓이라도 한 듯 펼쳐지는 똑같은 모습이지만, 그건 도대체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풍경. 우린 다 끼리끼리지 않아. 비슷한 나이, 계급, 또 다시 그 안에서도 비슷한 높이들끼리 편갈라서 놀지 않아? 잘 생기고 예쁜 애들끼리, 비슷하게 사는 아줌마들끼리 …파편들의 사회. 서로가 서로에게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서로 할퀴어 대고. 기실 예의란 것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애정에서 시발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없어지고 지켜야할 규칙만 남아 사슬처럼, 그물처럼 일상을 옥죄는 거지.

조선이 건국하며 새로운 권력의 이념적 깃발이 필요해서 들여온 유교라는 사상에 물들기 전의 고려는 굉장히 활기차고 개방적인 나라가 아니었느냔 말이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는 남녀상열지사도 분분하고 만두 가게도, 절도, 우물도 흥하고. 외교도 활발하고. 중국을 대국으로 모시지 않고 자존감도 가지고. 그걸 학교 때는 국가, 민간, 종교의 총체적 부패라고 배웠지. 물론, 뭐 이건 좀 더 상세한 역사적 지식과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긴 해. 근데 고려에서 조선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지금으로 왔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계속 해보게 되는 거지. 뭔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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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에는 환경의 차이도 있을거야. 일년 내내 상온이라 돈없어도 어디서든 등붙이고 자면 되고. 공동체가 발달되서 아무리 못 벌어도 굶지는 않을 수 있고. 스님들께 음식바치는 탁발도 결국 스님들이 공양받은 음식들을 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기 위한 사회 안전망, 재분배 메카니즘인거지. 공산주의라 사유의 개념의 희박하고, 종교는 제 역할을 하고 있고. 다들 그 종교에 깊이 의탁하고. 무엇보다 모든 걸 결정하는 DNA부터가 다르잖아. 그런 세상과 우리 나라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잠깐 보고 남의 나라 이렇쿵 저렇쿵도 옳지 않아. 잘 알지도 못함서~~ 사람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진짜 그렇기만 하겠어!! 달의 반대편도 그렇기만 하겠냐고. 힝 => 이건 머리의 소리.

그래도 어쩐지 라오스는 그런 것 같아. 일단 난 라오스가 너무너무 좋아. 정작 난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살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그렇게 살고 싶으다 ㅠ) => 이건 마음의 소리 ㅎㅎㅎ

이런 걸 궁싯거리며 지난 한 달을 보냈고, 계속해서 겹쳐지던 두 개의 그림 중 한 쪽을 달래고 지워가며 아주 천천히 난 원래의 내 삶으로 돌아오게 된 거지. 짧지 않은 여정이었어. 여행이 끝나고도, 여행은 계속되기만 했지. 너를 사랑하고 돌아왔던 길도 꼭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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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제일 마음에 남는 사진

쓰고 나니 또 다시 그리워진다. 그 뜨거웠고 신기했고 설레였던 시간들.
다시 가야 하겠지.
가게 될 거다.
그게 몇 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또 가게 될 거야.
아직은 더 헝그리하게 다녀 보자. 배낭을 짊어지고, 카메라를 메고,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인간들을 만나보자.
다른 삶에 시선을 돌려보자. 더 넓혀보자. 이번엔 꽝시, 블루라군따윈 다 치우고 오롯이 삶을, 사람을 만나보자.
그리고 내가 세운 이 허접한 라오스에 관한 가설들을 실험하고 검증해보자.
다음 번엔 오토바이도 몰 수 있을까?? 내게 던지는 작고도 위험한 질문 ㅎㅎㅎ

끝으로 신.

Thank you, god. 그 어떤 여행 책자나 가이드, 트립 어드바이저 인터넷 서칭 보다 더 많은 것을 준비해 주신 분. 당신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나는 모르지만, 난 저 위에 있는 당신의 존재를 믿고, 당신이 나를 위해 내려준 그 넘치는 것들을 기꺼이 받고 감사합니다. And I will follow your calling, again and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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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Own Private LAOS

가슴은 터질 듯 하고
솟구쳐 오르는 말들은 무지 많으나…

일단 사진


MY OWN PRIVATE LAOS by CHOA Jung on Exposure

홍상수스러운 여름, 토요일 밤.

광화문 – 종3 – 인사동. 이 동네만 오면 종종 홍상수의 영화 한 장면같은 상황들이 연출된다. 2014년 8월 9일(토) 한 여름의 꿈같았던 저녁도 그러했다.

# 광화문

야만의 시대에 ‘당연’은 지난한 투쟁의 대상이 된다. 그동안 문명은 무엇을 쌓아왔던건가. 우리가 쌓아온 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다해도, 최소한의 당연은 공유해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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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 사람들이 저래야 해요? 선배는 무거운 얼굴로 광화문의 하늘을 올려다 본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는 귀척을 했고, 선배는 폼을 잡았다.

# 종3 횟집

아줌마가 연하 아저씨 홀리는 스킬이 정말 대단했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한 점 거침없고 명쾌한 대시였다. 명화 아래의 중년의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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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욱겨 죽겠단다… 이렇게라도 웃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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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웃음과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야외 테이블로 이동…
하자마자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남자 넷이 치렁치렁한 복장을 하고 마술처럼 등장해 기타 연주와 함께 떼창을 시작한다. 야외 테이블이 늘어선 허름한 종3 뒷골목을 알람브라 어디메쯤으로 돌연 변신시킨다. 음악의 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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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낙원상가 뒷골목이 황홀하게 물이 좋아서, 선배에게 내가 너무 강북을 무시했다며. 지나치게 강남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속죄한 순간 …패턴이 보이고, 패턴이 보이니 이유가 보인다. 태어나서 남자 쌍쌍이 지나가는 모습을 가장 많이 목격한 날~ 버스 몇 대에서 내린 분위기로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려간다. 스타일들은 죄다 청담동 코어 1%. 몸관리들도 어찌나 훌륭하신지 다들 봉긋봉긋. 안구 정화의 희열과 소수자(?!)의 비애가 교차했던 토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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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커피빈도 죄다 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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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귀퉁이엔 아직 내가 기억하는 낙원상가 뒷골목의 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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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인사동의 야심한 밤은 버스킹 아해들이 접수했다. 홍대에서나 보던 애들을 가게들이 문닫은 늦은 인사동 메인 스트릿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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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취기가 올라 맥주 한 잔을 더 하자던 선배는 길을 잃고 헤맨다. 골목 골목을 헤매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마치 동화처럼 술집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던 그룹이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반갑게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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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에 대한 걱정과 무기력한 현 상황에 대한 북받침. 그래도 조크하고 웃고 진저엘을 마신다. 집회 복장으로 요넥스 배드민터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오신 분을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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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안해룡 감독님
부디 감독님의 벨이 큰 소리로 울리기를….두 번 울리기를. 우리 모두에게 들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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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광화문으로

다시 종로까지 걸어왔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광화문 이순신 장군상 앞을 삼 천배 신도들의 검은 그림자가 줄지어 걷고 있었다. 맨 앞에 사람이 두드리는 목탁소리가 어둠에 잠긴 광화문 광장에 낭창하게 울려퍼졌다. “이건 정말 홍상수스러워요.”

선배는 유족들이 밤을 지새울 텐트로 넘어가고 난 세종로 주차장에 맡겨 놓았던 차를 몰고 그제서야 겨우 나의 밤 속으로 진입했다. 밤은 계속해서 깊어져만 갔다.

레퀴엠 포 어 꼬리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이규리 시인 < 특별한 일> 중에서 앞 부분

처음 차 안에서 신형철의 목소리로 이 시를 들었을 때, 가슴에 전압이 확 오르고 아주 잠깐이지만 숨이 멈추어졌어. 몇 번인가 다시 돌려들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감전의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어.

그러다 한참 지난 오늘 그 시를 다시 찾아 읽다가 갑자기 꽤 납득할 만한 이유가 떠올라서 이렇게 기록해 두려고 해.

아마 나도 그런 식의 최선을 했던 적이 있었
던가봐. 내 꼬리를 내가 자르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던 때가. 뛰기 시작하기 바로 전, 부디 출발을 포기할 만큼 정신을 잃은 건 아니기를 기도했던 것이 기억나. 참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지. 돌이켜보면 아찔했고, 결과적으론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생물학 교과서에 써 있는 것 처럼 잘려나간 꼬리가 다시 돋아나진 않았어. 잘라낸 부위에 아물어가긴 했지만, 새 꼬리가 나진 않았어. 꼬리 따위 없는 채로 살아가면 어때. 살았으면 됐지! 그렇게 안도의 숨을 쉬며 살아왔지.

그런데 그 날 시인이 알려 준거야. 근데 그 때 니 꼬리는 어땠는 지 아느냐고. 네가 뒤도 못 돌아보고, 아픈 줄도 모르고 그저 살기 위해 죽자고 도망가는 동안 꼬리는 발버둥 치며 이미 끝나버린 생의 마지막 투혼을 펼쳤노라고.

그러니, 최선을 다한 것은 살기 죽기로 달음질을 한 니가 아니라, 끝까지 꿈틀대며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 꼬리였다고. “힘들었나요? 하지만, 최선은 그런 게 아니예요.” 라고 시인이 정정해 준거야.

그 때 잘려나간 채로 나를 위해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던 꼬리는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았던 그 꼬리는
대체 무엇을 감당하고 있었던 걸까.

또 나는 무슨 작정으로 꼬리까지 단숨에 도려내고 그리 뒤도 안 돌아보고 내뺐던 것일까.

그리하여, 남은 몸은 떠나지 않는 애닲음을 짊어지고 가는 거구나. 이미 몸을 떠난 몸이 감당했던 생의 무게가 여전히 떠나지 않은 몸에 전이 중인 거로구나. 깊이가 재어지지 않는 우물같은 꼬리의 마음이.

생존의 본능이란 참 무자비한 것이다.
감전의 실체는 이 라쇼몽적 깨달음이었오.

꼬리여 꼬리여.
나에게 있었던, 나에게는 없을 꼬리여.

나는
기어이
그 강을
건넜습니다.

6월의 끝, 줄리언 반스

굶주린 상태가 되어 허겁지겁 줄리언 반스를 두 권 연거푸 읽어치웠다. 소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세이라 분류될 수 있을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주린 배에 제대로 씹지도 않은 쌀밥을 우겨넣듯, 음미보다는 정신줄 놓은 폭식이었다. 예상치 못한 허기가 치솟아 의자에 박혀있는 쇠못이라도 뽑아 씹어먹을 지경이었다.

<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 내 말 좀 들어봐> 을 까마득히 오래 전에 책장에 꼽아놓고도, 결국 펼치지 못했던 줄리언 반스와 2014년 6월의 끝자락에 마침내 이렇게 급만남했다. 다 읽고 나서는 묘한 당혹감이 드리운다. 이런 날 책을 읽다니…이 좋은 날을. 놀러나 가지. 차라리 쌓인 일을 치우던가.

반스가 나빴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그보다는 날이 너무 좋았다. 1년 중 해질 무렵이 이렇게까지 좋은 때는 얼마 되지 않는다. 누리지 않음이 무책임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날이었다. 그런데도 기아는 그 어떤 조건에서도 생존을 최우선한다. 정서의 기아도 마찬가지다.

줄리언 반스.

영국 소설이 썩 맞지 않는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역시….부커상 수상에 대단한 반전 소설 베스트 셀러로 꼽히나보다. 그런데 나에겐 묘하게 코드가 맞지 않았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까지 왜 이리 저 멀리 에둘러야 하는 것인가. 나의 지적 능력도 심하게 의심받는 느낌이었다.

결정적으로 난 반전이라는 장치가 대체로 참 별로다. 한 방의 역전을 위한 기나긴 설정들? 왜??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거길래. 기억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뭐 그건 기본 상식 아니였어. 췟.

한편으론 번역체. 정서가 고팠던 나에게 이 번역체는 쥐약이었다. 아름답게 쓰여진 모국어가 그리워졌다. 번역 작가는 자기가 무슨 말을 옮기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했던걸까.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책을 펼치고 첫 장부터 이건 완전한 사기라고 생각했다. 저 제목말이다. 기구 매니아들의 무용담을 펼쳐놓는 도입부에선 사랑은 커녕 사랑의 냄새도 맡을 수가 없다. 원제는 Levels of LIfe. 그것 또한 모르겠다.

책을 던져버릴까 계속 읽을까 무지 고심하며 꾸역꾸역 책장을 넘겨갔는데.

100페이지쯤…제 3부 부터, 내가 읽고 싶었던 바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 난 이게 읽고 싶었다. 근데, 이 책 돈 주고 사서 읽은 사람들은 다 이거 읽고 싶었던 거 아니겠음??? 아내를 잃은 줄리언 반스의 비통한 고백.

이건 마치 전혀 상관없는 두 개의 책을 붙여놓은 것처럼. 솔직히 앞의 100페이지는 읽을 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었다. 무지막지한 정보량도 그렇거니와 대체 이 정보들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가늠도 안되고…그저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었는데.

100페이지 3부. 그로부터 약 100 페이지를 읽는 동안 점점 난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내가 사랑하는 그 곳으로. 오늘 같은 날 가고 싶었던 곳이다.

그래서 정말 오랫만에 술도 한 병 딸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술을 딸까도 고민도 많이했는데, 결국은 와인으로다가. 냉장고에 넣어둔 차디찬 와인은 뒷향따윈 전혀 없어 목으로 바로 넘어가는 도수 낮은 소주같았다. 왜 땄니…ㅎㅎㅎ

그래 이거지.

매우 집중해서 읽었고, 읽는 내내 조앤 디디온의 < 상실(The Year of Magical Thinking)> 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포인트가 조앤 디디온과 정확히 조응했다. “이것은 극복할 수 없다”

사람이 이래. 고통에서조차 순도를 바라지. 소비의 대상이 가짜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단히 말해서, 본전 생각. 책값, 시간, 들인 내 마음보다는 더 값나가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그들의 결론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줄리언 반스는 이 책을 아내를 잃은 지 꼭 5년만에 냈다. 5년이라니…세상에. 말도 안돼. 그리고 그게 앞으로 10년, 20년이 될 수도 있다니. 그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세상에 있을까. 하지만, 완벽한 상실의 지옥도 못가는 좀비의 연옥은 누가 어떻게 풀어내 줄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지상과 지옥 사이를 떠돌며 아직도 지가 죽은 줄 모르고 지상의 해피엔딩을 꿈꾸는 원혼은.

책을 덮고 나니 세상은 다시 어둠이었다. 낮게 날던 비행기 소리도, 실용음악학원의 뚱땅거리던 피아노 소리도, 놀이터 아이들의 깔깔거림도 모두 잦아들었다. 나를 조기퇴근시키고야 만 그 아름다웠던 해질녘의 풍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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