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프게니 키신 내한공연 – Mission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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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神을 만났다. 두 번째 만남.

클래식은 문외한이지만 그냥 보고, 직접 듣고 싶었다. 발레는 몰라도 강수진의 움직임을, 토슈즈를 신고 사뿐히 뛰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처럼. 그저 그 뿐이었다. 쇼팽이든 스크리아빈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그게 뭐든, 그건 한 인간이 자기 생의 거의 모든 것을 바친 결과물이니까. 이런 관점의 관람객에게, 퍼포먼스의 소소한 부침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승부나 대면이라기 보다는, 받아야 할 감동은 모두 미리 채웠고 남은 것은 인증정도인 좀 재미없는, 전폭적으로 치우친 태도니까^^;;

결혼도 하지 않고, 콩쿨도 나가지 않았다. 부모님과 6살에 만난 스승 칸토를 제외하면 거의 누구와도 접하지 않는 격리된 삶이라고 한다. 난 지극한 기계적 성실함이 자아내는, 오그라드는 감수성이 배제된 무심한 열정에 매혹된다. 그저 손가락이 망치인양 쳐두드리듯이 연주한 키신의 라깜빠넬라가 나에게는 최고인 이유다.

윤디리가 그렇게 좋다고들 한다. 그 빠른 속도에도 전혀 손상되지 않는 서정성이 놀랍다고들 한다. 막귀인 나에게도 느껴지는 선명한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연주는 너무 달았다. 너무도 섬세하고, 정교했고, 감정이 많았다. 그래서 내 미천한 개취로는 도저히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시드니 심포니의 지휘자로 등극한 아쉬케나지의 끼워팔기같은 느낌이었던 키신과의 첫 번째 만남. 아쉬케나지의 라흐마니노프로 젊음의 짧은 한 때를 누렸던 나에게는 뭔가 헛헛한 만남이었고, 메인 연주 한 곡으로 만난 키신은 두고두고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롯이 키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놀랐던 것은 내가 열광했던 그 키신이 아니었다는 것. 풍요롭고 서정충만하고. 내가 피상적으로 이해한 기계적, 구도자적, 자폐적 연주가 전혀 아니었다. 당근!!! 그런 어마어마한 천재, 대가가 이런 문외한의 이해 영역에 머물러 있을 리가.

그런데도 감동스럽더라. 전혀 알거나 범접할 수 없는 순정의 알고리즘을, 수식 자체는 아니라더라도 최소한 그 최초의 발상이나 아이디어, 세계관을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주는 누구처럼. 대가는 그렇더라. 첨 듣는 스크리아빈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줄이야. 난해할 거라 지레 짐작했었는데, 그저 아름다웠다. 물론, 내내 내가 보고 듣고자 했던 것은 기계적 성실함뿐이었지만.

어쨌든 이리하여, 내가 가장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세 명의 아티스트를 모두 영접했다. 인생의 중요한 미션을 간신히 마친 느낌? ㅎㅎ 키스 자렛, 강수진, 키신. 모두 K를 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키신은 10대, 키스 자렛과 강수진은 20대 초반에 만났다. 세 사람에게는 모두 대번에 사로잡혔었다. 그 때는 그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아주 머나먼 꿈이었다. 그들을 너무나 먼 세계에서 왔고, 그들을 실제로 만날 수도 있다는 상상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 다른 세상의 도장이 찍혀져 밀봉된 음반과 영상 속에서만 간신히 접선할 수 있는 별에서 온 그대들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고작 돈 얼마를 내고 이룰 수 있는 쉬운 꿈이 아니었는데, 살다보니 그렇게도 될 날도 맞이하고 있다.

그냥 살면서 한 번쯤 이들 세 사람을 내 눈, 내 귀로 듣고 봤으니 어느 정도는 됐다 싶으다. 에릭 클랩튼 포함하면 네 명~

올해는 강수진을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고. 자렛 옹과 키신은 몇 번은 더 올 것 같구. 쫌 넓혀보면, 약간 다른 기분으로 곤잘로 루발까바 정도? (요새 모하심??) 달달마왕 곤잘로님은 반드시 남자와 함께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교과서적인 구상 정도만. 마이클 잭슨은 갔고, 김현식 유재하도 갔으니 별로 욕심나는 인간도 없다. 문명진 또 볼 거구, 장국영은 갔고.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쳇 베이커… 근데 죽은 사람들만 그리워하고 있기엔 너무 좋은 봄날이다.

방에 음악을 틀어놔야겠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음악을.

키스 날리는 키신 ~ 걷는거 땀닦는거 웃는 거 인사하는 거. 피아노 치는 거 빼고 죄다 어색어색. 그래서 더 좋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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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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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es24.com/24/Goods/11935043?Acode=101

경 축! 빰빠라라밤…

내가 쓴 한창민 작가의 < 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 리뷰가 YES24 주간 우수작에 선정이 되었당!
좋은 책을 읽고 그냥 느낀대로만 발로 끼적끼적 썼을 뿐인데, 이런 경사가 ㅋㅋㅋ (으쓱으쓱)

오랜 벗이 낸 멋진 책에 한 마디를 얹을 수 있고,
그 한 마디가 또 작지만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선순환의 주고받음이 기쁘고
상품으로 YES 24 상품권 3만원을 받아서 더 기쁘다.
글써서 돈 벌 때가 젤로 기분이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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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런 사진책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진을 펼쳐놓고 편하게 얘기하는 듯 하지만, 섬세하게 세공한 듯 편집된 사진이며 말이며 작가가 뿜어내는 감각의 내공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그 감각이 스마트폰이라는 열악한 사진 장비를 만나, 비루한 일상의 순간을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찰나의 순간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 드라마틱했다.

거창한 출사도, 고가의 장비도 없이, 그 흔한 라이트룸과 스트로보 하나 없이, 달랑 스마트폰 하나를 들고, 이런 멋진 순간들을 포착해 내다니. 대체 어떻게?!! 평소에 인스타그램에서 작가의 사진을 보며, 어떤 눈을 가졌기에, 무슨 비법을 숨기고 있기에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그 비밀을 조금은 엿본 느낌이다. 하지만, 알아도 따라하지 못하는 게 전략이라 했던가. 비법을 전수를 받고 나니 오히려 숙제가 더욱 어려워진다.

옛날식 고무 다라에 놓인 흰 플라스틱 대야를 찍어놓고 ‘다라이_달아이’라고 이름 붙인 센스며, 낭창하게 흐드러진 장미를 여왕폐하라 부르며 제멋대로 사진 찍기를 허락받는 능청스러움, 철거를 앞둔 빈집을 다시 찾아 무력함과 덧없음에 비감을 느끼는 작가의 다채로운 성정에 매료된다.

콩국수에 방울토마토를 얹어 ‘콩국수_마우스’라며 찍어놓고 ‘국물까지 다 들이마시고 방울 토마토로 입가심을 하니 깔끔했다.’는 마무리에서 어느 무더운 여름날, 북촌을 쏘다니며 제 철의 맛과 멋을 누리는 느긋한 한량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SNS 예찬에 이르면 문득 시간을 뛰어 최첨단의 ‘지금’을 달리기도 한다.

풀떼기를 찍어놓고 대뜸 추사의 향조암란에 헌정한다거나 성탄 전야에 카페에 혼자 앉아있는 흑인 남자에게서 에드워드 호퍼를 짚어내는 자유분방한 연상. 북촌의 평범한 담벼락과 배치한 오규원의 시와 소설가 윤후명, 영화감독 허진호 등 문화 예술계 인사들과의 인연,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 사랑방 ‘평화만들기’의 유혜심 대표가 걸어둔 ‘각선_미인’을 틈만 나면 카페의 남자 손님들이 달라고 떼쓴다는 에피소드 등. 평범하다는 남자가 무심히 풀어놓는 이야기에는 전방위 문화 예술 코드가 숨가쁘게 쏟아진다. 그런데도, 스마트폰만 들고 있으면 나도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평범한 일상인으로 말한다. 힘주어 거창하거나 인상쓰며 심각하지 않다. 크롭된 사진의 화질에 안타까워 하면서도, 그래도 찍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달래는 수수한 낙관이나, 잘 모르는 것은 모른다며 좀 더 배워야겠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대목에서 그와 내가 그렇게 다르지만도 않음을 실감한다. 우연히 찍힌 걸인과 다음에 만나면 소주 한 잔 걸치며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말에는 마음에 오래 배인 다정함이 묻어난다. 책 곳곳이 그렇다.

그렇게 다정하게 다가와 슬그머니 어깨를 두드리며 사진을 찍어보라고, 또 뽑아보라고 부추킨다. 예술가의 드높은 자의식이 아닌, 한 세상을 같이 살아 가는 동시대인의 언어로 꼬득인다. 우리, 거창하지 않게 ‘일상의 예술’을 해 보자고. 내 눈과 마음만 열어 두면, 날마다의 일상이 예술이 되고, 또 그 예술이 일상이 되는 거라고.

스마트폰 사진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깃발을 꼽은 라이징 스타의 작품집으로 읽어도 재미있고, 스마트폰 사진찍기의 따라하기식 교본으로 활용해도 유용하고. 사진 쌩초보이자 똑딱이조차 거부했던 귀차니스트 중년 남자의 인생 후반 반전 스토리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피카소의 그림같은 정체불명의 입체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오래 옆에 두고, 그 중 하나씩을 뽑아 새로운 책으로 다시 독해해가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이 책은 이태준의 < 무서록>, 김용준의 < 근원수필>을 잇는, 고전적 아취가 듬뿍 묻어나는 한 폭의 사진 수필로 읽힌다. 세상사는 멋과 풍류도 알고, 인간사의 이모저모를 꿰뚫어 보면서도 그저 껄껄껄 웃고 마는 눈 밝은 한 사내가 붓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난 대신 세상을 쳤다.

그 결과는 수묵의 담박함과는 거리가 먼, 세상 온갖 것들이 제멋대로 뒤섞여 뛰노는 요지경 난장이지만, 스마트폰 하나로 세심히 풍경들을 건져올린 사내의 글과 그림에는 빠르고 거칠게 달려가는 요즘 세상에서 맡기 힘든 그윽한 난향이 풍겨난다.

응답했다 1994 – The End of the End

결국은 나레기 커플이었다. 이로써, 여주는 남주와 연결된다는 드라마 절대불변의 원칙은 또 한 번 입증됐다. 전세비 첫사랑 디스카운트에 치킨셔틀까지 담당한 칠봉이는 응사가 낳은 최대의 호구로 떠오랐다. 칠봉파들의 분노는 서버가 터트릴 기세로 달아올랐고… 그걸 또 꾿이 각종 검색어로 찾아보며 낄낄거렸다. 이런 시대에 잠깐이나마 그런 주제로 분노하고, 그 분노를 약올리며 빙그레 웃음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쓰레기냐, 칠봉이냐. 끝까지 궁금했었다. 그렇게 무려 20회, 10주, 두달 반 동안이나 사람 맘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연장전 시작하자마자 미친 듯이 골문으로 질주해서 30m 중거리 슛으로 골든골을 터트리듯, 작가님들은 21회가 시작되자마자 화끈하게 결론을 펼쳐제껴버리셨다. 그리고, 남은 시간동안 승자보다는 패자를 충분히 보듬고, 위로하고, 배려하고 짝까지 지어주었다. 좋으신 작가님들이시다.

결론은, 너무도 당연한 사랑의 힘이었다. 서로를 사랑했고,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남았다. 21회가 끝난 이 순간, 나에게 이 드라마의 정점은 최종회가 아닌 20회 마지막 칠봉이의 독백이다. 외면당한 것도, 차인 것도 아닌 떠나기를 스스로 결심한 사람의 마음은 이루어진 연인의 사랑 고백보다 더 묵직하게 가슴을 울린다.

‘끝날 때까진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끝이 없는 게임이라면 스스로 끝을 결정해야 한다. 1만 시간의 가슴앓이에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 가슴을 내려놓아야한다. 끝을 시작해야 한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요기 베라가 했다는 이 말은 응사 중간에도 한 번 나오지만, 페북이나 트위터의 각종 인용에서도 많이 보인다. 그래도 될만한, 참 멋진말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한 개의 명언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많다. 그런 순간의 빈 괄호를 위 대사가 채워주고 있다.

하지만, 놓은 이유가 끝이 없어서겠냐. 끝이 없는 게임이 세상 천지에 어댔대. 계산기는 다 두드려졌고, 어짜피 끝은 난 게임인것을. 나정이는 쓰오빠없으면 웃지도 몬해야.

그래도, 그 계산이 다 끝났어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기에 ‘끝이 없는 게임’이다. 다 알고도 멈추지 않는 내 마음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잡겠다는 결심. 시속 200km로 달리는 쌩쌩한 페라리를 폐차해야된다고. 그 멀쩡하고 멋진 것을. 어디로도 가지 않고 그저 뱅글뱅글 돌고 있는 미친 질주의 서킷에 들어와 있는 너를 풀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나도.

그런 순간에 서 본적이 있다면, 이 ‘끝의 시작’은 큰 위로가 되었으리라. 끝은 점이 아니다. 끝은 생각보다 길어서, 시작도 있고 중간도 있다. 하지만, 또 끝도 있다. 끝의 끝까지가는 길은 길고 아프고 힘들지만, 세상의 여느 다른 것처럼 결국은 끝도 끝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 끝의 끝에는 또 다른 시작의 시작이 있다.

무기력하게 끝을 당하지 않고, 스스로 끝을 시작하여 천신만고끝에 끝의 끝에 도착해 새로운 시작의 시작에 서게 된 칠봉이를 보며, 그것이 나의 2013년의 끝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시작한 끝이 이제서야 끝을 맺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대접받으며. 드라마 덕이다.

그래서 내 마음도 그들의 1994에 한껏 응답했다.

“끝에 끝을 내고, 새로운 길을 달려나가자.”

아직도 마음에는 끝을 내기 싫어 달렸던 길이 보인다. 끝이 있는데, 달리고 있을 때는 끝이 없는 것 같았던 길이다. 응사 1994를 보며 그 길을 다시 달렸다. 오로지 내 것인 것만 같았던 음악들이 까발려지듯 반복되며 시껍하게 만들었고, 잊으려했던 순간들이 접신 무당이 죽은 남편의 말투를 따라하듯 생생하게 묘사됐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 웃고 울고 사랑했다. 어쩐지 응사를 보며, 과거와 한판 찐한 푸닥거리를 한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비로소 끝이 난 것 같다.

다행히 드라마는 모두 첫사랑과 이루어진다. 드라마는 여주남주의 법칙은 지켜냈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첫사랑 불변의 법칙은 와장창 깨뜨려버렸다. 매우 비현실적인 드라마에서 나는 어떻게 그렇게 생생한 과거를 봤을까.

그 이유는 영화 < 건축학 개론> 포스터에 적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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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썅년이었고 호구였다. 썅년이어서 미안했다. 호구였어도 괜찮다. 너와 나만은, 나정이 욕하지 말고, 칠봉이 짠해하지 말자.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이 청춘이었다면, 그 속에 내가 있고 너가 있었다면, 그것으로 okay.

끝의 끝을 지나고 나면, 그래서 공식적으로 그 시간이 ‘추억의 상자’에 담긴 후라면 그게 뭐였든, 그건 이제 남은 생을 반짝거리게 해줄 보석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아닐테니. 이 이상한 세상에서 그런 거 한 줌은 어디 마음 한 구석에 숨기고 있어야 버티지 않겠니.

그러니, 이젠 상자에 담는다.
뚜껑도 덮어둘께. 가끔 열어보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같이 웃고, 울고, 사랑했던
너와 나의 시간들.

끝의 끝.
The End of the End.

2013.10.27(일) 제주여행 DAY 4 – final

  • 애월 한담 산책로
  • 방주교회
  • 오름
  • 다랑쉬 마을
  • 오설록 티하우스
  • 메종 블뢰
  • 봄날의 아침

    햇빛을 받으면 더욱 예뻐지는
    알록달록 기분 좋아지는 색깔들.

    쥔장님의 감각이다.

    애월애담 산책로 시작점이자,
    너른 서쪽 바다를 앞마당에 낀 별 다섯개 최적의 입지.

    봄날의 시그니처 거대 커피잔.
    “당신의 봄날은 봄날에서부터”

    일어나자마자 설렁설렁 카메라 끼고
    서해를 낀 애월한담 산책로를 걸어본다.

    애월은 워낙 유명한 해안 드라이브 코스.
    하지만, 애월~ 곽지해수욕장으로 이어진 1.5 km의 산책로를 더욱 강추.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한 정취.

    특히, 인적드문 아침에는 더욱
    어제밤에 봄날 파티에 이어 숙소 선택의 탁월함에 스스로 뿌듯~

    왼쪽은 악어바위
    ‘바다에서 악어를 보았다고 하면 양치기 소년이 되겠지’

    오른쪽은 붉은 고래
    ‘나는 보름에 한 번 붉은 고래를 만나는 사치를 즐긴다’

    아침 공기 마시며, 천천히 해가 뜨는 걸 느끼며
    잘 가꾸어질 길을 조용조용 걸으며
    빠듯했던 지난 4일의 여정을 돌아본다.

    나같은 늦잠형 인간에게 아침 산책/산행이란 게 정말 생뚱맞은 행위이지만
    4일을 반복하다 보니 그것도 익숙해진 듯~

    인간이란 동물의 싱기로움. 결국 적응하고 만다.
    있는 것에도, 없는 것에도.

    어느새 여명에 잠겨있던 에머랄드 빛 바다가 제 색을 드러내고.

    숙소로 귀환.
    갓 내린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쏠로부대도 있고.

    게하의 숙소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집단 취침제.
    2층 침대로 배정을 받으면 오르락 내리락이 더 귀찮아지고.
    화장실, 샤워실을 같이 써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하룻밤 숙박비 2~2.5만에 더 무엇을 바라리오.
    게다가 여행자들과의 만남~
    11시가 되면 대부분은 강제 소등이므로, 잡생각으로 늦은밤까지 뒤척일 필요도 없음.

    조식을 위해 봄날 카페로 모여든 어제밤 맥주 파티의 동지들.

    크로크무슈 + 아메리카노 한잔.
    별 돈 드는 재료 추가 없이도, ‘크로크 무슈’라고 하니
    그냥 식빵 샌드위치 보다는 훨씬 있어보인다.

    쥔장님이 디자인 출신이라는 데, 이런 감각이 곳곳에 배어있다.
    울 회사 디자이너들고 생각나고 ㅋㅋ

    밥 먹고, 어제 맥파의 동지들이자 귀요미 퍼레이드
    쥔들은 사진 찾아가세용~~ ㅋㅋㅋ

    우우 ~대 반전. 어제의 쭈글이 모태쏠로님께서
    아침빛을 받아 이렇게 대변신하셨다!!!

    이렇게 멋지신데 대체 왜 쏠로임???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그냥 ㅋㅋㅋ

    제주 여행 베스트 컷. 그냥 이모 미소 지어진다.
    바탕화면에 깔아놓을까 고민.

    귀요미들을 두고,
    돌아가지 않는 타이어를 굴려 오늘의 행선지로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다.

    차키 시동 걸어놓고 한참을 멍하니~ ㅋㅋㅋ

    사실 오늘은 딱히 가고 싶은데도 없는데

    일단 첫날 SUM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방주교회
    같이 묵은 분께 그렇게나 좋다고 꼭 들어보라는 강추를 받았었다.

    영혼없는 인증.

    그냥 그랬다. 건물 멋진데, 뭐 어쩌라고.
    다음 일정이 안 떠올라 한참을 차 안에서 고민 고민.

    부근의 아는 여행지라곤 오설록 티하우스밖에 없는데,
    너무 가기 싫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네비를 찍고 간다.

    방주 교회에 가면 누구나 찍는 반영샷

    가기 싫은 곳이 목적지 여서일까.
    자꾸 네비가 시키지 않은 곳으로 막 삐져나가서 헤매고 댕김.

    대나무숲이 마음을 끄는 마을이 있어 차세우고 돌아다니다 보니
    <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역시 4.3 항쟁의 아픈 기억이 새겨진 곳이고.

    어디가나 무덤과 4.3의 흔적들…

    신나게 뻥 뚫린 도로를 쌩쌩 달리다
    드넓은 차밭도 만나, 차를 멈춘다.

    오호라, 이것이 제주의 녹차밭이구랴.

    차 밭 옆에 ‘남송악(남소로기)’ 오름 표지판이 보인다.
    아싸 ~ 오설록 가기 싫은데, 오름이나 하나 더 올라 보자규.
    며칠간 단련된 튼튼해진 다리 덕에 오름만 나오면 반갑다.

    339m 의 낮은 오름.
    마침 아무도 없었고
    오르는 길은 그냥 평범한 동네 뒷산. (대신 소똥 잔뜩)

    하지만 올라보니 또 이런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에서 이어진 도로를 질주해서
    내가 왔다구!!

    그리고 문제의 오설록티하우스~

    녹차아이스크림과 녹차과자 인증!
    끝!!

    그냥 녹차 박물관이었음.

    오설록 옆에 있는 이니스프리 체험관.
    각종 제주 한정판 화장품도 있었고, 수제 비누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지만,
    나의 목적은 건조한 손에 핸드크림 샘플 바르고 가기였기때문에 찍고만 왔다.

    붕붕붕~ 곽지 해수욕장 해녀의 집으로 이동.
    마침 모든 재료가 다 떨어짐;;

    비주얼 좋으시고, 단정하시고, 친절하신 쥔장님께 사정사정해
    남은 밥과 재료를 모아 성게 미역국 득템!!

    마침 그날이 1박 2일에서 요 식당이 출연하는 날이라고 했다.
    시간 맞으면 같이 보고 가시라는데, 나야 뭐 비행기 시작이 정해져 있어.

    이래뵈도, 1박2일 출연자들이 먹은 유명한 성게 미역국~~~

    그리고 나의 마지막 제주 코스 메종블뢰로~
    곽지 해수욕장에서 무진장 가깝다.
    사진 카페를 겸한 여행자들의 휴식과 사진 치유의 공간.

    공간의 모토는
    여행과 치유.

    사진작가/사진 치유사인 이겸님과
    그의 아내이자 예전 메종 편집장이신 임진미님이 만드신 공간.

    제주 한옥 두 채를 개조해 한 채는 카페로,
    또 한 채는 사진 교육 공간으로 쓰고 계셨다.

    특히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 제주도 여행학교>라는 것을 열어
    사진 공부도 하고, 글쓰기 공부도 하고, 제주의 숨은 곳을 기록하는 멋진 프로젝트를 열고 계신다.

    사진 공간이래서 솔깃했었고.
    무엇보다 중산간 사진전을 한다고 해서 꼭 보고싶었다.
    아쉽게도 내가 갔을 땐 사진전은 이미 종료. 쩝.

    메종블뢰의 마스코트 무카

    창틈으로 내리는 석양을 받고 노는 무카는 그냥 예술.

    진한 예가체프 더치 한잔.
    그리고 옆집에서 직접 길렀다는 키위 한 접시.

    너무나 편한 공간이었다.
    평상에 앉아, 느긋하게 중산간 마을 전시를 카탈로그나마 감상.

    손수 꾸민 예쁜 공간.

    지친 여행자를 포근한 미소로 맞아주신 임진미 님과 무카의 순간.

    이거슨 평화.

    사랑방처럼 손님을 맞는 이겸 작가님.
    아쉽게도 10월 말로 카페는 종료. 장기 렌트하우스로 변신한다고 한다.

    이런 집에서 한 두달 살다보면
    맘이 해변가 돌맹이들처럼 동글동글해질 것만 같다.

    별 말 나누지 않아도 너무나 편안했던 시간.
    평화의 순간.

    이렇게 마지막 여정지에서 힐링을 가득 받고.

    세상이 또 내가 온통 금빛으로 물드는 시간.
    애월항에서 넋놓고 노을놀이하다

    아슬아슬하게 세이브;;;

    제주의 석양을 바라보며, 서울로.

    안녕 제주!

    서울로 오는 길, 세상은 어두워지고 마음은 차올랐다.
    오길 잘했다. 늘 오기 전에는 가기 싫은데, 끝나고 나서는 이런 기분이다.

    조용한 풍경들. 우연한 만남들. 걸었던 길들. 달렸던 길들.
    삶의 가능성이 쫙 ~ 하고 넓혀진 기분이었다. 여행자의 착시일 뿐이라도 그땐 그랬다.

    한번도 듣지않았던 내 폰의 음악.
    김포에 내려 처음으로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틀어본다.
    키스 자렛의 ‘ My Back Pages’ 리피트 리피트 리피트.

    키스 자렛의 피아노 선율을 따라
    여행을 끝낸 자의 가슴이
    한 없이 부풀어 오른다.

    편안한 호흡
    깊어진 숨.

    내 인생에 이런 시간은 꼭 필요하다.
    자주는 못해도, 가끔씩이라도 꼭 마련해 주어야겠다. ^^

    유진이의 2013 가을 제주 여행 …끝!

    2013.10.26(토) 제주 여행 DAY 3

    • 지미봉
    • 하도리 (카페 하도/ Gary Knights)
    • 하도 철새 도래지
    • 월정리
    • 와흘리 (4.3 항쟁 희생자 위령탑)
    • 봄날 게스트 하우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이런 곳이다.
    바다를 코 앞에 둔 < 별방 게스트하우스>

    그러니까 어제 밤에 난, 이 해안도로를 따라 운전을 해 왔던 것이다. ㄷ ㄷ ㄷ ㄷ ㄷ ㄷ

    원래 선택한 게스트하우스처럼 독특한 문화나 관계랄 것은 없었지만
    2박 3일의 여정에 지친 여행자에게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아늑함과 편안함을 주었던 곳.
    넓고 아늑한 샤워실, 너른 침대의 1층. (이틀 연속 이층 침대의 2층에서 취침;;), 팡팡 터지는 와이파이
    깨끗하고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

    어쩌면 밤마다의 술판과 시도때도 없는 뉴 피플들과의 만남이 다소 피곤하기도 했던
    고립, 휴식, 안락. 딱 그런 게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이렇게 좌충우돌의 가운데 딱 필요한 것이 딱 필요한 시점에 내게 내려지는
    누군가의 선물같은 체험을 난 여행 중에 시시때때로 만난다.
    고맙고도 당연한 일이다.

    아침 동네 마실. 개새끼는 늑대마냥 울어대고.

    말들은 우아하게 풀을 뜯는다.

    아침마실은 올레 21코스이기도한 지미봉 등반으로 이어진다.
    여행 내내 참으로 징하게도 올라댔다. 덕분에 다리가 얼마나 튼튼해졌던지. (과거형)

    여기도 무덤. 제주는 어디가나 무덤을 만난다.
    무덤과 길과 밭이 경계없이 늘어선 풍경도 이젠 더이상 낯설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는다.
    죽음을 생활의 터전으로 끼고 사는 일상이란 어떤 것일까.
    사무실 옆 공터가 동료의 무덤이라면?
    뭔가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할 풍경.

    서서히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돌담너머의 초록이들.

    그렇게 40여분을 오른 지미봉 정상. 와우. 멋졌다.
    역시 카메라는 잡아낼 수 없지만.

    왼쪽에 보이는 것이 우도,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성산일출봉.
    우도와 성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미봉.

    물과 땅과 빛이 하나된 장관이 펼쳐짐.
    와아~ 이런 것인가. 아침부터 기분이 탁 트인다.

    제주 땅끝오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지미봉은 하도리 해변 솟은 동부지역의 대표 오름 중 하나.
    제주 여행에서 오른, 나의 여섯 번째 오름이다.

    충만한 감동을 가슴에 안고
    슬슬슬 기어내려와 게하에서 차려준 조식 먹고 (토스트, 계란 후라이, 수프)
    하도로 간다.

    혹시나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그녀를 만나기 전, 먼저 만난 그 남자.

    Gary Knights.
    http://www.garyknightphotography.com

    좁은 마을 하도리에서는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딱 봐도 포스 철철 넘치며 나 예술가요~라고 붙여놓은 듯한 외쿡 남자 사람.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포토그래퍼,
    photojournalist.

    아리랑 TV에서 초청해, 다큐멘터리를 찍는 중.
    게리 나이츠와 제주 여러 마을을 돌며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 컨셉이라고 한다.

    다른 것도 아닌 포토그래퍼라니 호기심이 발동해
    어디 다녀왔냐, 주로 뭐 찍냐, 카메라는 뭐냐 등등등 게리 나이츠에게 물어본다.
    예전에는 저널류 (전쟁, 다큐멘터리 사진 같은 것) 많이 찍었지만, 더 이상 그런 것을 찍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것을 기록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하도리에서도 마을의 해녀를 만날 예정이라고.

    관광지는 싫어서, 그냥 중산간 마을들을 돌고 왔다고 했다.
    어디냐고 굳이 물어보니, 와흘리란다. 4.3 항쟁 관련된 곳이라고.
    대략 6시간 후 이날 오후, 나 역시 그 마을에 가 있게 된다. 그 마을에서 지는 해를 보게 된다.

    당황스럽게도 촬영팀들이 나와 외쿡남자의 대화 장면을 찍어 갔는데. (우연히 길에서 만난 여행자와 대화하는 컨셉)
    부디 편집되기를;;

    대가의 촬영

    쪼르르 따라가 대가가 촬영한 지점에서 대가가 촬영한 피사체와 대가의 구도를 따라찍어봄이요.
    작품성? 어때?!

    게리씨의 카메라는 캐논이었다. 오막삼에 L렌즈 모시기 쯤이었겠지? 잘 봐둘걸.
    괴니 그런거 궁금.

    게리씨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그녀를 만나러 간다.

    카페 하도.

    부시시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문을 열어 준 그녀가 꾸민 공간은 작지만 아름다웠다.
    제주에서 많은 아름다운 공간을 만났지만, 그녀의 공간에는 그녀만의 색깔이 묻어 있었다.
    그 공간의 공기에도 그 색깔은 묻어났고, 그 공간에 흐르던 음악들에도 그 색깔은 비쳐났다.

    손수 수놓은 글귀.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아마 그녀 마음 속의 글귀인가 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머무름 없이 만날 수 있나.
    그렇게 각자의 액자 속에 나란히 닫혀 있는 두 사람. 평화로웠고, 조화로웠다.
    평화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카페 하도의 시그니처 공간. 음반이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운 햇살이 가득 드는 테이블.

    곳곳에 스민 그녀의 취향. 자기만의 감각의 제국을 만들어 놓았다.
    누군가를 참 깊이도 사로잡았을 그녀의 아름다움.

    근데 게리 나이츠씨도 그 향기에 이끌렸나?
    어느새 아리랑TV 촬영팀도 카페 하도로~

    마당의 테이블에서 또 이야기들을 나눈다.
    게리씨에게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기 말을 하기 보다는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참으로 귀기울여 성의껏 듣는다는 점이었다.

    카메라 맨에게도 너는 회사 소속이냐 혼자 일하냐.
    회사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너는 어떤 것에 보람을 느끼느냐.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냐 등등등.

    인간과 타인의 삶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어찌 그것없이 예술을 하겠나.

    마당의 대화와 별개로 카페 안에서는 여자들의 대화가 오가고.
    게다가 카페 쥔장님이 ‘절친’으로 소개한 수상한 연예인도 만났다.

    수상한 그녀의 음악을 틀어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음악이 흐르고, 시간이 흐른다.

    수상한 그녀가 건네 준 선물은 그녀가 찍은 사진으로 만든 엽서 셋이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앨범 속지로도 쓰고, 엽서로도 만들었다는 거다.

    거 참으로 출중한 능력자들이 즐비한 대한민국이다. 옥희의 영화에서였지. 요즘은 전국민이 사진작가라고.
    참으로 명언이다.
    진짜 이건 어디가서 사진이 취미라고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가는 곳마다 사방팔방에서 사진 능력자들 출몰.

    심지어 세계적인 사진 작가까지 만나고. 깨갱~ 전 그냥 카메라가 찍어요;;

    카페 하도를 빠져나와 만난 카페 하도 옆 집 아저씨.

    태어나서 평생을 하도에서 산 하도 토박이라고 하셨다. 4.3항쟁때 부모님 다 잃고 외조모 손에 컸다.
    하도라면 구석구석 모두 다 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때 경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문제 안 일으키고 산다고 했다.
    문제를 안 일으킨다는 것은 어버이 날이나 마을 잔치에 돈도 조금씩 내놓고 일손도 돕고 하는 그런 것.

    하기야, 제주엔 심히 촌구석에 너무도 이질적인 공간들이 문득문득 박혀있다.
    그것이 여행자에겐 낯선 매력이었지만 주민들에게는 자신의 공간을 위협하는 외지인들의 침투였을 것이다.

    문제 안 일으키고 산다. 는 것은 섞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섞이겠나. 담장 하나 사이로 카페 하도와 하도 토박이가.
    하지만 그렇게 수면에 낀 얇은 기름층처럼
    외지의 이질적인 것들이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모습도 공존의 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뒷집은 사람이 빈 폐가다.

    누군가 살았던 흔적은 남아 있었다
    연고, 화장수, 다이어리와 알약. 살뜰해서 더욱 짠한, 버려진 삶의 흔적들.

    이렇게 토박이인 사람, 외지인인 사람, 버려고 떠난 사람의 공간이
    삼각 편대를 이루는 수상한 마을, 하도라는 곳이다.

    동네 앞 하도 철새 도래지로~ 왜 이리 보고싶었는지.

    광각이라 못잡아서 그러는데, 저기 날파리떼 같은 거 저거 다 철새임.
    찬란한 철세떼의 움직임을 광각이는 요렇게 밖에 못잡아 그런 거임 ㅠㅠ

    한 시간여 나 혼자만의 철새 도래지 산책.
    아늑한 느낌. 되게 포근했다. 오름과는 또 다르게.
    이름은 모르지만, 참으로 다양한 작은 생명체들이 군락을 이루어 생활하는 은밀한 곳.
    그곳에 나는 한낱 침입자였겠지만 생명들이 살아있고,
    (내가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 생명들이 만족하며 사는 공간에서 퍼져나오는 포근함에 걷는 내내가 휴식이었다.

    그 소리와 그 빛과 그 바람을… ㅠㅠ
    하지만 나에겐 탄천이 있다!!!! 불끈.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생명의 풍경이란 얼마나 충만한가.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인간이라는 게 함정;;

    잠시 백마부인이 되어볼까라는 망상을;;

    한참을 걷고 나니 배고프다. 수상한 그녀에게 추천받은 석다원으로 붕붕붕.
    다시 한 번 렌트카 조으다 조으다 조으다!! 아무때나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거. 이런 걸 이 나이 되서야 ㅠㅠ

    김대중 대통령도 들고 가셨다는, 바로 고 전주에는 틴탑도 와서 먹었다는
    석다원 성게 칼국수 대령이오~~

    후르륵 후르륵 왜 이리 맛나나요.
    정말 맛있는 건 혼자 먹어도 정말 맛난다는 거, 이런 깊이있는 진실을 커플들은 모르겠지. ㅋㅋㅋ ㅠㅠㅠ

    바로 느이들같은 커플들말야!!!
    다음 행선지 월정리. 요즘 핫하다는 동부 beach.
    그 옛날 가로수길 러시를 떠올리게 하는 곳.

    월정리에 가면 누구나 찍어오는 의자샷. 나도 찍었다. 왔으니까요.
    인디삘이 개성넘치는 카페들이 그닥 흥미롭지 않았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고, 내 나이는 충분히 그럴 나이다.
    그런데 그런 장식들을 빼면, 그닥 여기 와야할 이유가 무언가 생각하게 되는 월정리였다.

    애정행각 셀카의 그럴싸한 배경이 필요한 커플이 아니고서야 말입니다!!!!
    (월정리 디스 아님. 그냥 토해내봄)

    월정리는 지금 이래.
    사방이 공사중. 벌써 아쉽다.

    월정리의 냥아, 너도 아쉽냐. 나도 아쉽다.
    그래도 잘 살자.

    차는 와흘리를 향한다. 활기 넘치는 중산간 마을.
    하도 중산간 지역을 헤매고 다니다 보니, 이제 최소한 중산간의 도로는 꽤나 익숙하다. 지리말고 그냥 지형만;;
    어쩐지 친숙하고 마음이 편해져. 언덕을 타고 능선을 돌아 운전하는 재미에 폭 빠져.

    불타는 토요일 해질녘, 나홀로 와흘리 산책합니다.
    유난히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어서 너무 좋았던 여행이었다. 와흘리도 그랬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조용한 토요일 오후였다. 신림동의 이 시간대도 그렇다.
    번쩍거리는 사거리 말고 잠들어 있듯 숨죽인 뒷동네, 뒷골목들.
    주말 오후, 거길 거니는 게 좋다.

    집과 밭의 경계도 없고

    길가와 마당의 경계도 없고

    그저 구멍 숭숭 뚫린 낮은 돌담

    동네 길가엔 귤이 그냥 막 자라고 있다. 맞은편은 무덤이다.
    길가에서 귤을 따 먹는다.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살아있는 것을 죽어 있는 것으로 만드는 행위를 한다.

    다 익지 않아 퍼런끼 있는 귤이었는데도, 달고 맛났다. 이건 삶의 맛일까, 죽음의 맛일까.

    마을 어귀의 4.3 항쟁 희생자 위령탑.
    이걸로 억울한 죽음의 한이 풀어지겠나. 산 사람들의 자기 위로겠지요.

    이렇게 어디서나 만났던 4.3 항쟁. 결국 서울 가서 제일 처음 한 일이 지슬 다운로드. 돈내고;;

    와흘리에서 내가 한 건 별 게 없다.
    그냥 텅 빈 마을 쏘다니고, 남의 집 구경하고, 귤 따먹고;;
    근데 그런 시간이 난 제일 그립다.

    어둠이 내리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게스트하우스, 애월의 봄날로 향한다.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는 긴 주행. 중간에 시내는 막히기도 했지만
    결국엔 도착했다.

    봄날에서는 매일 밤 단돈 만원에 무제한 맥주 파티를 한다.
    당근 동참!

    어쩌다, 정말 우연히 요런 새파란 젊은이들(27세~31세) 사이에 끼어앉아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에 대해 듣게 되는 소중한 현장 체험을 하게 된다. ㅋㅋㅋㅋ

    뭐가 고민이고, 어디서 여자를 만나고, 어떻게 꼬시는지.
    텔레비전에서는 뭘 보고, 음악은 어디서 뭘 듣는지. 결혼관, 이성관. 살고 싶은 인생의 모습.
    밤사가 왜 그토록 그들을 미치게 만드는지. 마녀 사냥이 왜 이리 재밌는지.

    31세 남자가 27세 남자에게 건네는 진지한 인생 충고를
    나도 조용히 귀담아 듣는다.

    다 조으다. ㅋㅋㅋ

    여자를 한 번도 못 사귀어 봤다는 27세 남자애 이야기도 듣는다.
    내 눈엔 넘 이뻐 보였는데.

    얼마나 깊었는지도 헤아릴 수 없는
    은혜로운 밤이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
    ^^!

    2013.10.25(금) 제주 여행 DAY 2

    • 모닝~ 아부오름
    • 김영갑 갤러리
    • 성산부근 해변도로
    • 용눈이 오름
    • 아끈다랑쉬오름
    • 별방 게스트하우스

    밍기적의 아침

    아침부터 개와 노닐고 계신 쥔장오빠님.

    써니허니게스트하우스는 자칭 상남자 두형제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 사실이 숙박지 선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함구.

    상남자들의 마당답게, 각종 운동기구들 즐비.

    그러나 정작 내부 시설은, 어찌나 알차게 구비해 놓았는지.
    종류별 샴푸에 여성 청결제, 옷갈아입을 때 쓸 샤워실 발받침에, 렌즈 세척액까지
    상남자들 속에 결고운 상여자가 살고 있는지
    세심돋는 배려들로 푸근해지는 써니허니였다.

    이른 아침부터 만화 삼매경

    나는 아침오름 투어에 참가!
    매일 숙박객들과 다양한 오름으로 투어를 가는 것이 써니허니의 특징이다.

    오름이 땡기지만, 혼자 오르긴 뻘쭘한 분들.
    혼자 여행에 프로그램이 다소 취약한 분들
    제주는 게스트하우스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잘 찾아보면, 숙박지 선택만으로 참으로 알찬 시간들을 보낼 수가 있다.

    하룻밤 자고 마는 곳이 아니라,
    문화와 취향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제주 게스트하우스.

    다 같이 오른다.

    유명한 연풍연가 나무. 고소영 장동건…아 까마득.
    부디 생겨라.

    사진도 찍고

    사진도 찍히고

    이 분이 게스트하우스 쥔장오빠님. 아까 개와 놀던 그 분의 형님~
    좋은 추억거리 되라고, 열심히 사진도 찍어주신다.

    정말 훌륭한 게스트하우스.

    덕분에 나도 몇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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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부오름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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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부터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으신 정초아 작가님

    정상에서 다시 화산 분화구까지 내려가 보기로 했다.

    오름 분화구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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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화구에서 올라오는 길.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

    안녕 아부오름~ 제주여행 세번째 오름은
    이렇게 하룻밤을 같이 보낸 어린 칭구들과 함께.

    돌아오니 조식 타임!!

    흑임자 죽과 챠우더 수프.
    어제 내내 쌀알을 못 씹었던 나에게 저 흑임자 죽에 박힌 쫄깃쫄깃한 밥알들은 신의 은총이었다.
    밤새 썰고 갈고 한 감자와 각종 야채를 넣은 수프는 또 어찌나 맛나던지.

    어느 호텔에 견주어도 경쟁력!

    벽면을 가득 채운 추억들~

    모닝 오름투어와 조식의 분주함을 마치고
    다시 밍기적 모드로 널부러진 밍기적~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 역시 여기서 한없이 게으른 하루를 밍기적 거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선다. 오늘 꼭 가야할 곳이 있었으니까.

    안녕 써니 허니!

    아자~~ 뻥뚫린 제주의 길.
    길 양 옆으로는 대자연이 펼쳐져 있고~
    이차선이라지만, 반대편에서 차 한대 올때까지 두 차선이 모두 내 차선.

    미친듯이 밟아 달려갈 때
    아 요런 거이 운전하는 맛인감.

    그전까지 나에게 운전은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는 이동수단에 불과했다.
    혹은 주행을 통한 인격 수련 혹은 기싸움 내공 증진의 수단.

    그런데 제주를 달리고 나서야
    사람들이 왜 드라이브를 하는지 처음으로 이해했다고나 할까.

    가끔 이런 풍경을 만나면 무작정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찰칵찰칵.

    콩다듬는 제주 아지매랑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렇게 놀멍주차멍찍으멍 달려간 곳.

    입장권도 그의 사진이다.

    ‘어머니 젖가슴같은 오름과 소리쳐 울 때가 더 아름다운 제주바다’에 꽂혀
    제주에 대한 지독한 열병을 앓다, 급기야 제주도로 내려와 15년 간 제주를 찍어
    수만 컷의 제주 사진을 남긴.

    가끔 서울에서 전시도 했다지만, 당시엔 그다지 알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돈이 생기면 필름,인화지부터 사고, 제주를 담기에만 몰입했던.
    루게릭병에 걸려 세상을 뜰 때까지도.

    구름 언덕.
    용눈이 오름과 함께 수없이 찾았다던.
    한 장소를 이리 다채로운 빛으로 찍어내셨다.

    …….
    숨막히는 시간.
    하루는 24시간이라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아침 저녁으로 단시 몇 시간.
    그 황홀의 순간을 잡아내기 위한 한 남자의 외롭고 기나긴 집념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이나 판단 또한 멈추고
    나 역시 침묵할 수 밖에 없다.

    그가 지금 사진 속에서 침묵하듯이.

    한 생을 건 열정에 압도된 묵직한 공기의 갤러리에서 나오니
    밖은 화창한 제주의 가을이다. 볕도 곱고, 하늘은 청명했다.

    예쁜 정원에 앉아
    오름 세 개 올랐으니 그만하면 됐지.
    이제 우도나 관광지 투어나 좀 해 볼까 하던 나는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어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한다.

    좀 더 보고싶다. 오름도, 제주의 속살도.
    표끊고 울타리에 들어가야 하는 그런 곳들이 답답했던 참이다.

    김영갑 갤러리는 내 여행지의 방향을 반대로 되돌려 놓았다.

    어디론가 떠나보자~ 렌트카야!
    제주 속으로 들어가보자아~ 어디든 말고 그냥 제주로.

    그렇게 닿은 어느 해안가 마을

    이런 엽서같은 풍경.
    누가 나 사진 찍으라고 셋팅해 놓은 듯~

    저 멀리 성산 일출봉도 보이고요.

    해안도로 따라 달려갑니다.
    그러고 보니 배고파. 갈치죠림!!내 칼취죠림!!!내 놓으세요!!!
    성산 어느 식당에 들어가 무작정 갈치조림을 외친다.
    2인분 소짜가 4만원. 주방 아줌마랑 쇼부쳐서 뚝배기에 반만 끓여 2만원에 딜. 짜응ㅇ!!!!

    츄르르르르….제주와서 브런치에, 이탤리언에 요상한 것들만 섭취했는데
    이제서야 지대로 제주의 맛.
    방사능 걱정이 얼핏 스쳐가기도 전에.

    흠냥.

    그리고 다시 떠나는 길.

    누가 나에게 제주의 특징을 하나만 꼽으라면 ‘경계없음’이라 하겠다.
    일차선같은 이차선. 곳곳에 보이는 길가의 무덤, 걷다보고 어느 집 안마당.
    길과 마당,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몹시 희박해 보이는 제주.

    나 이런 제주 도로 넘 조아! 사랑해! 운전 막 하고 싶어.

    아무데나 차 세워놓고 사진도 찍어보고.

    미친 바람에 미친듯이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 보니까 알모도바르의 귀향(Volver) 생각났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청춘은 걷는다.
    니들은 니들대로, 나는 나대로 걷고 달리며 제주를 만난다.

    그렇게 찾아간 용눈이 오름.
    김영갑 작가가 생전에 가장 사랑한 곳이었다고 한다. 구름 언덕과 함께.

    요 보드라운 곡선을 보니, 왜 젖가슴이라는 표현이 나왔는지 알겠다.
    근데 요건 엄마 아니고 소녀네;;

    그림자 둘이 오름을 오름.
    어제 써니허니에서 만났던 여행객 한 분을 우연히 용눈이에서 만나 같이 오른다.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 여행이다.

    사진은 이뭐병. 눈앞에 펼쳐졌던 건 이 느낌이 아니야.

    날려갈 듯이 불어대던 바람.
    하와이 이후, 내 인생 최대의 바람. 몸이 절로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
    언덕도 아닌 산도 아니었던 그 굽이진 곡면.
    끝없이 펼쳐졌던 사면의 풍경. 에혀 말을 말자. 이걸론 택도 없음. 이게 뭐임;;;!!

    젤로 맘에 드는 사진 ↓↓↓↓
    두 손 맞잡고 용눈이를 달리던 모녀~

    다들 카메라 짊어지고 와서
    김영갑 놀이 중.

    나는 그냥 소박한 NEX5n에 Contax G21.
    수동 렌즈인데 F8.0 확 쪼여놓고 대충 막 찍어댐.

    해질녘 눈부셨던 억새 장관

    딱 봐도 토백이 진사들이 떼로 모여서 정신없이 찍어대길래, 바로 옆자리 딱 달라붙어 찍었다.
    “아저씨, 제주 분이시죠?”
    “응”
    “아저씨, 억새사진 찍을 때 노출은 어떻게 줘야 해요?”
    “몇 스탑 오버해야지.”

    즉석 사진강좌도 받아 찍은, 검증된 view라는 거! ㅋㅋㅋ

    그렇게 좋았던 용눈이 오름에서 내려오는데.
    마침 SBS 주말드라마 < 결혼의 여신> 촬영팀을 만난다.
    마지막 회 촬영 중이라던데, 그 드라마 안 봐서 어떻게 나왔는지는.

    남상미는 못 보고 허겁지겁 달려간 아끈다랑쉬오름.

    오름의 여왕이라는 다랑쉬오름으로 가고 싶었지만,
    역시나 나답게 주차해 놓고 반대 방향으로 들어, 다랑쉬 오름 맞은편의 조그만 아끈다랑쉬오름을 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다랑쉬 오름 옆에 낑겨선 미니다랑쉬오름이랄까.

    실수였지만 해질 무렵이라, 어짜피 다랑쉬오름을 다 오를 수도 없어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다행이었긴했다.

    노을 억새 장관.
    억새는 원없이 봤던 거 같다. 어찌나 싫증쟁이신지, 억새 감흥도 금새 휘발 ㅋ
    어떻게 영갑느님은 15년간 제주만 찍으셨을까. 바닥이 없는 일을 파고드는 모든 이들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다.

    빠질 수 없는 인증!
    바람이여 오라~~~ 제주도 쪼매 와바라.

    억새밭 여인

    돌다 돌다 해 저물고.

    탱자탱자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놀다가
    해가 저물자말자 급격한 속도로 어두워짐 & 오름 정상에 아무도 없음.
    아름다운 오름 풍경이 갑자기 으스스해졌다.
    어둠이 내리는 속도를 돌파하기 위해, 있는 힘껏 뛰어 내려옴.

    이틀 연속 강행군에 종아리에 알이 박혔는데
    뛰면 힘차게 잘 뛰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인간의 적응력이란…말이다.

    그렇게 내 두 다리로 뛰어 제주의 속살을 정말 아주 조금은 들여다 보았다.
    중산간. 제주의 속살.

    나의 다섯 번째 오름, 아끈다랑쉬 오름을 내려오자
    본격적으로 밤이 내리기 시작한다.
    인간이 만든 인공의 빛으로 밝히지 못하는 제주의 검디 검은 밤이.
    꽁꽁 뭉쳐놓은 찰흙같은 밤.

    그런데 이게 왠 일. 간신히 찾아간 게스트하우트에선
    예약 오류로 인해 숙박 거부를 당하고. ㅠ (물론 사전 예약은 했고)

    근처의 게하에 전화를 돌려 보지만 오늘은 금요일 밤.
    앵간한 데들은 모두 만실이다.
    천신만고끝에 간신히 섭외한 별방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길.

    사방은 칠흙같이 어둡고,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미친듯이 바람은 불어제끼는데
    차의 헤드라이트로는 밝혀지지도 않는 겹겹의 어둠을 뚫고 여행자는 오늘 어깨 누일 곳을 찾아 간다.
    오로지 네비님만을 따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그리고, 주변에 식당도 마트도 아무 것도 없다는 그 곳에 도착해
    밤 9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이런 저녁상을 받게 된다.

    참고로 왼쪽 접시위의 빵 비스무레 한 것은 어제 밤에 웅스키친에서 먹다 싸온
    흙돼지 샌드위치 남은 조각.

    사진에 못 담은 맥주 한 캔.

    눈물나게 맛났다. ㅠㅠㅠ
    긴 하루였다.

    쳐묵 쳐묵.
    그리고 쓰러질 듯이,
    취 to the 침!

    고질적인 불면증이 제주에서만은 거짓말이었다.

    2013.10.23(수)~24(목) 제주 여행 DAY 0, DAY 1

    DAY 0, DAY 1 일정

    • 도착
    • 자매국수
    • SUM 게스트하우스
    • 4.3 평화공원
    • 절물 자연휴양지(절물오름/ 장생의 숲길)
    • 거문오름
    • 비자림
    • 써니허니 게스트하우스

    특별 휴가에 급 결정한 제주행.

    역시 나답게 출발 비행기 놓치고. (7시대 올림픽 대로 그렇게 막힐 줄이야;;; -> 당연하자나!!!)
    앞뒤로 꽉 막혀있는 공항 버스에서 다른 비행기 부킹한다고 항공사 있는대로 전화걸며 난리치고.

    진, 이스타, 제주, 대한, 아시아나 수요일 심야 항공 모두 풀 북킹이라며 거절당하고.
    눈앞이 캄캄한 채로 공항 도착.

    정작 이스타 항공 막비행기 연착되서 비행기 출발전.
    정말 친절하고 센스있는 항공사 직원의 도움으로 9:46 느즈막히 제주 도착.

    ♥ 사랑해요 이스타 항공 ♥ ;;;
    ♥ 이렇게 살지 말자 정초아 ♥

    고심끝에 한 내 인생 첫 번째 렌트카 여행.

    첨 몰아보는 남의 차, 낯선 지리에 겁부터 먹었지만. 선택은 탁월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 풀고, 방사람들이랑 인사나누고, 바로 자매국수로 쏩니다! 붕붕붕…

    제주 국수 거리. 버스로는 못가는 곳, 못 가는 시간.
    하지만 사람은 바글바글바글.

    흡. 저 비주얼!! 면발과 괴기에 몬 짓을 가했는지 여하튼 부드럼이 상상 초월.
    입안에서 그냥 녹아버림. 씹을 필요가 없어.

    고기less life를 살다가 DEVIEW하면서 무너졌는데
    제주 여행에서 아주 와장창 고기 life로 돌아옴.

    거의 여행객보다는 현지분들 많아 보였다.
    국수집이라기 보다는 막걸리, 쇠주 등에 한 잔 걸치는 술집 분위기.

    첫 날 묵은 SUM 게스트 하우스.
    늦은 도착이라 공항 근처로 잡았는데 역시 탁월한 선택.

    약간 모텔 삘 예상했으나, 왠걸.
    도착하니 통유리 너머로 카오산 못지 않은, 아니 지금 카오산에서는 사라져버린
    그 옛날 카오산서 봤던 배낭 여행자들의 허브 분위기가 물씬.

    삼삼 오오 로비에 둘러앉아, 그날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경로나 추천 여행지도 공유하고.

    여럿명이 같이 묵는 게스트 하우스.

    이층 침대라 불편하기도 했고
    아침식사 역시 오픈 주방에서 토스트를 굽고, 계란을 부치고
    내려진 커피와 과일을 꺼내 먹는 등 셀프로 해결.
    호텔 조식과는 전혀 달랐지만.

    혼자 여행온 20대, 30대, 40대 각기 다른 연령대의 여자들이 모여
    각자의 여행온 사연과 삶의 스토리를 나누는 재미.

    하룻밤에 끝날 인연일 뿐이지만,
    그 하룻밤만큼은 알 수 없는 미지인에게 맘을 활짝 열고 웃음과 눈물을 나누는 요상한 순간.
    럭셔리 오성급 호텔따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행의 묘미인 것이다.

    여자들 talk을 통해 얻은 여행 정보를 가지고 붕붕붕 절물로 향하는데.
    문득 눈길을 끄는 4.3 평화의 공원.
    뭔가가 눈길 끌어? 그럼 핸들 돌려! 뭐 이런 식으로 4박 5일을 보냈던 것 같다.
    그렇데 도착한 곳은 공원도 아닌 묘지. 아니 시신이 묻히지 않았으니 묘지라고 할 수도 없다.

    choa

    시신조차 수습을 못한 안타까운 생명들께 이름 석자로나마 안식을 드리는 곳.
    날은 비올듯 흐리고 까마귀는 까악까악 울어대는데.

    4.3 항쟁 따위 줄 놓은 내 정신의 어느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을리 만무하지만
    참 이상도 하여라. 4박 5일 어디를 가든 결국 만나게 되는 4.3의 자취.

    그렇게 이름으로만 남은 위령비 사이를 거니는 것으로
    그리고, 향 하나 피워놓고 잠시 묵념 올리는 것으로 제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생뚱맞은 여행의 시작을 되돌려 다시 절물자연휴양림으로~
    울창한 삼나무 숲이 나를 맞이한다.

    choa-2

    절물오름 정상.
    때마침 아무도 오르는 이 없어, 오름을 나홀로 오름;;
    흐린 날씨 덕에 주변 경관은 내 눈에 안차 오름

    오르는 길은 그냥 동네 뒷동산 오르는 기분이었는데.

    choa-3

    내려오는 길에 그만 길을 잃고 만다.
    아무도 없어 헤매고만 있는데, 우연히 마

    그닥 넓지도 않은 절물오름에서 매우 나답게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저 멀리 어떤 커플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 간신히 따라가 붙잡고 길을 묻는데.

    커플의 이 남자. 백퍼 내가 아는 사람인거다. 근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직장, 연고, 노는 동네 다 맞춰봐도 공통점이 없고
    게다가, 이 남자는 전혀 나를 모른다고 잡아뗀다. 여자는 옆에서 수상한 눈길로 째려봐주시고(당연히;;)

    나중에서야, 멋적게 “저, < 짝>에 출현했어요.”

    그런다. 짝! SBS 짝. 그렇다 101~102회 노총각 노처녀 스페셜의 남자 5호.
    <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애청하며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던.
    종교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어머님의 반대때문에 첫사랑과의 결혼에 실패했다던.
    첫번째 여자 몇 호한테 갔다가, 변심하고 다른 여자로 갈아타고 애잔한 이벤트까지 벌였지만 결국 실패한.

    zzak

    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짝덕. 짝 매니아.
    줄줄줄 이 사람의 내력을 읊자 본인도 놀래고, 여친도 놀랜다.
    여자분과는 소개팅 인연인데, 만난지 얼마 안되는 듯.

    덕분에 짝덕으로서 그동안 궁금했던, 짝 뒷 얘기와 비화들을 자세히 듣고, 출연 섭외까지 받았음 ^^V ;;;;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하산 스피드가 절묘하게 겹치고,
    마침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약 30여분간 아름다운 절물 장생의 숲길을 막 짝이 된 커플의 염장 투샷을 바라보며 내려와야 했다는;;;

    거 참, 아헿헿한 절물 오름의 기억.

    하산길 절물 인증!

    그리고 황급히 거문 오름으로 이동.
    그 쉬운 거문 오름 입구를 못찾아 헤매다, 낯선 건물을 발견.

    길찾기 일환으로 문 열고 들어선 순간 화들짝.
    황량한 거문 오름 입구에 이런 예쁜 공간이라니.

    신기했다! 마치 마법의 문이 열린듯한…

    가구를 만드는 공방이었는데, 순수 제주분들이시란다.
    가구를 제작해 팔기도 하고, 워크샵도 여시고. 옆에는 카페와 편의점도 하나 채려놓으시고.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삶의 모습.
    예기치 않게 이런 걸 만나게 되는 재미. 여행이다!

    거문 오름은 세계 자연유산으로 선정되어 1일 400명의 정예인원(?!)만 탐방할 수 있고
    100%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하다.

    제주 여행시 위시 NO 1. 가장 가보고 싶었던 거문 오름이지만
    예약 경쟁율료 높아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예약 페이지 리프레시 중 문득 딱 2자리가 빈 것을 발견! 극적으로 예약 성공.

    음식물 반입도 안되고, 자연을 훼손할 수 있는 우산, 스틱도 금지.
    탐방 출입증을 목에 걸고 오름 시작!

    오름! 이런 것이 말로만 듣던 오름인가.
    절물 오름과는 너무나 달랐다.

    자연이 깊숙히 숨겨놓은 비밀의 수풀을 찾아가는 듯한 기분좋은 헤매임!

    오름을 오르고 내리는 내내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마치 원시의 자연의 그대로 펼쳐진 듯한
    오름의 풍광에 마음은 보름달마냥 부풀어 오름~ ㅎㅎㅎ

    거문오름은 돌과 흙이 유난히 검은빛이라 검은 오름이라는 썰,
    그리고 숲이 빽빽하게 우겨져서 그렇다는 썰이 있다고 한다.

    검은오름> 거문오름으로 자연스럽게 정착.

    약 두시간 반의 분화구 코스를 돌고 하산.

    제주만의 독특한 곶자왈 지형도 체험하고
    일본군이 숨어지냈던 동굴도 보고
    수많은 이름 모르는 나무와 식물들도 보고. 비록 까막눈이라 뭐가 뭔지 였지만.

    * 참고 : 곶차왈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凹凸) 지형이 만들어지면서 형성된 제주도만의 독특한 지형이다.
    곶자왈은 나무·덩굴식물·암석 등이 뒤섞여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을 일컫는 제주도방언이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내려 오는 길에 오름 해설사분께서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신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헐 급 울컥!
    오르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더 좋았음.

    생각은 점점 비워지고
    어제와는 확연히 달라진 마음의 때깔로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다음 찾은 곳은 비자림.
    계획따윈 없었지만, 남는 시간에 맞춰 암데나 찍고 거침없이 붕붕붕~
    렌트카의 필요성을 이 나이되어서 알았슴네다. ㅠㅠㅠ

    비자림. 비자나무 숲. 산책길로 유명한 곳이다.
    비오는 날 아침에 오면 좋다는데, 나는 그냥 해질녘에 방문.

    일단 인증.

    여행 공식 샷. 여행 때마다 요 포즈로 한 컷씩은 찍게 된다는.

    예상했던 분위기의 산책로.
    거문오름의 격한 감동과는 다른 편안함에 젖어들 무렵.

    그런데 점점 모랄까.
    예상하지 못았던 아우라에 휩싸이게 된다.

    나무! 비자 오라버니들의 기세!!
    장난이 아니다.

    그냥 산책로라기엔 나무들의 기세가 너무도 위풍당당.
    박력있게 뻗쳐오른 가지들. 수 백년을 버텨낸 소리없는 내공.
    샤방샤방 사뿐사뿐 산책로라기엔 좌우로 빽빽히 펼쳐진 그 위세가 너무도 압도적이었다.

    비자림에서도 발견되는 곶자왈.

    마치 억센 손으로 바위를 움켜쥐듯. 이대로 떨어져 나가지 않겠다며…
    생명이 내리지 못할 곳에 뿌리를 내리고야 만 강한 생명력에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나도 보이고 너도 보이고
    이런 세상을 살아내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수 백년의 세월을 버텨년 굵은 나무들이 서로 어깨를 버티며 그 기세를 내세우는 곳.
    인간이 들어와 경계를 치고, 그 사이에 작은 오솔길을 내고, 몇 천원의 입장료를 받기 전까지

    비자림 역시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그들의 나와바리였을 것이다.
    거대한 야생의 숲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길 하나 냈다고, 이 활기와 박력을 ‘산책로’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버리다니.

    참으로 인간은 재밌는 존재라는 생각.
    본질이 아닌 용도 중심의 개념화.

    나에게 비자림은 올망종망 느낌있는 산책로가 아니라.
    수 백년을 버텨낸 거대한 존재들이 차원이 다른 내공을 견주는 원시의 장이었다.
    잠시 침입한 나 따위는 감히 고개를 들이밀 수 없는.

    =====

    어느덧 날은 저물어 오고.
    오늘의 숙박은 송당리의 써니허니 게스트하우스~

    날 저물어 송당리 도착.

    실은 아침먹고 제대로 밥을 챙기지 못했는데.
    참으로 제주 갈치 조림나 전복뚝배기 같은 제주스럽고 칼칼한 저녁이 먹고 싶었는데.

    이 동네, 식당도 몇 개 없고 그나마 모두 문닫고, 원래 여는 데도 아줌마 마실 가셨다고 밥이 안된다고.
    어쩔 수 없이,,, 정말 가고 싶지 않았던 웅스키친.

    제주까지 와서 왠 이태리 레스토랑이냐.

    그런데, 정말 이런 데 있을 법하지 않은 …
    가로수길 어디쯤에서 삽으로 퍼다가 뚝하고 내려놓은 것 같은 마술같은 식당.

    문을 연 순간 또 다시 매직~매직매직~

    송당리를 걸어보면, 정말 이 분위기 아니다.
    그냥 시골 촌마을.

    나처럼 혼자 밥먹으러 온 여행객.
    그리고 입장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스탭과 다른 테이블의 지인에게 인사하는 인근 제주 분들.

    누가 이 촌구석에서 이런 데 와서 밥먹을까 했는데
    어느덧 테이블은 full!

    흑돼지 샌드위치에 하우스 와인까지 한잔 곁들여~ 헐.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참으로 맛났다.
    동네 슈퍼(진짜 조그만 시골 마을 슈퍼)도 한참 걸어가야 하는 이 동네에서 와인이라니…
    집에서 서울에서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맛이 났다.

    그저 감사만을 올리며, bottle 한 병까지 따로 구매해서
    귀한 보물인양 소중히 품고 게스트하우스로 귀 to the 환!

    요런 따끈~한 정경이 나를 맞이한다.
    하루 분의 여행을 마친 여행자들이 모여, 회포를 푸는 시간.

    특히나, 써니허니 게스트하우스는 숙박 공간과 별도로
    < 밍기적>이라는 별도 쉼공간을 만들어 수백권의 책(주로 만화)로 가득히 채워놓았다.

    밍기적 한 구석은 키친인데, 간식들과 커피 등등이 구비되어 있고
    자유롭게 먹고 자유롭게 기부하는 진정한 오픈 키친.

    밥도 채려 먹고, 술도 한잔 하고, 사진도 보고, PC도 쓰고….만화도 보고!!!
    우왕. 이거 정말 환타스틱한 여행의 마무리가 아닌감요.

    달고 작고 예쁜 오아시스.

    내가 사온 와인 한 병에, 또 우연히 다른 여행자분이 와인 한병을 반입해 오셔서
    오늘의 술자리 컨셉은 와인파티. 누군가가 시내에서 사온 귀한 제과점 빵에.

    신나고 잼있는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싸장님 오빠야도 기분이 좋은지 ~ “야간 오름 투어 갈 사람~~~”
    이 시각. 10시 반. 제주의 밤바람은 차가웠지만, 열 명쯤이 우르르 손을 든다.

    붕붕붕 봉고 타고 아부 오름으로 야간 투어~
    조그만 후라쉬 들고, 소똥 피해 조심조심, 길인지 뭔지 알 수도 없는 산길을 올라 도착한 정상.

    사진으로 찍지 못했지만 하늘에 가득한 별들.
    북쪽 하늘에 선명히 박혀있던 W. 저거이 그 옛날 학교때 배웠던 카시오페이아인감.

    다들 소리치고, 감동하고, 뛰어다니고 …바람이야 불거나 말거나
    청춘의 밤이 깊어간다.

    청춘이 아닌 난 그들의 청춘에 살짝 무임승차.
    제주도 여행이 점점 젊은이들 기빨기 회춘 프로젝트로 변질;;

    ㅇ으허허….여행! 이거다.

    그리고 지 멋대로 밍기적거리며 깊어가는
    제주도의 두번째 밤.

    <블루 재스민> – 알렌식 짝짓기의 새로운 경지

    Blue Jasmine

    블루 재스민 (2013, Blue Jasmine)

    블랑쳇(Blanchett)이 블랑쉬(Blanche)를 연기한다. 95년판 영화에서 스탠리 코왈스키 역할을 맡았던 알렉 볼드윈은, 사기꾼이자 바람둥이인 재스민의 전남편으로 분한다. 뉴 올리언즈가 아닌 뉴욕에, 열차가 아닌 비행기로 도착하지만 블루 재스민은 시작부터 끝까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고스란히 현대로 옮긴다.

    참 오랫만의 알렌옹 뉴욕 귀환작이라, 뉴욕의 정취를 배경으로 뒤얽히고 꼬여가는 인간관계의 도시남녀 스토리를 기대했는데, 정작 알렌옹은 뉴욕이라는 공간만 차용해 셰익스피어도 그리스도 아닌 1940년대 미국의 대표 비극으로 휙 되돌아가셨다.

    왜 하필이면 Streetcar 였을까. 신경쇠약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가까스로 버텨내다 결국엔 나락으로 추락해 버리고 마는 비극의 결말은 우디 알렌스럽지 않다고 느껴졌다. 나에겐, 갈기갈기 분열되는 정신을 황당한 외연으로나마 가까스로 추스려 모으고, 그런 자신을 제 3자처럼 바라보며 쓰디쓴 웃음을 지으면서도 삶을 지속하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이 우디 알렌이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범죄와 비행’이나 최근의 ‘매치포인트’ 에서도 좋았던 것은 결국 살아남는 그들의 블랙한 결말이었거든. 하기야, 사회의 제도적 응징은 빠져나갈 수 있어도, 소리없이 스며들어 정신을 찢어발기는 악마에게는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경찰에게서는 피해갈 수 있지만, 신경 분열의 연옥(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은 피할 수 없다. 이 외에 재스민에게 어떤 통로를 열어줄 수 있었을까.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 알렌 옹의 본격 비극이라는 점에서, < 카산드라 드림>이 겹쳐지지 않을 수 없다. < 카산드라 드림>은 제목에서부터 명백하게 희랍 비극을 차용했고, 그냥 살인도 아닌 친족 살해까지, 알렌 옹 영화 역사 사상 최대 잔혹치를 찍었다. 영화는 한 발 한 발 예언된 듯한 나락을 향해 가는 추락과 분열의 과정이다. 재스민 역시 직접 칼을 들어 누군가를 살해하지 않지만 복수심에 가득찬 그녀의 결정은 남편을 자살로 몰아간다. 재스민의 파멸 역시 그 지점부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 카산드라 드림>은 원치 않는 죄를 짓기까지의 자기 분열의 과정이라면, < 블루 재스민>은 우발적 충동이 야기한 죄 이후에 벌어지는 파멸의 과정을 현재형으로 둔다. 둘 다 ‘죄와 벌’이고, 결과는 영혼의 파멸이지만 < 카산드라 드림>은 죄를 짓기 전에 받는 벌을, < 블루 재스민>은 죄를 지은 후에 받아야 하는 벌을 그린다. 어느 쪽이 더 가혹한가. 우디 알렌이 그린 두 과정을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없이 그냥 막하막하다. 그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욕망’을 쫓은 댓가라기엔 너무 가혹하지만, 그래서 비극인 것이다.

    내년 오스카 여주상의 강력 후보라는 케이트 블랑쳇. 과연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우디 알렌 영화를 통틀어 이만큼 독보적으로 영화 전체에서 강력한 존재감으로 못처럼 나 홀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캐릭터는 본 적이 없어 좀 낯설었다. 알렌 옹 영화에서 연기의 백미는 늘 앙상블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것은 한편, 스탠리의 부재를 실감하게 한다. 스탠리의 역할의 ‘칠리’는 여동생 진저의 남친으로 머물뿐, 재스민으로 대항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Streetcar의 핵심이 블랑쉬-스탠리 사이의 강력한 성적 긴장감이며, 클라이막스 역시 최고조에 이른 긴장감의 해소(?) = 블랑쉬의 결정적 파멸의 순간 이라고 본다면, 이 관계가 빠진 재해석은 아무리 새로운 반전을 숨겨놓았다 해도 허전할 뿐이다. 재스민의 에너지를 맞받아칠 카운터파트너가 없는 것이다.

    재미있었던 것은, 결국 자신의 남편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결정적 이유가 정치적 올바름, 경제적 이유, 자신에게 가한 사기 범죄 등등의 거창한 것이 아닌 바람핀 남편에 대한 ‘질투’였다는 것이다. 남편과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을 파멸로 치닫게 하는 비극의 시작이라기엔 너무 사소한. 여자란, 인간이란 결국 그런 사소한 감정에 거대한 운명을 휘둘리는 존재라는 것.

    어쨌든 알렌옹은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 미국 근대 비극을 모두 자신의 오리지널한 감각으로 훑어가고 있다. 그것도 영화라는 대중 엔터테인먼트의 미덕 안에서. 정말로 흥미로운 여정이다.

    노화는 필연적 쇠퇴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한계를 알렌옹은, 새로운 공간, 새로운 배우와 젊은 피 그리고 고전 등과 자신의 오리지낼리티를 교배하는 방식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다. 자신이 쌓은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을 겹쳐 새로운 색깔들을 막 뽑아내신다. 쇠퇴를 막는 수준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시며. 80세를 향해가는 노감독이 말이다. 자기 복제의 함정을 짝짓기로 넘어서는 이러한 창작 방식이 나에겐 너무나 흥미롭다. 삶에 있어서도 적극 벤치마킹해야할 방식이 아닌가.

    긴 수명과 끊이지 않는 짝짓기 + 생산 때문에 알렌 옹은 넘사벽의 대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알렌옹. 이 여정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부디 장수하시고, 계속 만들어 주시기만을…결론 : 알렌옹은 진정한 짝짓기의 대가이시다^^;;

    ps. 하지만, 누군가 말한 이 영화가 알렌옹 최대 걸작이라는 평가에는 반대한다. 무수한 original works를 만들어낸 알렌 옹의 베스트로 어찌 고전 작품의 재해석을 꼽는단 말인가ㅠ

    pps. 그 동안 본 알렌옹 영화 Rome with Love, Cassandra’s Dream, Whatever Works, Anything Else, Melinda and Melinda, Hollywood Ending, Sweet and Lowdown ㅠㅠ 다 넘넘 재밌당. 이 중에 몇 편은 두 세번씩. 언제 리뷰 다 쓰지 ㅠㅠㅠ 써 놔야 되는데.

    잡스 : 영화 말고 잡스

    스크린샷 2013-09-07 오후 9.34.35

    MS스러운 잡스 영화. 세상을 바꿀 위대한 아이템에 압도되어, 그 무엇도 버리지 못한 채, 불친절한 UX로 덕지덕지 자잘한 기능만 잔뜩 붙여놓은 제품같다. 많은 것을 생략하고, 뛰어넘고, 요약해 버렸고,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얼버무렸다. 관점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해석하기에는 너무 큰 존재였을 것이다. 그 틈새를 잇는 음악과 영상의 오색찬란한 감정 유발은 한 마디로, not cool.

    유일무이의 성찬을 제대로 씹어 삼키지 못한, 소화 불량의 잡스이거만 그래도 잡스였다. 나에겐 영화에서 뿌려지는 파편들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잡스에와 애플 제품이 줬던 경험이 어우러져 마음은 쉴새없이 꿀렁거렸다.

    맞어. 내가 좋은 영화를 원했던가? 설마. 딱히 영화를 보고 싶었나? 노. 세기의 인물에 관한 경이로운 해석을 기대했나? 아니오.

    난 잡스가 보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럴 수가 없어서, 누군가 대신 그려준 잡스의 이야기를 보러 간 것 뿐. 영화를 본 후, 잡스에 대해 생각하고, 몇 가지 정보와 디테일을 얻고, 다시 한 번 그를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이들과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127분의 런닝타임은 그 역할로 충분했다. 이 이야기가 불과 < 잡스 비긴즈> 내지는 < 잡스와 마법사의 돌> 뿐이었을 지라도.

    무엇보다도 난 이 영화로 볼 수 없었다. 영화 속의 이야기와 내가 하고 있는 (비교할 수 없이 사소한) 일들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더 높은 차원의 품질에 대한 압박과 열정에 대한 요구, 디테일과 UX에 집착, 비타협, 독단적인 옹고집과 신념의 경계….등. 난 영화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난 스스로 감독이 되어, 나의 일상과 스크린 위의 화면을 쉴새 없이 교차 편집해 틀고 있었다. 미천함과 위대함이 뒤죽박죽된 그 ‘어떤’ 영화에 나는 초집중했고, 마지막에 핑그르 눈동자에 어린 물기를 극장의 불이 들어오긴 전 남몰래 훔쳐냈다.

    굿바이 써머

    스크린샷 2013-08-24 오전 12.26.21

    “출근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늘은 공식적인 여름의 마지막 날이니까…”

    사 놓고도 몇 년간 입지 못했던, 연식과 TPO에 심히 부적합한 불량 반바지에 허벅지를 우겨넣고선 거울 앞에서 중얼거린다. 여름에 작별을 고하는 2013 마지막 공식 여름 착장이다. 안녕, 여름.

    인생의 또 한 계절이 지나가는데, 이깟 반바지쯤이 뭐 대수란 말인가. 올 여름의 광폭한 전횡을 돌이켜 보면, 이 정도의 어필은 오히려 미약한 것이다 등등. 금요일이고, 회의도 외부 미팅도 없다는 이유따위 대봤자 합리화는 커녕 여전히 멋적기만해 끌어다 붙인 생뚱맞은 이유지만,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듯한 차림으로 하루를 마친 후, 선선한 바람 속에 석양이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정말로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던 여름의 노래가 뚝하고 끊겨버린 듯한 기분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처럼 서랍 속에 내내 잠들어 있던 불량 반바지는, 이렇게 내 생애 처음으로 변곡점이 감지된 순간 쿨하게 작별 인사를 선빵 날리는 시크함? 야박함??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정리하지 못한 옷장은 아직 여름으로 가득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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