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음악 속에서 꿈꾸는 날
30년을 함께 했다는 3명의 남자를 3번째 만났다. 해가 진 뒤에도 아직 하늘에 남아 있는, 어스름한 빛의 잔영 같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골라 주신 음악도 한결같이 곱고 편안했다. Pt2의 두 번째 곡 “Ballad of the Sad Young Men” 예의 Pt2의 붉은 셔츠를 입으시고, 너무나 익숙한 쾰른 앨범 자켓의 그 포즈 …피아노 앞에 고개를, 온 몸을, 온 마음을 숙이고 있는 대로 웅크려, 깊은 어딘가를 홀로 들어가 끌어올린 첫 음을 건반 위에 짚어내셨을 때 온 몸에 흐르는 전율. 그리고 천천히 자렛 옹의 흔들리는 등짝을 따라 흐르던 선율은 슬픔이기도 했고, 기도이기도 했다. Shenandoah를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은 느낌. 진심으로 이 공연에 감사한다. 이 한 곡 만으로도.
생각해 보니, 늘 그랬네. 티켓 값이 싼 것도 아닌데, 항상 고맙다는 기분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무슨 망언인가 싶지만. 그 분들의 공연에선 늘 내가 을 내지는 병, 정, 무가 된 듯한 기분. 돈 내도 안 팔면 못 사는 독점적 공급자이므로. 뭐든 갖다 바칠테니, 그냥 살아만 계셔다오 그리고 계속 가끔 들러서 연주 들려주세요 굽신굽신 이런 식이 되어 버린다.
Pt1의 마지막 곡. 세 영감님들에게서 들어보지 못했던 스타일이었다. 엇박자로 뚱따뚱따, 음의 전개도 이국적이고…스탠다드 넘버가 아니라, 어느 남미에서 온 선율처럼 같았는데, 셋리스트 보니 I didn’t know what time it was란다. 참 좋았다. 오래된 우물에서 전에 맛보지 못했던 차고 신선한 물이 흘러나와 익숙했던 풍경에 새롭게 눈뜨게 해 주는 것 같은.
4번째 앵콜곡, Straight, No Chaser. 옛다 이거 먹고 떨어져라??? 안 가고 보채는 아이에게 줄까 말까 감춰놓은 제일 맛있는 초코바를 던져주시듯(ㅠ), 맨 끝에서 있는대로 실력 발휘를 해 주셨다. 네네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맛나요 맛나. 이제 집에 갈께요. 아는 곡이 거의 없었는데, 따다다다~ 따다다다~따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와 몹씨 반가웠다. 운전하며 오는 길 내내 흥얼흥얼~
언제나 앵콜로 빠뜨리시지 않는 When I Fall in Love. 수 없이 들었는데도, 집중 복습 기간이었던 지난 주에만도 Whisper Not과 Blue Note 버전을 번갈아가며 4~5번은 들은 것 같은데도, 그래도 이번의 연주는 같지않고 또 새롭다는 것에 놀란다. 익숙한 선율 속에서, 음들이 여기 저기 예측할 수 없이 일탈했다 자리잡기를 반복하는 몇 분을 귀로 따라가며 그것이 마치 지나온 삶의 궤적같다는 생각을 했고, 이 음악과 함께 한 시간들이 떠올라 뭉클뭉클했다.
솔로까지 네 번의 공연을 봤는데, 그 중에서 이번이 자렛옹의 손가락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였다. 사실 나에게 오늘의 최고의 볼거리는 자렛옹의 손가락 그 자체였다. 우주를 떠돌던 그 많은 음악에 최종적으로 음이라는 물리적 형체를 부여한 그 손가락들.
그 오른손의 손가락이 건반이라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경이로운 모습을 목격했다. 자렛 옹의 손가락이 건반에 닿을 때 마다 내 귀에 자렛 옹이 선택한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망치로 내리쳐 정확히 겨냥한 그 자리에 말뚝을 박듯이 손가락으로 건반을 찍어 누르는 것도 모자라, 내리친 지점을 다시 한 번 힘주어 좌우로 흔드는 타건에 압도되었다. 마치 음악이라는 지평에 어렵사리 내린 음을 다시 한 번 단단히 고정이라도 하려는 듯이. 이렇게 만들어진 음은 곧바로 휘발되지 않고, 제 역할을 한 후에도 길고 긴 잔음으로 남아 뒤이은 음들과 겹치고 공명하며 소리의 입체감과 깊이를 만들어 낸다.
피아니시모로 들리는 여린 음들을 치실 때 오히려 등근육을 잔뜩 긴장시켜 손가락 끝까지 힘을 전한 채, 한 치의 더함도 덜함도 없는 정량의 소리를 내기 위해, 알을 품은 어미새처럼 너무나 조심스레 건반을 아래로 밀어내는 손가락의 움직임. 작고 여리지만 그토록 소중한 음 하나가 태어나는 경이로운 생명 탄생의 순간을 지켜보는 듯한 순간들이었다.
때로는 손등을 피아노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때로는 둥그렇게 말아 세우기도 하시고, 때로는 깃털처럼 가볍게 쓸어내리시기도 하고, 고개를 최대한 오른쪽으로 돌려 몸을 비비 꼬아 스핀을 먹이듯 건반을 두드리시기도 하고, 머리부터 허리까지 대각선을 만든 후 어깨선에서 잔뜩 팔을 뻗쳐 그 끝에서 건반을 두드리시기도 하고, 오른발 왼발로 번갈아 장단을 맞추시고 그것도 모자라 엉덩이를 들어 흔들거리는 몸의 리듬을 건반에 실어내시기도 하고…
지난 네 번의 공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 순간도 그냥 지나쳐 보내는 음은 없었다. 모든 행동은 한 음 한 음에 모두 생명을 부여하려는 한 인간의 몸짓이었다. 오늘 자렛 옹은 몇 개의 음을 치셨을까? 몇 천 개? 몇 만 개? 어쨌든 자렛 옹은 그 수 만큼의 음에 진실한 생명을 불어넣으셨다.
연주의 행태 뿐만 아니라, 그 결과물에 있어서도 자렛 옹의 연주는 피아노와의 섹스가 맞다. 인정, 땅땅땅. 정확히는, 피아노를 매개로 한 음악과의 접신이겠지만. 그래서일까? 아무리 봐도, 이렇게 가까이서 HD급으로 봐도 자렛 옹 나이 대비 넘 심하게 섹시하심. 누가 섹시함과 생산 능력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논문 좀 써봐…자렛 옹을 샘플로 해서.
참, 또 하나의 대박!!! 중간에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피아노 현을 두드리시거나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조율에??) 자렛 옹이 어수선하게 무대 뒤를 왔다갔다 하시고 했는데, 그러다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지 연주 시작 전 선글래스를 벗어서 피아노에 올려 놓으셨다. 덕분에 선글래스로 가려지지 않은 자렛 옹의 오르가즘 쌩얼을 눈 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초레어템. 한 마디로, 색계에서 양조위의 그 표정에 못지 않다. 돌이켜 보는 것 만으로도, 심박수 급상승*.*;; 광클질에 비싼 표 앞자리 득템한 보람이 팍팍팍-
좌석 덕분에 작정하고 자렛 옹에 집중한 덕에 나머지 두 옹께는 대놓고 소홀했다. 어쩐지 연주 구성에서도 자렛옹의 비중은 더 높아진 것 같다. 드럼, 베이스 솔로가 이렇게 드물었나 싶었다. 원래 그랬나? 특히, 잭 디조넷의 드럼에서 뭔가 빠진 것 같다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다 아니고, 그저 내가 이제서야 트리오의 연주를 제대로 듣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트리오에서 *표정*을 담당하고 계신 피콕 옹. 얼굴에 간간히 떠오르던 미소가 푸근했다. 드럼 셋트에 가려 디조넷 옹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자렛 옹은 워낙 나홀로 심취가 취미이신지라, 피콕 옹의 미소가 양 쪽을 접착제처럼 이어 주어, 트리오를 완성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처음 (사진으로) 뵐 때와도 비교도 안 돼게 쪼그라드셨지만….그러고 보니, 피콕 옹에게 푸근하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날이 왔네. 예전에 사진으로만 접할 때는 독수리처럼 매섭고 날카로운 눈매로만 기억했는데. 다시금, 세월이란.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장면. 베이스 독주에서 피콕 옹이 음을 좀 다르게 비틀어 연주하자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우~”하는 탄성으로 화답했던 자렛옹. 관객 대다수가 놓쳐버렸을 미묘한 변화를 30년 지기 협연자는 간파했고, 80대 노연주자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사심없는 찬사를 날린 것이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서로를 감탄시킬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 놀라웠다. 내가 기억하는 이번 연주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순간이다. 첫 번째는 마지막 커튼콜 때 세 분이 부둥켜 안으시던 모습. 30년을 같이 보내고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분들이 벅차게 서로를 얼싸 안는 모습은 그저 감동이었고, 우리의 박수와 환호성이 그 트리거가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일본에서는 이제 더 이상 트리오 활동을 하지 않으신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고 했다. 앵콜이 죄송스러울 정도로 연로하신 두 분을 보며 (자렛 옹은 열외~) 그럴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니, 이미 지났다는 것을 알겠는데도 여전히 이 트리오에게 안녕을 고하기가 아쉽기만 하다.
자렛 옹의 연주를 실제로 보는 것이 오랜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은 풀었고…오늘 공연 보다가 그만 새로운 소원이 생겨버렸다. 이 소원은 못 이룰 것이 백퍼 확실하다. 그래도 이미 소원이란 것이 되어 마음 속에 자리잡아 버렸으니 어떡하지? 자렛 옹이 푹 숙인 쾰른 포즈로 연주할 때 자렛 옹 귀에 들리는 소리로 연주를 듣고 싶어져 버린 것이다. 거기서 자렛 옹이 듣는 음악은 어떤 것일까. 어쩜 나는 반밖에 혹은 반의 반밖에 못 듣고 있는 지도 모른다. 거기 가야 다 들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다. 어찌하면 이 소원을 풀 수 있을까. 구마모토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시속 260km의 신칸센 상-하행 열차가 스쳐지나가는 광경이라도 지켜봐야 하려나.
아름다운 꿈에서 깬 것 같은 느낌. 그날처럼 달빛이 쏟아지는 광화문을 하염없이 걷고 싶었다. 봄밤 속으로 걸어들어가, 간만에 선선해진 봄바람에 치마도 날리고, 자렛옹 만나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싶었지만, 현실은 네비 언니의 말씀에 복종하며 최적이 아닌 듯한 의심스러운 경로를 따라 얌전히 귀가. 간만에 블로그 쓰며, Tribute의 Ballad of the Sad Young Men과 이어지는 All the Things We are, Blue Note의 Lament 등 오늘 연주곡들 무진장 리피트. 지난 세월 참 많이도 들었는데, 그런데도 이제서야 비로소 이 트리오에 조금은 귀가 트이게 된 것 같다.
하지만, 2013년 한국의 5월. 희망이 소진되어 힐링으로 떡칠한 가면극같은 현실 속에서 이런 순수의 결정체를 듣고 있다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 그간의 자렛 옹 공연 감상기
2011.6.2 Keith Jarrett Solo Concert in Seoul
http://youzin.com/blog/?p=2956
꿈에 그리던 솔로 공연!!! 이 날의 한 줄 요약 ‘소용돌이치는 까만 하늘에서 고흐의 별들이 마구 떨어지는 것만 같은 황홀한 밤’.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무진장 고생했지만…5번이나 앵콜 받아주신 자렛 옹과의 교감도 너무 좋았고, 자렛 옹도 한국 팬들의 광적인 반응에 매우 즐거워하셨다는 후문.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공연 끝나고 많이 많이 걸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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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8 Keith Jarrett – Gary Peacock – Jack DeJohnette 첫 내한 공연
http://youzin.com/blog/?p=2045
눈물 콧물 질질 짜며 봤던 감동적인 무대. 그들의 등장에 왜 이리 시큰해 지던지. 광적인 한국 팬들의 반응에 즐거워하시던 세 할배…공연장에서 우연히 아는 얼굴을 많이 만나서, 더욱 즐거웠고…끝나고 을지로에 진출해 마신 한 잔의 술과 함께 했던 이들과의 열혈 간증 타임이 기억에 남는 날.
2007.5.6 Keith Jarrett – Gary Peacock – Jack DeJohnette 일본 도쿄 우에노 동경 문화센터 공연
http://www.youzin.com/photo/?p=26
한국에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일본으로 날라가 본 첫 번째 트리오 공연. 인터미션때 와인까지 한 잔 마시고 알딸딸해 져서~ 두 배로 꿈결같았던 시간. 술기운에 동영상 촬영까 감행. 지금 생각해 보면,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지대로 민폐. 부끄부끄…그래도 영상에 찍힌 God Bless the Child의 도입부를 지금도 간간히 들으며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Twin Peaks : Fire walk with me (1992)
David Lynch /Angelo Badalamenti/ Sheryl Lee/ Julee Curise
Moment. of. Truth.
Music shower. 넘치는 음악의 세례. 대낮에 쏟아지는 햇빛같은 음악들을 마음에 들이붓는다. 소리는 소독약인양 묵혀놓은 상처를 뜨겁게 하고, 아프게 한다. 하지만, 결국 열감에 부풀어올라 하늘거리던 예민한 촉수들은 쏟아지는 양기의 폭주에 꺾여 가라앉고 만다. 발산일지 발광일지 여하간 자기 안의 쌓인 것을 최대치로 내뿜는 공연들이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진다. 꽥꽥거리며 따라부르고, 박수치고, 라이브가 이어질 때마다 쾌감의 그래프는 꺽일 줄 모르고 치고 올라간다.
돌아오는 택시 안, 도심의 밤풍경들이 차창밖으로 지나가고 난 수렴과 발산의 밸런스에 대해 생각했다. 지난 1주일, 지난 1달, 지난 1년, 지난 3년의 사이클로 끊어. 내 안에 고여있던 것들과 세상에 쏟아낸 것들의 밸런스가 어긋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이유들이 여름 날 창가에 맺힌 물방울처럼 천천히 흐려지는 슬픈 과정에 대하여.
확실히, 치우쳐 있었다. 하지만, 그래야 했던 이유들도 있었기에. 그러니까, 나 자신을 탓하지는 않기로 한다. 그런 나를, 지나치며 나뭇가지 잠깐 흔들어 보듯 던져진 말들도 잊기로 한다. 그리고, 그러저러한 힘을 모아 일단 살아남을 것.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수렴과 발산을 밸런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
택시 옆 자리는 비어있고, 문자가 온다. “보름달 보여?” 아니. 난 인제 그런 거 안 봐. 짧고도 달았던 밤이, 이렇게 지나간다. 거짓말.
2011.6.2 (Thu) 대단한 공연이었다! 근데 자렛옹이 인간에서 신의 경지로 넘어가는 동안, 나 역시 인간의 신체적 물리적 한계와 싸투를 벌여야 했다! 이번 주 내내 감기몸살로 기침 콜록콜록. 그렇잖아두 Radiance 북클릿에 관객이 박수를 안 치는 건 gift지만, 기침은 그렇지 않다는 자렛옹의 글을 읽고, 심장이 쪼그라는 거 같아서 물통도 가져가고, 감기약도 점심, 오후, 저녁 3회…것두 특별히 기침 가라앉히는 걸로 지어먹었는데.
왠걸. 첫 곡 시작하고 3분 지나자마자 갑자기 저 폐부 깊숙한 곳에서 한 점, 간질간질한 것이 스멀스멀 타고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가슴에서 목…마침내 입으로 튀어 나오려 한다. 터져나오는 기침을 애써 참는데, 나도 오늘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이게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참았던 작은 기침이 점점 더 눈덩이처럼 부풀어올라, 이젠 한 번 했다간 걷잡을 수 없이 커다란 소리의, 최소 30초, 최대 몇 분 정도는 지속되는 대박 기침으로 키스 자렛 공연 역사에 길이길이 새겨질 것만 같았다.
자렛옹의 피아노 소리만이 교교히 흐르는 이 조용한 공연장에. 게다가 이번 공연 실황 레코딩한다고 여기저기 마이크들이 장난 아니게 배치되어 있는 가운데…
이 와중에 나의 커다랗고 긴 기침소리가 울려펴진다고 생각하니, 머리 띵하고, 등골에 식은 땀 흐르고, 거의 공포에 가까운 기분이었다. 정말 이거 내가 15년 가까이 목놓아 기다린 공연 맞아? 도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나 초현실적인 기분에 휩싸이며. 신이시여, 제발 이 기침을 멈추어주소서. 기도가 절로 나오는데 결국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기침의 반격에 결국 난 내 손으로 내 입을 막은 채 등을 들썩이고 콧바람을 흥흥 거리며 입에 밴드붙인 간질 환자처럼 온 몸을 떨며 몰아치는 기침 기운을 조금씩 발산해야 했다. 비상시 대비해 가져온 물통을 만지작 거려 보지만, 물을 마셨을 때 기침이 가라앉는다고 걸 검증하고 온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머리를 스치며, 오히려 이 강력한 기침 기운에 들이킨 생수마저 시원스레 뿜어내는 아찔한 상황만이 상상되는 것이었다.
결국 물도 못 마시고, 어깨만 들썩들썩 흥흥거리며 …#1을 보내고 나니, 그제서야 간신히 기침이 잦아든다. 이후에도, 전반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6, 후반 #2에서 기침의 습격은 나로 하여금 인간 한계을 시험하게 만들었다.
기침. 키스 자렛의 천상의 연주조차도 이 사소한 기침 앞에선 맥을 못 추는 것이었다. 더 웃긴 건, 한 편 그래도 음악이 아름다운 건 느껴져 고통이 몇 배가 되었다는 사실. 한걸음 한걸음 지옥불 즈려 밟고 가는데 하늘에서는 천상의 나팔소리가 울려퍼지고. 지옥불과 나팔소리가 거의 등가로 나를 덮치는데, 고문과 애무를 동시에 받는 기분.
유난히 기침 소리 많은 공연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공연 시작 전에 ‘에라 지금 해 두자’의 식으로 너도 나도 기침을 해대는데, 거의 폐병 환자들 모아놓은 것 같았다. 이 연쇄 기침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고…공연 중간에도 여기 저기 작은 기침 소리들. 서울은 독감이 유행 중인가보다. 하필이면 이 때…그런데 놀라온 건 자렛옹. 그 예민하고 까칠하기로 소문난 자렛옹이 기침소리, 2번이나 울려퍼진 핸드폰 소리, 심지어 카메라 플래쉬에도 아랑곳 없이 신경질 하나 안 부리고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셨다는 것. 마치, 오늘 밤만은 그런 건 문제삼지 않으시겠다는 듯이~
공연 후기는 여러 분들의 트위터에 잘 나와 있더라. 더 붙일 말은 없고^^, 모아만 놓는다. 개인적으로 내가 뼈저리게 느낀 것. 기침의 무서움. 기침을 참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인간으로서 정말 가능하기 힘든 일 중의 하나인 듯 하다. 그래도 나 오늘, 그 대단한 일을 해냈다! ㅠㅠ 내가 요즘 이런 일, 쫌 잘 해내는 듯~ 좋은걸까?
ps.근데 Storify 임베드 왜 이리 쓸데없는 공백이 많이 생길까? 간만에 졸린 관계로 일단 냅두어둠…
그래도 사진 한 장. 할아버지가 왜 이리 멋지구리~ 숙소가 워커힐 호텔이란 썰이 있던데, 하마틈 사생택시 부를 뻔. >_< 

CD
Facing You (1971)
Solo Concerts – Bremen/Lausanne (1973)
The Koln Concert (1975)
Staircase (1976)
Sun Bear Concert (1976)
Concert (Bregenz) (1981)
Paris Concert (1988)
Vienna Concert (1991)
La Scala (1995)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1998)
Radiance (2002)
The Carnegie Hall Concert (2006)
Testament (2008)
DVD
Solo Tribute The 100th Performance in Japan (1987)
87년 도쿄 선토리홀 실황 Dark Intervals를 이번에도 결국 못 들었다. 그래도, 그거 한 장 빼고 오르간 등 기타 악기랑 클래식 연주 빼고 피아노 솔로는 다시 다 들었다. CD 23장, DVD 1장. 1971년부터 2008년까지 37년간 이루어진 한 인간의 여정을 단 몇 주의 청음으로 단박에 품어낼 수 있으랴만은. 나에게도 이 음반들을 끼고 산 징글징글한 15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내가 그의 음악을 대했던 순간들의 밀도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 들었다. 무언가 밝히고 이해하려 애쓴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대상에 집중한다는 의미에서.
처음에는 서울 솔로 콘서트에 대한 예습이었다. 어떤 계열의 음들이 펼쳐질까? 길이는 어떨까? 로잔느같은 미친 64분이 이어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20분 정도는? Radiance쪽일까? 혹시 La Scala같은 대박이 터지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시니 너무 기대는 말아야지 등등. 조급하게 CD들을 뒤적거렸고, 그 속에서 키스 자렛 본인조차도 내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건반에 손가락을 얹고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는 알 수 없을 답에 대한 힌트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연주가 흘러나오면 질문은 흩어지고 그저 음악이 있을 뿐이었다. 폭우 속에서 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펄떡이며 울부짖는 짐승의 몸부림과 연이어 부조리하게 떠오르는 구원같은 천상의 무지개. 불길한 밤의 정글과 눈부신 아침의 빛. 하얀 달빛 아래서 규칙적으로 파열되는 파도. 감각할 수 있는 높이와 깊이가 최대치로 확장되고, 그리고 모든 것이 아름다움으로 수렴된다. 치장된 예쁜 것이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그 자체여서 아름다운 것.
아주 오랫만에 몇 주간 그가 즉흥으로 쏟아내는 비정형의 음표들을 따라가며 함께 아팠고, 뒤척였고, 불안했고, 침잠했고, 또 결국엔 아름다움으로 정화되기를 반복했다. 그의 음악은 비껴가지도, 장식하지도 않는다. 무저갱의 바닥을 그냥 자기 몸으로 파 들어간다. 이런 행위가 어느 순간 비상하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순간이 오고, 그때는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털어지고 비워진다. 견디는 시간의 문제일 뿐, 부작용 없는 가장 확실한 정공의 치유. 그래서, 이번 전곡 감상은 귀가 아니라 몸으로 ‘들어낸’ 것 같다.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음악을 들었고, 앞으로도 다른 여러 음악들을 듣겠지만 내가 음악이란 것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체험의 최대치, 그 끝은 여기일 것 같다. 다른 가능성을 닫겠다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그래. 궁금한 것들도 없어졌다. 내일 밤, 내가 할 일은 그저 백지로 나를 열고 그가 채널이 되어 전달할 음들을 받아들이는 것 뿐. 그 음들이 어떠한 높이와 길이를 가졌든 상관없다. 난 들을 테니까. 그것이 내 인생의 간절한 소망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요. 이제 된 것 같아. I’m 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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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의 재발견과 함께 요즘 너무나 애정하게 된 티볼리에
다락에 쳐박아 뒀던 구식 소니 CDP를 물려
내 방과 내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오디오 시스템을 완성했다!
세월의 뒤안길에 숨은 고수 둘이 만나 멋지게 하이파이브하고 나만을 위한 절창을 뽑아주는 느낌이랄까?
컨텐츠도 이에 질세라 Suzuki Isao Trio – Blow Up
디바이스의 콤비네이션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5번 연속 재생 ㅋㅋ
아방하고 엣지있으면서도 중간중간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멜로우하게 마구마구 녹아내려주는 이 스따~일이 넘흐넘흐 좋은 거시다. (이건 어디 병신체? ㅋ)
다른 CD도 틀어봤지만, 아무래도 오늘 분위기는 120% 스즈키 이사오. 아침부터 밤까지 이 이상의 선곡은 없다.
ps. 때로 어떤 사람을 향한 마음이 마음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아무런 표현이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없을 때
내가 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저 이 또한 그토록 무수하고 진부한 ‘나에 관한’ 것일 뿐인걸까?
고마워하고 있다…그래도.
임재범이 TV에 나왔다. 그 옛날 소리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임재범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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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있는 멘션도 하고, DM도 쓰고, 벙개나가 식견과 내공의 합도 맞추고, 눈빛도 쏘고, 끼도 부리고, …한 사람 마음 움직이기가 이렇게 힘들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증명하고, 고음이 안 올라가도, 삑사리가 나고, 호흡이 끊어져도 그런 것과 아무 상관없이 그 소리가 들려오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터져버려, 눈물이 줄줄 새어나게 만든다. 이처럼 비논리적이고 무기력한 마음의 상납은 그와 함께 한 세월 중 세상이 끝날 것처럼 비가 왔던 밤이나 혹은 비가 오지 않았으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어떤 밤에 그의 목소리가 나로 하여금 하게 한 일들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와 주워들은 그의 행적이 오해하게 만든 그의 정체와 그러한 정체들에 대해 가지는 나의 개인적인 애달픔과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남자의 이런 표정에 나, 그리고 많은 여자들은 몹시 약하다.
저 공허한 시선의 끝에 야옹~하고 나타나서, 어긋난 촛점을 맞춰주고 싶다는 지극히 10대적이고도 ROI 안나오는 정말 욕구에 그쳐야 할 욕구. 물론, 왠만한(?) 애들이 이러고 있으면 그냥 꿀밤 한 대 때려주고 말겠지만.
사실 이런 남자가 불쑥 한 아이의 아빠, 한 여자의 남편으로 당당히 나타나는 건 좀 (많이) 배신이다. 그래놓고, 그렇게 살아놓고, 그렇게 살게 해놓고, 이제서야 암에 걸린 아내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노래를 한다는 둥 주장하는 건, 황당한 어불성설이다. 화를 낼까? 아고라에 청원이라도 넣어 볼까 하다…그렇게 세월이 흘렀구나. 그에게 또 나에게도. 나 역시 비가 오거나 오지 않거나, 밤이 길지 않고 세상도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 이상.
“펑크 내지 않겠습니다.” 이제 남아있는 것. 임재범을 증명해주세요. 상납한 마음따윈 거두어 버릴테다.
하지만, 결국 밤이 오고 그의 노래를 틀어놓고 위스키를 딴다. … 약병에는 절대 같이 먹지 말라 되어 있는데도. 그가 내게 하는 일은, 아직도 이런 식이다. Same Old Story…
임재범 (2003.10.4)
‘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정말로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밖엔 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리라.’
임재범 첫번째 콘서트 JB’S VANGUARD (2004.10.31)
‘임재범은 가수요…그는 노래를 부른다오’ < - 이미 그는 '가수다'라고 선언했었다는 거. 선견지명 =,-
임재범 첫번째 콘서트 Photo (2004.10.31)
‘무엇을 바랬으며, 그 결과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앵콜을 청하는 열광적인 환호성에
피아노 앞에 앉으신 자렛옹, 관객을 돌아다 보며 딱 한 마디 “Yes!” 그래 칠께…친다구…
그날 밤은…그 2시간, 세종문화회관인지 천상의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그 공간 속의 모든 것은
아름답고 감동이었다.
‘아름다움’
나 정말로 우연히 신촌에서 충동구매한 키스 자렛의 첫 번째 더블 CD
‘Foundation’의 첫 곡
Smoke Gets in Your Eyes의 첫 소절이 흘러나오던 그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를 알아버렸다.
그것은 한 인간이 단독으로 어떤 세계의 끝으로 파고들어가며
다다른 독보적인 미의 세계였다.
일본 문화에서 보여주는 그 장식적 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지구 탐험대 뭐 그런 SF 영화의 설정처럼
예술의 고고하고 단단한 껍데기부터 다 해체시키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오직 한 개인의 재능과 영혼을 동원해
계속해서, 혼자서 파고 들어가는…아주 신비한 풍경의 중계였다.
그의 음악은 그랬다.
그래서, 그가 때때로 건반 앞에서 신음하고, 절규할 때
그것은 그 밑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음악’이라는 광활하고도 미지인 존재가
신비의 망또를 흘낏 펼쳐
아주 잠깐 한 인간과 닿는 것을 허락한 순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이 허락되는 것은 아주 소수의 인간 뿐이므로
그를 통해서나마 그 깊이에 다다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음악 뿐만 아니라 아무런 문화적 기반도 없었던 스물 몇 살적 내 감수성의 안테나가
그와 채널링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비껴나갈 수도 있었다고 가정하면 아주 무서운 기분이 드는 행운.
음…스물 다섯 쯤 전후 였던 것 같다.
그의 음악을 알게 된 다음, 나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게 되지 않았다.
내 청춘의 많은 순간, 그의 음악이 있었다.
다른 많은 음악을 탐하지도 않았으니까. 나에게 음악이란 것의 기준은 오직 키스자렛 뿐이었으니까.
참으로 고지식하게도 말이다.
(한창 춤에 미쳐있을 때, 살사 메렝게 빼고 ㅋ)
내 삐삐 웰컴 메시지에는 Foundation의 Birth란 괴상한,
최소한 삐삐 메시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곡이 녹음되어 있었고
버스가 코너를 돌아 내 눈앞에 해남의 푸른 바다가 펼쳐질 때, 기막히게 싱크되던 쾰른 #4 잊을 수 없다.
쉐난도어 들으며 기도했고
마음이 야수일 때 파리 컨서트….솔로 컨서트.
솔로 피아노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주는 선베어 컨서트.
그 옛날 명동 디아파송에서 큰 맘먹고 10만원 주고 산 블루노트 박스셋. 세종문화회관 한 켠에서 11만원에 팔더라. 15년 기다려 1만원 수익냈네~ 아 기뻐라. 그 박스셋은 내 영혼을 키운 식량이었다.
앵콜 전, 마지막 곡 I fall in love too easily의 전주가 흐를 때
20대 중반에 만나 그의 음악과 함께 한 내 인생의 순간들이 흘러갔고
내가 산 모든 키스자렛 CD 표지들과 그 속에 그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물론, 그 중에는 내 첫 번째 차사고도 포함된다.
자동차라는 것이 내 인생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거라고 믿었던 나는
난 그 첫 번째 시승에서
그 옛날 나에게 또 다른 한 세계를 열어 줬던 키스자렛의 Foundation을 꼭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더블 CD에서 판 꺼내다 어이없이 고속도로에서 사고 내고,
차는 폐차시켰어도
이 CD만은 꼭 품에 품고 와 지금 내 책장에 잘 꽂혀있다. ㅎㅎ
이 CD 표지의 키스자렛의 눈매를 정말 좋아한다.
선량하고 빛이 나는.

** 캡쳐해 놓고 보니 별로 안 그런데….사실 진짜로 보면 그렇다규. ㅋㅋ 나 눈 삔 거 아니야~~ (아, 당황시러)
30년 기다리신 분도 있다는데
고작 15년 기다린 나는 행운아다.
물론, 기다리다 못 참고 이게 끝이겠구나 하는 조바심에 3년 전에 일본 가서 만나 뵙기는 했지만.
20m 안쪽에서 서로의 연주에 웃고 반응하는 그들의 호흡 하나까지 모두 느낄 수 있었던 만남은 또 다르더라.
그냥 최고급 기술자가 타자치듯 절정에 다다른 재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음악 앞에 자신의 영혼을 다 내어놓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내 뚝뚝 흘려보내는 듯한 음 하나 하나의 진한 농도.
그래, CD 한 장 사는 것도 주저주저해야 했던…
그렇게 사들고 온 CD를 핥듯이 듣고 들었던 15년 전의 가난했던 나는,
영혼으로도 돈으로도 궁핍하기만했던 나는
20만원 짜리 표 한 장, 기꺼이 질러줄 수 있는 형편이 되어
우아하게 VIP 석에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아니, 사실 별로 우아하진 않았을 거다.
손수건도 없이 눈물콧물 질질 흘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ㅋㅋ
또 오셨으면 좋겠다.
이번엔 혼자서.
가능할까…
Yes! …이번에도 그렇게 대답해 주셨으면 좋겠다.
정작 애들은 모르겠지만, 심지어 버럭 할지도 모르겠지만
방황이란 젊은애들에게 부여된 특권이죠. 아줌마 아저씨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요.
때잃은 장마비에 젖은 중년의 방황이란 그저 그 표현만으로도 민망 돋는 황송함일 뿐이외다.
그저 조금 산보를 했을 뿐이라고 눈치껏 가려야죠.
나이들어 슬퍼지는 점입니다.
,,,,,
미친 비 쏟아지는 날, 귀가 찢어지도록 지르는 보컬에 미쳐 비에 미친 거리를 헤맨다.
Alone….
생뚱돋는 아줌마의 신파에조차 장단 맞춰줄 더한 신파스러움의 합리화가 필요했던 순간, Alone이 흘러나왔다.
근데 이 순간, 80년대는 정말 딱이다.
리피트 리피트 리피트…리피트 돋고,
방황돋네~ 방황돋아. 마을 어귀 물레방아 돌듯 방황도 돋고 나도 또 도네요.
확실히 밤입니다.
아주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미친 비의 밤.
and the night goes by so very slow
oh I hope that it won’t end though
alone
멀뚱멀뚱한 연휴 새벽에 갑작스레 삘을 받아 유튜브를 디비다가 좋아하는 국적 초월의 동영상 몇 개를 연달아 페이보릿했다. 정말 난 그런 것이었을 뿐이었다…
담날 보니 그 새벽에 “안 자고 모해?”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밤엔 폰을 꺼 놓으므로)
허걱…이거 모야.
모르는 번호지만, 아마도 아이폰으로 기기를 변경한 누군가 중 한 분이라는 짐작만 가는데
아이폰이 무슨 마녀의 수정 구슬도 아닐테고, 최첨단 신종 어플이 내가 그 새벽에 모하고 있는지 일거수 일투족을 실시간 스트리밍 해 주거나 할 것은 아닐진데 그 누군가가 내가 그 새벽에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알고 그런 스토킹성 문자를 보냈단 말이냐.
뭔가 두렵고 기분나쁜 생각에 으스스해졌지만, 모…그러고 털었다.
그렇게 연휴를 보내고 회사에 복귀해 지메일 및 각종 SNS 순찰을 쭉 도는데
이게 왠일인가. 내가 그 새벽에 그 영상들을 미친듯이 페이보릿했다는 사실이 온 동네에 쫙 도배가 되어 있었다.
버즈에, 페이스북에, 그리고 …손 놓고 방치 중인 트위터에까지도.
그러라고 셋팅해 둔거 아냐? 하고 묻는다면, 페북과 트위터는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안나나 버즈는 절대로 그런 적 없고, 심지어 내가 버즈를 쓰겠다고 허락한 적도 없는 줄도 아뢰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새 누군가의 버즈를 보고 있고, 그 버즈에 댓글을 달고 있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하고 있었다. 정작 나 자신은 그러는 줄도 모르는 새 말이다. 물론, 밀려오는 황당의 물결에 나홀로 몸을 떨어봤자, 많은 분들께 내 라이프 스트림이란 아웃오브안중이었겠지만.
느낀 점 두 가지.
1) 만약 내가 페이보릿한 게 무슨 야리꾸리한 AV영상이었다면 어땠을까? 비밀없는 세상, 빅브라더는 썬글라스 끼고 나를 내려다보는 거므틔틔한 브라더가 아니라 너무 친근한 브랜드로 미소짓고 있다.
2) 쓴다고 한 적도 없고 쓰고 있는 줄도 몰랐지만, 이미 쓰고 있다. 이거이야말로 버즈(혹은 최근 일관된 구글 출시 전략)의 무서운 점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 끝으로 이런 밤, 생각나는 노래 하나.
모타운 레코드 사장 아들이라는 빵빵한 백그라운드를 등에 업고도 한 때를 정말 잠깐만 풍미했던
록웰의 썸바디스 워칭 미~~이 부분 코러스는 마이클 잭슨인 거 다들 아시죠? 코러스 몇 소절 뿐인데도, 어찌나 마이클의 이야기인지. 정작 록웰은 나이프랑 이거 내고 그저 그렇게 Nobody’s Watching Him… 허나 마이클과 록웰, 누가 더 행복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