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다이어리
깊어가는 밤이었다. 캄캄한 밤이었다. 난 버스를 타기 위해 인적이 드문 서울 외곽의 2차선을 따라 거꾸로 걷고 있었다. 가끔씩 빠른 속도로 차들의 불빛이 다가왔다가 옆으로 지나갔다. 가끔씩 성마른 클랙션이 울리기도 했다. 불탄다는 금요일이었지만, 취해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주일의 그 어느 날보다 명료했다. 밤하늘에 빛나는 새하얀 점같은 별의 수를 세기도 했다. 누군가 크게 한 입 베어문 것 같은 달은 유난히 낮은 곳에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몇 백 미터나 남았으려나. 정류장까지는. 버스가 무거운 엉덩이를 돌려 자신이 달려온 방향으로 다시 머리를 트는 곳. 그 때였다. 주유소의 녀석을 보게 된 것은.
새카만 놈이었다.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침침한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고 마당 너머의 어둠 속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네 다리를 꼿꼿이 받치고 서서. 멀리서였지만, 방해하기 힘든 집중의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멀찍이서 그런 녀석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이윽고, 녀석은 뒷다리를 내리고 낮춰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한 시선은 풀지 않은 채였다. 녀석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지만, 그 끝엔 밤의 2차선을 건너온 정적만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이유를 밝히지 못한 채로, 나는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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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역할은 분명해 보였다. 재롱을 떤다든지, 외로움을 달랜다든지, 누군가의 침대맡을 차지하며 독수공방을 함께 할 반려의 목적은 아니다. 이런 인적 드문 밤의 주유소에서 녀석은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의 방어라는 명백한 필요에 의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녀석을 지켜 본 짧은 시간, 녀석은 충실하게 그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만약 네가 보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면 어떡하지. 그 침착하고 묵직한 눈빛으로 한없이 無를 스캐닝하고 있을 뿐이라면 어떡하지. 지금 너의 성실함의 결과가 고작 얼마 남아있지 않은 잔여의 에너지를 무용하게 고갈시켜 버리는 것에 불과하다면. 지금 매우 성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네가 실상은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이라면.
주말 내내 녀석의 모습이 게으른 사고의 흐름 속에서 어둠 속 플래시처럼 터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거기에는 나를 미쳐버리게 만드는, 기계와도 같은 고독한 성실함이 있었다. 일단 가동되면 멈추지도 의심도 하지 않는. 이런 시선의 끝에 서 본 적이 있습니까. 그건 정말 기가 막히게 멋진 느낌이죠.

여긴 내 고향이다.
그냥 ‘서울’쯤으로 테두리쳐진 막연한 도시명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고향을 전라도, 경상도라 할 수 없듯이 나도 내 고향이라고 하면
서울이 아니라 광화문이라고 해야 한다.
본적은 신문로 1가. 이 동네는 내 놀이터였다.
동화면세점이 들어선 국제극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그렇게 놀았다.
가끔은 아빠와 친한 동네 아저씨들이 뒷문으로 극장에 들여보내 주곤 하셨다. ET도 그렇게 봤었다.
그래봤자, 이제는 신림동에 생활의 터를 잡고
신림동과 분당을 쳇바퀴처럼 오가는 라이프가 틀에 박혔는데.
최근 몇 년, 별 연고없는 내 고향 동네를 찍어야 할 일이 부쩍 많았다.
다들 겪어낸 일들이다.
오늘, 오래 간만에 광화문을 향하며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집회를 시작할 땐 가을이었는데, 국회에서 11월쯤 국회에서 FTA 날치기 통과가 됐고, 힘든 겨울이 되었다.
너무 추워서 오리털 잠바안에 다시 두툼한 털조끼를 껴입고 다녔었다. 배낭에 방석과 촛불을 들고.
집회를 마치고 나면 온 몸이 얼고, 턱까지 덜덜덜 떨렸었다.
선배가 차끌고 데리러 와서, 대성집 도가니탕을 먹으러 갔던 기억. 뜨근한 국물이 죽여줬는데.
근데, 나 그때 이미 고기 안 먹고 있을땐데…음. 국물만 먹었나? 알쏭달쏭…어쨌든 궁물은 너무..눈물찔끔나게. ㅋㅋ
다들 그렇게 애썼는데, 건진 게 없다.
미국 소고기, FTA, 봉도사 구속… 어떤 것도 막지 못했다. 심지어 4.11 새누리당 과반도 막지 못했다.
망설였다. 갈까…말까…
패배주의때문이 아니다. 이런 행위들의 무용론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보는 경기는 꼭 져. 그러니까, 오늘은 보지 않겠어.
왜냐하면, 오늘은 꼭 이겨야 하는 경기니까. 그동안 다 졌더라도 오늘만은 꼭 이겨야 하니까.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에 스스로 설득당해, 차마 경기장안에 들어서지 못하는 절박한 아스날빠의 심정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갔다.
2002년 12월. 신림동에서 만났던 노무현이라는 뜨거웠던 사람.
오늘이 시큰했던 그 날의 기억과 하나로 겹쳐지길 바라면서.
참으로 조심스레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내 고향 광화문으로 갔다.
오늘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줄까? 제발…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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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앞. 이른시간 부터 꽉 채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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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 조국 교수님의 지원 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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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에 돌아가는 노란 바람개비. 시대의 칼바람도 참 매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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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허들링. 춥지만 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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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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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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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은 것들, 기쁜 기억으로 남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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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분식 포장마차마다 그득그득.
다들 추웠던 게다. 춥지 않아서, 버틴 건 아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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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바가 유난히 뜨셔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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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앞에서 이어지고 있는 쌍차 농성장. 뜨끔한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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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안에 삶이 있다. 어떤 삶일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이 추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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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
하얀 눈 대신, 기쁜 소식들이 펑펑 쏟아지는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잔뜩 가져다 풀어놔주시는 크리스마스. 요즘 서울 시장님처럼.
그래서 힘들었던 마음들을 다 덮어줬으면 좋겠다. 하얀 이불이 되어 따스하게 감싸줬으면 좋겠다.
추웠던 5년의 겨울을 버틴 사람들이 더 이상 춥지 않도록.
떨리는 마음으로 19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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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만에, 딱히 몇 년만이라고 꼽을 순 없지만, 방출의 규모로 따지자며 거의 처음인 대규모 책정리를 했다. 가끔씩 책장을 비운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책을 한 번에 솎아낸 적은 없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수 백권의 책을 집 앞에 버렸고, 폐지줍는 할머니는 이게 왠 횡재나며 전화를 걸어 집에 계신 할아버지까지 동원해 몇 차례에 걸쳐 책무더기를 구루마에 실어가셨다. 한 발 늦게 나오신 앞 집의 폐지 줍는 할머니는 몹시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두 노인이 합심해 책 실어 가는 광경을 지켜보셨다. 아마도 이런 껀수를 미리 알려주지 않은 앞집 처자를 원망했을지 모른다. 폐지줍기조차 치열한 경쟁인 세상…
버릴 책을 골랐다기 보다는 남길 책을 선택했다는 편이 정확한 이번 책 방출에서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버림으로 인정하게 된 사실들과 남김으로 확인하게 된 사실들이다.
난 더 이상 도스토예프스키를 범우사 구판으로 읽지 않을 것이다. < 죄와 벌> < 까라마죠프의 형제들> < 악령> < 백치> 일명 도스트예프스키 4대 장편을 이번에야 버렸다. 학생 때 밑줄긋고 사람 이름 적고, 연습장에 가계도 그려가며 탐독했다. 그래도 그때 나로선 못 미친 부분이 많아, 언젠가 나이 들어 다시 꼭 읽고 말리란 결심으로 지금까지 20년 넘게 책장을 차지해온 책들이었다. 하지만, 책을 버리면서도 다시 한 번 읽어보리란 결심까지 버리진 못했다. 새로운 양장본으로 도전해…보게 될까?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도전 중에 도스토예프스키를 넣어줄 수 있을까.
내가 접한 시의 세계는 대학교때 결빙되어,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책 한 칸을 차지한 시집은 죄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시대의 화석들이었다. 남긴 것은 이성복, 최승자, 기형도, 이문재, 구광본, 황지우의 몇 권. 2000년산 시는 문태준의 < 가자미> 그리고 정양 <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만 남았다. 내 책꽂이에서 펼쳐진 문지와 민음의 대결에서는 민음의 압승이다. 시집 자체가 몇 권 안 남아, 시가 이겼다고 할 수 없지만…시인이 아니면서도 최근 나에게 가장 많은 시를 읽어준 신형철 < 느낌의 공동체>가 위안이 된다.
쿤데라의 구판 소설들은 아웃됐다. < 농담> < 웃음과 망각의 책> < 생은 다른 곳에> < 불멸> 등등. 난 쿤데라의 블랙한 맛에 몹씨도 열광했고,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음미했고, 쿤데라팬은 내편이라는 은밀한 공식을 품고 살아왔지만 다시 쿤데라를 읽겠다면 신판을 사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했다. 어떤 판으로 읽건 그 내용물은 매우 흡족하리라는 확신은 변함없지만, 지금 버리지 않으면 오히려 쿤데라를 더욱 낡은 과거에 밀어넣고 외면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단, 재생지 하드커버 버전의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패키징 차원에서 레어템으로 분류해 남겼다. 쿤데라는 오히려 시집과 수필집들이 살아남았다. 최근 발행된 < 커튼>은 이번에 새로 구매하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 쿤데라의 소설은 현재형이 아니지만, 쿤데라의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좋은 책이라도 너무 낡았으면(그래서 그 버전으로 읽지 않게 될 것이 확실하다면) 버리자’는 제 1규칙에서 예외가 되어 살아남은 작가들이 있다.
하루키는 소설도 소설이지만, 무수한 버전의 잡다구리 에세이집들이 있다. 겹치는 것도 많고, 출판사도 제각각이다. 저작권 문제은 해결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만큼 허접하게 나온 책들도 많다. 모두 다 남겼다. 하루키니까.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과 수필집 모두 단 한 권도 버릴 수 없다. 다시 읽건 안 읽건이라는 조건까지도 붙는다. 2000년 대 작품은 없지만, 나름 레어한 초기작 컬렉션에서 정작 가장 좋아하는 < 물의 가족>만 빈다. 누구에게인가 읽어보라고 주고 나서 다시 받지 못했다. 채워넣어야 겠다. 요즘 새로나온 표지의 밝은 물색보다 옛날 버전의 청록과 남색이 섞인 짙은 물색이 훨씬 소설의 분위기와 맞다고 생각되지만. 그래서, < 물의 가족>만은 구판을 구하고 싶다.
까뮈도 남았다. 15권인데, 시지프의 신화 구판과 이방인, 안과겉의 원서는 버렸다. 책 고르는 데는 고민이 없다. 책세상 + 김화영 선생께서 종결해 주신 덕분에. 난 그저 따를 뿐.
하라켄야와 쿠마켄고는 지금 내 책꽂이의 가장 핫한 아이템이다. 다시 읽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고, 이미 여러 번 다시 읽은 책들도 있다. 틈나는 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 있다. 전문 작가가 아니면서 그 어떤 작가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 아마도 ‘책’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의 어떤 이상적 ‘지향’으로 남게 될 세계. 그 세계로의 지향이 끝나면 이 책들을 처분할 거고, 그건 정말 지금은 상상하기 싫은 어떤 한 시대의 끝이 될 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책과 관련된 모든 책을, 그리고 서경석, 김혜리의 책들 모두 남았다. 천재의 글과 따라하고 싶은 잘 쓰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책이 남았다. 박상륭과 이문열, 김훈은 남지 않았다. 무겁거나 어렵거나 장대한 세상을 더 이상 나의 책꽂이가 담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문열의 초상(?)이 책 표지 가득 실려있는 < 젊은날의 초상> 앞에서는 잠시 멈칫했다. 청춘의 당연한 모습이 저런 것일 때가 있었나…라는 소회때문이었다.
기형도와 김수영의 산문전집, 김승옥 전집은 남았다. 나란히 꽂아 놓고 가끔씩 그 앞에 서 아무 거나 집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 봐도 전혀 다른 클래스의 미문이 쏟아진다. 한국말로 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쓴 세 사람은 버릴 수 없다. 나의 좁은 말세상에서의 기준일 뿐이지만.
자기계발서류들. 모두 버렸다. 남은 건 < 웰빙으로 나를 경영하라>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책. 그리고 <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58> 아주 나이가 많이 먹지 않았을 때 원서로 읽고는 마음에 쏙 들어, 번역본으로 사 두 개 다 소장 중. 이 두 책은 자기계발서로서가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도중에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에 대비한 비상용 구급약으로 꽂혀있다.
스페인어를 배우고자 했을 때 모았던 각종 교재와 사전, 레퍼런스들 앞에서 진지하게 앞으로 내가 스페인어를 배우게 될 것인지 물었다. 확실히, 배우고 싶다!라는 대답 뒤에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 나니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더욱 잘 구분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은 애매하다. 그래서, 스페인류는 일단 방 한 구석에 일괄 박싱. 유보한 꿈들은 이루게 될까 버리게 될까. 저 박스의 운명이 궁금하다. 아니, 궁금해야 한다. 아직은.
IT니 기획자용 책들은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레퍼런스로 볼 것들 몇 개를 남겼다. 모바일에 관한 책들이 주로 남았고, 내가 번역한 책과 쓴 책들…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실감했다.
어렸을 때 탐독했던 퀴즈책을 버리지 못했다. 여기서 ‘어릴 때’란 초딩 입학 전이다. 아마도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에 해당할 책이다. 삼촌 댁에서 가져온 이 책을 보며 매일매일 퀴즈를 풀었고, 달달 외우게 되었지만 그래도 새로 풀면 또 재미있었다. 책 표지는 사라진지 오래고 모든 페이지가 다 헐었고, 이상한 냄새마저 풀풀 풍기는 이 책을 왜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어쨌든 결론은,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퀴즈를 풀지 않더라도.
기타 등등 살아남은 것들과 아웃된 것들 사이. 나는 순간순간 많은 결정들을 했다. 그것은 지금 내가 누구인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선택이기도 했다. 어쨌든 끝났다. 책장의 2/3를 비우고 나니 섭섭함보다는 후련함이 앞선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 그리고 남은 책들이 더 소중해졌다. 그래봤자, 진짜로 손이 가게 될 책은 몇 안되리라.
고상하게 책꽂이에 꽂혀있다, 어느 하루 밤 갑자기 무게를 달아 그램당 얼마로 쳐서, 그래봤자 다 합쳐 고작 몇 천원에 팔려갈 폐지로 바뀐 책들…하지만, 그 책들의 영혼은 내 어딘가에 녹아들어, 나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주머니가 든든해진 할머니에게 기쁜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 나르느라 피곤하셨을 텐게 곤히 주무시길. 나도 잘 자고, 내 안에 담긴 떠나간 책들의 영혼도 평안하길.
수동 렌즈라 초점 맞추기가 힘들었는데…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 지 알 수 없을 때 뭉개지는 경계에서 아름다움을 본다.
한 해를 기대어 달려왔던 다짐이라든가, 의지같은 것들이 경계를 허물고 뭉개져 마음의 우물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몽환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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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말이야. 4년을 기다렸지.
네 번의 겨울. 네 번의 봄. 네 번의 여름과 네 번의 가을.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가장 환했고 가장 캄캄한 날들이었어. 우발적으로 가카와 함께 한 날들이었지. 아마 난 가카를 잊지 못할거야. 가카와 함께 시작되었으니, 가카와 함께 끝나겠지.
그러므로, 4월 11일이 지나면 널 보낼 수 있겠다. 그렇지 못하다 해도, 최소한 12월 19일 전에는 끝날 거라고 봐. 이 4년간 출퇴근 길에 매일 보며 씹듯이 외운 한 장의 사진. 지구 정반대편, 아르헨티나라는 곳이래. 무지개가 뜬 이과수 폭포.
“이과수 폭포에 도착하니 보영 생각이 났다. 슬펐다. 폭포 아래에 둘이 있는 장면만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신림동에서 이과수를 보고 있어. 매일 매일. 나 역시, 그 외의 것은 상상하지 않았는데.
잠과 싸운 한 해 였다. 그리고 길이 꺾이는 곳마다 쉼없이 NO를 외쳐야 했던 한 해였다. 촛불을 들었고, 촛불처럼 흔들렸다.
1. 불면
1주일에 15시간 정도를 자고 나서도, 내 몸은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별로 살아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사고는 극으로 치닫고, 머리 속은 몽롱하고, 머리로 해야지라고 생각한 것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내일 당장 회사를 그만 두고, 어디 어두운 곳에 쳐박혀 수면제를 먹고 쓰러져버리자. 검은 벽천장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생각하다, 또 기계적으로 셔틀을 타고 회사를 가서 일을 했다. 술을 먹으면 필름이 끊기고, 눈을 떠 보면 엉뚱한 곳에 와 있기도 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미련하게 버티다 몇 달이 지나서야 겨우 병원을 찾아 수면제를 처방받고, 조금씩 정상의 사이클을 찾는 동안, 난 몸과 나의 관계를 생각했다. 더 이상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사는 식으로 연명할 수 없다는 걸 겨우 깨닫게 되었다. 슬프고도 아쉬운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친숙해져버렸고 내 삶의 중요한 것들을 만들게 해 준 패턴을 -그것이 비록 모범적이지 않은 것일지라도- 놓아야 한다는 것. 불면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내 몸이 달게 받아야 했던 힘든 벌이었다. 그래, 난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 그리고, 젊었을 때 해냈던 것과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어려운 질문이 남았다. 2012년의 숙제다.
2. No
아니야. 안돼. 못해. 가지마. 만나지 마. 끊어, 짤러. 그래서일까? 올해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NO일 것이다. 그 무엇, 누구에게보다 우선 나 자신에게. 왜 그렇게 NO만 해야 했을까? 나는 대체 어떤 가능성을, 어떤 희망을, 어떤 미래에 등을 돌린 것일까. 가장 무서운 가정은 ‘그저 적당히 편히 머무르고자 함’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최소한 그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나는 내가 외쳐야 했던 NO의 의미를 해석하고 또 해석했다. 분명히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NO가 풍기는 부정의 기운에 후달렸다.
그러다, NO라고 하는 사람은 지키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에게도 소중한 것이 생겼구나. 그거였어. 그 단순한 거였어. 심하게 YES를 외치며, 지옥 끝까지라도 내려가던 때가 있었다. 잃을 게 없던 시절이었고, 그 시간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웃음이 나왔다. 겨우 이제서야? NO라고 했을 때,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맑고 푸르고 조용한 바다를. 2012년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한 더 많은 YES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3. 촛불
MB 1년차의 *극도의* 스트레스는 무기력과 외면으로 이어졌고, 그것을 깨운 것이 트위터와 나꼼수였다.
처음엔 트위터가 너무너무 싫었다. 그러다, 알아야 한다는 업자의 불안감과 의무감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뭘 써야 될지도 모르겠고, 어색하기만 했지만, 닥치고 쓰다보니 뭐 또 쓸만도 하고 재미가 있기도 했다. 세상 돌아가는 다른 축이 보여, 신기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했다. 여전히 그렇지만, 트위터가 없었다면 올해 그 무수한 분노의 순간들…나와 비슷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그렇게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을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심지어 분노를 창작력으로 승화시켜, 바쁜 나를 위해140자로 요약해 주기까지 하니.
나꼼수를 한 번도 방송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저 사람들은 싸우고 있는 거잖아. 자기꺼 다 내놓고 계란으로 바위치고 있는 거잖아. 최전선에서 죽여버리고 싶은 작자들에 맞서 맨몸으로 싸워는 이들이 웃겨주기까지 하니 고맙지 않을 도리가 없다. 뭉클한 순간이 많았지만, 그럴 때 감상적이 되면 꼼수스럽지 않은 것 같아 대신 거리로 나갔다.
나꼼수보다 더 웃긴 건 정치였다. 개콘보다 더 웃겼고, 썩은 내가 풀풀 났다. 속이 끓고 머리가 아파서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고 소리라도 치고 오면 그래도 그런 날은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바꾸고 싶었나?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속풀이였다. 저렴한 테라피 세션이었다. 하지만, 분명 2012년의 촛불은 다른 의미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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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운전이 제법 익숙해졌고, 영화와 책을 거의 보지 않았고, 뭘 해도 안착이 되지 않는 어수선한 한 해였다. 이런 해를 보내고 나면, 이 시점에 드는 기분은 한 해의 지나감에 대한 안도감 뿐이다. 의지와 무관하게 슬금슬금 희망이란 것도 피어오르게 된다. 마침 다가온 새해는 실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은 시간의 리셋 주문. RESET.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가득 충전시키고, 새로 시동 걸어본다. 부릉부릉~
정말 중요했던 순간은 찍을 수도 말할 수도 없구나. 그래도…내게 와 잠시 머물렀던 시간들.
1월
Vegas/Hawaii
처음 가 본 미국. 끔찍했던 라스베가스라는 도시.

아무 생각없이 스탑오버했다 로망으로 남은 하와이. 오감으로 느껴보지 못했던 천상의 ‘날씨’와 미지의 원시림.

2월
Long Long Winter
롱롱 윈터. 길었던 2월의 밤들.

3월
Days of cookies and cakes
나날이 빛을 발했던 뎀비의 케이크와 쿠키 신공. 뎀비 어시로 사진만 찍었다.

4월
Illumination
세상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5월
Air
술집 창을 열고, 하늘을 보며 마시기 좋았던 날들.
잔차 골프 연애 그 무엇에도 좋았던 날들.


6월
Keith & Rose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던 계절,
내 평생 소원이었던 키스자렛의 솔로 콘서트


7월
Rainy Days
지리한 우기, 빗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치고 싶었다.

8월
Summertime
멍하니 여름이 갔다. 기억 나지 않는 시간.
그런데, 어디선가 꼼지락꼼지락 소리가 들렸다.


9월
Riding
비가 그치고, 자주 한강으로 나갔다. 가만히 앉아 해가 지는 걸 보고 돌아왔던 날들.

10월
Bye bye
블룸앤구떼가 문을 닫고, A스토리도… 한 시절의 끝


11월
Bangkok
8번째 태국 여행.


12월
Candle
촛불을 들었다. 촛불처럼 흔들리기도 했다.

굽이진 좁은 철계단을 올라 옥상에 이르렀을 때, 어스름 여명이었다. 여기저기 제멋대로 꽃들이 피어난 옥상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난, 무언가의 부재를 통째로 실감했고 자제심의 한끝마저 놓아버린 채, 무기력하게 엉엉 울어버렸다. 옥탑 건물에 매점 아줌마가 쇠창살 너머로 나를 애닯게 쳐다보고 있었다. 난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그녀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난..난…잃었어요.” 아마도 그렇게. 갑자기 아이들이 빵과 우유를 사겠다고 우르르 몰려왔다. 아이들의 인파에 나는 옆으로 밀쳐졌고…
순간 전개할 스토리가 바닥난 나의 무의식은 더 이상 꿈을 잇지 못하고 현실로 튕겨져 나왔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얼굴은 눈물로 뒤범벅되고, 베갯잇이 흠뻑 젖어있었다. 가슴께가 아팠다. 물리적인 아픔이었다. 자각해 본다면,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을 법한 통증. 꿈에서는 깨어났지만, 꿈에서 시작된 눈물도 통증도 그치지 않았다. 꿈의 어느 중간부터 시작되었을 눈물은 현실까지 이어져 오열에 가까운 클라이막스를 찍고 점차 잦아들었다.
어느 어두웠던 새벽이 기억났다. 그 새벽의 맑은 눈물이. 오늘은 주체할 수 없이 복받치는 눈물이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자각한다는 것과 자각된 현실을 하루하루 산다는 것의 차이. 인식의 힘을 말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형태로 인식된 삶을 산다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에 가끔은 폭발. 그리고 다시 균형…
몸은 줘도 마음은 주지 않는 쌀쌀맞은 계집같은 이 도시의 밤에는 유난히 혼자된 인간들이 많다.
갑작스레 정전맞은듯, 핸드폰 하나 붙들고 다들 어디론가 뚜두두 뚜두두…메이데이 메이데이.
이맘때 쯤이면 한 번씩 해주는 집까지 걸어오기 놀이. 예당 찍자마자 나뭇잎 사이로 후둑후둑.
생존본능으로 차도에 뛰어들어가 잽싸게 택시 잡아타자, 빗줄기 와르르 쏟아진다. Mission fail…
왔다갔다 부지런한 택시의 와이퍼 사이로 쓸려가는 시간을 보았다. 허무하게 스러져가며 그려진 무늬가 예뻤다.
< 블룸앤구떼>가 문을 닫는다. < 블룸앤구떼>는 가로수길이 허허벌판이었을 때 제일 처음 오픈해, 오늘날 가로수길의 컨셉트를 제시한 명실공히 가로수길의 랜드마크다. 그게 벌써 7년 전…내 입사 시기보다 한 6개월 늦다. 오가는 사람도 적어서 겨울에 눈이 펑펑 내릴때면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가로수길 풍경이 얼마나 고즈넉했던지. 지금은 하도 인간들이 와글거려 그런 정취도 모두 사라졌지만.
마지막 날까지도 < 블룸앤구떼>는 아름다웠다. 두 미모의 여사장님께서 나같은 게으른 인간으로는 상상초월하는 지극한 감각과 정성으로 가꿔온 공간. 365일 테이블에는 시들지 않은 생화가 놓여져 있었다. 디지털하게 이루어지는 업데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오프라인의 물리적 업데이트가 지난 7년간 쉼없이 싱싱한 숨결을 불어넣은 거다. 생화뿐만이 아니다. 눈길 닿는 곳곳의 섬세한 손기들. 그걸 유지하기 위해, 얼핏 보면 우아가 충만하신 두 사장님께서 얼마나 아둥바둥 물밑에서 오리발을 저었는지 알고 있다. 다는 모르겠지만. 언니들을 보면서 늘 감탄했었다. 반복되는 새벽 꽃 시장 품팔이…장보기…일부분은 시스템화 됐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온 공간이 사라진다. 그 과정이 어찌나 오늘 날의 ‘한국살이’를 반영하는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모이고, 상권이 만들어진다. 대기업과 외국자본이 낼름거리다 쏙 빼먹는다. 그 과정에 전방위적 압박이 들어온다. 작은 가게주인들은 혀깨물고 퇴장한다. 어쩐지 익숙한 시나리오.
파리의 무슨무슨 카페처럼 몇 백년 이어지는 유서깊은 카페같은 건 한국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돈질 말고 문화라고 자부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좀 오래 있어주면 안되나. 홍대도 가로수길도 숨 조금 쉴만하면 바로바로 부스러기 냄새맡은 바퀴벌레처럼 자본이 들이닥쳐 개판쳐 놓는다. 돈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 대단한 돈으로 하는 일이 고작 불도저로 개성을 밀어내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모 의류 브랜드, 모모 프랜차이즈 커피숍 같은 걸로 도배해 놓는 거라니.
다행히 < 블룸앤구떼> 내년 3월에 그 부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사업자, 소상공, 작은 기업, 벤처들이 낄 틈이 점점 작아진다. 메뚜기처럼 이리 저리 튀면서 빈 자리를 찾아내거나, 몰래몰래 낮은 포복으로 숨어 장사하던가, 운과 빽을 총동원해 라인이라도 타거나, 무리해서라도 부동산이든 기술이든 재료든 뭐든 디펜던시 낮추거나…모르겠다. 다들 어떻게 살아남는지 신기하고 대단할 따름이다. 어쨌거나 이제 가로수길 메인스트리트는 감흥제로. 변화가 진화가 아닌 순간을 이렇게 또 한 번 목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