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디어의 노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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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INSIDE 하늘맥님의 사진

조갑제 아저씨의 글에 대한 공공연한 불쾌함을 풀어놓고, 웃기게도 난 하루종일 그의 문장 하나에 하루종일 사로잡혀 있었다. 그야말로 수 십번…거짓없이 최소한 백 번 가까이 머리를 흔들어 대야 했다. 그야말로 꼼짝마,였다.

그가 묘사한 김선일 씨의 죽음의 장면. 내가 가장 조갑제란 사람에 대해서 부들부들 떨릴만큼 화가 났던 부분. 바로 그 부분이 역설적으로 가장 집요하게 상상력과 관여하는 나의 뇌세포를 가닥가닥 죄어왔기 때문이다.

공포스럽지만 한편으론 떨쳐버릴 수 없는,,,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바로 그것. 스너프가 비즈니스가 되는 이유. 인간의 존엄에 대한 최악의 횡포.

그는 미디어를 다루는 데 있어 프로페셔널이다. 어디를 찔러야 사람이 피가 나고 오르가즘을 느끼고 반응을 하는지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김선일씨의 죽음을 묘사한 구체성은 내가 웹에서 집착해 마지 않는 그 구체성과 근본적으로 같은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너에게 반응을 일으키고 싶다. 너의 감성에 파문을 일으키고 싶다. 절대로 희여멀건하게 스쳐갔다 one of them의 블랙홀 속에 묻혀지고 싶지 않다는 존재의 갈급이다.

블로깅도 뜸하게 되는 요즘 나의 미디어란 뭔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가 그의 홈페이지에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쓰는 것과, 내가 내 홈페이지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쓰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어떤 이의 얼굴이 담긴 실종 포스터를 올린 것과 그가 김선일의 죽음을 묘사한 것과 무엇이 다른지를. 며칠 전 유진이가 직접 한 말에 따르자면, 다르다고 미워하지 말자며! 조갑제도 다른 것 뿐인데, 왜 미워하나. 그는 그가 옳다고 생각한 걸 쓴 것 뿐인데.

그렇게 보면 ‘시나리오에서 꼭 필요하다면’ 벗겠다는 그 여배우들의 고백은 실은 그 유치함만큼이나 진실인거다. 꼭 필요가 어디부턴지가 다 다른게 진짜 문제지만.

시청률에 쫓기는 감독은 첫 회에서부터도 여배우의 살색이 필요하고, 이미지 관리하고 싶은 배우는 욕정을 불태우는 두 남녀가 만난 베드신에서도 노출이란 불필요한 거고. 싸이월드는 관음증과 노출증 환자들의 집합소고 블로그는 세상을 바꿀 1인 미디어고,,,그런 건가? ^^;;;;;

사랑하면 벗겠다. 그럼 사랑은 뭔대? 벗기고 싶은 남자에게는 오늘 밤의 이 욕정도 비할 길 없는 사랑이고, 어떤 이유로든 벗겨지기 싫은 여자는 깊이 사랑한 한 세월을 두고도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 오락가락 할 수 있는걸. 대부분 쇼부는 엉뚱한 데서 나기 마련이지만.

모든 미디어는 노란색(yellow)인 것 같다. 그 점에 있어서는 뭐가 더 낫다고도 못하다고도 할 수 없다. 건강 다이제스트가 노란색인만큼, 조선일보도 노란색이고, 내셔널 지오그라픽도 조갑제닷컴도 유진닷컴도 모두 다 노란색이다. 그게 미디어의 근본 속성이며,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하지만 그 노랑에 기대어 예술도, 사랑도, 한 인간의 일상도 꽃을 핀다.

다만 그 노랑이 인간의 존엄까지 훼손시키지는 않는, 누구에게도 큰 상처가 되지는 않는 기분좋고 힘나는 노랑이길 바라는거지. 그 노랑의 신선도를 지키기 위해 아슬아슬한 자묘(自妙)의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 작은 상처까지야,,,뭐 어쩌겠어. 사는 데 상처도 주고 또 상처도 받고 그러는 거지 모. 그렇다고 머리 싸매고 드러누울 것도, 게다가 죽을 일은 더더욱 아닌거고. 케이벤치의 사건은 실화지만, 그렇다고 그걸 일반화 시킬 순 없다.

문득 딴소린데,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이런 식이기에 난 올드보이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말 한마디로 죽는다? 그래? 그딴 식이라면 그럼 난? 난,,,어떻게 여지껏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건데? 그들에겐 꾀병은 아니겠건만,,,난…………………………………

그래 여긴 내 미디어니 내 이야기를 하자. 난 그런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 악물고 버티고 끝까지 살아남는 목숨들이 좋다. 멋지잖아~! 훨씬 더 현실감도 있고. 평범해 보이는 우리 엄마 아빠네들도 실은 까보면 그만큼의 환란은 겪었을 거라구. 그래서 더 멋지고,,더 감동스러운거다. 그러면서도 웃으며 모른 척 하루하루를 넘겨가는 무심한 그 생활력이. 그게 없이 어떻게 이 삶을 견뎌가겠니….

억척어멈이란 브레히트의 희곡이 있었는데,,,대학때 내가 주연으로 발탁됐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엎어졌던 연극이었는데. 그때 거기 억척어멈이 꼭 그런 여자였다. 전쟁통에 전쟁을 이용해 장사해 먹고 다니다 결국엔 바로 그 전쟁에 자식놈들 잃어도,,,딸년의 시체를 묻어준다는 농부에게 돈을 건네주고, 또 혼자 무거운 마차를 끌고 장사길을 떠난다. 삶은 포기가 아니라 계속 살아가야 할 그 무엇이니까.

흥정을 잘 하셔서 마차를 그대로 갖게 되셨군요. 당신 아들은 총 열 한 발을 맞았어요. 그리고 그들은 당신을 아직 의심하고 있어요. 당신이 어떤 반응을 하나 보려고 시체를 가지고 여기로 올거예요.

갑자기 그 연극이 다시 해 보고 싶어지는군……….난 그 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억척어멈의 의미를. 지금은? 딱 감이 오네 그랴…최소한 마사에 대해서는 그때 그랬던 것처럼.

그 때 나를 사로잡았던 연극이런 놈의 노랑도 참 멋진 노랑이였다. 그 노랑을 해롱이는 여전히 그려가고 있다. 이번 주엔 꼭 해롱이 공연을 보러가야지…이젠 밤을 지새우며 유진제과 돌릴 일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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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멘트 »

  1. ... said,

    June 28, 2004 @ 3:53 am

    아직~ 소중한걸 덜 느끼지…
    자유는 주는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거 그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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