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y

keith jarrett-1

CD

Facing You (1971)
Solo Concerts – Bremen/Lausanne (1973)
The Koln Concert (1975)
Staircase (1976)
Sun Bear Concert (1976)
Concert (Bregenz) (1981)
Paris Concert (1988)
Vienna Concert (1991)
La Scala (1995)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1998)
Radiance (2002)
The Carnegie Hall Concert (2006)
Testament (2008)

DVD
Solo Tribute The 100th Performance in Japan (1987)

87년 도쿄 선토리홀 실황 Dark Intervals를 이번에도 결국 못 들었다. 그래도, 그거 한 장 빼고 오르간 등 기타 악기랑 클래식 연주 빼고 피아노 솔로는 다시 다 들었다. CD 23장, DVD 1장. 1971년부터 2008년까지 37년간 이루어진 한 인간의 여정을 단 몇 주의 청음으로 단박에 품어낼 수 있으랴만은. 나에게도 이 음반들을 끼고 산 징글징글한 15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내가 그의 음악을 대했던 순간들의 밀도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 들었다. 무언가 밝히고 이해하려 애쓴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대상에 집중한다는 의미에서.

처음에는 서울 솔로 콘서트에 대한 예습이었다. 어떤 계열의 음들이 펼쳐질까? 길이는 어떨까? 로잔느같은 미친 64분이 이어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20분 정도는? Radiance쪽일까? 혹시 La Scala같은 대박이 터지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시니 너무 기대는 말아야지 등등. 조급하게 CD들을 뒤적거렸고, 그 속에서 키스 자렛 본인조차도 내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건반에 손가락을 얹고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는 알 수 없을 답에 대한 힌트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연주가 흘러나오면 질문은 흩어지고 그저 음악이 있을 뿐이었다. 폭우 속에서 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펄떡이며 울부짖는 짐승의 몸부림과 연이어 부조리하게 떠오르는 구원같은 천상의 무지개. 불길한 밤의 정글과 눈부신 아침의 빛. 하얀 달빛 아래서 규칙적으로 파열되는 파도. 감각할 수 있는 높이와 깊이가 최대치로 확장되고, 그리고 모든 것이 아름다움으로 수렴된다. 치장된 예쁜 것이 아니라, 가공되지 않은 그 자체여서 아름다운 것.

아주 오랫만에 몇 주간 그가 즉흥으로 쏟아내는 비정형의 음표들을 따라가며 함께 아팠고, 뒤척였고, 불안했고, 침잠했고, 또 결국엔 아름다움으로 정화되기를 반복했다. 그의 음악은 비껴가지도, 장식하지도 않는다. 무저갱의 바닥을 그냥 자기 몸으로 파 들어간다. 이런 행위가 어느 순간 비상하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순간이 오고, 그때는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털어지고 비워진다. 견디는 시간의 문제일 뿐, 부작용 없는 가장 확실한 정공의 치유. 그래서, 이번 전곡 감상은 귀가 아니라 몸으로 ‘들어낸’ 것 같다.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음악을 들었고, 앞으로도 다른 여러 음악들을 듣겠지만 내가 음악이란 것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체험의 최대치, 그 끝은 여기일 것 같다. 다른 가능성을 닫겠다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그래. 궁금한 것들도 없어졌다. 내일 밤, 내가 할 일은 그저 백지로 나를 열고 그가 채널이 되어 전달할 음들을 받아들이는 것 뿐. 그 음들이 어떠한 높이와 길이를 가졌든 상관없다. 난 들을 테니까. 그것이 내 인생의 간절한 소망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요. 이제 된 것 같아. I’m 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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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th jarrett-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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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멘트 »

  1. jarrettist said,

    November 12, 2012 @ 5:15 pm

    1년전 저역시 솔로공연때 너무 뿌듯했었던 추억이 뭉클합니다. 내년에 다시 솔로로 오셔서 가쁜하게 파트1/파트2/ 앵콜 이렇게 끝내주시길 바랄뿐이네요. 아 휴대용 CDP오랜만에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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