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가 꼽은 미국 명품 드라마 6

2005/12/29

CURO 11월호에 쓴 글

지난 수년 간의 내 미국 드라마 라이프를 총정리하는 대작을 완성코저 했으나.
졸지에 쓰러져서 링겔 맞고 밤새 써서 보낸 다음,
다음날 아침 다시 링겔 맞으러 병원으로 실려 나간…힘든 기억의 투혼만 남았던..
콘디숀 좋다구 더 잘 썼을런지는…만무하다.
여튼 자기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거에 대해서, 마감에 밀려서나마 이렇게 정리할 기회를 가졌다는 거, 행운인거고.
개인적으로는 이 속에서 아~주 헤묵었던 나만의 작은 복수를 할 수 있어 유쾌했다.
좀 웃기지만 (이런 기회를 이렇게 활용하는 나란 사람의 정신세계가)
그건 뭔가를 쓴다는 고달픈 상자 속에 들어있는 작은 초콜렛칩 같은 거.
힘들게 원고 만든 내게 주는 깜짝 선물이다.

자, 그럼 유진이가 꼽은 최고의 명품 미국 드라마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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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너무 많다. 월화와 수목, 금요 특선과 황금 주말까지도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TV채널은 빡빡한 틈새를 비집고 호객의 웃음을 뿌리는 각종 드라마로 넘쳐난다.

하지만 드라마는 너무 없다. 눈물 짜는 출생의 비밀과 황태자와 신데렐라 혹은 왕자와 캔디의 신분 격차를 넘어선 러브 스토리, 쓸수록 더욱 질겨지는 소가죽처럼 진부한 삼각 관계가 아닌, 베개를 부여잡고 기발하고 생생한 캐릭터의 향연에 빠져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쁨과 비애에 탄성을 지르고 싶을 때, 드라마는 너무 없다.

몇 바퀴씩 리모콘을 돌리다 갑작스레 밀려드는 시시함에 한숨이 나와버렸다면, 이제 미국 드라마에 눈을 돌려 보자. 이 한 순간의 유혹으로 어쩌면 당신은 TV 편성표에 맞춰 동창과의 저녁 약속을 취소할 핑계거리를 찾거나 , 인터넷 다운로드족이 되어 어둠의 경로?서성이거나, 여유돈을 DVD 주문으로 모두 쏟아 부어 애인의 핀잔을 듣게 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말 밤을 꼬박 새고 빨간 토끼 눈으로 출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댓가는 풍요로울지니. 당신은 현실 탈출의 모험과 판타지, 이상 범죄의 심리학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로맨스, 평온한 일상 아래 숨겨진 더러운 진실과 대면하는 진귀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렌즈, 이알(ER), 밴드오브브라더스, 식스핏언더, 소프라노스, OC, 앨리어스…수 많은 쟁쟁한 A급 드라마 중 필자의 인생을 풍요롭게 했던 최고의 명품 미국 드라마 6개를 돌이켜 본다. 이들은 거대한 자본과 상업적 계산, 치밀한 기획, 재능 많은 창조 집단과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의기 투합한 광적인 집착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나 바하의 무반주 첼로 협주곡, 한국의 청자, 백자처럼 길이 후손에 남길만한 TV 드라마계의 보물급 오리지널 명품들이다. 그리고 모든 명품들이 그러하듯, 시간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성’과 장소를 초월한 ‘동시대성’ 을 갖추고 있다. 물론, TV 드라마로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와 ‘감동’까지도. 이미 오랜 전 열광적인 매니아층을 형성했음은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의 사회적 담론에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미국 드라마의 세계로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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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주부들, 혹은 우아한 잔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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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이미 힛트였다. 명작과는 달리 힛트작은 작품성만 가지고는 안 된다. 시대를 움직이는 운대와 맞아야 한다. 미국에서 2004년 시즌 1방송 후 무려 2,200만 명의 시청자, 특히나 미국의 영부인 로라 부시가 백악관 만찬에서 “대통령이 밤 9시에 잠들고 나면 나는 위기의 주부들을 본다. 나야말로 위기의 주부다”라고 말해 세계적 유명세를 몰고 왔던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2005년 7월부터 공중파를 타기 시작했고, 미국에서도 그랬겠지만 한국에서 역시 샤넬 백을 두르고, 아이들은 외국에 유학시키고, 꽤나 먹고 살만하지만 실은 아슬아슬한 중년의 줄타기를 하고 있는 데스퍼릿한 주부들을 죄다 거리로 뛰쳐나오게 하고, 야밤에 친구에게 전화통을 붙든 채 신세 타령을 만들고, 온갖 방송과 잡지로 하여금 너도 나도 대한민국 위기의 주부들 혹은 주부들의 위기에게 돋보기를 들이대게 만들었다.

중년의 처절함을 그럴 듯 하게 포장한 미시는 누구를 위한, 언제적 컨셉인가. 누군가는 뒤집어 줘야 할 타이밍이었다. 나와야 할 때, 그 코드가 나와 준 것이다. 이 참에 여주인공 브리가 별거 중인 남편 유혹을 하기 위해 롱코트 아래 걸치고 나온 거금 300달러짜리 와인색 팬티 브라 셋트마저 동났다니, 이 위기붐의 수혜자는 주부만은 아니었을 듯.

시작은 등나무 거리의 평범한 한 주부의 권총 자살이다. 그런데 자살은 가느다란 도화선일 뿐. 이 도화선이 타고 들어간 조그만 변두리 시골 마을에서는 위기의 주부들을 둘러싼 부정과 사기와 가식과 거짓의 불꽃놀이가 현란하게 펼쳐진다. 아주 은밀하고 조용히…그러나 제대로 하드코어하게! 외도, 방화, 가택 침입 정도는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진 스토킹, 독극물, 살인, 동성연애, 정신 분열, 가족 해체 등등의 온갖 자극적 코드는 끝이 안 보이는 막가자는 플레이로 치달아간다. 이것은 매스를 대상으로 한 이전 TV 드라마가 넘지 못했던 선. 하지만 뭐랄까. 겉으로 보기엔 부럽기 짝이 없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이들의 이면이 갈등과 교묘한 속임수로 썩어 들어간다는 독설은 묘하게 달콤하며 알 수 없는 안도감까지 안겨준다.

임신을 거부하는 아내 몰래 피임약을 바꿔치기 하고, 지극히 범생 캐릭터의 전형인 의사남편이 남몰래 SM을 즐기는 이 설정이 극단적이라고? 분석이야 하는 사람 맘이지만, 이 시대의 위기의 주부들은 이렇게 말한다. 항상 픽션은 현실을 뒤따라올 따라올 뿐이라고. 이 시리즈의 작가인 마크 테리 또한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이 드라마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미국 내에서도 실존하는 수백 만 명의 여성에 대?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뉴욕이 섹스앤더시티의 5번째 주인공이라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2005 골든 글로브에서 최우수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수잔 역의 테리 해쳐가 아니라 드라마를 내내 장악하는 ‘위기’ 그 자체일 것이다. 어떤 드라마에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원의 모티브가 될 법한 아슬아슬한 ‘위기’들이 에피소드 한 편에도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 서스펜스와 긴장으로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다만, 무한루프의 테트리스 블록처럼 머리 위로 떨어지는 위기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파도타기 하듯 우아하게 넘어버리는 잔인함이 노처녀들로서는 범접하지 못할 아줌마들의 내공이랄까. 어쨌든, 드라마에 출연한 무명 내지는 위기의 주인공들을 모조리 스타덤에 올려놓으며 그야말로 ‘위기 탈출’을 시켜버리고 가열차게 시즌 2의 문을 연 그녀들의 위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아마도 영원히 진행형일 것이다.

CSI, 과학의 이름으로 해부한 인간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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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3천 5백만이 넘는 방문객, 그 이름만으로도 탐욕과 범죄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라스베가스는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특별과학수사대가 활약하기에 더없이 좋은 배경이다. 이 도시의 신문 판매대에서는 입에 뱀이 물려진 채 목이 잘린 머리가 걸려 있기도 하고, 나이트클럽 광란의 댄스 스테이지에서 갑자기 누군가 하이힐에 목이 뚫린 채 쓰러지며, 유명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고기 분쇄기에 갈리고, 수 십 마리의 고양이를 자식 삼아 키우는 외톨이 할머니가 고양이에게 뜯긴 채 사체로 발견되기도 한다. CSI 요원들은 매일 이렇게 자기 인생에서 최악의 날을 맞은 이들을 만난다. 모든 범죄가 남기는 한 점의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해 봐. 증거 말이야.” 수사대를 이끄는 그리썸 반장은 주관이나 추측을 배제한 현장의 증거만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고 믿는다. 수사 명단에는 형사의 직감과 정황이 지목한 제 1의 용의자들이 오르지만, 늘 그들은 범인에서 비껴가고 진짜 범인을 찾는 것은 결국 증거 뿐이다. 증거, 증거, 증거… 그들은 범인을 찾기 위해 그들은 직감의 유혹과 싸우며 끝없이 현장을 클리어하고, 사진을 찍고, 지문을 분리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이것을 최첨단 법의학으로 해석하지만, 결국 그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어두운 욕망과 나약함, 애욕과 질투다.

CBS에서 2000년부터 방영을 시작해 시청률 1위를 기록했으며, 국내에서는 2001년 8월 OCN에서 처음 소개된 CSI는 이후로 공중파에까지 방송되며 시즌 6까지 인기 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TV 시청자들은 어렵고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는 통념을 깨고, 미스터리와 과학을 결합해 성공한 지적인 시리즈물에는 매 회 DNA 분석와 미세 현미경, 해부실과 최첨단 법의학 장비와 어려운 전문 용어들이 등장해 화학과 물리학, 지질학을 넘나들며 우리 주변의 일상의 신기한 과학적 사실들을 학습하게 한다. 어디든 가리지 않고 휘젓고 들어가는 도발적인 카메라워크와 정교한 특수 효과는 독극물이 퍼지는 혈관 속과 부패한 상처를 건드린 바이러스의 꿈틀거림과 위산으로 부글대는 장 속까지 화면에 생생하게 그려낸다. 아무도 목격하지 못한 한 순간과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이크로의 세계를 재현하는 것,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증거가 뒷받침 된 과학이 하는 일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정작 증거에 목숨 건 CSI 요원 그들의 삶이다. 냉철한 프로페셔널처럼 보이는 그들은 문명과 사회가 용인된 표면 아래의 더러운 진실을 밝혀내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지 못한다. 그리섬 반장은 점점 귀가 멀어 용의자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없게 되고, 워커홀릭처럼 강간과 폭력사건에 몰두하는 사라는 폭력 남편을 살해한 어머니를 지켜봐야 했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흑인 빈민가 출신의 워릭은 과거를 부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들은 매 번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은 해결하지만, 정작 그 동기가 되는 인간 본성의 내재되어 있는 어두운 일면과 삶이 던지는 부조리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한다. 그리고 당황한 기색을 감춘 채, 다시 카메라와 현미경을 들고 더욱 냉랭하게 증거에 매혹된다. 일반인들의 보통 삶과는 점점 더 멀어지면서. 정작 CSI 요원들은 어디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답을 찾는 길은 멀고 험하다.

가장 과학적인 것으로 탐구하지만 그들이 도전하고 있는 것은 과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가장 더러운 인간 본성이고, 삶이 강요하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다. 이것은 사무엘 베케트나 해롤드 핀터가 잡아내고자 했던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미국식 대응이 아닐까. CSI는 그렇게 최첨단 과학 장비들로 무장하고, 현대 부조리의 서부를 개척하고 있다. 아마도 가끔씩 던지는 그리섬 반장의 대사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비극 속 주인공들의 현실과 탐욕으로 얼룩진 라스베가스의 삶이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삶을 현명하게 살았던 사람은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다.”

24시간을 24편으로 쪼갠 리얼타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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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부터 예사롭지 않다. 하루 24시간을 24개로 쪼개면? 24는 하루 동안 발생한 일을 24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매 회 이 1시간 동안 일어나는 사건을 리얼타임으로 좇는다. 미 캘리포니아주 대통령 예비 선거일이 있는 날 자정, 테러 방지단 요원 잭 바우어는 한 밤의 급작스런 비상 호출을 받는다. 테러범의 인질이 되어 버린 딸을 구하고, 진행되는 암살도 막고, 누군지 모를 스파이도 색출해야 하는 일은 24시간 밖에 가지지 못한 한 남자가 한꺼번에 해결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 점점 더 꼬이고 최악이 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이제 그는 24시간 내내 단 한 순간의 휴식도 없이 숨을 헐떡이며 현장을 뛰어야 한다. 매 번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마다, 화면에 흐르는 잭 바우어 역 키퍼 서덜랜드의 묵직한 저음.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날이다. (Today is the longest day of my life.)” 과연,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24를 접한 시청자에게 이 1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1시간이다. 숨 돌릴 틈 없는 이야기 전개와 화려한 액션, 대통령 후보 투표를 둘러싼 정치 음모가 뒤얽혀 흥분 세포에 직격탄을 쏘아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어디로도 갈 수 없는 팽팽한 긴장 상황. 같은 시간대에 분할/교차 편집으로 보여지는 각기 다른 곳에 위치한 다양한 인물들. 이해 집단들은 살아남기 위해 잔머리의 실핏줄을 터트리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과 상황들이 느닷없이 끼어들어 1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 이어진다. 드라마가 빠르 속도로 거칠게 몰아 부치는 이 힘은 시즌이 거듭 되도 지칠 줄을 모른다. 그래서 24는 그 많은 미국 드라마 중에서도 일단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가장 중독성이 강한 시리즈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무겁고 거창한 것들만이었다면 어쩐지 2프로 부족하지 않았을까? 캐릭터를 돌아보자. 주인공 잭 바우어는 언뜻 보기엔 전형적인 액션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밝혀지는 과거 족족 여자 관계 복잡하고 뭣 같은 성격에 조직에도 사랑에도 부적응인, 그 어디서도 환대 받지 못하는 또라이 캐릭터다. 그런데 이 또라이는 같이 있긴 불편해도 최소한 위기상황에는 꽤나 쓸모 있는 존재. 아니 결국엔 이 순간의 해결사는 그 밖에 없다. 온 몸을 던져 아무 생각 없이, 생각 많은 이들이라면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을 척척 해 내고 말기에. 적을 설득할 수 있는가를 따지기 보다는 총구를 먼저 들이대고, 동료이자 정을 나눈 애인을 사살하고, 곧 터질 핵무기를 발견하는 순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폭 비행기에 올라탄다. 자기 자신에게만큼이나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그의 비정함은 시종일관 우리를 놀래킨다.

두려움도 논리도, 옳고 그름도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그는 그 상황에 온 몸을 던져 자신에게 던져진 임무를 수행해낼 뿐, 그는 그 수행의 정당성을 묻지 않는다. 그저 나아갈 뿐이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미국을 움직이는 거대하고 더러운 정치적 힘의 소모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조차도 그를 멈추게 하지 못한다. 이런 그가 허우적대며 나아가는 모습은 일종의 비애감을 안기지만, 어떤 남자들은 지옥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고 하지 않는가. 목숨이 고양이보다도 더 질긴 잭 바우어의 초침은 그렇게 피를 말리며 재깍재깍 흘러간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지금의 1분을 24시간처럼 살고 있는 남자 잭 바우어, 키퍼 서덜랜드가 완벽하게 재현해 낸 최고의 캐릭터다!

섹스앤더시티, 섹스와 도시가 언니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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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PR 전문가, 변호사, 컬럼니스트. 미모의 커리어 우먼 넷이 있다. 몸매만큼이나 잘 빠진 유머 감각과 센스까지 함께 갖춘. 동경의 빛으로 눈이 멀 지경인가? 하지만 이 세계의 실체는 딴딴따~하면 시작되는 그 익숙한 오프닝 타이틀에서 여지없이 까발려진다. 멋드러지게 차려 입고 주위에서 던져지는 따가운 시선을 즐기며 보무도 당당히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달려온 버스에 구정물 튀기고 스타일 구겨버린 캐리의 벙찐 표정 하나로. 이 표정에 바로 섹스앤더시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 다음의 전개는 너무도 분명한, 이 네 여자가 겪어야 할 황당하고 어이없는 좌충우돌 스토리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그녀들 곁에는 이 모든 괴팍한 현실에 금빛 마법의 가루를 뿌려줄 뉴욕 시티가 있으니.

그녀들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새로운 남자, 새로운 연애 (그 연애의 부록인 섹스), 그리고 그 연애가 (혹은 그 섹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 그 이유는 때론 가까워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멀어져야 하기 때문이고(?!), 때론 그가 침대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저질을 늘어놓기 때문이고, 때론 우리가 더 이상 닭살 돋는 로맨틱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섹스컬럼니스트 캐리는 매 회마다 그 익숙한 타자기에 오늘을 질문을 타이핑한다. “왜 우리는 잘 될 수 없는 걸까?” 그 답은 여섯 개의 시즌, 183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단 한 회도 실망시키지 않는 그녀들의 패션만큼이나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진다.

폐부를 콕콕 찌르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최고급 구두 브랜드 마뇰로 블라닉을 신는 대신 몇 달의 점심을 굶주리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고, 캐리가 걸친 것이라면 백이든 셔츠든 드레스든 모두 ‘솔드아웃(Sold Out)’ 딱지가 붙게 만들었고, 브런치 토크를 유행시켰다. 하지만 이 뿐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섹스앤더시티는 미혼 친구들의 연대에 특별한 결속력을 부여하게 만들었다. 커플들아, 니들만 단단한 게 아니란다. 그것만이 보람되고 바람직한 인생은 아니란다. 싱글이 화려할 수 있는 이유는 멋진 옷과 그럴 듯한 파티와 부담없는 원나잇스탠드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랑했던 애인이 다른 여자와 약혼하는 날, 함께 학창시절 같이 본 영화 < ?억>의 주제가 ‘The way we were’를 목청껏 부를 수 있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하지만 시즌이 거듭할수록 그녀들의 인생이 한창에서 조금씩 기울어갈 수록 시선은 점점 깊고 그윽해져, 그들의 이야기는 삶과 나이듦 그리고 가족을 바라본다. 언제까지고 맨하탄의 잘 나가는 파티와 클럽에서 올나잇을 즐기며 어린 혀에 피어싱을 한 열 살쯤은 어린 아이와의 원나잇 스탠드를 하며 보낼 수 없다는 사실에 눈 뜬 순간, 그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밖에 깨달을 수 없는 진실에 경악하고, 그 무엇에든 선택권이 없어진다는 현실에 몸을 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에게는 뉴욕이 있지 않은가. SATC는 결국 그 클리쉐한 ‘사랑’으로 전혀 클리쉐하지 않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버린 그들이, 그토록 부정하고 한편 갈구했던 새로운 가족을 찾고야 마는 이 스토리는 감히 신데렐라가 맛보지 못한 고달픈 싱글의 현실 뒤에 첫 눈처럼 나리는 아름다운 축복이다.

시즌 1을 시작했을 때 난 갓 스물 아홉이었고, 시즌 6의 마지막 편을 보고 있을 때 서른 넷이 되어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늘어가는 히스테리를 이 드라마가 대신 부려줬다. 눈가에 주름살이 늘어가는 공포(!)도, 가까운 주변인들을 보내며 보다 구체적이 되어가는 버린 암에 대한 두려움도, 사는 동안 영원히 소울 메이트를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모두 그녀들이 다 대신해줬다. 아주 가끔은 지나친 뉴욕주의가 불쾌할 때도 있었지만. 그녀들을 보며 웃고 울고 행복하고 슬펐고 함께 늙어왔던 시간이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영원한 캐리의 연인 미스터 빅의 느끼한 발음으로 대신해 본다. 앱쏘퍼킹루트리. (Abso-fucking-lutely)

유쾌한 상상력과 감미로운 음악의 만찬, 앨리 맥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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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드라마다. 그런데 이 보스톤의 이 법정에서는 검사가 배심원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의뢰인이 춤을 춘다. 이 법정에서는 뇌종양에 걸린 아이가 하느님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결혼 후에야 아내가 가짜 가슴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이혼을 요구하며, 라이브 무대 위에서 자기 아내를 꼬셨다는 이유로 스팅을 고소하는 남자가 나온다. 참 별스럽다 싶지만, 사실 이 소송을 맡은 변호사들의 괴짜스러움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멋진 남자를 보면 혓바닥이 바닥까지 늘어뜨리는(정말로 늘어뜨린다!) 앨리, 목살에 주름 잡힌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로펌 대표 리차드 피쉬, 법률에는 비상하지만 알 수 없는 말을 웅얼대면 딸깍 거리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공동 대표 존 케이지. 이들이야말로 그들의 인생을 변론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듯 하다. 어쨌든 이 법정에서는 한 노처녀 변호사의 러브 라이프와 함께, 사랑과 인생에 대한 온갖 기발한 기소와 변론이 펼쳐진다. 그리고 법이야 어쨌든 드라마 속 배심원들은 언제나 너그러이 사랑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가슴 찡한 감동과 함께, 우리가 믿는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어느 만큼이나 진실일까를 반문하게 하며.

한편, 우리의 주인공인 앨리 맥빌은 나이 서른이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맘에 드는 남자 앞에선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고, 툭하면 엉뚱한 환상에 빠져들고, 흥분하면 말까지 더듬는 불완전하지만 상당히 귀여운 여변호사다. 아슬아슬한 초미니 스커트를 걸친 채 법정에 나서고, 툭하면 유부남인 옛 애인에게 뛰어가 황당한 사생활 털어놓고, 따발총처럼 자학을 쏟아내며 왜 남자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앨리는 현대 여성의 정체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대 찬반논쟁을 일으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마음 속에 남는 것은 그녀의 가려지지 않는 사랑스러움일 것이다.

오히려 그런 위태위태한 모습이야말로 사랑하기에도 일하기에도 완벽하지 않은 피곤한 오늘을 살아가는 여자들 마음 속의 신경증에 대한 ‘현실적으로 올바른’ 묘사가 아닐까. 그럴 듯한 페미니스트가 될 순 없었지만, 대신 그녀는 심의 받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만끽하며 제멋대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창피하면 몸이 생쥐처럼 줄어 들어 바닥을 깡총대기도 하고, 남자에게 차였을 땐 미련 없이 쓰레기 청소차에 실려 나가기도 하면서. 그랬기 때문에, 그녀를 지켜보는 우리의 입가엔 늘 유쾌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앨리맥빌을 돌이켜보면, 그 모든 이야기들보다 이 드라마에 매 회 흘러 나왔던 심장이 녹아내릴 듯한 그 모든 감미로운 노래들이 먼저 떠오른다. 서프라이즈 파티처럼 등장하던 의외의 순간에 깜짝 등장했던 뮤지션들. 내내 앨리의 주제가였던 “You’re The First, The Last, My Everything”의 배리 화이트, 스팅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함께 부르던 “Every Breath You Take” 조쉬 그로반의 “You’re Still You”, 바의 안방 마님 본다 쉐퍼드와 엘튼존, 본 조비, 머라이어 캐리 이런 탑 가수 외에도 무슨 신고식이라도 하듯이 한 명도 빠짐없이 돌려가며 쟁쟁한 가창력을 발휘했던 출연자들. 그 황당한 발상의 자유로움 속에 한껏 매력을 발산하던 앨리맥빌은 그 제약 없는 상상력과 최고의 선곡으로 TV 드라마 가장 로맨틱한 장면들을 선사했다.

로스트, 누구나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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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사학도들이 미국 미니시리즈의 역사와 사조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면, 로스트는 아마도 기존의 모든 시리즈물의 흐름에 완전히 다른 획을 그었던 작품으로 배우게 될 것이다. 14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주인공이, 이라크부터 한국, 흑인, 백인, 황인종 까지 아우르는 다채로운 인종이 그렇고, 올 로케이션인 배경이 그렇고,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복잡한 스토리, 회당 400만 달러(46억)이라는 제작비가 그렇다. 그리고 전 세계 180여 개국의 전파를 타며, < ?기의 주부들>과 함께 ABC를 일약 드라마 강국으로 일으켜 올린 로스트가 만들낸 그 모든 로스트 ‘현상’이 그렇다.

원인 모를 비행기 사고, 불시착한 섬에서는 48명이 생존했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가 25부작으로 펼쳐진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15소년 표류기? 파리대왕? 캐스트 어웨이? 혹은 그 시절 아찔했던 잎사귀로 간신히 가린 블루라군의 야릇함? 아무리 주요 캐스트만 14명 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미국은 물론 저 머나먼 한국, 이라크, 영국, 호주 전 세계 방방 곡곡에서 모여들었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래, 이 섬에는 정체 모를 그리고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미스터리한 ‘그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과 생존의 사투를 벌인다고도 한다. 그래 봤자 섬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이 좁다란 공간에서 무슨 25부작을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갈 재미난 일이 벌어질 수 있겠냐고. 이 모든 예측 가능한 상투성을 로스트는 기존의 그 어떤 TV 드라마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놀라운 상상력과 인간에 대한 통찰로 뒤집는다.

로스트는 비행기 추락으로 외딴 섬에 떨어진 난파와 생존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실은 그들의 인생에서 지표를 잃은 사람들의 휴먼 드라마다. 그들은 모두 실수를 저지르고 비밀을 간직한 채 시드니 발-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며, 이 괴상한 미스테리의 투성의 섬보다도 더 정직하지 못하다. 그들이 왜, 어떻게 길을 잃었는가. 어떻게 아이러니하게 지도에도 없는 이 낯선 섬에서 그 길을 찾는가. 혹은 더 깊은 혼란으로 빠져들게 할 미로를 길로 착각하는가. 여기에는 구원에 대한 갈망과 포스트 냉전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공기처럼 스며있다. 알 수 없는 적, 더 알 수 없는 나. 선과 악의 경계도, 믿을 수 있는 자도 없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안과 의심을 버리지 못한 채라도 모두 함께 적들과 대항해야 한다. 로스트는 미지의 섬에서의 이 모든 과정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길을 잃지 않았느냐고. 이 섬에서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맨 처음 13부작으로 기획된 이 새로운 시도가 25부작으로 연장되고, 또 이제 시즌2로 이어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어느 한 순간에는 길을 잃는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 진심으로 저들과 함께 ‘로스트’ 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찾은 길이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간에. 예전에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TV속 세상에는 어떻게 검은 것과 흰 것이 저렇게 분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던 선배가 있다. 그 선배에게 로스트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무엇이 흰색이고, 무엇이 검은색 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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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코멘트 »

  1. 유진닷컴 » 섹스 앤 더 시티 : Peace, please. said,

    October 17, 2008 @ 1:52 pm

    [...] # 유진이의 섹스 앤 더 시티의 흔적들 유진이가 꼽은 미국 명품 드라마 6 (December 19, 2006) [...]

  2. 유진닷컴 » 그녀의 봄 불감증 탈출기 - Style H 2007년 3월 said,

    March 28, 2009 @ 12:45 pm

    [...] 명품 미국 드라마 : 그들의 유혹을 즐겨라 – 큐로 2005년 12월 http://www.youzin.com/blog/?p=367 [...]

  3. 유진닷컴 » [광고] 원고 청탁 대환영 said,

    March 28, 2009 @ 12:5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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