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라이프를 사로잡은 불륜의 주말밤 – 도베(Dove) 2006년 4월

작년 요맘 때 썼는데, 그 때 청탁받은 컨셉은 싱글들의 주말 보내기 였다.
최근 마시멜로로 물의를 일으킨 정지영씨의 화려한 주말에 밀려(!) 몇 달 썩다가 월드컵을 앞 둔 4월경 축구 테마의 첫꼭지로 활용됨
왜 세상의 모든 잡지사 기자들은 원고를 달라그럴 때 금방이라도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서두를까?
꼭 그 날까지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일단 필자 닥달해서 쟁여놓고 보는 정신! …(앗 음..)
싱글 라이프를 사로잡은 불륜의 주말밤 – 유럽축구의 짜릿한 유혹
주말의 껀수는 나이와 반비례한다. 서른을 정점으로 불타던 화려한 싱글 라이프의 주말 스케줄은 서른 뒤에 붙는 숫자만큼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현란한 뺑뺑이의 사이키 조명과 함께 했던 부비부비 올나잇 댄스 파티가 먼저 백기를 펄럭였고(체력적 한계), 심심할 때쯤이면 한 번씩 콜을 날리며 껄떡 대던 이 놈 저 놈들의 작업도 급하강 곡선을 그으며, 매 주 하한가 갱신을 계속해 갔다. (호르몬의 한계) 영화 볼 때는 혼자가 집중도 잘되고 더 좋다며 울부짖으며 문화의 향기 가득한 싱글 라이프의 품위 유지를 위해 홀로 꿋꿋이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던(파트너의 한계) 주말 밤의 심야 영화들! 하지만 난 결국 그 신포도를 더 이상 삼킬 수 없음을 고백해야 했다. (자기 기만의 한계)
그리하여 드디어 나는 매주 빠지지도 않고 돌아오는 황금같은 주말을 위해 체력도 동반자도 여성 호르몬과 자기 기만도 요구하지 않는 그 ‘무엇’을 찾아내야만 하는 중대 시국에 당면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이 모든 조건의 씁쓸함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흥미진진하며 트렌디한 동시에 가치로운 것이어야만 했다. “어머, 난 말이야 난 주말에 ~~이런 거 했는데. (나 ‘여전히’ 너무 멋있지?)”라고 월요일 출근에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거기에 하나 더! 그 껀수는 매주 규칙적으로 수급되어야 했다. 더 이상 싱싱한 고기를 찾아 헤메이는 한 마리 하이에나가 되어 매 주 금요일을 전전 긍긍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고갈된 하이에나처럼 피곤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처럼, 싱글인 나 역시 그 무엇인가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을 원했다.
바로 그 때쯤 박지성과 이영표가 영국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난 그 많던 주말을 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 돌이켜 보면 아찔하다. 저런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껀수를 잡을 가능성이란 부킹으로 가정적이고 이상적인 남편감을 만날 가능성만큼이나 희박한 것이다. 그런데, 지성과 영표가 그 희귀한 일을 해냈다.
축구. 축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먼저 뛴다. 그 너르디 너른 초록의 잔디와 맨 몸에 달랑 셔츠와 반바지만 걸친 채 그라운드를 뛰는 젊은 육체들이 희부옇게 눈이 부신 야간 조명 속에서 둥실 떠오른다. 그리고 천천히 소리가 들려온다. 웅성웅성 하는 낮은 소음들이 점점 커지면서, 둥둥거리는 북소리와 그라운드를 향해 선수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들의 외침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윽고 ‘와아-’하고 뭉쳐진 거대한 덩어리가 그라운드로 쏟아져 내린다. 하지만, 그라운드를 뛰는 사내들의 박력은 그 무거운 압력을 전속력으로 헤치고 나갈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코끝엔 차가운 바람이 찡하게 스쳐 지나가고, 커다란 전광판엔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가 총천연색으로 번쩍거린다. 매주 주말 밤, TV 앞에서 난 그 모든 것을 오감으로 만끽한다.
시작은 ‘꽃미남’이었다. 몇 년간 EPL의 명문으로 꼽히는 아스날의 팬을 자처한 것도 실은 ‘티에리 앙리’라는 프랑스산 최고 꽃미남(이제는 꽃유부남이 되고 만)의 길고 미끈한 팔다리의 선과 흠뻑 패인 보조개의 살인 미소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지, 기실 조국은 바꿔도 클럽은 못 바꾼다는 영국 골수 축구팬의 뜨거운 무엇을 품어서나 고급 축구를 음미하는 높은 안목을 가져서는 아니었다. 축구에 대해서라면 그런 최강 스펙의 남자가 골마저도 잘 넣는다는 사실이 좋은 것 뿐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며 동영상과 사진, 축구 전설의 뒷이야기들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가뭄에 콩 나듯 해 주는 유럽 축구 중계를 케이블 TV를 뒤져가며 열심히 시청했다. 중계를 해 주지 않는 빅 매치는 클럽 홈페이지의 인터넷 라디오 중계나 외국 스포츠 포털의 문자 중계 만으로 간신히 목을 축이는 기본 수련 과정들을 착실히 밟아갔다. 그러다 보니, 꽃미남 만큼이나 좋은 플레이가 좋아졌다. 꽃미남의 살인 미소 대신 그의 드리블과 위치 선정과 킬 패스에 경악하기 시작했다. 꽃과는 거리가 먼 광폭하고 무뚝뚝한 숫컷들이 가슴에 꽂히기 시작했다. 꽃밭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축구의 세계에 눈을 떠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는 목마름이었다. 지지 세력의 절대 쪽수 부족으로 야구나 기타 스포츠에 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유럽 축구 중계였다. 유럽 사람들은 좋겠다. 저런 경기를 매 주 경기장을 가서 보다니. 라이언 긱스가 전속력으로 골문을 항해 드리블해 갈 때, 그 피가 거꾸로 솟는 스릴을 매 주 현장에서 느낄 수 있다니. 한 때는 아예 영국으로 취업을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모든 고민이 지성과 영표의 EPL 이적으로 순식간에 해결됐다. 온갖 스포츠 케이블의 경쟁적인 유럽 축구 중계로 주말 밤은 유럽 축구의 밤이 됐다. 매주 케이블 TV에서 한 경기 보기가 힘들었던 EPL 중계가 주말마다 줄줄이 두 세 게임씩 생방송 일정에 올랐고, 유럽 축구 뉴스가 포털의 탑 뉴스로 떴고, 월요일 날 출근하면 모두들 지성과 영표의 플레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럽 축구 팬이라는 이유만으로 노처녀 대열에서 조차 비주류였던 나로서는, 이 전세의 역전이 심히 반가웠다.
이제 유럽 축구는 나의 경쟁력이 됐다. 젊은 영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꺼리’가 됐다. 연령, 성별, 국적 불문 축구를 좋아하는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매 주 승부에 목숨 건 경기의 치열함을 접할 때면 온 몸에 피가 한 번씩 새로 돈다. 싱싱한 에너지를 수혈 받는다. 심지어 피부가 고와지고, 주름이 사라지고, 근력이 더 붙는 것 같기도 하다. (쩝!) 물론, 이것은 내 인생의 황금 같은 주말 밤을 고스란히 제물로 바친 결과물이다. 사그라져 가는 껀수의 불씨를 아예 짓밟고, 그 잿더미 위에 피워 올린 꽃이다. (흑~) 때론 나도 주말 밤을 새며 놀고 싶고, 술 마시고 해롱거리다 누군가의 품을 노려보고도 싶고, 애인과 밤새 속닥거리며 보내고도 싶다. 토끼 눈으로 TV 앞에서 밤새다 그 후유증으로 도미노처럼 남은 주말을 날려 먹는 축구 팬이기에 앞서 간만에 푹 쉬고 다음 한 주를 산뜻하게 준비하고도 싶은 피곤한 월급쟁이다. 하지만, 그 귀에 익은 ‘와아-’하는 현장의 파열음이 들려 오는 순간 난 몽유병 환자처럼 TV 앞에 앉는다. 이 때만큼은,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그 누구의 전화가 와도 무성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화내고 돌아선 남자도 있다. 경기 후 치열한 애교 작전으로 마음을 돌려놓기도 하지만, 어쨌든 주말의 축구 라이프는 이렇게 적지 않은 희생과 순탄치 않은 애정 전선의 대가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어찌 보면 축구가 뭐 별건가. 동그란 공 발로 차는 거다. 그런데, 거기에 왜 이리 목숨을 거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래서 좋다”고 대답할 테다. 뭐 걸리적 거릴 것 없는 넓은 데서 하고, 순서 맞춰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일 없이 스물 두 명이 우루루 몰려나가 한꺼번에 뛰고, 룰은 단순하다. 격식 갖춘 유니폼도, 조작이 복잡한 장비도, 많은 점수를 주고 받는 아기자기함도 없다. 그렇게나 심플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말 대신 몸이 보여주고, 도구나 룰의 간섭이 없을 때만이 가능한 창조의 순간들이 빛을 발한다. 공 하나를 그물 안에 넣는다는 것. 아무런 텍스트로 부연되지 않는 이 행위 속에서 난 ‘창조’란 것의 새로운 정의를 봤다. 서로 다른 메커니즘으로 인간의 피를 끓게 만드는 스포츠와 예술이 겹쳐지는 황홀한 순간을 만끽했다. 그리고 중독됐다. 내가 좋아하는 알베르 까뮈씨는 말했다.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고. 아트 사커도 토탈 사커도 포메이션의 개념이나 쓰리백, 포백 논쟁이 없었던 그 때도 이미 축구는 인간의 도덕과 의무를 가르쳐준 행위였나 보다. 아아, 그런데 난 축구를 보면서 딸로서, 애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의 도덕과 의무를 모두 내팽개친 채 TV 앞에 앉아 있다. 밀려오는 죄의식을 애써 밀쳐놓으며, 운명의 소울메이트 대신 축구를 한껏 껴안고. 하지만 이 순간 더 이상 그 무엇도 바랄게 없게 하는 내 짜릿한 불륜의 주말 밤은 이렇게 깊어 가고 있다.
정유진 : 축구 보기를 싱글 라이프의 낙으로 삼은 지 어언 몇 해. 최근에는 격투기에도 빠져 좌축구 우격투의 뿌듯한 새 삶을 살아가고 있다…블라블라블라…
ps. 이렇게 기사는 그럴 듯 하게 써 놓고, 정작 올해는 몇 경기 제대로 못 봤다는. 지성의 컴백과 함께 again 2007!
ps2. 솔직히…”그래서 화내고 돌아선 남자도 있다. ” ==> 뻥이다. 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작가(?)로서의 양심을 팔고 그짓말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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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닷컴 » 황금빛 아래 감춰진 삶의 속살 드러내는…심야 리얼리티쇼에 빠져버렸다. said,
June 11, 2007 @ 10:33 pm
[...] 그리고 도베에는 예전에 이런 것도 쓴 적이 있다. 싱글 라이프를 사로잡은 불륜의 주말밤 – 도베(Dove) 2006년 4월 [...]
유진닷컴 » 그녀의 봄 불감증 탈출기 - Style H 2007년 3월 said,
March 28, 2009 @ 12:44 pm
[...] 싱글 라이프를 사로잡은 불륜의 주말밤 – 도베(Dove) 2006년 4월 http://www.youzin.com/blog/?p=379 [...]
유진닷컴 » [광고] 원고 청탁 대환영 said,
March 28, 2009 @ 12:56 pm
[...] 싱글 라이프를 사로잡은 불륜의 주말밤 – 도베(Dove) 2006년 4월 http://www.youzin.com/blog/?p=3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