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리얼리티 쇼보다 더 리얼하다. – 도베(Dove)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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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가 만드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Dove

좋아하는 사람이 만들기 때문에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매 달 성긴 행간에 빼꼼히 숨은 작은 이야기들을 읽는 특별한 행복을 주는 잡지.

도베 5월호. 내 글이 실렸다.
주제는 ‘리얼리티쇼’

미국 드라마에 대해 써 달라는 편집자의 요청을 역제안으로 관철시켰던 주제.
언제가 꼭 한 번쯤은 정리해 보고 싶었던, 그래서 나에게는 이렇게 조금 깨작하고 말기엔 아쉬운 특별한 주제다.

허나 매일 밤 달리다 지친 심신으로 잘 쓰기 힘들었다. 주어진 지면이 짧았다. 시간도 없었다.
–>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1,000가지 이유 중 세 개.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싶기도 하고, 이러면서 손목을 푸는 것이라고도 생각했지만…
결국 나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자신이 없어진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뭘 시작한다 해도 여기서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리라.
고작 이것뿐인 것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쳐다봐야겠다.
그리고 또…뭐든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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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베 5월호] 인생은 리얼리티 쇼보다 더 리얼하다.

9년차 직딩의 밤은 퇴근과 함께 시작된다. 퇴근 없는 밤은 그저 쉼도 없이 하얗게 이어지는 피로의 백야일 뿐. 곧게 뻗은 마천루 너머 황혼이 저물고 도시의 골목마다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 회사 정문을 빠져 나오는 그 순간이 바로 낮과 밤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이 가져오는 변화는 강력하다. 축 쳐진 어깨는 바싹 치켜 올라가고, 그늘졌던 뺨에는 장미빛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내내 굳어있던 머리는 활발한 두뇌 활동을 시작하고 발걸음은 경쾌해진다. 이것이 바로 금요일에 그 약발이 극에 달한다는 이른바 ‘퇴근의 매직’이다.

‘나도 골드미스’라고 주장해 보지만 실상 골드인지 실버인지 녹슨 구리인지 그 정체는 불분명한 삼심대 중반의 미혼 여성의 하루는 이를 악물고 달리는 치열한 적자생존의 전쟁터다 상사에게는 아직 목차도 못 잡은 기획서를 숨기며 “네, 다 돼 갑니다~” 호언장담하고, 치고 올라오는 빠릿한 후배들에게 “이쁜 것들~”을 남발해도, 실상 쫓기는 마음에 점점 도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하며 도리질치는. 높아진 직급에 함께 얹혀진 무한책임의 부담감까지 사방이 지뢰밭, 꼼짝달싹할 수 없이 죄어오는 사면초가다.

‘퇴근’은 매일 반복되는 숨막히는 정글 라이프의 짧은 쉼표. 퇴근의 매직카펫에 실려 내 방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나는 남은 힘을 엄지 손가락 끝에 모으고 ET와 엘리엇의 교감의 순간과도 같은 신성함으로 하루 종일 침묵 속에서 나를 기다린 충직한 파트너의 빨간 버튼을 누른다. ‘리모콘군, SOS~!’ 파지직~ 하는 소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브라운관에 번쩍 불이 들어오고, 밤은 닫혀있던 또 다른 무대의 커튼을 열어 제친다. 앗, 그런데 이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서 계신 분은…나의 상사를 닮은 세계 최고의 부호 도널드 트럼프씨. 또 한 판의 무차별급 심야의 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 어프렌티스>는 트럼프 그룹의 새 경영자를 뽑는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다. 18명의 도전자가 두 팀으로 나뉘어 매 주 경합을 벌인다. 최고급 크루즈 선박의 광고 캠페인을 제작하거나, 신메뉴 햄버거를 개발해 판촉을 벌이는 과제들이다. 15주 동안 펼쳐지는 힘겨운 도전과정에서 도전자들은 서로 팀웍을 발휘하며 훌륭하게 과제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이기심과 질투심에 싸여 동료를 궁지에 몰아 넣기도 한다. 서로 물고 뜯으며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여기서 모든 것은 생존을 좌우하는 게임의 룰에 따라 결정될 뿐, 감상주의나 휴머니티가 개입할 여지는 없는 것이다. 최종 탈락자 1명을 골라낼 때 트럼프씨가 손가락을 뻗어 “You’re fired!” (당신은 해고됐어!) 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정점에 이르는 이 살벌함이라니…이것은 마치 내가 낮마다 시달리는 악몽의 한 장면을 재현한 듯 하다.

“가관이군~” 처음에는 그랬다. ‘내탓이요’의 미덕에 큰 의미를 두는 우호형 인간이 살아남아 보겠다고 서로를 음해하는 치사한 모습에 쉽게 고개를 끄덕여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비호감의 이면에는 거부할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발버둥에서 애써 덮어둔 나의 반쪽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연의 치사스러움이 바로 뿌리칠 수 없는 쇼의 백미다. 내 삶에서 가장 가리고 싶은 바로 그 부분을 치사한 것을 날 것 그대로 까발려 보여주는 솔직함이 리얼리티 쇼의 원천적인 힘인 것이다.

그 마력으로 지금 리얼리티 쇼는 거의 모든 채널을 맹렬하게 장악해 가고 있다. 미국 최고의 가수를 뽑는 <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최고의 신예 디자이너 자리를 겨루는 < 프로젝트 런웨이>, 타이라 뱅크스가 미국의 차세대 수퍼모델을 뽑는 < 도전! 수퍼모델>등과 같은 ‘스타 발굴형’을 케이블 TV에서도 상위 시청률에 든다고 한다. 하지만, 미혼녀들이 더 열광하는 쪽은 특 A급 신랑감의 마음을 얻기 위한 미녀들의 독한 경쟁을 그린 < 베첼러>와 같은 ‘짝짓기형’일 것이다. 가장 치사한 부류는 ‘폭로형’. 배우자의 부정 행위를 대신 파헤쳐주고 불륜의 현장을 급습하는 < 치터스>는 회마다 연인이나 부부 간의 사랑을 돈독하기 위함이라는 제작 목적을 밝히지만, 결과는 관음심리를 부추긴 밑바닥 치정극으로 치닫고 만다. ‘변신형’은 또 어떤가? 수 많은 수술을 통해 미운 오리새끼에서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 도전!신데렐라>는 성형의 힘을 홍보하는 가장 리얼한 쇼케이스다. 리얼리티라는 명목으로 장르와 모럴의 한계선을 넘어 선 이들은 무수한 카피캣을 낳으며 위태롭게 폭주하고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들은 다시 한국형 토착 버전으로 재생산되어 인기 몰이에 한창이다. 시청률 최절정의 < 무한도전>에서부터 ‘헤어진 옛 애인을 찾아준다’는 컨셉을 내세우며 화제를 뿌리고 있는 < 추적!엑스보이프렌드>까지. 신세대 짝짓기 프로그램 < 조정린의 아찔한 소개팅>, < 치터스>를 흉내낸 <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트랜스젠더의 성전환 프로젝트 < 라이크어버진>, 한국형 토종 요리사 발굴기 < 도전! 요리왕>와 끼와 재능 갖춘 주부 스타왕을 뽑는 < 바람의 여신 tvN 스타> 등 훈훈한 감동과 지탄받는 센세이셔널리즘을 오가는 수많은 리얼리티 쇼들이 채널 곳곳에 포진해 밤마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선정성이나 사생활 침해의 수위를 넘어 막 나가는 리얼리티 쇼에 대한 경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19금이나 윤리의 안전지대 양쪽 모두에서 한참이나 비껴난 나는 오늘도 몰아친 야밤의 급류 속에서 TV 채널을 돌리며 심야 리얼리티 쇼를 찾아 헤맨다. 데칼코마니처럼 성공과 좌절, 도전과 실패가 교차하는 대낮의 정글 라이프를 시뮬레이션하는. 그리고 이 가공의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내가 꿈꾸는 성공 신화에 대한 로망을 대리 만족한다. “저러니까 안되지…쯧쯧” 24시간 감시 카메라 속 그들의 좌충우돌을 관음하며, 거기에 오버랩된 오늘 나의 삶이 이렇게 비루한 이유에 대해 복기를 둔다. 트럼프씨가 마치 내 상사인 냥 그가 던지는 한 마디에서 내일의 정글을 헤쳐나갈 한 편의 생존해법을 구한다. 회사의 기대는 나날이 높아지고, 경쟁은 치열하며, 마음을 기댈 동화 같은 로맨스는 저 먼 곳에 있다. 인생에 휘몰아치고 있는 이 격렬한 급류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밤마다 되풀이되는 같은 질문 속에서, 나는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내 삶의 리얼리티와 만난다.

호접몽의 한 장면처럼 …저기 저 속을 바둥거리는 것이 TV 속 그들이더냐, 그들을 지켜보는 나이더냐…

—-
그리고 내가 직접 쓴 나의 소개는 이런 것이었다. 좀 웃기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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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베에는 예전에 이런 것도 쓴 적이 있다.
싱글 라이프를 사로잡은 불륜의 주말밤 – 도베(Dove)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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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코멘트 »

  1. 윤정이 said,

    June 12, 2007 @ 1:39 am

    음하하하… 친구, 친구는 골드미스랑께.
    오랜만에 낄낄대며 웃어제끼는 줌마 친구다.

  2. dasan said,

    June 15, 2007 @ 4:40 pm

    와우 멋있어요~~

  3. 김승연 said,

    June 19, 2007 @ 11:34 am

    재미있어요!

  4. 대포활어 said,

    June 28, 2007 @ 6:22 pm

    글 정말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공감!!!

  5. 유진닷컴 » 그녀의 봄 불감증 탈출기 - Style H 2007년 3월 said,

    March 28, 2009 @ 12:4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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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유진닷컴 » [광고] 원고 청탁 대환영 said,

    March 28, 2009 @ 12:5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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