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Waiting) by Ha Jin : 그 후에 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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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Waiting)

하 진 저/김연수 역 | 시공사 | 2007년 08월

중국에서 태어나 석사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간 마흔 셋의 중국인 영문학자가 영어로 낸 소설이다. 제 2외국어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김연수씨의 번역도 너무 좋다. 워낙에 본인이 문장을 잘 쓰시는 분이지만, 번역자로도 훌륭해서 전혀 이질감 없이 마치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중국인이 영어로 쓴 소설을, 한국 소설가의 번역으로 읽는다? 많은 할 일 다 제쳐두고, 태평양을 두 번이나 넘는 복잡한 과정을 돌아 비로소 나에게 온 문장들 속에 정신 없이 빠져들었던 며칠이었다. 눈물도 나고, 찔리기도 했다.

문화 혁명 시기, 군의관 린의 깡마르고 못생긴 아내 수위는 그에게 집이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 멋드러진 문장들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고작 1년에 한 번씩 받는 열 이틀의 여름 휴가를 빌어 집으로 왔을 때, 수위가 내놓는 음식들을 보면 된다. 달달한 잡곡죽과 몇 시간이 지나도 냄새가 넘어오는 부추달걀 튀김, 마음이 편안해지며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 참기름과 으깬 마늘로 양념한 줄기콩…그가 오후에 뜬금없이 내일 아침 부모님 산소에 가야겠다고 한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난 린이 솥의 나무뚜껑 위에 놓인 대바구니 안에서 발견한 것은 수위가 새벽같이 만들어 놓고 나간 네 종류의 음식이다. 생선튀김, 돼지고깃국, 토마토 달걀볶음, 껍질을 벗기고 백설탕을 뿌려 찐 토란. 이혼을 염두에 둔 의식인지도 모르는 채, 느닷없는 남편의 말에 당황한 수위가 없는 살림의 비상금 쪼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밤늦도록 재료를 구해 마련한 음식이다. 생전에 그의 부모님이 무척이나 좋아하시던. 그러니 그가 머나 먼 타지에서 군의관 생활을 하며 애인과 정을 나누는 동안, 내내 그의 병든 어머니와 아버지를 돌보고 지킨 것은 수위라는 것을 새삼 이러쿵 저러쿵 강조할 필요도 없다.

점점 쭈구렁망탱이 노처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린에게 매달리는, 한 때 매력적인 아가씨였던 만나는 린의 애인이다. 무려 18년 간 사랑하되 이루어질 수 없는, 엄격한 군의 규정 때문에 병원 밖에서는 함께 있을 수도 없어 그야말로 ‘生’각시로 늙어가는 린의 애인이다. 목매달며 결혼하자는 심약한 애인도 있었고, 이혼한 고위 정치위원의 처가 될 뻔도 했지만 시시때때로 우리를 덮치는 생의 아이러니 때문에 이도 저도 못 이뤄 이제는 자의반 타의반 어쩔 수 없이 유부남 린이 이혼하기만을 기다리는 만나의 절박함을 구구절절이 표현할 필요는 없다. 처음으로 이혼하러 여름 휴가를 빌어 고향에 내려간 린을 가슴 뛰게 기다리다 매점에서 싸게 파는 공단 이불보를 보고 너무도 기뻐 한 달 월급의 반이 넘는 40위안에 가까운 돈을 주고 덜컥 사 버렸을 때, 바로 그것이 만나의 애끓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 이불보에 수 놓인 ‘잊기 어려운 밤(難忘之夜)’이라는 글자는 잊기 어려운 밤을 남기고 간 한 남자를 기다리는 세상 모든 여자들의 마음이다. 커다란 진주를 품은 불사조 같은 상상 속의 동물들이 수놓아진, 결코 사용될 일 없었던 그 아름다운 공단 이불보가 바로 만나의 지난 18년이다.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애인을 두고 매년 부인과 이혼 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매번 실패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인생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우유부단한 한 남자를 기다리는 두 여인의 기다림의 세월은 분분히 꽃잎 지는 20년의 세월을 향해 달려간다.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고 있지만, 시간의 힘은 모른다. 세월이 이 기다림을 비틀어 어떤 기괴한 모양으로 만드는지. 기다림은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한 시간의 강에서 자란 돌연변이 괴물같은 모양새로 이들 앞에 입을 벌리고 있다. 기다려야만 했던 그 간절한 이유도 이 세월의 괴물 앞에서는 고작 한 입거리 찬이다. 괴롭고 슬프고 아프고 행복하고 기뻤던 가슴 속 우주는 거대한 시간 속에서 한 점으로 지워져 간다. 심지어 불가항의 ‘운명’이라 생각했던 그것마저도.

시간이 흘러간다. 그 시간 속에 인생이 빚어진다. 고통스럽지만 웃을 수 있고, 행복하지만 눈물이 나는… 소설은 그 기나긴 생의 불연속면을 낱낱이 그려낸다. 오롯이 인물의 대사와 행동, 풍경의 묘사만으로. 섣부른 해석이나 그럴 듯한 아포리즘은 없다. 작가 개인의 목소리는 배제되어 있고, 어떤 인물의 내면 속으로 필요이상 더 깊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작가는 끝없는 상황의 관찰을 간결하고 소박한 흙빛 문장으로 퍼다 나른다. 그 속에서 삶과 인간의 심연이 서서히 그 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드러낸다. 그렇지. 파르르 떨리는 입술과 축축하게 젖은 이마, 깨문 입술보다 쓰라렸던 세월에 찢어진 가슴을 더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게 무얼까.

요즘 접하는 소설들마다 철학과 과학과 심리학과 뭐와 뭐의 퓨전인 경우가 많았다. 저 멀리 쿤데라부터 시작해 알랭 드 보통이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요즘 소설들 보면 작가인지 인물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튀어나와 일장 연설을 늘어놓거나 감상을 풀어놓는다. 그것대로의 깊은 맛과 세계가 있지만, 하 진이라는 작가의 이 소설에서 히치콕의 영화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반가움을 느꼈다. 영화에서만 가능한 시각적 방식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던 히치콕처럼, 하진은 입체적 분석 대신 인물들이 하는 말과 엇갈린 행동들의 묘사에만 집중한다. 그것으로 서술로서는 전달되지 않는 인간 내면의 모순과 분열이, 그 비극성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장르에서나, 오롯이 그 장르에 천착한, 불순물이 첨가되지 않은 순도 100프로 정격의 경지에 이른 성취는 놀랍다. 토를 달거나 비교할 수 없다. 경외할 수 밖에 없다. 그 세계의 정수, 가장 깊은 곳에 이르렀으므로.

오지 않을 것을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머리로는 아닌 줄을 알아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런데 놀랍게도 인생에서는 때로 그 오지 않을 것이 오고야 만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랬다.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진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이미 내게는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절박함은 사라지고, 나는 이미 또 다른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탐욕도 아니고 찰나의 변덕도 아니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우리를 생각치 못했던 곳으로 끌고 들어간다. 거기에 무엇이 있을 지는 가봐야 알겠다. 하지만 그 전에 생은 오늘 내 앞에 있다. 무언가 기다리고 있다면,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림의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닐까? 기다린 것이 온 뒤에도, 혹은 오지 않은 뒤에도 결국 또 다시 우리 앞에 닥치는 것은 오늘일테니. 꼭두각시의 줄을 끊고 현재의 파도타기에 몸을 맡긴 자, 소설 속 겅위처럼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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