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바다의 기별> – 근무 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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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나무| 2008.11.17

김훈 선생님의 신작 에세이집을 읽었다. 글의 배경이 언제든, 문장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었다. 검은 겨울 밤을 가르며 휘몰아치는 흰 눈보라처럼 살벌하고 준엄한 문장들이 가득했다. 그 문장들은 실체와 말 사이의 구천을 떠돌며, 그 어느 쪽에도 안착하지 못한 독한 아귀들 같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꼭 이렇게 무겁고, 무서운 일이어야만 하는지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흘러나온다. “하여간 사내들이란…”

어쩐지 김 훈 선생님은 고집 센 어린 남자애 같다. 그 치열한 사유의 깊이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성숙한 어른이라는 느낌이라는 들지 않는다. 일부러 성을 내고, 일부러 까칠하고, 일부런 쎈 척 어른의 흉내를 내는 똑똑한 어린애 같다는 혐의가 든다. 온갖 폼 잡고 사람들 모아놓고 근엄한 표정으로 공자왈 맹자왈 하다가도, 뒤로 가서는 장난스런 눈빛으로 배시시 농도 건네고 언니들의 추파에 응수도 하며 낄낄거릴 것만 같다. 그러다가 금새 옷섭을 여미고 단정해지기 놀이에 심취하고.

어느 날 술 마시는 자리에서 내 친구들에게 여러 소방장비들의 기능과 작동방식을 열거하면서, 그 기능 하나하나가 어떻게 인간의 생명과 연결되는 것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도심을 질주하는 소방차가 어째서 아름다운 것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내 친구들은 별 감동이 없었다. 술 마시는 자리에서 왜 불 끄는 얘기를 하느냐고 나를 나무라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실망했고, 친구들이 내 말을 알아 듣지 못해서 답답했다.

< 바다의 기별> 중 –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75p

술자리에서 혼자 들떠 열변을 토하다, 자기 말 안 들어준다고 삐쳐버리는 남자. ㅋ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 분을 두 번 뵈었다. 두 번 다 1:1이었다. 그렇다고 소개팅은 아니고ㅎㅎ. 그런데, 정작 ‘한국 문학의 벼락 같은 축복’이자 동시에 ‘벼락 같은 베스트셀러’였던 그 분의 책은 이번에야 처음으로 보았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도 새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와 문장과의 거리, 그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헛된 열망, fact에의 집착, 과학적인 글쓰기, 조사의 어려움, 몸으로 밀고 나가는 세계, 단독자, 밥벌이의 중요성과 지겨움, 보편성과 개별성…이미 신문 기사나 인터뷰를 통해 반복했서 접했던 레퍼토리들이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독대해 직렬연결로 전달받아 더 선명하게 각인됐고. 다른 책들은 어떨까? 결국 그것들 역시 다른 대상에 투영된 같은 세계의 응용일 것이다. 개별적이자 단독적이며 구체성을 띈 fact에 기반한 응용.

어쨌든 나로서는 문학보다는 어떻게 살아야/살아남아야 할까가 더 고민이다. 그런데, 구구절절한 책 속 문장보다는 그 분 작업실 칠판에 적혀져 있던 몇 줄의 근무 수칙이 번쩍~와 닿는다. 같은 근로자로서의 연대감이 너무너무 살갑다. 그래. 근무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근무 수칙을 지켜야 한다. 2009년에는 새해의 결심 대신 새해의 근무 수칙을 만들어 봐야겠다. 어렵고 혼란한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단순하고 명징한 근무 수칙을. 또 한 해가 바짝바짝 끝을 죄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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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근무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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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컴퓨터를 다룰 수가 없지만, 컴퓨터로 그을 쓸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도 없다. 연필로 쓰기는 몸으로 쓰기다. 연필로 글을 쓸 때, 어깨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작동되는 내 몸의 힘이 원고지 위에 펼쳐지면서 문장은 하나씩 태어난다. 살아있는 몸의 육체감, 육체의 현재성이 없이는 나는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다. 글은 육체가 아니지만, 글쓰기는 온전한 육체노동인 것이다.

< 바다의 기별> 중 – ‘무너져가는 것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것’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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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런 문장을 이순신 장군의 < 난중일기>에서 읽었습니다. 거기 보면 그 분이 군인이기 때문에 사실에 정확하게 입각한 군인의 언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인이 아니면 쓸 수가 없는 문장입니다. …(중략)

저는 장군님께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분이 돌아가신 날이 되면 꼭 노량에 가서 소주 한 병을 놓고 절을 하고 돌아옵니다.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노량은 남해도 입구인데, 아주 경치가 좋습니다.거기 이락사(李落詞)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이순신이 바다로 떨어져 죽은 사당인데, 그 이름도 참 이순신답죠. 아무런 수사학이 없고 떨어질 ‘락’자를 써서 이가 떨어진 바다라는 뜻이죠. 난 전국 사당 이름 중에서 이락사가 제일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가 죽은 바다다. 이런 단순성이 온갖 슬픔보다 더 거대한 슬픔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저는 요즘 이런 명석성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 바다의 기별> 중 – ‘회상’ 141~1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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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2000년 7월에 풍륜을 퇴역시키고 새 자전거를 장만했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 바다의 기별> 중 – ‘자전거 여행’ 서문 1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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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A다’라고 말하면 분명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하나마나한 말입니다. 사람이 입을 벌려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사전이라는 것은 동어반복의 거대한 시스템입니다. 이 동어반복의 지옥을 벗어나서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모습을 직접 포착하고 그것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문학과 자연과학의 목적은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바다의 기별> 중 – ‘말과 사물’ 1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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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에는 종교나 내세나 구원이나 피안이나 이런 것들이 나오지 않고, 오직 이 해탈하지 못한 중생들만 나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득도하지 못한 중생만 저의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제가 소설로 쓸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좁은 것이죠. 득도하지 못한 중생 얘기만 쓰는 아주 협소한 영역을 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까, 인간의 안쪽에서만, 인간의 언어만을 붙들고 살아야 되니까. 그런 협소한 자리의 부자유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 안에서만 한 줄 한 줄의 글을 쓰다가 때가 되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 바다의 기별> 중 – ‘말과 사물’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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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 분위기?! -_-;; 쪽팔리당… 그래도 가문의 영광^.^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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