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 출몰한 이 괴상한 여자애들 – 사랑니와 홍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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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특이한 걸 보면 “신기하다” “기발하다” “그 근원을 더 파헤쳐 보고 싶다” 등등 보다는 “쩝이다” “왜 저러냐” “거기까지~” 이런 반응이 먼저다. 연로의 동반자이신 귀차니즘. 에너지가 딸려서 그렇다. 굳이 필수불가결한 의식주와 일상의 안위에 기여하지 않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집중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연달아 두 편의 특이한 영화를 보면서 이런 나의 경향을 더욱 확실히 인정했다. 김정은의 사랑니공효진의 미스 홍당무. 영화 이름 앞에 여배우들을 붙여도 충분할 만큼 이 두 편은 그녀들의 영화다. 서른의 김정은은 학원 수학 선생이고, 스물 아홉 공효진은 러시아어 가르치다 부당하게 업글(?)된 학교 영어 선생님. 일단 나이 및 학원을 배경으로 한 활동무대 상당히 유사하다.

그녀들의 유일무이한 관심사, 사랑에서는 어떤가? 정은은 같은 반 첫사랑과 꼭 닮은 열 일곱살 짜리 고딩 학원생을, 효진은 이제는 세월이 흘러 같은 학교 동료 선생이 되었으나, 과거 고3 수학여행을 인솔했던 ex담임 선생님을 사랑한다. 정은은 이가 아프고, 효진은 얼굴이 빨개진다. 둘 다 병원을 찾지만 병의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나란히 놓고 보니 둘이는 막가파 배틀 중인 것 같다. 김정은이 좀 나긋나긋하게 맛간 여자 계열로 격하다면, 공효진은 대놓고 막장 왕따 엽기녀 컨셉을 불태운다. 김정은은 심한 나이차의 청소년을, 공효진은 같은 학교 유부남 선생을 사랑하는데, 영화가 이런 사회적 금기의 삼팔선에서 오락가락하는 ‘안타깝고 아스라한’/'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과정이겠거니,,,요런 나의 하찮은 기대감은 영화 시작 5분 만에 박살이 났다. 금기에 대해 조마조마하는 건 영화 보는 나밖에 없고, 정작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런 금기 따위는 발에 낀 때 취급도 안 하고 훌쩍 선을 넘어 어디론가 가버린다. 아주 낯설고 기괴한 곳으로. 따라가기 힘들었다. 정신에도 체력이 있나보다. 심력이 딸려 걍 중간까지 가다 말았다. 내가 미처 따라잡지 못한 먼 곳에서 그녀들은 알을 깨고 나오듯 호된 열병을 치르고 성장을 했다고 한다. 뭔가를 발견했다고도 한다. 그 순간이 감동이었는지 미소였는지 도중에 가다 만 나는 모른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십대를 보내고 나면, 이런 이상한 여자들이 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 걸까? 그녀들보다 한참을 더 나이 먹어버린 난 그냥 그런 덜떨어진 생각 속에 남겨졌고…

어쨌든 괴상한 그녀들이 30대의 기점에서 도착하게 되는 정류장은 “현실인식”이다. 다행이다. 과정은 못 따라갔지만, 이 결론에서 내 눈높이의 상식은 끝에 조금 간신히 영화와 도킹했다. 거기서 그녀들은 비로소 그토록 애닲았던 첫사랑이 마음 속에 간직했던 모습과 다르게 변해있음을 깨닫기도 하고, 나에게 매일 전화하고 싶지 않았던 당신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새출발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다. 29-30은 성장에 어울리는 나이다. 아니 성장이 강제되는 나이라고 해야겠다. 25-26에 이미 조루해 사랑이니 인생이니를 다 알아 남의 속을 꿰뚫어 보는 꿍한 표정 짓는 것도 어색하지만, 34-35가 되어서도 똥, 된장을 구분 못해 마냥 퇘퇘 거리고만 있는 것도 한심하다. 그 사이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다. 29-30의 여자들은 그 강을 건너며, 전에 없던 낯선 풍랑과 씁쓸함을 겪게된다. 그리고, 더 이상 젊지 않은 상태에서 많이 늙지는 않은 상태로 변화해간다. 어깨에 주렁 주렁 매달린 한 짐의 ‘현실 인식’과 함께. 그 과정은 지친다. 아홉수라는 것도 결국 그런 필연적 과정을 일반화한 개념이 아닐까.

그 힘든 걸 거쳐낸 그녀들에게 축하를. 서른의 딱지는 고달픈 20대를 잘 보낸 그녀들에게 붙여진 훈장이다. 그 훈장을 달고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나겠지. 현실을 흡수한 힘으로 보다 현명하고 의연해지길. 그리고…좀 평범해지고, 괴상한 사랑들에 빠지지들 말길. 쓸 것도 아니면서, 시트콤 소재만 늘리지 말고들 쫌…!!!!

ps. 사랑니, 미스 홍당무를 비롯 연애의 목적, 번지 점프를 하다, 누가 그녀와 잤을까? 생날선생 등등 어쩌다 대한민국 학교/학원 선생님이 비정상 캐릭터 전담 직업군이 되어 버렸는지. 만만한 게 선생인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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