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 편 : 벤자민 버튼/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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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넌 지나간 세월 앞에서 미친 개마냥 미쳐 버릴 수도 있어…운명을 탓하며 욕을 할 수 도 있어. 하지만 결국 끝이 다가오면 그냥 가게 나 둬야 해.

노인에서 시작해 역순으로 살아가야 하는 벤자민 버튼. 하지만 영화는 원치 않는 삶, 풀 수 없는 숙제가 강제된 이의 내면의 고뇌를 파고 들기보다는 불평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벤자민의 삶의 흐름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가 하루 밤 사이에 갑자기 사라져도, 자기를 버린 아버지가 느닷없이 등장해도,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놀러 가도, 사랑하는 가족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순간이 와도, 그는 말없이 모든 것에 순응한다. 참 좋은 사람. 물려 받은 단추 공장 따위 관심이 없어 모든 걸 팔아 사랑하는 이와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사람. 욕심이 없다. 극단적인 비정상이 애초에 불필요한 욕심따위 거세해 버렸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조건 속에서도 황폐해지기 보다는 삶의 지평을 넓혀가며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시간이 거꾸로 가든 똑바로 가든 영원한 것은 없으며, 뭐가 닥치든 어떤 인생을 보내든 우리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결론은 let it go라는 것. 영원하기를 바래야 마땅할 사랑하는 이와 보낸 그 짧은 스윗 스팟의 순간조차도, 그는 다음 순간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벤자민과 우리는 모두 같은 흐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벤자민의 담담함보다는 ‘유한’이라는 실존의 벽 앞에서 울부짖는 데이지의 절규가 더 가깝게 와 닿는다. 그 절규조차도 지속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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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간만에 우디 알렌 영감님. 게다가 내가 동경해 마지 않는 스페인…그 중에서도 바르셀로나. 게다가 하비에르 바르뎀! …하비에르 바르뎀!! 말라비틀어진 건어물녀의 가슴조차 다시 콩닥콩닥 뛰게 만들 수 이 남자.

하비에르 바르뎀, 그 남자의 하체 수난기 (2007.10.10) ♨

각개로 보면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베스트이지만, 합쳐놓고 보면 좀 해괴한 조합이기도 하다. 뉴욕쟁이 영감님의 스페인 출장이라니, 게다가 페르소나 운운하기엔 너무 동떨어진 이미지의 바르뎀씨. 실제로 연인인 페넬로페 크루즈양. 하몽하몽에서의 그 끈끈하고 섹시한 두 분의 궁합이 어찌나 강력한지 아직도 눈에 선한데. 계열화시키면 180도 반대편에 찍히실 영감님의 영화. 영감님의 시니컬과는 영 거리가 멀 것 같은 열정으로 충만한 가우디의 도시. 이 의외의 콤비네이션이 익숙한 이야기를 새로운 컨텍스트에서 보게 만든다. 새로운 공간과 인물을 결합시킨 효과이다. 결국 소비하고 싶은 건, 혁명적이고 새로운 영화적 실험이 아니라 우디 알렌이었거든.

크리스티나는 실체도 없는 열정을 추구하지만, 재능이 동반되지 않은 열정은 초라하고 그 멋드러진 열정에 수반되는 인생은 피곤하기만 하다. 게다가 진정한 열정-모순 커플의 깍두기 노릇까지 해줘야 한다. 비키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오비에도에서의 휴가를 통해 더 이상 과거의 안정된 삶에 만족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마주한다. 그들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 이 두 명의 들끓는 스페인 피는 삶의 클리쉐를 부서뜨리는 역할에 너무나 딱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나, 이럴 것이라고 흔히 받아들여지는 이면의 적나라한 실체를 까발리는 것. 영감님 영화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잘난 주인공들은 그 모순 앞에서 당황하고, 스스로 예상치 못했던 결론 속으로 치달아 간다. 그 바닥에서 한 줌의 씁쓸한 진실이 걸러질 때까지. 그래봤자 고작 한 인간의 좁다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무슨 CIA니 FBI니 외계인의 거대 음모를 밝혀내는 것보다 백 만배는 더 재미있다. 내 안의 펼쳐진 우주의 신비를 탐험하게 해 주고 그 지평을 넓힐 기회를 주는 진정한 어드벤쳐 무비다.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는 정말 간만에 부부일기나 애니홀 계열의 캐릭터들이 등장해 바르셀로나의 두 달간 자신을 어드벤처한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비키를 작업하기 위해 데려간 기타 신이 넘흐넘흐 좋았다. 깊어가는 여름 밤 바르셀로나. 오래된 건물의 베란다에 드문드문 둘러앉아 황홀한 기타 연주를 듣는다라. …휴우. 그 오감의 어택에 인생을 다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봤자 돌아갈 수 밖에 없지만. 영감님의 이야기에서 딱 하나, 달라진 부분은 바로 이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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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박용하는 조승우, 김민정은 김혜수, 또 누구는 누구…타짜의 공식을 그대로 주식에 대입한 듯한 영화인데, 의외로 재밌었다. 영화 자체가 빼어났다기 보다는 영화가 건드리는 이야기가 한 번쯤 직간접으로 주식을 접해 본(당해 본?) 사람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려 자극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 가까이에서 들어봤던 말들, 쓰라린 경험들을 잘 비벼냈다.

그래도, 타짜보다는 한 수 아래다. 연기들도 조금씩들 어색하고. 특히 중심을 잡아줘야 할 김민정 캐릭터가 약했다. 고운 처자처럼만 보이고, 박용하에 맘 주는 부분도 너무 순진하시다. 좀 더 쎄게 하드코어로 밀어부쳐 줬어야 영화가 사는 건데. 명대사도 꽤 나오지만, 막말 한국어의 마법사 최동훈 감독에는 못 미친다.

돈과 욕망의 관계는 뻔하다. 그런데 알면서도 당하는 게 사람이다. 나는 예외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너무나 똑 같은 마음에 똑같이 처신하고 똑같이 당한다. 그걸 이용해 한 탕 헤쳐먹는 놈들의 작전 이야기는 범국민적으로 놀아난 대한민국 대표 재테크 주식을 더러운 한 면을 씁쓸히 곰씹게 한다.

# 기억나는 대사들

주식 시장에 그동안 꼬라 박은 수업료를 모았으면 그랜저 세 대는 뽑았겠다 – 현수
바닥인 줄 알고 사는 놈들 지하실 구경하게 될 겁니다 – 주식 살인마 우박사
대가리 딸려서 깡통찼단 소린 죽어도 안해요 – 현수
주식은 전쟁이야. 미사일 팡팡 쏘는데 달랑 총알하나 들고 달려는 개미들 – 증권 브로커
아무리 발악을 해도.. 안되는 놈은 안되는게 세상이구만.. 좆같네.. – 독가스 황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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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멘트 »

  1. 달노래 said,

    March 1, 2009 @ 12:19 am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검색해 보니, 아주 멋진 영화일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니 웬지 이전에 봤던 Under the Tuscan Sun 이 기억 나네요.
    http://www.impawards.com/2003/posters/under_the_tuscan_sun.jpg
    http://en.wikipedia.org/wiki/Under_the_Tuscan_Sun_(film)

    소설을 기반으로 한 내용은 한 여성이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머물으면서 그곳의 아름다움과 사람들과, 자연.. 그리고 “집”과의 사랑에 빠지게 되는것을 보여주는데.. 너무나도 아름답게 펼쳐진 “자연”, “사람들의 삶/음식”, 그리고 이태리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의 아름다움.

    Vicky Christina Barcelona를 보니.. 멋진 추억들을 불러오게 할것 같습니다.

  2. 달노래 said,

    March 5, 2009 @ 12:44 pm

    유진님~ 까꿍~
    하도 블로그 글이 안올라와서 목빠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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