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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맛에 대한 이런 생각
[다이어리] 2004/01/19

sonmandu.jpg buwonzip.jpg

유진이가 최근에 들렸던 두 맛 집

부암동 손만두집 vs 남대문 시장 부원집

# 허전한 정갈함 부암동 손만두집

너른 창으로 한낮의 볕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가정식 손만두 집

요리 잡지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개성식 음식의 깔끔함?
내온 상차림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무어라 흠 잡을 데 없을만큼의 정갈함에 감동받지만
몇 젓가락 뜨다 보면 깍듯하고 듣기 좋은 말들로 빙빙 얘기를 돌리다가
결국 만두국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고마는, 그 국물과 만두소의 기의 딸림에 실망하게 된다.

사람도 이런 사람이 있다.
포장도 매너도 좋지만, 뭔가 본질에서 우러나는 맛은 최소한, 내 혀론 느낄 수 없는....

잠시 피곤한 심신을 달랠 수 있을 거고, 나쁜 의도 따윈 없는 것도 알지만
뭐니뭐니해도 만두집에선 만두가 맛있어야 하는 거고
시간이 흐를 수록 그렇게 예의범절 다 갖추며 앙꼬 빼고 심신 달래는 게 오히려 더 피곤해지는 법이니
그저 이렇게 스쳐가야 하는 인연이 아쉬울 따름

그래도 이 집, 저 멀리 북안산을 낀 풍취만은 아뜨다.

# 거친 작가주의, 부원집

률, the great의 20년 단골이라는 남대문 시장 구석탱이 2층 부원집의 코스는 심플하다.
빈대떡, 닭무침 그리고 마무리 물냉면.

우선 두꺼운 무쇠 철판에서 돼지기름을 발라 갓 구워 낸 얇은 빈대떡

흰 접시에 담겨져 온 첫 만남에선 다소 썰렁하리만치
별 씹힐만한 건더기(고기, 미나리, 파...)나 눈을 사로잡아 식욕을 돋굴만한 울긋불긋한 색색의 토핑조차 찾을 수 없다.
그저 빈대떡의 가장 원래의 의미에 충실해 녹두 반죽을 잘 발라 판에 구워낸 듯한 뭐 그런.

하지만 이 얇디 얇은 빈대떡을 젓가락을 한 입어치만큼 뽀솨 입 안에 넣는 순간,
기본 도우 단에서 바로 승부가 결정지어지며
정말 제대로다 라는 만족감을 혀에서 뇌까지 일시에 전달한다.

내 혀는 백기 펄럭......
이것이 진정 돼지기름의 힘이더냐?

빈대떡은 돼지기름에..................표어라도 만들어 붙여야 하나?

연속해서 이어지는 닭무침

차게 식힌 찐 닭을 아무 정형화된 포맷없이 제멋대로, 정말 기분 내키는대로 찢어 냉면 그릇에 담아 내고
고추가루의 입자가 선연히 보이는 붉은 양념과 겨자, 그리고 파를 비롯한 몇 가지 야채를 제멋대로 비벼 걍 먹는다.
때론 비닐 장갑을 끼고 손으로 직접 무쳐 먹기도 한단다.

순간 난 섬세함이나 정갈함의 대척점에 당당히 깃발을 꽂는 이 원시적 와일드함에 매료되면서
소동파가 했다는 이런 말을 떠올렸다.

'교(巧)는 굴(屈)에 미치지 못한다.' (혹시 堀인가? 출처 가물. -_-;;)

하옇튼 요지는 정교함은 거침없이 마구 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거였는데,
부원집의 닭무침은 굴의 와일드함을 극단까지 밀어부치며 신나게 혀끝을 달려
순식간에 주제의 핵심으로 파고든다.

그 다음 코스인 물냉면에서 이 자세는 칼있수마로까지 승화되는데

물냉 면발답지 않게 꽤 굵고 쫄면스러우면서도 잘 씹히는, 왠지 전분이 많이 배합되어 있는 듯한 면발
그리고 별로 먹는 사람 따윈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혀에 아첨하는 肉感이 잘 느껴지지 않는 불친절하면서도 오소독스한 국물맛으로
지가 로렐라이 언덕도 아닌 것이
음식이 내게 와서 곱게 먹혀준다기 보다는
내가 어쩔 수 없이 그 매력발산의 대상을 향해 끌여당겨져 그를 탐닉하고 있다는 에로틱한(헉 갑자기 왠 에로틱??) 열패감을 준다.

내가 이런 느낌을 말하자 률은 그것을 '맛의 작가주의'라고 표현했는데,
영화건 소설이건 그림이건 작가주의란 남이 듣거나 보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남이야 어떻건 말건 지 속에 꼴리는 걸 표현하는데,
그게 결국은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것이며, 그래서 보편적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손만두 집의 그 표피적인 정갈함이 왠지 마뜩지 않았던 차에
부원집은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모습을 음식의 만들어진 모양과 맛으로 잘 표현해 주어
기분이 좋았다.

나도 마구 살고 싶다.
너무 雜思가 많아 그렇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때때로 뱃짱좋게 튕겨가며 인생의 거친 들판을 달리고 싶다.
부원집의 닭무침이나 물냉면처럼 그 무엇에도 개의치 않고
토핑없이도 감동을 주는 빈대떡처럼 잔 데코레이션이 아닌 가장 기본적인 바탕에서 심플하고 힘있게 승부를 걸고 싶다.

야..유진이.
음식 하나에서에도 이런 다양한 觀들을 찾아내고 있다.
할 일 되게 없나보다. ㅋㅋ

어쨌든 요지는 맛있는 걸 먹으면 정말정말 기분이 좋아진다는거다.
남대문 시장 한 복판에서도 부끄럼없이 야호~를 외칠 수 있을 만큼^^

근데 음식 사진 없이 음식에 대해 론하다니....이거야말로 밍밍하군.
하지만 맛난 음식을 앞에 놓고는 도저히 디카를 꺼낼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버리는 유진이.

사진을 찍기 전에 맛있는 음식을 즐겨라 *~

전혀 이런 지론따윈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돌이켜보면 언제나 내 행동은 너무도 정확하게 이 룰을 따르고 있다.
(그렇게 지키자 지키자 결심하는 여러 건전한 인생의 슬로건들은 언제나 위배하면서 ^^;;)

어느새 미디어 키드적 습성이 몸에 배어 어떤 순간에도 카메라를 먼저 드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지만
정말 땡기는 먹거리 앞에서 만큼은...............
ㅋㅋ

Posted by youzin | TrackBack

Comments

내 예전에 저 손만두집 취재했었는데 모모 잡지에 김은의 맛집멋집인가 뭔가하는 코너였었지.도비라로 커다랗게 만두 빚고있는 사진보고 뭐시기 프러덕션에서 섭외들어 왔었다.고추장 씨에푸하자고.클클...

Posted by lulu (2004/01/20) | Comment

부암동 손만두 집에 가본적 있어요. 대학때니까 5년도 전이었는데, 아직까지 있는 모양이네요. 개인집 개조해서 만든 식당이었던게 기억이 납니다.

만두 하면 저도 많이 좋아합니다. 예전 압구정동(신사동) 단스시가 있던 자리에 있던 구불이 만두도 맛있었고(여긴 일요일이면 중국 단체 손님들이 진을 쳤었죠), 겔러리아 백화점 지하에서 팔던 왕만두도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자생한방병원(성수대교남단) 근쳐에 있는 청호만두가 최고로 맛있는 것 같습니다. 직접 방문해서 먹는 만두전골도 괜찮고 거기서 판매하는 냉동만두를 집에서 조리해 먹어도 맛나죠. 여의도에도 있다고 들었는데, 가보진 못했습니다.

Posted by link (2004/01/21) | Comment

룰루양 링크님
우리 더 친하게 지내야겠다. 만두도 좀 먹으러다니고...
그냥 만두 말고 제대로 만두.

근데 어디어디 유명한 집 말고 그냥 평범함 모모 분식집 만두 이런 데서 의외의 대박이 터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게 집근처다...이러면 잭팟이죠.

Posted by 유진 (2004/01/23) | Comment

손만두집은 개성식만두가 아닌 서울식 만두집 입니다. 격식을 갖춘 깔끔한 상차림이 돋보이는 곳이죠.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적절하게 섞어 넣고 우린 김치를 넣어 만드는 사대문 안 반가식 만두국은 맛이 강렬하고 호쾌한 개성식 만두국에비하여 인상이 좀 흐린면이 있읍니다만, 뭐 지역과 문화의 차이쯤으로 보아주는것이 더 적합하지 않나 싶습니다. 조랑이 떡 때문에 흔히 개성식으로 착각들을 하시더군요... 음식 전문 칼럼의 쓰시던 분의 글이기에, 요사이는 호방함을 표방한 무례함과 소탈한듯 상대방에 대한 사려 없음을 식당이나 식문화 전반에 걸쳐 많이 느낀 시기이어서 정갈함과 예의바름이라는 식당의 기본덕목이 상당히 레어 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시대이기에 무례하게 한마디 쓰고가는점,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건필, 건승 하십시오.

Posted by 龍王 (2005/04/17) |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