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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 : 화기(火氣)와 양아의 동네
[다이어리] 2003/12/09

sillim.jpg

집 근처 술집이야.
우리 동네, 분위기 조~~~오치? ^^

홍대에 들어서면 머리색깔 하나에도 개성을 드러내는 홍대틱한 아해들
강남에는 트렌드에도 인생에도 고만고만한 강남삘의 인간들
이태원에는 이 대한민국 천지, 천상 여기 밖엔 갈 곳이 없는 기쎈 이태원걸들
청담동에는 인간들이 들고 다니는 백부터 틀려.

동네는 사람을 길들이고, 사람에게선 그 동네의 色이 묻어난다.

신림동.

그 중에서도 신림 4거리.

30년 가까이 살며 내 고향이나 다름없어진 신림동은 중삐리, 고삐리들이 설쳐대는 양아의 동네다.
심지어 피자집 배달부, 슈퍼 점원, 편의점 알바들, 그냥 서성이는 아해들...
할튼 눈 가는 곳이라면 죄다 다 어설픈 양아의 냄새가 풍겨나는

제대로 깊은 맛을 내는 식당 하나 없고, 고급스런 분위기의 빠 하나가 없고
어느 삐리리한 날 들려줄 그럴 듯한 춤판 하나 없다.
fake가 설쳐대는 동네
매달 전국 후아유 매장 중에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다는 동네.

그나마 이 동네의 유명 놀거리란
4~50대 유부남들에게 유명한 5층 라스칼라라는 댄스홀.
(지하가 아닌 5층이라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

또 하난 나이트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하며, 클럽이라기엔 지향하는 아무런 문화를 찾아볼 수 없는
삐끼들만 친숙한 해커스라는 나이트.

나란 사람이 속하기에는 어느 쪽도 너무 ....이상하다.

섹스앤더시리의 감성에 열광하는 난, 이 동네에 정말 안 어울리는 지향점을 추구한다.
마뇰로 블라닉의 400불짜리 투명 샌들을 신은 캐리가 이 동네에 와서, 이런 풍경을 목격했더라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Oh my god~!")

"어디 사세요?"
"신림동이요."

굳이 캐리가 아니더라도 웃음기를 띄며 묘하게 찡그러지는 인상에서 비춰지는 속내는
대개 아유 구려~~ 뭐 이 정도.
사실 내가 봐도 이 동네는 너무 구리다.

신림의 대표 명물도 하필이면 순대 타운이다.
순대..참으로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먹거리 아니던가.

단골이 되기 힘든 정신 사나운 뜨내기용 술집들,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며, 가격만 적당하기만 하면 뭐든 맛있게 잘 먹는 젊은 것들을 겨냥한, 나로선 견딜 수 없는(!!) 식당들.

그렇게 이 동네를 주름잡는 아이들도
싸구려고, 저급하고, 촌스럽고, 어설프다.

초딩 중딩 때 한 반이었던 애들이, 이 동네의 새끼 조폭들로 컸고, 주먹질에도 지친 아해들은
길거리 구루마에서 테이프니 싸구려 목걸이니 등을 팔았고
이제는 그 바닥에서도 뼈가 굵어 미장원이니 휴대폰 대리점이니 등을 하나씩 접수해 나름의 평온한 삶을 찾아간다.

가이스니 흑장미(어느 동네나 있는)니 조촐한 친목도모 모임들도 꽤 있었지만
내 보기엔 이 동네 양아치들 중에 제대로 주먹쓰는 넘들도 또 별루 읎다.

정욱진이라는 유명한 이름이 전설처럼 떠돌긴 했으나
후후 알게 뭐람.
너무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들어왔던 이름이라 오히려 현실감이 없다.

욱진이 형이 어쩌고...욱진이 형이 저쩌고...

욱진이 형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살고 있을꼬.

어쨌든 덕분에 난 공짜 유행가 컴필 테이프도, 가져와선 한 번도 걸지 않을 공짜 목걸이도 많이 챙겼고
이 동네 밤거리를 두려움없이 잘도 빨빨거렸다.

범생과 조폭, 혹은 이도저도 아닌 퓨전 양아의 길이 갈리기도 전,
우린 모두 친구였으니까.

혹시나 밤거리에서 마주치는 깡패 새끼들이라곤
죄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치고박고 놀았던 동창들이니 모..

이런 현상이 극에 달했던 고딩 졸업 즈음엔 한 10분 거리인 집에서 신림 4거리까지 가는데
한 2시간씩이 걸리기도 했다지.
하도 마주치는 넘들이 많아서...또 만나면 안부 인사라도 한 마디씩 물어야 할 거 아이가.
이넘들, 또 이런 건 확실하게 챙긴다.

내가 대학에 붙었다니 얼마나 신기해들 했던지...ㅋㅋ
야 '대'학생, 학교 잘 다니냐? 아직도 방송국에 다니냐? 인터넷이면 뭐 하는거냐?
그렇게 변해가는 내 소속은 그애들에겐 신기한 세상이었지만.

시간은 그들에게도 흘러
이젠 동생들 대신 여자를 데리고 산다는 넘, 중고차 매매에 손을 댔다는 넘
애가 생겼다는 넘, 결혼으로도 부족해 이혼까지 했다는 넘, 필리핀으로 넘어갔다는 넘
나에겐 한없이 낯설기만 한 그애들의 인생 스토리도 그렇게 바뀌고
이 동네 뜬 넘들이 이젠 더 많은지, 부딪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든다.

이제 내 동기들은 더 이상 이 동네의 주류가 아닌가보지.
내가 그러하듯이.

대신 이 동네를 활개치는 것은 그 나이적 내 동기 양아치들의 2003년 버전.
여전히 싸구려고, 패숀 감각이란 조악하고, 오락실 펀치 기계 앞에 모여 어설픈 힘자랑을 해 대는 뭐 그런...

이 동네를 채우는 것은 한 때 이 거리를 풍미했던 수많은 깻잎족, 양아치의 후손들.
오만가지 스타일로 베리에이션 하지만 그 정서적 근원은 하나, 깻잎이다.
어리지만 커 보이고 싶고, 자기 지갑 형편끝까지 달려봤자 촌티에선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무스와 스프레이로 뒤범벅된, 붙였든 세웠든 지들 나이처럼 빳빳한 머리카락의 아이들.

하지만
난 그애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담긴 애정을 부인할 수 없다.

그애들은 나와 같이 컸던 이 동네 양아들의 2003형 버전이고
여전히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의 핏줄이니까.

이 동네가 지금 여기로 오기까지를 계속 지켜봤던 난
오랜 세월동안 계속해서 한 가지를 지켜봐 온 목격자에게 생겨날 수 밖에 없는
피사체에 대한 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객관적으로도,,,
fake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fake는 그나마 솔직한 거 아닌가.
그 정교하지 못함과 어리숙함과 설익음이 사랑스럽다면, 내 취향이 변태스러운건가?
익지 않은 과일의 미적 가치...
맛이나 영양가를 계산하는 것 따윈 무의미한.

그렇게
난 이 동네의 양아의 냄새가 썩- 좋다.

그런데..................................................................................

매년 끊임없이 신림동표 양아치들을 확대, 재생산해내는 이 동네의 비밀은
바로 '화기(火氣)'다. (라고 이 어린 연사는 주장한~다)

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관악산의 기가 바로 '불' 아니던가.
옛 어르신들이 이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관악의 정 반대편, 광화문에 해태상을 세우고 관악산 여기저기에 물동이를 묻었다고 할 정도로.

이 화기도 어언 세월에 현대화 되어,,,인근 주민들을 괴롭히노나니.

신림역에서 내려 정체 불명의 간판들이 번쩍대는 동네 초입을 들어설 때
뭔가 정신사나워지면서, 확 하고 가슴이 불이 붙는 이 몽롱한 느낌.

발바닥이 공중에서 10cm 쯤은 붕~~ 뜨면서
자석처럼 황당한 어디론가 끌어당겨지는 나를 애써 추스려야
겨우 집으로 향할 수 있는 매일 되풀이되는 비상사태.

무려 30년 가까이 이 동네에 산 나도 여전히 이 기운때문에라도 이리 밤마다 후달리는데
어린애들은 어떻겠어?
양아치라도 될 수 밖에.

이 동네를 떠나 다른 동네로 시집간 친구들은 줄기차게 주장한다.
신림동은 애들을 키울 동네가 아니라도.
나쁜 뇬들, 지들 클 적 놀던 동네를 이리 생깔 수 있나.
아직 이 지역 주민인 나는 어쩌라고.

하지만 이 동네와 얽힌 그녀들의 기막힌 히스토리들을 잘 알고 있기에
자기 딸들에게만은 같은 삶을 반복시키고 싶지 않은 그 심정또한 이해할 수 있다.

난 고이고이 자라야 할 애기가 아니니까,
신림동은 유진이같은 애가 살아야 할 곳이 아니야...라고 누군가 주장할 필요도 없지.

허지만
여전히

이 신림동의 火氣는
때로 집에 올라가는 계단에서 나를 멈춰서게 한다.

Where Am I?

이 동네는 질문에는 답해주지 않는다.
다만 어디론가 끌고 들어갈 뿐.

신림동.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이야기다.

Posted by youzin | TrackBack

Comments

푸헐...
뭘 아시는 군요..
fake라고 마빡에 써붙인 fake는
하나의 쟝르라고 할 수 있죠..
fake가 진짜인것처럼 구는게 역겨운 것이죠 ^^

Posted by 윤카피 (2003/12/10) | Comment

이글은 유진님이 쓰신 글 중 최고의 걸작입니다.
★★★★★

Posted by 윤카피 (2003/12/10) | Comment

유진! 化가 아니고 火 아니냐? 火氣 ^^
내가 알기로는
火氣가 많은 사람은 '리더십'도 강하다고 하더구만...
그런 의미에서 신림동 아해들은 앞으로
양아의 차원을 넘어
이 사회의 리더들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이네...

그건 그렇고 유진의 이번 글, 나도 무척 맘에 들어.
내가 마침 신남남북녀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참고로 할께...

Posted by sunny (2003/12/10) | Comment

왜 뭐눈에는 뭐만 빈다구
에스이엑스가 보이지?
모징?

Posted by 레이 (2003/12/10) | Comment

신림동.. 에... 좋은 동네죠.. ^^

Posted by jinto (2003/12/10) | Comment

fAkE도 종류가 있다.
글구 양아천국에 산다는것은 자랑이지만 슬픔이다.
나 또한 양아들 세계를 잘 알지는 못하나
양아들이 업는것은 의리다.
의리는 행님들이 있다.
올해 최고의 글인듯
역쉬 마무리를 정확하게............
인생도 이렇게 마무리 잘했심 한다.
올해 볼수 있을랑가 언니?
여튼 남은 한달 보지개 잘보내구
올해에는 꼭 보자
와락~

Posted by 레이 (2003/12/10) | Comment

화기 때문에 스타일 다 구겨따 ㅋㅋ
폼 잔뜩 잡다 엄한 데서 망가지는 거...정말 유진이다워

끌적거려 놓구 며칠 된 건데(차마 '글'이란 표현은 몬하겠어여), 올릴 시간조차 안 나서 미루다가 어제 새벽 일 끝내구 맘 먹구 올렸져. 암튼 한 글 하시는 윤캅님 칭찬을 다 받다니 가문의 영광이어요. 야호~ (근데 뭣 때문에 별 다섯인지는 몰게쓰)

근데 써니언냐, 그거 쓰는구낫!! 햐..잘 나왔으면 조케다..기대기대. 언니 요새 넘 바쁘..일 정리하구 연락하께~ 그동안 원고 잘 쓰고 계슈~! 자나깨나 남자조심!! (← 언니 이거 우리 공식 모토루 하자. 이래야 왠지 있어 보이자너 ㅋㅋ)

질문들>

jinto님도 신림동 주민이심까?

윤캅님, 그 장르가 키치라는 장른가?

써니 언니, 남자 조심..하고 있지?

뤠..너한텐 질문 없음이야. 음..졸려....

Posted by 유진 (2003/12/11) | Comment

내가 사는 곳은 관악구 봉천동이다. 관악구에는 세 개의 동(洞)이 있는데, 신림동 남현동 봉천동이 그것이다. 신림동(新林洞)은 일대에 숲이 무성하다 하여 생긴 이름이고 남현동(南峴洞)은 남쪽에 있는 고개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왕 관악구에 살 거면 이름도 아름다운 신림동이나 남현동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봉천동(奉天洞).이름하여 떠받들 봉(奉)자에 하늘 천(天)자. 관악산 북쪽 기슭에 있는 마을로 관악산이 험하고 높아 마치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봉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풀이는 그럴 듯하지만 봉천이라니....세상에 이렇게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지명이 다 있을까. 어휴, 내 이름이 조봉천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조경란의 '나는 봉천동에 산다' 중에서 퍼왔다.

Posted by lulu (2003/12/13) | Comment

음냐, 두번째 직장이 그쪽이었습니다. 지금은 선릉으로 이사갔는데 그때는 거기 있었어요. 술마시러 신림4거리로 기어나오던 .. 그밤들... ^^

Posted by jinto (2003/12/14) | Comment

다 지 사는 동네는 마음에 안 드는가보다.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글이네.

jinto님. 신사리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수도 있겠어요.
그 넥타이 맨 거리의 주정뱅이들 중 하나셨단 말인가?

Posted by 유진 (2003/12/17) | Comment

음냐 -_-a
음냐..-_-a

좋네요 글 ^^

저도 제 동네(?)에 대하여 글 써보고 싶어요.

저도 제 동네에서 21년 살아와서 ^^;;

Posted by 쎄미 (2003/12/19) | Comment